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스피치. 님의 서재입니다.

복덩이 용병은 고인물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퓨전

스피치
작품등록일 :
2021.07.30 21:57
최근연재일 :
2021.08.12 21:45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3,790
추천수 :
140
글자수 :
86,446

작성
21.07.30 23:35
조회
439
추천
16
글자
17쪽

1화 - 수료

DUMMY

1화


“......이로써 530기 견습생들은 3년에 달하는 용병학교의 모든 과정들을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이 완벽히 이수하고, 어엿한 용병이 되었음을 이 자리에서 엄숙히 선언합니다.”


와아아아─!


짝짝짝!


“모두 축하한다!”

“장하다, 내 아들! 어엿한 용병이 되었구나! 이리 와! 오랜만에 안아보자!”

“시, 싫어요, 아버지!”

“으하하하!”


아버지가 청년을 억지로 껴안았다.

막 스무 살이 된 청년은 이런 아버지의 주책에 눈썹을 찡그렸지만 싫진 않은 모양이었다.

쭈뼛거리면서도. 어느새 자신보다 작아진 아버지를 팔로 안는다.

훈훈한 광경에 주변사람들의 얼굴에 하나같이 함박웃음이 맺힌다.


행복한 날이었다.


용병학교 수료식.

길었던 견습생의 꼬리표를 때고, 진정한 용병으로 거듭나는 날.


용병들은 나라를 세운 역군이자 지키는 울타리. 동시에 나라를 움직이는 원동력이었다.


수도, 아이샤의 하늘에 이들을 축복하는 꽃잎들이 눈처럼 떨어진다.


대광장에선 합창대가 노래를 부르고.

수도의 시민들이 한데모여 갓 용병이 된 이들을 축하한다.


그리고 그 중에 이반이 있었다.

환호하는 인파들 사이에서, 이반은 홀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530기 견습생, 아니. 이제는 수료생이 된 이반.


멍하니 올려다 본 푸른 하늘 위, 몽실몽실한 구름이 떼를 지어 흐르고 있었다.


그 중 새하얗게 퍼진 한 구름을 보며, 이반은 이전 삶에서 먹곤 했던 어떤 먹거리를 떠올렸다.


“.......솜사탕 먹고 싶다.”


딱히 좋아했던 먹거리는 아니었지만 오늘따라 간절하게 생각이 났다.


사실 어떤 것이든 좋았다.

현대의 먹거리 그 어떤 것이든 말이다.



3년이 흘렀다.


이반이 대용병시대 속으로 들어온 후부터 지금까지 흐른 시간이었다.

치열했던 3년이 머리를 스친다.

몸을 만들고 검을 수련하고 돈을 벌고 계획표를 세워 치밀하게 행동하고.

처음엔 모든 것이 어색했지만, 대용병시대의 고인물이었던 만큼 이반은 금세 이곳 생활에 적응을 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그는 용병학교를 수료한 것이다.


하지만 진짜 시작은 지금부터였다.

처음 게임을 시작하면 나오는 오프닝 컷신이 바로 이 용병학교의 수료식장면이니, 이반은 이제야 본격적으로 메인스트림에 탑승했다고 할 수 있었다.


용병학교를 수료했다고 해서 진짜 용병이 되는 건 아니었다.

이제 고작 견습딱지를 땐 것일 뿐, 세간에 제대로 된 용병취급 받기 위해선 먼저 ‘용병단’에 소속되어야 했다.

이걸 바로 ‘루트’라고 불렀다. 어떤 용병단에 입단하느냐에 따라, 메인스트림의 흐름이 달라졌다.


따지고 보면 굳이 용병단에 입단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가는 법도 있긴 했지만, 이반은 자신이 가진 게임 경험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지구에서야 게임 경험이지, 이 안에서 그것들은 미래와 세상의 비밀에 대한 귀한 정보들이었다.

눈앞에 그것들이 둥둥 떠다니는 셈.

그걸 외면하는 건, 병신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이반은 써먹을 수 있는 건 모조리 써먹으면서 편한 인생을 살기로 마음먹었다.


