개발 비화
북적북적하다. 방금 전만 해도 새해맞이를 위해서 모인 사람들이 있던 곳이라 여전히 인파가 사라지지 않은 건 이중에서도 어느 정도 비화 영상을 보기 위해서 모였다거나, 아니면 잠수일 수도 있다.
가급적이면 그러지 말라고 하고 싶어도 여긴 게임 속이라서 육성으로 의사를 전달할 수도 없다. 설령 잠수라면 제대로 듣지도 않을 테니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멘태셰"로 오니 멀리 성을 아득히 뛰어넘는 높이에 비교적 작은 화면이 띄워져 있다. "멘태셰"로 와서 보라고 했으니 그렇게 큰 화면을 준비하지 않을 것 같다. 그냥 높이만 높이면 알아서 다들 볼 수 있게 설계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그만큼 고개를 드는 작업이 어려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래서 '라티온'에는 한 가지 기능이 있다.
시선 고정, 원하는 화면을 만들어 놓은 상태로 특정 버튼을 누르면 화면이 고정되게 된다. 물론 평상시에 이 버튼이 눌리면 안 되므로 일반 퀵슬롯 버튼이 아닌 시스템에 관여하는 버튼 두 개를 동시에 입력하도록 설정되어 있다. 조작법을 나름 잘 읽어야 알 수 있는 버튼이다.
이렇게 하면 고개를 떨어뜨려도 화면이 내려오지 않는다. 사실 어려운 조작법이라서 누구나 이걸 따라할 수 있지는 않다.
그래서 그런지 아직 상영하기 전 대기화면 그 조작법에 대한 설명이 흘러나오고 있다. 모를 수도 있으니 시청을 위해서 팁을 알려주는 모습이다.
그것도 그렇고, 저것 말고도 해결책이 하나 있긴 하다.
제스쳐 중에 '눕기'가 있는데, 이걸로 실제 캐릭터가 누워서 하늘을 쳐다본다. 이건 정적인 제스쳐라서 고개를 움직여서 조절할 수 있다. 그렇게 해서도 볼 수 있지만, 그러면 다른 하나를 더 건드려야 한다.
다른 캐릭터들의 투명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있다. 이걸 이용해서 누웠을 때 거슬리는 서 있는 캐릭터들을 안 보이게 만들 수 있다.
단점은 캐릭터의 위치는 특정할 있게 한 조치로 공기가 울렁이는 효과의 실루엣이나 닉네임을 표시된다는 점이다. 어지간해서는 서서 보는 이들이 많으니 웬만한 대로에서는 하지 않는 게 좋다.
특히나 우리처럼 대로에 밀려난 사람들을 그래야 한다. 이미 한적하고 전망 좋은 곳들은 빼앗겼다. 그런데, 경쟁이 심하면 어디라도 한적하지 않겠다.
("다른 개발자들은 우리가 몰랐었구나.")
""심마니"만 나왔으니 모를 법도 하지."
대표성을 가진 얼굴이라면 "GM심마니"를 생각할 수 있어도 그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웬만해서 아는 사람이 적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것도 인맥이 있다고 하더라도 비밀 엄수를 위해 잘 언급하지는 않겠다. 그나마 "심마니"만이 사외에서 여러모로 팬이나 안티에 꼬일 법도 한데, 애초에 얼굴 자체를 공개하는 행위 자체가 대단하고 위험부담이 큰 일이다.
그렇다면 저 비화 영상에서 웬만한 사람들의 얼굴이 공개될지, 나는 그게 궁금하다.
곧 영상은 시작된다.
"시작한다."
("응.")
타이틀이 바로 나오지 않고 영상은 '라티온'의 본사의 현관에서부터 시작된다. 일거수일투족 나오지는 않고, 건너뛰는 편집 효과가 일어나면서 현관에서 엘리베이터, 사원증으로 긁는 소리(장면은 나오지 않는다)까지만 나온다. 엘리베이터도 층수를 누르는 장면이 없어서 정확히 어디인지 모른다.
그리고 제대로 출근 준비를 마치기 위해서 자기 자리에 가는 것도 아니라, 어딘가 회의실 같은 밀폐된 공간에 들어간다. 일종의 상담실 같기도 하다.
덜컥, 탁
문이 열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옆에서 누군가 다가온다. 당장 얼굴이 비춰지지 않는 각도라서 얼굴은 모른다.
그러자 카메라맨의 맞은 편에 바로 앉는다.
