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스피치. 님의 서재입니다.

복덩이 용병은 고인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스피치
작품등록일 :
2021.07.30 21:57
최근연재일 :
2021.08.12 21:4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782
추천수 :
140
글자수 :
86,446

작성
21.08.12 21:45
조회
136
추천
5
글자
13쪽

13화 - 만년하급의 반란(1)

DUMMY

13화-1


중급시험이 얼마 남지 않았다.


‘딱 한 달하고 열흘.’


그 안에, 어떻게든 윤 소로우를 쓸만한 용병으로 만들어놔야 했다.


중급시험에 대한 대비.


중급시험은 각 용병단에 선별되어 나가지만, 개인으로 시험을 치루는 시스템이 아니었다.

용병단의 기본적인 편제단위인, 조.

각 용병단은 3개의 조를 선별하고, 이렇게 선발된 총 15개의 조가 모여 시험을 치루는 식이었다.


선발이야 어렵지 않았다.

이미 자이로의 신임은 최상. 또한 하급7조는 현재, 의뢰완수율 100퍼센트에 달하는 성적을 유지하고 있었다.

1팀의 하급조들 중에서. 아니, 2팀까지 통틀어 1번대 전체에서 이반의 7조는 최고의 폼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더 보지 않더라도, 이반의 조는 무조건 뽑혔다.


하지만 이반이 걱정하는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진짜 문제는 중급시험에 들어간 직후.


‘지금 이 상태로 시험을 치면, 석차 안엔 들 수 있을까?’


이반은 쉽게 확답을 내리지 못했다.

각 용병단에서 차출된 만큼, 당연히 시험을 치루는 용병들은 어중이 떠중이들이 아니었다. 고르고 고른 정예들. 그 안엔 크리스와 소피에, 갈룬드 같은 네임드들도 섞여있다.


반면 이반의 조는 노력둔재와 만년하급.

아르웬이 최근 이반의 도움으로 각성하여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윤 소로우는 아니었다.

전투력 까먹는 폭탄.

이반이 바라본 윤은, 용병학교의 견습용병들보다도 못했다.


석차? 예선통과만 해도 다행이다.


‘흠. 내가 답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할 정도라니.’


이반은 현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픽 실소만 지었다.


‘하여간 재밌다니까.’


굳이 중급시험 때문이 아니더라도, 백랑 용병단의 상향평준화를 위해서 언젠가는 했어야 하는 일이었다.

겸사겸사 그걸 앞당겨서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반은 그렇게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다 드셨습니까?”

“응.......!”

“그럼 나가죠.”


이반은 검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윤은 주섬주섬 로브에 달린 후드를 뒤집어쓰고, 의자에 놓아두었던 도시락을 소중히 껴안았다.

도시락은 지금 이 순간에도 열심히 검을 휘두르고 있을 동료, 아르웬을 위한 것이었다.


“푸하하. 거기서 내가 칼로 그 자식 가랑이를 톡톡 건드리니까 글쎄, 바지 색깔이 누렇게 뜨더라니까!”


그때 우렁찬 목소리와 함께 식당 안으로 한 무리의 용병들이 들어왔다. 제일 앞에 있던 사내가 카운터 앞에 이반을 보더니 팔을 번쩍 들었다.


“어? 어이! 복덩이!”


그들은 다름 아닌, 1팀 소속의 중급용병들이었다. 이반은 꾸벅 목례했다.


“아. 선배님들. 식사하러 오셨습니까?”

“그럼 밥 먹으러 왔지 의뢰하러 왔겠냐?”

“그것도 그러네요.”

“으하하! 농담이야, 농담. 정색하지마.”

“원래 제 표정입니다.”

“그래그래. 그럼 넌? 가려고?”

“예. 다 먹고 막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그으래?”


팔이 유난히 근육질인 그 사내는 저벅저벅 걸어와 이반의 어깨 위로 팔을 휙 둘렀다.


“그럼 계산은?”

“아쉽게도 아직. 안 했습니다.”

“후후. 그럼 우리 복덩이 건 내가 사야겠군. 주인장! 여기 얼마요?”


근육질 사내는 곧바로 이반의 것을 계산해주었다. 이반은 당연히 예의상 거절조차 할 생각이 없었다.