이곳은 엄연한 현실.

명성이 곧 기회와 권력인 세상이다.


“이반!”


그때, 저 멀리서 상념을 깨는 목소리가 들렸다.


두 명의 남녀가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던 이반은 고개를 돌렸다.


크리스와 소피에.


이번에 이반과 같이 수료한, 같은 학급의 동기들이었다.


“여기서 뭐해, 이반?”

“맞아. 왜 혼자서 그러고 있어? 우울해보이게!”

“그냥. 띵 때리고 있었는데.”

“뭐어? 왜!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전혀.”

“그래?”


활짝 웃은 소피에가 별안간 이반의 소매를 붙잡았다.


“그럼 우리랑 같이 파티나 가자! 맥스웰 가에서 우리들을 위한 파티가 열린대.”

“맞아. 시간은 오늘 저녁이고. 이반. 너도 같이 갈 거지?”


맥스웰 가라면 경이로운 창술로 퓨리온 왕국을 넘어 대륙전역에 이름이 퍼져있는 가문이었다.

그곳에 초대됐다는 것은 막 수료한 이들에게는 큰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안목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겠지.

하지만 이반은 고개를 저었다.


“미안. 나 이따가 일 가.”

“아.......”

“맞다. 너 남문에 있는 여관에서 일한다고 했지?”

“어.”


소피에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맥스웰 가에서 열리는 파티면 다른 용병들도 많이 올 텐데. 하루만 빼면 안 돼? 특별한 기회가 올 수도 있잖아.”


이반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 안 돼.”

“.......”


단호한 이반의 태도에 소피에는 입을 꾹 다물고 말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크리스가 쿡쿡 웃음을 터트린다.


“아쉽다, 이반. 너도 함께 가면 참 좋았을 텐데.”

“그러냐.”

“당연하지. 아니면 일 끝나고 늦게라도 와라. 너도 알다시피 오늘은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잖아. 다음부턴 각자 용병단으로 갈라질 테니까.”

“그래, 맞아! 내 말이 그 말이야.”


언제 침울했냐는 듯 소피에가 다시 이반의 소매를 잡는다.

이반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안 돼.”

“.......”


소피에의 어깨가 추욱 내려갔다.

이반으로서도 어쩔 수 없었다.

그에겐 맥스웰 가에 가는 것보다, 지금 가는 여관 일이 훨씬 더 중요했으니까.

지키지 못할 약속은 신뢰도만 잃을 뿐이었다.


약간의 소란 이후, 세 사람은 함께 대광장을 벗어나 남문으로 향했다.

이반을 일터까지 데려다준다는 명목이었다.

나란히 걷던 중 소피에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크리스. 나 궁금한 거 있어.”

“뭔데?”

“용병단 말이야. 어디로 갈 건지 정했어?”

“아. 응.”


크리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이번 기수 수료생들 중 수석으로 수료한 기린아다. 당연히 수료식 이전부터 용병단들의 러브콜이 있었다.


현재 수도, 아이샤에 존재하는 용병단은 총 다섯 곳.


크리스는 이 모든 곳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가만히 걸음을 옮기던 이반도 이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메인스트림의 흐름이 결정된다.


그는 ‘플레이어 캐릭터’

즉, 이 세상의 주인공이었다.


“결정했구나! 역시 황금깃발이지?”

“아니.”

“에? 아니라구?”

“응. 난 흑사자에 갈 생각이야.”


황금깃발은 수도 북문에, 흑사자는 서문에 자리 잡은 용병단이었다.

두 용병단 모두 명성과 규모 면에서는 손색이 없는, 뛰어난 용병단.


“흑사자?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는 거야?”

“음. 흑사자. 황금깃발. 그리고 동문의 전사노래 모두 나한텐 과분한 곳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흑사자가 색깔이 나랑 제일 잘 맞는 거 같아서.”

“색깔?”

“응. 용병단의 분위기나 단훈, 추구하는 방향성 같은 것들로 이해하면 될 거 같아.”


소피에는 알 듯 말 듯 묘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런 그녀를 보며 희미하게 웃음 짓던 크리스는 옆에서 걷는 이반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반, 너는? 정했어?”