그리고 예상한대로,
("가면이네?")
예상하고 있었다. 얼굴을 함부로 공개하기 어렵다는 의견 끝에 나온 결론이겠다.
하지만, 등장하지 않으면 그것대로 비화 영상이 아니니 저게 쵝선이었겠다.
일단 가면은 각시탈이다. 묘하게 미디어에서 상징적인 탈이라서 인상 깊다.
("이렇게라도 여러분에게 보일 수 있게 되어서 영광스럽습니다. 안녕하세요? 사운드 담당을 맡고 있는 "조쉬"입니다.")
저 "조쉬"라는 닉네임을, 어쩌면 본명일 수도 있고 하니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막으로 "조쉬"라고 나오는데, 저게 캐릭터 닉네임인지도 불분명하다. 그냥 조쉬라고 표현하기에는 정말 사람 이름으로 불리는 것 같아서 "조쉬"라고 말하겠다.
("'라티온'을 만드는 '칼레이도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당시부터 있었던 원년 멤버입니다, 라고 칭하기에는 낯간지럽네요. 다른 곳에서 일했던 이력들을 밝히는 건 좀 그렇고요, 그래도 경력자였으니까 이 정도 일을 맡는 건 할 만하다, 자부하고 있었습니다.")
여러 영상들이 혼합된다. "조쉬"의 대면 인터뷰가 진행되면서도 영상은 사운드 팀의 실체를 공개하고 있다.
뭔가 다채롭다. 단순히 스피커 등의 오디오 장치가 가득한 방에서 잠자코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따로 사내에 레크레이션을 즐길 수 있는 장소(그것조차 업무용일 수도 있겠는데), 체육관 같은 느낌의 장소가 나온다.
거기에서 하는 일은 왠지 음향 채집인 것 같다. 마이크를 오만 것에 갖다 대는 게 보이니 노력이 가상했던 게 보인다.
("하지만, 개발 초기부터 여려 가지 상식을 깨부수는 시도를 하라고, 그렇게 지시를 받으니까 평소에 쓰던 샘플에서 빌려쓰는 건 최대한 배제하고, 이번에는 우리의 독창성을 보여주겠다 해서 가장 어울리는 효과음 같은 걸 넣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말 힘들었습니다. 오히려 독창적이니까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사운드 쪽에서 별 말들을 잘 안 하시니 다행입니다. 정통의 방법이 아닌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방법을 썼는데도 지적을 안 해주셨죠. 아니면, 사운드는 그렇게 눈여겨 보는 영역이 아니라서 모르는 거라면 말씀해 주시면 원하시는 사운드를 개선하겠습니다. 앞으로도 저희의 작품을 좋게 들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인터뷰의 마지막으로 "로다란 레이드"의 보스 3페이즈 BGM이 재생된다. 저 때가 웅장하긴 하다. 어디에서 보는 장엄한 보스전을 연상케 하는, 오히려 '라티온'에서는 저런 BGM이 드물긴 하다.
독창성이라는 게 각 몬스터들이나 지역의 개성을 살리라는 요구였던 것 같다. 어떤 요구였는지는 이미 '라티온'을 해오면서 익히 알고 있다.
스킬도 엄청 많다. 다른 직업이 허다하게 많은 게임에 비하면 적은 편이라도 공용 스킬부터 전용 스킬까지 몇 개인지 파악하고 있지도 않다. 그 수많은 스킬들이 있음에도 각 스킬들의 사운드가 겹치지 않는다. 이건 꽤나 어려운 작업이다.
당장 "OCM(불)"만 해도 온갖 이펙트들이 불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펙트로 판별하기 어려운 경우는 가끔 있어도 평상시에 스킬 사운드가 헷갈려서 파악 못한 적은 없다. 미묘하게 차이가 난다. 특히 가장 비슷한 컨셉의 [마력탄]과 [버닝 불릿]의 사운드도 차이가 나는 걸 보면 소리만 듣고 스킬을 맞추는 콘텐츠도 가능해 보인다.
비록 언어의 한계 때문에 일부 스킬들은 비슷한 사운드로 서술되었지만 그것조차 미세한 차이가 있다.
다음도 가면을 쓰고 나온다.
가면이··· 각시탈은 그래도 전문성이 있는 픽이라도 하지, 아무 골판지를 오려서 눈과 코와 입만 나와있게 하고 있다.
컨셉은, 아무래도 버섯인 듯하다.
