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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님의 서재입니다.

복덩이 용병은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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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작품등록일 :
2021.07.30 21:57
최근연재일 :
2021.08.12 21:45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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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4
추천수 :
140
글자수 :
86,446

작성
21.08.0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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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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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10화 - 노력둔재(2)

DUMMY

10화


하압──!


검을 휘두르는 그녀는 완전히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땀.

그로인해 달빛에 비친 몸의 윤곽이 아름답게 꿈틀거린다.


멸망한 기사가문의 후손, 아르웬 타르시.


자신의 이름. 나아가 가문의 이름을 대륙 전역에 떨치기 위해서 그녀는 오늘도 밤늦게 나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녀의 몸짓엔 평범한 수련에선 볼 수 없는 숭고함마저 엿보이는 듯했다.


끊임없는 노력.


특별한 재능도 없고, 여자의 신체를 지닌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용병단에 퍼진 그녀의 별명은 이것이었다.


바로, 노력둔재.


노력천재와 대비되는, 아무리 노력해도 제자리걸음뿐인 그녀를 조롱하는 별명이었다. 그리고 이 별명은 후에도 깨지지 않았다.

영원히.

그 어떤 루트에서도 말이다.

그녀는 이름을 알리긴 커녕, 게임을 하는 플레이어들에게도 잊혀졌다.

흔한 엑스트라의 최후다.


헌데 지금 이렇게 보고 있자니, 이반은 그녀가 왜 꿈을 이루지 못하고 잊혀질 수밖에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저러니까 그렇지.’


열심히 검을 휘두르는 그녀.

하지만 검술은 그 노력이 무색할 만큼 너무나 엉성했다.


마치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억지로 무대 위에 오른 배우 같다고나 할까.


그녀는 정작 중요한 걸 놓친 채, ‘열심히’만 하고 있었다.


하압!


‘딱하네.’


이반은 쯧, 혀를 찼다.

도와줄 능력은 자신에게 충분히 있었다. 하지만 생각만으로 그쳤다. 돌아오는 기댓값이 적기 때문이다.


‘엑스트라잖아.’


도와주려고 해봤자 그걸 그녀가 순수하게 받아들일지 의문이기도 하고.

어찌됐건 굳이? 라는 생각이 제일 컸다.


이반은 몸을 툭툭 털고 일어났다.

갑작스레 나타난 그녀 인해 휴식이 길어지긴 했지만, 어찌됐건 이반은 수련을 위해 이곳에 왔다. 휴식도 이만하면 충분하고. 본격적으로 검을 휘두르기 위해 뚜벅뚜벅 공터에 섰다.

동시에 공터를 울리던 기합소리가 뚝하고 멈췄다.

아르웬이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건초더미에서 일어난 이반을 동그란 눈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눈동자에 담긴 경계와 의문들이 이반의 대답을 종용한다.

이반은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530기 이반 그레이라고 합니다.”

“........이반 그레이?”

“예.”


이반이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경험에서 비롯된 어색함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현재 이들의 관계는 남자 대 여자가 아닌, 용병 대 용병.

이 세계에서 땀에 젖은 그녀는 낯부끄러운 것이 아닌, 고된 수련의 증거였다.


이반을 바라보는 그녀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최근 용병단을 술렁이게 한 장본인.

당연히 그녀도 이반의 이름을 하루가 멀다 하고 들었다.


“거기 계속 있었던 것인가?”

“네. 쉬고 있었습니다.”

“쉬어? 저 건초더미 속에서?”

“네. 꽤 푹신하거든요. 한 번 누워보시면 헤어 나오지 못하실 겁니다.”


아르웬은 잠시 기이한 눈초리로 이반을 바라보았다. 뭔가 할 말이 많은 표정이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529기. 아르웬 타르시다.”


그렇게 툭 내뱉은 그녀는 바닥에 던져둔 셔츠를 몸에 걸쳤다.

그리고 공터를 떠났다.


짧고도 강렬한 만남이었지만, 이반은 곧바로 그녀를 기억에서 지웠다.

못 다한 수련을 이어나가고, 그 다음 날도 이반은 수련으로 하루를 보냈다.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은 완전히 끝난 줄 알았다.


하지만 조 편성 당일.

이반은 또 다시 그녀와 마주하게 되었다.


“이반 그레이. 너는 하급7조다.”


무려, 같은 조원으로.


“.......!”


자이로의 발표에 용병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그들의 시선이 단상 앞에 도열한 신입들, 그 중에서도 이반에게 쏠렸다.


“대장님의 승인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전부 입 닫고, 환영의 박수 시작.”


자이로의 말에 용병들이 하나 둘 박수를 쳤다.

의문과 놀라움이 담긴 박수갈채 속, 이반이 7조의 조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거기에 아르웬 타르시가 있었다. 이반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호수처럼 파문이 일었다.