이반은 손을 휘휘 저었다.


“정하긴. 내 성적 알잖냐. 그냥 받아주는 곳 가는 거지, 뭐.”


시니컬한 이반의 대답에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음만 흘렸다.


#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이반에겐 생각해둔 곳이 있었다.


바로, 남문에 위치한 백랑 용병단.


백랑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흑사자와 황금깃발과 동일선상에 있는 남문 제일의 용병단이었지만, 현재는 그 빛이 많이 바랜 곳이었다.

이반이 그런 백랑을 선택한 것은 간단한 이유였다.


‘빌드업 쌓기가 제일 쉽다.’


크리스가 같은 백랑이나 혹은 피발톱 용병단을 선택했으면 난이도가 올라갔을 것이다. 하나 그는 서문의 흑사자, 흑사자 루트를 택했다.


뭐, 난이도 조금 올라간다고 위축될 이반이 아니기도 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는가.


이반은 속으로 크리스의 흑사자 루트를 환호했다.


‘그럼 소피에도 당연히 흑사자로 가겠네.’


상급수료생인 그녀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됐다. 애초에 그녀는 히로인 캐릭터다. 이변의 여지는 없겠지.


그렇다면 자신은?

이 둘과 다니는 이반 그레이는 과연 무슨 캐릭터일까?


고민했던 적이 있지만, 아직 이반은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저, ‘버그캐릭터’라고 추측할 뿐.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이 세상에 갑작스레 생겨난 존재 같다고나 할까.


모든 루트들을 플레이했었다.

하지만 기억 그 어디에도 ‘이반 그레이’라는 캐릭터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다.


추측할 수 있는 건 무작위 설정으로 인해 만들어진 이반 그레이에 자신의 영혼이 빙의했다는 것뿐.


원래는 100명이어야 할 530기 수료생의 수가 101명이 된 것도 이것으로 인해 생긴 변화라고 할 수 있겠지. 그밖에도 뒷받침해줄 증거는 여럿 있었다.


이것들이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메인스트림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이반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변화는 필연적이다.’


그저, 그 변화의 폭이 최소한이기를 바랄 수밖에.


용병학교에서 최대한 유령처럼 지내며, 크리스를 원작과 같이 수석으로 만든 것도 이러한 우려의 연장이었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아무런 문제없이 잘 흐르고 있었다.


이반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그들은 일터에 도달해 있었다.


2층 규모의 목조건물, ‘퓨리온의 꿈’


올리버와 그의 외동딸, 안나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여관이었다.

이반은 이곳에서 3년 째 일하고 있었다.


“그럼 우리 갈게.”

“다치지 말고. 일 잘하라구, 이반!”

“그래. 나중에 보자.”


둘과 작별인사를 한 이반은 주방과 연결된 뒷문으로 들어갔다.

구수한 요리냄새와 뜨거운 수증기가 화악 얼굴을 덮쳐온다.

갑자기 열린 뒷문에, 한창 요리를 하고 있던 올리버가 화들짝 놀라며 이반을 바라보았다.


“니가 여긴 웬 일이냐?”

“못 올 곳 왔나요. 당연히 일하러 왔지.”

“일? 수료식은?”

“끝났어요.”


이반은 덤덤하게 대답하며 주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 태도에 올리버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반. 오늘 수료식인 만큼 푹 쉬고 오라고 우리 어제 얘기 끝냈지 않았느냐?”

“놀 시간이 어딨어요. 돈 벌어야지.”

“급여는 당연히 원래대로 줄 거라고.......”


이반은 올리버의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주문표의 주문들을 확인했다.


“뭐야. 번거로운 칠면조가 두 개나 들어왔네? 역시 나 없었으면 큰일 날 뻔 했겠구만.”


어느새 이반은 앞치마를 두르고 한 손에 식칼을 쥐고 있었다.


“하여간 녀석. 고집은.......”


올리버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3년을 함께한 그는 이반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타다다다, 이반의 손 안에 쥐여진 채소더미가 잘게 썰려나간다.

