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2)
"방금 뭐니?"
"그게··· 일단 보세요."
설명하려니 장면을 계속 놓칠 것 같아서 포기한다. 그 2초의 공방전을 해석하느라 콤보를 어떻게 넣었는지도 포착 못해 아쉽다.
'라티온 : 전쟁 유희'가 이렇게나 긴박하게 돌아가는 게임이었던가? 어떤 해설자도 이런 플레이를 보리라 생각하지 않았는지 실시간으로 방금 공방전에 대한 해설을 생략한다.
("심적으로 당황했을 터인 "캐슬" 선수지만, 아직 HP로는 유리합니다.")
'이'가 '로는'에 악센트를 붙인다. 데이터를 보면 유리한 건 맞다. 예선전과 스킬셋은 달라진 게 없는 아빠이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묵직한 콤보를 맞으면 역전이 멀어질 것으로 보인다.
("[더킹], [스웨이]에 분한지 "캐슬" 선수는 잔 스탭으로 비슷하게 해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대칭 상황, 입니다.")
'정'의 말대로 "캐슬드라이버"의 아바타는 렉에 걸린 것 같은 움직임이다. 손가락만 잘 놀려주면 위아래 이동 버튼을 빠른 시간 내에 왕복할 수가 있다. 좌우 버튼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게 필요 없는 게 자칫해서 움직임이 필요한 순간에 손이 꼬일 확률이 올라가기 때문에 차라리 안 하는 게 낫다. 슬쩍 옆으로 걸으면서 심리 싸움을 거는 편이 낫다. 어차피 움직여서 피하는 건 원거리 견제 스킬 정도다.
(""캐슬" 선수는 안 쓰고 있는 건지, 원거리 기술이 전혀 없는 듯합니다. 쿨타임을 서로 벌고 있는데, 글쎄요. "캐논" 선수의 스킬셋이 그렇게 데미지가 높아보이진 않거든요?")
("지켜보는 상황에서도 "캐논" 선수의 움직임이 멈추질 않습니다.")
'이'와 '김'의 멘트에 안 그래도 시선이 가는 "그랜드캐논"에게 눈이 고정된다. 둘 다 나오는 상황에서 제일 크게 움직이는 사람에게 관심이 가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상황에서 싸움을 여는 건 역시 "캐논" 선수일까요?")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아빠가 [스웨이]를 기점으로 진입한다.
푹
[폭쇄]로 간을 보나 닿지 않는 걸 눈치 채고 [막기]로 대응을 하지 않는 "캐슬드라이버"다.
이에 [폭권 : 제 1형]을 써보려는데, 이를 적중시키면 [가스 러쉬]가 함께 따라오는 것이라서 욕심보가 있는 선택이다.
팅
드디어 [막기]를 제대로 적중시키는 "캐슬드라이버"다. [추진]이라는 유일한 후퇴 회피기가 있다고 해도 반응을 못하게 만든 건 "캐슬드라이버"다.
미세한 전진 거리가 있는 [어퍼 슬래쉬]와 [막기]를 연계시켜 관성으로 살짝 앞으로 몸을 내밀게 해서 [막기]로 [폭권 : 제 1형]의 마중을 나왔기에 노림수를 당하는 게 확정이었다.
풍
확정이라고 생각했던 게 부끄러워질 상황이다. 곧바로 [추진]으로 빠져나온다.
[폭권]은 원거리 판정인 듯하다. 사정거리 자체는 매우 짧지만, "폭권사"라는 이름에 걸맞게 폭발로 데미지를 주는 컨셉에 맞춰서 근접 공격 판정은 안 나는 모양이다. 방패에 닿았으면 역경직으로 호되게 당했을 것이다.
축-쿠쿠쿠쿠쿠
그래서 "캐슬드라이버"의 실책이 나온다. 본인의 화면에서는 [막기]에 공격했을 것이라 생각했겠다.
경직 시간을 고려해서 [형벌 : 검의 비]를 맞출 생각이었던 모양이다. PvE에서는 60레벨 스킬로 준수한 범위기로 활약하고 있고, PvP에서도 그에 걸맞는 성능이다. 좁은 반경의 원 바깥에서부터 안쪽으로 빛의 칼을 내리꽂는 스킬로 [막기]와 자주 연계된다.
("[폭권]이 [막기]에 안 들어간 모습인 것 같습니다?")