“잘 먹었습니다.”

“고맙지? 흐흐. 이렇게 밥 사주는 선배 잘 없다. 응? 어디 가서 막 자랑하고 다니라고.”


이반은 대충 끄덕여주었다.

겉으론 이들을 상대해주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여전히 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있는 이반이었다.


“그럼 저흰 가보겠습니다. 식사 맛있게 하시길.”


그렇게 이반이 밖으로 나가려 할 때였다.


“뭐야. 근데 얘도 우리 용병단이냐?”


근육질 사내가 가만히 있던 윤의 팔을 덥썩 붙잡았다. 그는 윤을 보며 비릿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선배를 봤으면 인사를 해야지. 후드 눌러쓰고 뭐하는 거냐, 응? 대가리 까봐.”


덜덜, 윤이 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그 모습에 다가가려던 이반은, 문득 걸음을 멈칫했다.


‘왜 저렇게 떨지?’


근육질 사내는 억지로 윤의 후드를 벗겼다.

겁먹은 길고양이처럼 목을 움츠린 윤의 얼굴이 드러났다. 애처롭게 떨리는 입술. 윤은 사내의 발끝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반은 묘한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응?”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툭툭, 윤의 어깨를 두드린 근육질 사내는 비웃음을 남기고 몸을 돌렸다.

윤이 걸음을 땐 것도 거의 동시였다.

그는 도망치듯 식당 밖으로 나가더니 기둥을 잡고 거친 숨결을 토해냈다.


그제야 이반은 윤이 지금껏 숨을 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이반은 윤 소로우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만년하급이라는 별명은 원작 스토리에서 몇 번 보긴 했지만, 정작 대용병시대는 윤에 대한 에피소드를 확실히 다루지 않았다.

그래서 이스터에그나 맥거핀. 딱 그 정도의 인식이었다.


이반은 용병단에 복귀하자마자 따로 본청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행정과의 타일러를 만났다.


“어? 이반! 여긴 어쩐 일이야?”


타일러는 이반을 보자마자 세상 반갑게 그를 맞이해주었다.

이반은 즉시 자신의 용건을 털어놓았다.


“음. 그러니까 그 둘에 대해서 말해달라고?”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당연히 알려줄 수 있지. 어려운 일도 아닌데!”


타일러는 잠시 3년 전의 기억을 더듬었다.


“윤 소로우. 내가 기억하는 3년 전의 윤은 이렇게 한심하고 소심한 용병이 아니었어. 오히려 신입들 중에선 똘똘한 축에 속했지. 당시 하급용병이었던 내가 잘 알아. 같은 숙소에 연무장도 같이 쓰고 했으니까. 물론 얼마 안가 내가 중급을 다는 바람에 윤과 떨어지게 됐지만, 아무튼 내가 기억하는 윤은 그랬어.”


타일러는 담담히 얘기들을 이어나갔다.


“하지만......2번대로 배정되었던 신입 볼그가 1번대로 튕겨지면서 윤은 달라졌지. 아! 그땐 단장님도 자리에 계셨고, 2번대랑 종종 왕래도 하던 때야.”


타일러는 윤의 성격이 바뀐 터닝포인트가 바로 그때라고 말했다.


용병학교부터 쭉 같은 학급의 동기였던 볼그.

그리고 그에게 오랫동안 괴롭힘을 받던 윤.

둘은 이곳에서 다시 만났고, 지옥 같은 나날은 다시 시작됐다.


그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는 정확히 알 순 없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느낄 순 있었다.


‘중급용병이 된 볼그를 피하기 위해, 윤이 중급시험까지 미룰 정도.’


윤은 중급시험 선별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망가뜨렸지만, 소심한 성격. 무시. 만년하급. 부정적인 시선 등.

3년이 지난 지금의 윤은 정말로 망가져버리고 말았다.


“감사합니다.”

“뭘. 조장이 조원 이끌어준다는데 나도 선배로써 도와줘야지.”


타일러가 싱긋 눈웃음을 지었다.

이로써 대충 뒷얘기를 알았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반이 밖으로 나서려고 할 때, 타일러가 그를 붙잡았다.


“아, 참! 잠깐만 기다려봐.”