그 모습이 여느 숙수와 다를 바 없다.

이반은 잘게 썬 채소들을 한쪽 구석에 몰아넣었다.

칠면조의 훈연이 끝나면 사용할 것들이었다.


그리고 같이 정리한 버섯들은, 말없이 올리버 앞에 가져다 놓았다.


때마침 스튜에 넣을 버섯이 필요했던 올리버는 익숙하게 그것들을 냄비에 털어 넣었다.

이제 그는 이러한 이반의 센스들이 너무나도 익숙했다.

국자를 들어 스튜의 맛을 보는 올리버의 입가엔, 어느새 감출 수 없는 미소가 번져있었다.

사실 올리버는 손에 오래된 흉터를 가지고 있었다. 과거 용병생활의 흔적. 그래서 그는 칼질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반이 들어온 후, 그는 한 번도 흉터로 인한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었다.


올리버는 알고 있었다.

만약 이반이 아니었더라면, 오늘 하루 무딘 애를 먹었을 거라는 것을.

그걸 알기에, 올리버는 이반이 무척이나 고마우면서도 미안했다.


“스튜타겠는데요, 아저씨.”

“으허헛!”


올리버는 서둘러 국자를 쥐었다.


정신없이 움직이며 주방에 들어온 주문을 어느 정도 빼낸 후.

이반이 다음으로 한 행동은 홀로 나가는 것이었다.


홀엔 가녀린 체구를 가진 여급이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올리버의 딸, 안나다.

그녀는 이반과 눈을 마주치곤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 오빠? 오늘 수료식이라고.......”

“나중에 얘기하자. 네에. 갑니다!”


이반은 주문서를 들고 홀을 한 바퀴 돈 후, 다시 주방으로 들어가야 했다.




다음날.

이반은 아침일과를 마치고 입단원서를 제출하기 위해 백랑 용병단을 찾았다.


따로 러브콜이나 추천서를 받지 않은 이반은 합격여부가 바로 결정 나지 않았다.

그래서 이반은 다시 퓨리온이 꿈으로 돌아가 일을 하면서 남은 시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무척이나 살 떨리는 시간이었겠지만, 이반에겐 그런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긴장은커녕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활기차게 하루를 보냈다.


합격고지서는 5일 후 이른 아침, 안나의 손에 의해 전해졌다.

그녀는 이반의 합격소식에 방방 뛰며 기뻐했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의 얼굴이 무표정하다.

안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그래요, 오빠? 안 기쁘세요?”

“그냥 그런데? 당연한 거잖아.”

“.......”


평소 이반을 무척 좋아하고 존경하는 그녀였지만, 오늘 처음으로 그가 재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날 새벽.

이반은 짐을 쌌다.

짐이라고 해봐야 다섯 벌도 되지 않는 옷가지와 노트, 상비약. 그리고 용병학교에서 받은 날 없는 철검과 수료증패, 돈주머니가 전부였다.


그 후, 1층에 내려가 컴컴한 주방 안으로 들어갔다.


달그락거리며 무언가를 준비하는 이반.


그는 자그마한 그릇에 미리 구워놓았던 쿠키를 담고, 향긋한 차를 담은 주전자와 함께 홀로 나갔다.


딸깍, 테이블 정중앙에 야명불씨로 만든 등을 킨다.

어둠으로 음침했던 새벽 홀에 한결 따스한 기운이 깃든다.


그리고 이반은 테이블을 잡고 앉아 기다렸다.


끼익.......끼익.......


잠시 후 2층에서 누군가 내려왔다.


늦은 시간에는 있을 수 없는 빛무리, 그 안에 홀로 앉아있는 이반을 본 부녀(父女)가 흠칫 놀랐다.


“오빠?”

“아이구야, 놀래라. 너 거기서 뭐하고 있느냐?”

“두 사람 기다리고 있었죠.”


부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미리 준비된 다과를 보고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가끔 드는 생각인데 말이다. 난 니가 정말 우리와 같은 인간이 맞나 싶을 때가 있단다.”

“맞아. 정말 귀신같다니까요.”


이반이 빙긋 웃었다.