“또 만났네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녀는 대답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뒤이어 이반은 그녀 뒤에 있는 용병에게도 인사를 건넸다. 외눈알의 안경을 쓴, 무척 소심한 인상의 용병이었다.


“이반 그레이라고 합니다.”

“아. 응. 나는 얀 소로우야. 527기.......”


얀의 마지막 말은 거의 기어들어가는 수준이었지만, 이반은 무리 없이 들을 수 있었다. 덤덤하게 고개를 숙였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아, 응.......!”


이반은 그의 뒤에 가서 섰다.

그리고 단상 위에 선 자이로를 바라보았다.

마침 이반을 보고 있던 자이로가 눈을 맞추며 씨익 웃음을 지어보였다.


‘노력둔재와 527기의 하급용병이라.......’


조가 어떻게 편성될지는 몰랐지만, 이런 식으로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이반이었다.


‘상황이 재밌게 돌아가네.’


이반은 입꼬리를 올렸다.


뒤이어, 자이로는 새로 편성된 8,9,10조의 조장을 호명했다.

조장은 용병학교의 성적과 생활기록. 그리고 신입교육을 통해 평가한 인성과 상황판단력, 임무수행능력과 전투력을 기준으로 선별된다.


모두가 예상했던 인원들이 조장으로 뽑혔고, 그 중엔 실전의뢰 당시 팀 대표를 맡았던 고트도 있었다. 그는 9조의 조장이 되었다.

뒤이어 마지막 10조.

자이로의 호명이 이어지고, 용병들의 박수가 기계처럼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마지막? 용병들의 이목이 자이로에게 집중되었다.


“하급7조의 조장은 이반 그레이다. 이상이다.”


박수가 멈췄다.

일순간 강당이 정적에 휩싸였다. 예상치 못한 발표에 모두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짓는다.


“표정들 봐라. 쯧. 그럼 조 편성식은 이걸로 마치고. 조장들은 나한테 와라, 나머지는 해산.”

“.......”

“해산!”

“해, 해산!”


용병들이 우르르 강당을 빠져나갔다.

이반은 단상으로 걸어가다가 멈칫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르웬 타르시가 멍하니 서있었다.

그녀는 제일 마지막까지 그렇게 남아 있다가, 어딘가 그늘진 얼굴로 발걸음을 돌렸다.


#


“.......와.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간 거 아니냐? 신입이 선임이랑 같은 조가 된다니?”

“야야. 그건 아예 없던 경우도 아니니까 그렇다 치자고. 어떻게 신입이 조장자리를 먹냐?”


밖으로 나오자마자 용병들의 대화가 귀를 파고들었다.

아르웬은 억지로 입을 앙 다물었다. 자꾸만 일그러지려는 자신의 얼굴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다.


“근데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만큼 아르웬이랑 얀 선배가 형편없다는 뜻 아니겠냐.”

“하긴, 저 인간들 잘못도 아예 없진 않지. 얀 선배는 뭐 원래부터 답이 없지만, 아르웬 쟤는 맨날 검 들고 나가면서 왜 저러지? 진짜 같은 동기라는 게 쪽팔려.”


하지만 비수처럼 꽂히는 말들에 어쩔 수 없이 부들부들 주먹이 떨려왔다.

아르웬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걸음을 빨리했다.


“.......괜찮아?”


그때 아르웬을 기다리고 있던 얀이 헐레벌떡 다가와 걱정스런 투로 물었다.

아르웬은 고개를 돌려 그런 얀을 바라보았다.

당연히 괜찮지 않았다.

동시에 당신은 괜찮냐고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러지 않았다. 얀의 대답이 훤히 예상이 갔기 때문이다.


“나야, 뭐.......”


라고 대답하면서 멍청하게 웃겠지.

아르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르웬이 아는 얀은 목표의식이란 게 없는 용병이었다.


‘그냥 태어난 김에 사는 사람 같아.’


아르웬은 이런 사람과 동급 취급을 당하는 것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다.


“죄송하지만, 지금은 혼자 있고 싶습니다.”

“아.......응.”


차갑게 말을 내뱉은 아르웬은 다시 몸을 돌렸다. 뒤에서 동기들의 시선이 꽂히는 듯했다. 중간 중간 ‘노력둔재’라는 단어도 들렸다.


그녀는 늘 가던 곳으로 향했다.

마구간 뒤뜰.

아무도 찾지 않는 자신만의 공간. 그곳에서 검을 휘두르고 있노라면, 이런 근심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윽.”


하지만 오늘따라 그녀는 수련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방금 전의 일과 더불어 그저께 만난 이반의 얼굴이 떠올라 자꾸만 수련을 방해했다. 그녀는 결국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그녀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의 조에 이반이 들어오는 것까지는 말이다.