("왜 제가 두 번째일까요, 하하하. 안녕하십니까! 캐릭터 and 밸런스 담당을 맡고 있는 "버순이"입니다! 버섯으로 오려서 붙이고 왔지만, 실제 별명이 버섯하고 연관되어 있습니다. 두상과 연결된 건데, 보여드릴 순 없어서 말로만 하겠습니다! 이렇게 모습을 밝힌 적은 처음이라도 여러분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는 거 알고 있습니다! 안 좋은 쪽으로요, 하하하··· 좋은 쪽으로 찾기가 힘든 게 이쪽 부류죠. 언제든지 완전한 저울이 있는 일은 거의 없다시피 한 거 압니다.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려고 해도 변수가 생기는 게 여러분들이 가진 불안감이라 생각합니다. 신규 장비도 나오면 불안해지는 거 압니다. 어떤 직업에게는 쓰기 힘든 조건부가 제일 데미지 포텐션을 높일 수 있는지, 불안해 하시지 않습니까?")
나는 별로 밸런스에 대해서 그렇게 안 좋다 생각하지 않는다. 밸런스가 안 좋다고 하면 그건 사람들이 또 다른 장점을 못 생각해서다.
("저희들은 직업들을 만들 때 최우선으로 생각했던 것이 직업들의 개성이었습니다, 만! 다 어딘가에서 본 직업들이니 표면적인 멋을 살리는 건 당연히 무리였습니다. 플레이 스타일에서 차이를 보여야겠다. 이게 우선이었습니다. 밸런스를 생각 안 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개성! 은 있어야 한다! 직업 간의 불편함은 해소되어야 하는 것은 맞습니다. 똑같은 기능을 하는 스킬임에도 어느 직업은 편하게 쓰고, 어느 직업은 다르게 쓰면 안 되는 식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개성을 최대한 늘리려고 애썼습니다. 기능이 겹치지 않게, 만약 겹친다면 장단점을 부여하도록 설정했습니다. 어느 직업이 좋은 점만 가지고 있지 않도록 설계를 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습니다. 그래도 장비는 조정해야 할 것 같다고 느낍니다. 괜히 직업 차이의 간극을 벌이자고 현재의 캐릭터 밸런스를 무너뜨리를 수는 없지 않습니까? 아무래도 저희는 직업을 만들었던 것치고는 근래에 들어서 장비 옵션을 제작하는 데에 이 점을 간과했었습니다. 정말 사과드리고 싶습니다! 죄송합니다!")
중간에 표현하는 걸 깜빡했는데, 역시 개발하는 PC의 화면이나 모션 캡쳐가 이루어지는 과정이 여럿 보이면서 '라티온'의 직업이 완성되는 과정이 보였었다. 실제 게임 플레이 화면도 테스트로 찍어놓았던 건지 있었으니 만족하였는데, 현실의 "버순이"가 가면을 쓴 채로 고개를 숙여 영상을 향해 사과한다.
그 개성에 따른 장단점을 비교하면 "OCM(불)"의 [화마의 손짓]가 "마법사"의
그리고 자막에 새로운 내용이 뜬다.
[Q. 단속성마법사를 만들게 된 계기를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데?]
그랬나?
하지만, 듣고 보면 궁금하긴 하다.
굳이 따로 직업을 만들지 않더라도 "마법사"의 한 직업군으로 만들었어도 괜찮았겠는데, 일부러 직업을 달리 해서 출시한 건 묻고 싶다.
어떤 대답이 오든 난 하고 있고, 할 거지만.
("직업은 세계관과 연계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지니고 있지 않습니까? 독자적으로 개발한 것은 아니고 스토리 측과 같이 상의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차라리 "마법사"로 통합하는 방향도 생각했지만, 여러분들도 아시는 "정령왕" 이야기를 보시면 아실 겁니다. "마법사"를 싫어하는 "정령왕"의 이야기. 그러나 그런 "정령왕"의 힘을 이어받은 "단속성마법사"가 "마법사"를 동료로 맺고 싸우는 것도 신기하긴 합니다. 그렇다면··· 그 이상은 제가 말할 수 없으니 당장 불러보겠습니다!")
곧바로 "버순이"가 사라지고 다음 사람이 자리에 안착한다. 일사천리로 편집된 듯한 속도감에 금방 그가 쓴 가면을 보게 된다.
"다람쥐?"
하필 그 가면이 다람쥐라는 점에서 혼잣말을 내뱉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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