타일러는 자신의 자리에서 뭔가를 뒤적거렸다. 곧 그는 두 서류철을 들고 왔는데, 윤과 볼그의 신상이 기록된 서류들이었다.


“이건?”

“조장이 조원 이끌어둔다는데 선배로써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참고할 게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한 번 봐바.”


타일러는 목소리를 낮췄다.


“참고로 볼그의 자료는 원래 네가 볼 수 없는 자료니까 비밀이야. 알았지?”


그는 눈 한쪽을 찡끗했다.


숙소에 돌아온 이반은 곧바로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천천히 윤과 볼그의 서류를 훑기 시작했다.

꽤나 시간을 투자했지만, 그럴 듯한 수확은 건지지 못했다.

이미 알고 있거나 추측 가능한 것들의 나열이었다.


지속적인 강압행위로 인한 정신적 외상.

트라우마.


이걸 이겨내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용병단이 해줄 수 있는 조치는 없다고 봐도 좋았다. 애초에 이곳은 따돌림이나 왕따라는 개념이 없는 사회니까.

따돌림을 당한다는 것은 오히려 본인 스스로의 무능을 입증하는 꼴이었다.


이반도 마찬가지였다.

마음만 먹으면 대신 복수를 해줄 수도, 볼그를 용병단에서 퇴출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반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반이 원하는 건, 윤의 성장이지 구제가 아니니까.


‘어떤 판을 깔아야 윤이 자신감을 회복할 수.......음?’


그때였다. 윤의 견습시절이 정리된 용병학교 생활기록부 중, 이반의 흥미를 강하게 끄는 구절이 있었다.


“뭐야. 이때는 주무기술이 궁술로 표기되어있네?”


지금의 윤은 검을 사용하고 있었다. 며칠을 봐왔지만, 이반은 윤이 궁술을 사용하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혹시 몰라 이반은 볼그의 것도 보았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볼그의 주무기술은 궁술로 표기되어 있었다.


“흐음.”


이반은 턱을 긁적였다.

마치 어두컴컴한 미로에서 한줄기 빛을 발견한 기분.

이반은 머릿속으로 판을 짜기 시작했다.


다음날.

이반은 날이 밝자마자 윤을 불러냈다.


“윤 선배. 원래 주무기술 검술 아니죠?”

“응? 아, 아닌데? 나 검술 맞는데.”

“정말입니까?”

“응. 정말로.”

“그래도 용병은 여러 무기술을 배워두는 게 좋습니다. 일단 이거 들어보십시오.”


이반은 허리춤에서 비검을 꺼내 억지로 윤의 손에 쥐여 주었다.


“가, 갑자기 왜.”

“저기 사과 보이십니까? 던져서 맞추면 됩니다.”

“아니. 우리 의뢰는.......”

“시작.”


윤은 입을 뻐끔거리다 비검을 던졌다. 당연히 비검은 빈 공간을 갈랐다.


“잘하셨습니다.”

“.......어? 잘 했다고?”

“예. 그럼 다음은 이겁니다.”


이반은 바닥에 있던 활을 윤에게 강제로 쥐여 주었다. 윤은 어쩔 수 없이 활을 쏘았고, 이런 짓은 특훈이라는 이름 아래 계속해서 반복되었다.


#


윤은 침대에 쓰러지듯이 엎어졌다.

흙과 땀으로 침대가 더러워졌지만, 윤은 신경쓰지 않았다. 그가 신경 쓴 것은 자신이 엎어지며 삐걱거린 침대소리가 옆방에 들렸는지 안 들렸는지였다. 얼른 고개를 들고 옆방에 청력을 집중했다.


“.......”


다행히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아무래도 외출중인 듯싶었다. 그제야 윤은 자세를 편하게 하고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지친다.”


자신은 왜 이러고 사는 걸까.

어제 있었던 식당일까지 떠오르자, 윤은 급격하게 우울해졌다.


문득, 이반이 떠올랐다.

자신보다 세 살이나 어리지만, 놀라운 능력으로 조장의 자리에 오른 남자.

언제나 당당하고 확신에 차있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드는 남자.

윤은 그런 이반이 존경스러웠다.


‘그는 친절하기까지 해.’