붉은가시보어를 잡아, 보란 듯이 자이로의 시험을 통과한 얘기는 이미 1번대 내에서 유명했다.

물론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인지라 모든 얘기를 온전히 받아들이지는 않았지만.

진위가 어떻든 그가 자이로의 시험을 통과한 건 사실이며, 그것만으로도 자신들과 함께 조를 이루는 것에 이견은 없었다.


‘하지만.......조장은 달라.’


아르웬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자신의 자리여야 했다. 기수제의 순리로 보나, 자격으로 보나 조장에 어울리는 인재는 자기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얀은 능력이 없고, 이반은 경험이 없으니까.’


아르웬은 절대로 자신이 이반보다 모자라다고 생각치 않았다.


본래, 7조의 조장은 그녀의 동기였던 루크였다.

하지만 얼마 전에 그는, 의뢰 도중 날아온 화살에 미간이 꿰뚫려 즉사했다.

의뢰 도중 사망이야 흔한 일. 그러나 아르웬은 루크를 죽인 건 적이 쏜 화살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조장으로써의 책임감.’


그리고 막중한 부담감이 그를 죽음으로 내몬 것이다.

조장은, 그런 자리다.

그리고 아르웬은 그 모든 것을 각오하고 감수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반에게 그런 각오가 있을까?


‘아니.’


그는 이제 막 용병생활을 시작한 신입이었다. 흩어진 시체조각을 보고서 제정신을 유지할 수만 있어도 다행이겠지.


아르웬은 자이로에게 항의를 하기 위해 벌떡 몸을 일으켰다.

지금쯤이면 조장회의도 끝났을 것이다. 자신의 포부와 각오를 당당히 밝힌다면 결정을 번복해주시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르웬은 다시 풀썩 주저앉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지금은 이른 감이 있었다.


‘지금 이반 그레이에 대한 팀장님의 신임도는 최상이니까.’


이 상황에서는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기각될 게 뻔했다. 하물며 그녀는 현재 뭔가 이뤄놓은 게 없었다.


‘일단, 기다린다.’


이반 그레이의 거품은 금세 표면 위로 드러날 거다.

그때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보여준다면, 간부들도 마음을 돌리지 않을까?


그녀는 그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


“아르웬 선배님은 어디 가셨습니까?”


이반은 강당을 나오자마자 얀을 보며 물었다. 얀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음. 모르겠어. 아마 숙소에 있지 않을까?”

“그래요? 의뢰 수행해야하는데.”


이반은 들고 있던 의뢰서를 팔랑거리며 부채질했다.


“그. 내가 데리고 올까?”

“음.”


이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아르웬은 자존심이 무척이나 강한 용병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없는 것도 자신에게 조장을 뺏겼다고 생각해서겠지. 억지로 부르는 것보단 혼자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게 좋다는 판단이 섰다.


“그냥 혼자 두죠.”

“그, 그럼 의뢰는?”

“우리끼리 하면 되죠.”

“우리끼리.......?”

“네.”


얀이 겁먹은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반은 한숨을 쉬며 웃었다.


“별 거 아닙니다. E랭크니까.”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느새 다가온 아르웬이 그곳에 있었다.


“오셨습니까?”

“.......의뢰는?”

“여깄습니다. 실종자 수색인데 사안이 사안인지라 일단 움직이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아르웬은 고개를 끄덕였다.

E랭크라면 기회가 올 확률은 없다시피 했다. 그녀는 다음을 기약했다.


그 후로 며칠이 지났다.

아르웬은 이반과 같이 붙어 다니며 기회를 노렸지만, 좀처럼 그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다.

간단한 이유였다.

이반 그레이. 그에겐 틈이란 게 존재하지 않았다.


매일같이 따오는 의뢰와 100퍼센트에 도달하는 의뢰완수율.

정확한 판단력과 가감없는 실행력까지.


아르웬은 ‘이게 아닌데’싶으면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이반을 따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완벽한 계획에 자기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한 적은 셀 수조차 없었다.


“이봐, 아르웬. 요즘 너희 조 장난 아니더라? 역시 뒤늦게라도 노력의 결실이 맺긴 하나봐.”

“아.......그래. 고맙다.”


아르웬은 모처럼 받아 본 동기의 칭찬에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달가우면서도 내키지 않은, 오묘한 기분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간은 흘러, 이반이 조장이 된지 2주차가 되었을 때가 되었다.

아르웬은 그토록 기다리던 순간이 왔음을 느꼈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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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2화 - 노력둔재(4) +1 21.08.11 161 10 15쪽
12 11화 - 노력둔재(3) 21.08.10 173 1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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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9화 - 노력둔재(1) +1 21.08.07 216 10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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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3화 - 평가(1) 21.08.01 323 12 14쪽
3 2화 - 백랑 +1 21.07.31 363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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