“실은 제가 먼저 찾아가려고 했었어요.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마지막이라는 말에 부녀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올리버와 안나는 이곳 1층으로 내려오기 전, 이반의 방을 먼저 들렀었다. 그리고 텅 빈 방과 미리 정리된 짐들을 보았다.

고마움과 미안함. 그리고 아쉬움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이들 사이에 깃든다.


이반이 오고 나서, 부녀의 인생은 바뀌었다.


음식에 풍미가 깃들고 숙객의 관리가 편해졌다.

당연히 다시 찾아주는 여행자들이 많아지고, 돈은 쌓였다.


한 사람이 가져온 파급력이라고 보기엔 놀라운 일이다.


그러나 이반이 부녀에게 가져다 준 것은 단순히 재산만이 아니었다.


바로 여유와 행복.


“그래. 마지막이구나.”


올리버는 뭔가에 목구멍이 막힌 듯, 쉽사리 말을 잊지 못했다.


정이 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올리버는 이미 이반을 은인을 넘어 가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안나 역시 마찬가지.

고개를 푹 숙인 그녀는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가녀린 어깨를 잘게 떨어댔다.


“마지막인데 우는 얼굴만 보여줄 거야?”

“.......아니. 아니야”


고개를 든 안나가 소매로 턱을 닦으며 웃음을 지었다.

세 사람은 그렇게 우중충한 분위기를 떨쳐버리고, 지금까지 함께 나눈 추억들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반아.”

“네.”

“힘들면 언제든 쉬러 와라. 돈은 받지 않으마.”

“당연히 그러셔야죠. 서운하게 뭘 그런 걸 얘기하세요.”

“하하! 이 녀석.......”


밉지않은 이반의 농담에 너털웃음을 터트린 올리버가 탁자 밑으로 손을 내렸다.

밑에 내려놓았던 기다란 물건을 탁자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그것은 낡은 헝겊에 둘둘 감겨져 있었다.


“이건, 내가 용병이었을 시절 청춘을 함께 한 소중한 놈이다.”


올리버는 말과 함께 헝겊을 벗겼다.

세월이 그대로 입혀진 검집이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반은 덤덤했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올리버의 검.


원작, 부녀의 호감도가 최상이 아니면 절대 얻을 수 없는, 초반 에피소드 대비 극한의 효율을 뿜어내는 무기.


수료식 당일, 이반이 맥스웰 가에 가지 않은 진정한 이유이자 목적이기도 했다.


“받거라. 이제 니 거다.”


이반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덥석 검을 쥐었다.


“감사합니다.”

“어차피 나는 손이 이 모양이라 필요가 없.......”


거절할 것에 대비해 몇 가지 말들을 생각해 놓았던 올리버는 잠시 어이없는 눈으로 이반을 바라보았다.


“왜요?”

“크흠. 아무 것도 아니다.”


날이 밝자마자 이반은 짐을 꾸려 정든 여관을 나섰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복덩이 용병은 고인물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중공지입니다..... 21.08.13 69 0 -
14 13화 - 만년하급의 반란(1) +1 21.08.12 137 5 13쪽
13 12화 - 노력둔재(4) +1 21.08.11 162 10 15쪽
12 11화 - 노력둔재(3) 21.08.10 174 10 14쪽
11 10화 - 노력둔재(2) +1 21.08.09 197 9 13쪽
10 9화 - 노력둔재(1) +1 21.08.07 217 10 16쪽
9 8화 - 청소(3) 21.08.06 223 9 13쪽
8 7화 - 청소(2) 21.08.05 242 9 14쪽
7 6화 - 청소(1) +1 21.08.04 262 11 15쪽
6 5화 - 평가(3) +1 21.08.03 277 11 16쪽
5 4화 - 평가(2) 21.08.02 296 9 15쪽
4 3화 - 평가(1) 21.08.01 323 12 14쪽
3 2화 - 백랑 +1 21.07.31 363 12 14쪽
» 1화 - 수료 +2 21.07.30 440 16 17쪽
1 프롤로그 +2 21.07.30 474 7 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