물론 그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했지만, 그것 자체만으로 윤은 좋았다. 적어도 그는 편견어린 시선으로 자신을 대하지 않았으니까.


헌데, 오늘은 조금 이상했다.

계속 자신에게 무기를 권했고, 새로운 무기술의 훈련을 유도했다.

오늘 하루 윤은 수십 발의 활을 쐈다. 그리고 모든 화살을 빗나가게 ‘만들었다.’

그런데도 이반은 자신을 칭찬했다.


‘잘했습니다.’

‘.......잘했다니? 어떤 게? 계, 계속 이렇게 빗나가는데. 옆에서 보기에 짜증나지 않아?’

‘전혀요. 활을 쏘는 건 쉽습니다. 쏘기 전까지의 과정이 복잡하고 어려운 거죠. 화살을 골라 매기고. 목표까지의 거리를 재고. 바람을 계산하고. 확신과 조준. 그 과정을 해내셨으니 비록 빗나갔더라도 잘하신 겁니다.’

‘.......’

‘음유시인들의 노랫말 중에 이런 게 있습니다. 궁사는, 목표물을 맞췄을 때보다 시위를 놓는 그 순간이 가장 빛난다. 방금 전의 윤 선배는 충분히 멋졌습니다. 그걸로 된 겁니다. 목표물은 다음에 맞추면 됩니다.’


윤은 그만 울컥하고 말았다. 멋지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언제였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사실 알고 있었다.

이반이 왜 자신에게 아까운 시간까지 투자해가며 이런 특훈을 시키는지 말이다.


‘중급시험.......때문일 거야.’


현재 하급7조의 성적이라면, 무조건적으로 중급시험에 선별될 것임을 윤은 알고 있었다. 그걸 준비하는 것이겠지. 윤은 바보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반은 중급시험을 위해 자신을 이용하는 것일까?

윤은 고개를 저었다. 그의 선의는 가식 따위가 아닌 전부 자신을 위한 것. 윤은 오히려 고마웠다.

그래서 윤은 그 믿음에 보답하고 싶었다.


“.......”


생각에 잠겼다. 여러 기억들이 머릿속에서 휘몰아쳤고, 그 중에는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기억들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표정에 비장함이 서렸다.

몸을 일으킨 윤이 침대 아래에 놓여진 상자를 꺼냈다. 사람몸통만한 상자는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끼익, 뚜껑을 열자 여기 저기 으스러져 형태만 유지 중인 물건 하나가 상자 안에 담겨있었다.

윤은 떨리는 눈으로 그것을 응시했다.


쇠뇌(Cross bow).

사냥꾼이었던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유품.


윤은 이 쇠뇌와 함께 견습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일련의 사고로 그는 쇠뇌를 떠나보내야 했다.


콰직!


‘보, 볼그.......?’

‘아, 미안. 실수. 어떡하냐, 이거?’


오래 전에 묻은 기억이었다.

윤은 조심스레 손으로 쇠뇌를 매만졌다. 차가웠던 활 몸의 쇳부분이 금세 윤의 체온을 전달받아 따스히 덥혀졌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복덩이 용병은 고인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공지입니다..... 21.08.13 69 0 -
» 13화 - 만년하급의 반란(1) +1 21.08.12 137 5 13쪽
13 12화 - 노력둔재(4) +1 21.08.11 161 10 15쪽
12 11화 - 노력둔재(3) 21.08.10 173 10 14쪽
11 10화 - 노력둔재(2) +1 21.08.09 196 9 13쪽
10 9화 - 노력둔재(1) +1 21.08.07 216 10 16쪽
9 8화 - 청소(3) 21.08.06 223 9 13쪽
8 7화 - 청소(2) 21.08.05 242 9 14쪽
7 6화 - 청소(1) +1 21.08.04 261 11 15쪽
6 5화 - 평가(3) +1 21.08.03 277 11 16쪽
5 4화 - 평가(2) 21.08.02 295 9 15쪽
4 3화 - 평가(1) 21.08.01 323 12 14쪽
3 2화 - 백랑 +1 21.07.31 363 12 14쪽
2 1화 - 수료 +2 21.07.30 439 16 17쪽
1 프롤로그 +2 21.07.30 473 7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