("처음 알았습니다. 저런 판정이 되는군요.")
("서로 몰랐는지 판단이 아쉽네요. "캐논" 선수에게 기회가 될 수 있었는데 말이죠.")
다시 대치 상황으로 이어져서 마지막의 '김'의 말을 해석하면, [막기]가 들어가지 않은 걸 알았으면 [검의 비]라는 시전 시간이 있는 스킬 중에 기회를 엿보았으면 되었다, 는 안타까움이다.
("일단 이 경기의 관전 포인트는 단 하나입니다. [막기]가 적중되느냐 안 되느냐, 그런데 하필 이제 알았죠. [폭권]은 [막기]에 카운터를 안 먹는다는 정보를 알았으니 구도는 "캐논" 선수에게 유리합니다.")
("방패와 창, 총의 싸움이군요!")
("네, 딱 그게 정확한 표현입니다.")
'정'과 '이'의 만담에 굳이 말해주고 싶다면, [진형붕괴]가 있어서 마냥 "폭권사"가 편한 상황은 아니다. 쉽사리 도전을 안 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아빠는 [진형붕괴]의 쿨타임을 알고 있을까. 내가 답을 말하면 18초다. [막기]는 10초로 PvP에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스킬들은 쿨타임이 대체로 길게 설정되어 있다.
조언을 하고 싶은 건 콤보를 못 잇더라도 기동성으로 한두대는 때려도 무관하다. 저항할 공격 스킬은 "성기사"도 있다만 나는 아빠의 반사신경을 믿는 편이다.
("다시 들어가는 "캐논"!")
'정'의 해설은 정확하다. 표면적인 것도 아니다. 정말 정직하게 들어간다.
그런데, 그냥 들어가지 않는다.
후웅풍, 슈웅쿵
[막기]보다는 [진형붕괴]에 초점을 두어 [추진]으로 들어간다.
그냥 [추진]이 아니라 [더킹]이라는 조미료를 첨가한.
이론적으로는 이해가 간다. [스웨이]를 남겨서 혹시나 수가 틀렸을 때 벗어나려는 속셈이다.
그렇다고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이렇게 선보인다. [더킹] 이후에 바로 뒤돌아서 밑을 보고 [추진]을 쓰고 다시 뒤를 돌아서 [지면 강타]를 써야 하는데, 이게 보통 몸에서 나올 피지컬은 아니다.
확실히 노력은 가상하다.
("너무 정직했습니다!")
타타, 꽝쿠과과광
"캐슬드라이버"가 움직이지만 않았다면 적중했을 거리였다. 견적 자체가 아슬아슬했다.
조금이라도 뒤로 빼면 닿지 않을 거리라서 이를 인지하고 두 걸음만 뒤로 뺀다. 그러고는 [신성 : 분출]로 땅에서 빛의 기운을 뽑아내어 "그랜드캐논"을 덮친다.
("위깁니다, "캐논" 선수!")
("콤보가 어떻게 들어가나 봐야겠죠?")
'정'과 '김'의 말대로다. 확실한 위기다.
역전은 기적으로 변한다. 이대로 콤보를 맞으면 격차는 심각하게 벌어진다.
[신성 : 분출]의 프로세스가 진행되더라도 시전자의 모션은 분출 시점에서 끝난다. 그래서 맞추기만 하면 사기적인 성능을 보이는 스킬이다. 상대는 타격을 입고 경직을 먹는 상태에서 다른 스킬을 미리 장전할 수 있다.
주로 이 상태에서 쓰는 스킬이라 하면 [7죄 집형] 정도다. 각기 다른 형태인 7개의 검이 둥근 형태를 이루어 등 뒤에서 날아다니는데, 이는 타격할 떄마다 발사되어 추가타를 입힌다. PvP에서는 경직이 없으나 반드시 적중시키기 때문에 단점이 없는 버프 스킬이다.
단점이라고 하면 지속시간이 길지 않아 콤보 중에 쓰는 게 아니면 날려먹는다고 보면 된다. 그런데, 그걸 [신성 : 분출]이 보완해주고 있어 국민 콤보나 다름없다.
타타타, 탕, 쌔앵
일반 공격 한 번에 검 한 개가 날아간다. 일반 공격이 3%, [7죄 집형] 한 발이 2%를 까서 총 5%다. 스킬 하나가 다 적중하면 14%를 깐다는 것 자체가 소름이 돋는다.
이후의 콤보는 별 거 없다. [허리케인]을 쓰든 [정의를 위한 방패]를 쓰든 흥미라는 게 생기지 않는다.
가뜩이나 아빠가 지고 있는 걸 떠나서 "성기사"는 솔직히 말해서 전투가 재미가 없다. [막기]와 [진형붕괴]로 기회를 잡거나, 아니면 말고 식의 운영은 태생의 한계라고 해도 비겁해 보인다. "성기사"를 혐오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필 그게 아빠를 상대로 한다는 게 더욱 아믕에 안 들 뿐이다.
결국 질 수밖에 없다. 크로스 카운터를 맞지 않고 일방적으로 패 죽인다고 해도 콤보로 넣을 수 있는 데미지가 현저히 작다.
("남은 두 스킬을 아직 공개 안 한 "캐논" 선수거든요? 역전이 가능할까요?")
그건 맞다. 예선에서 보여줬던 [투구 부수기]와 [폭권 : 제 3형]은 보지 못했다. 어쩌면 소유하고 있으나 일부러 공개를 안 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폭권 : 제 3형]은 있었으면 매치 상성상 반드시 써야했다. '김'이 잘 짚어준다.
하지만, 결국 볼 일은 없었다.
("아아! [검의 비]를 맞추면서 1세트는 종료됩니다! GG~!")
무리한 요구였다. 유틸리티만 가득한 스킬셋에서 두 스킬만 다르다고 역전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속수무책으로 졌네. 상성이 불리한 거니?"
"상성이 불리해지게 만들었죠, 아빠가."
"왜?"
"스킬을 바꿀 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상성 차이를 만드는 거니? 어려운 게임이잖아?"
그렇긴 하다.
그렇긴 한데.
"방에 가볼게요."
"조언해주게?"
"조언만 하면 이기겠죠."
조언이라고 말을 좋게 하면 그렇다.
정작 실체는 조언이 아니라 명령에 가깝겠다. 이러면 좋겠다는 권유 이전에 "성기사"를 상대로 "폭권사"가 할 수 있는 해법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덜컥, 하고 방문을 열려고 하자,
"들어오지 마!"
소리를 치는 아빠지만, 내 예상과는 사뭇 다르다.
패배에 분개하거나 텁텁함을 다시면서 있을 거란 예상은 빗나간다.
평온하다. 시원하다.
"졌잖아요?"
"두 번 이기면 그만이지."
"우선 스킬부터-"
"알려주면 내 승부가 아니지."
그건 부정을 못한다.
"결승전에서 만나고 싶은 건 마찬가지지. 일부러 지려고 하는 싸움을 하는 건 승부조작 말고는 없어. 그렇다고 이기기 위해서 남의 힘을 빌리는 건 모두가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이진 않는 거지. 그러니까 들어오지는 마. 자력으로 승부를 볼 테니까."
"···네."
마지못해 거실로 돌아간다.
"거절 당했니?"
"그러게요."
"그렇겠지. 이기고 지는 것보다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한 사람이거든."
"네?"
"왜?"
"그랬어요?"
"그런데?"
그러면 모순이다.
"전에는 어쨌든 이기는 게 좋다고 했는데요."
"아, 그거야 누구나 이기는 게 좋지. 그래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는 편은 아니거든. 누구보다 승부조작에 관해서는 민감한 사람이야. 옛날에 공중파에도 뜰 정도로 어마어마한 승부조작 사건이 생겼기도 했고, 그보다는 원래 그런 사람이 너네 아빠란다."
최선을 다한다는 사람이 대충 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혹시나 플레이 타임이 길어서 그랬다는 변명은 안 통하는 게, 그 때가 세 판째였다. 아무리 그래도 계산 실수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지나친 허술함이라서 도통 엄마의 말을 바로 믿을 수 없다.
("네, 준비 끝났습니다! 2세트, 또 "캐논" 선수가 "설원"을 고르면서 경기가 시작됩니다!")
이렇게 보면 이제 테마의 의미는 없다. 1세트에서의 싸움을 돌이켜 보면 서로 빼는 일 없이 조우한 그곳에서 결판을 지었기 때문에 테마의 특색이 활용은 일절 없었다. 나오지도 않아 설명도 못했다.
제발 이번에는 이기길 바라면서 마찬가지로 조용히 관전을 속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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