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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님의 서재입니다.

복덩이 용병은 고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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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피치
작품등록일 :
2021.07.30 21:57
최근연재일 :
2021.08.12 21:45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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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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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31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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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백랑

DUMMY

2화


이반은 백랑 용병단으로 가기 전, 대장간부터 들렸다.

그곳에서 3년간 사용했던 용병학교의 철검을 처분했다.

날이 없어서 검이라기 보단 기다란 철조각에 불과했지만, 양질의 것이라 제법 쏠쏠한 값을 받을 수 있었다.


“좋네.”


찰랑거리는 돈주머니가 이반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이반에겐 두 개의 특성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황금신의 축복'.


재화를 제물로 바쳐, 일시적으로 능력치를 뻥튀기시키는 사기적인 특성이었다.

원래는 캐릭터 생성 때 선택할 수 없는, 욕 나오는 노가다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특성인데, 뽑기 운이 좋았던 걸까?


무작위 설정은 그 많은 특성들 중 '황금신의 축복'을 골라 이반 그레이에게 넣어주었다.


이 세상에 들어온 직후, 유일하게 이반이 두 팔 벌려 반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용병학교를 다니면서 힘들게 여관 일을 병행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자본이 곧 무력이 되는 능력.

황금신의 축복만큼, 든든한 보험은 없었다.


'거기에 올리버의 검까지.'


이로써 이반은 크리스나 소피에 같은 네임드들이랑 같은 출발선상에 있게 되었다.

아니, 지금은 오히려 앞선다.


'이러다 주인공 내가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마음먹으면 못할 것도 없지만, 게임이 아닌 현실인지라 자못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었다.

뭐가 됐든 지금은 메인스트림의 흐름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자신에게도, 그리고 이 세상에도 좋았다.


이반은 곧바로 백랑 용병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


백랑 용병단은 과거 황금깃발, 흑사자, 전사노래를 포함해 4대 용병단이라 불렸던 남문제일의 용병단이다.


그렇다. 과거에나 그랬지 지금은 아니다.

현재 백랑은 세 용병단보다 밑이고, 남문에서조차 그 위치가 흔들리고 있었다.


거기에 현재 메인스트림의 방향은, 흑사자 루트.

백랑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다고 봐도 무방했다.


-에피소드, 남쪽늑대의 몰락.


백랑 루트를 제외한 모든 루트에서, 이 ‘남쪽늑대의 몰락’ 에피소드가 진행된다.


당연하겠지만, 이반은 백랑의 몰락을 두고 볼 생각이 없었다.

엔딩에 가기까지 필요한 용병단. 자신이 그 용병단을 백랑으로 정했기 때문이다.

목표가 이러니, 앞으로의 방향도 자연스레 확립된다.


‘먼저, 망해가는 백랑 용병단부터 다시 일으켜 세워야지.’


현 명성이 아무리 시들어졌다 한들, 여전히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백랑의 본단 앞.


이반은 오랜만에 두근거림을 느끼며, 부지 내에서 제일 큰 본청으로 걸어 들어갔다.

적지 않은 용병들이 돌아다녔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반을 신경 쓰지 않는다. 이반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 명 한 명에게 목례를 건넸다.


그렇게 들어간 행정과.


그곳에서 업무를 보던 용병에게 합격통지서를 건네자, 용병은 하얀 늑대얼굴이 멋들어지게 양각된 용병뱃지와 용병단 전용 장구류들을 꺼내주었다.


“우리 식구가 된 걸 환영한다, 이반 그레이. 현 시간부로 넌 백랑 1번대 1팀에 소속된 어엿한 하급용병이야. 이것들 가지고 1팀장님한테 가면 그 분이 다음 지시를 내려줄 거야.”

“감사합니다. 타일러 선배님.”


막 이반에게 성적증명과 신상명세서를 넘겨주던 용병이 멈칫했다.


“음? 날 알아?”

“저번에 입단신청 할 때 다른 분께서 부르는 걸 들었습니다. 혹여나 기분 상하셨다면 죄송합니다.”


타일러가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뭐? 꽤 정신없는 상황이었을 텐데 그걸 들었다고? 그리고 기분 상하긴. 나 그런 놈 아니야. 음.......이반이라고 했지?”

“예.”

“우선 짐 정리부터 해야 할 것 같은데. 혹시 하급용병숙소 어디에 있는지 알아?”


모를 리가 없었다.

비록 게임 상이지만, 이반은 백랑 용병단을 수백 번도 넘게 드나들은 경험이 있었다.


“알고 있습니다.”

“오.......정말? 설마 그것도 첫날에 미리 봐둔 건가?”


당연히 아니었지만, 이반은 괜히 부정하지 않았다.


“호오. 제법 자세가 됐구나, 너? 그래도 내가 같이 가줄게. 거기까지가 원래 내 업무니까. 지금 딱히 할 것도 없고.”

“감사합니다.”


하급용병 숙소는 본청에서 그리 멀지 않을 곳에 있었다.

타일러는 친절하게 이반을 방 앞까지 안내해주며 이런저런 조언들을 해주었다. 그는 무척 쾌활한 용병이었다.


“니 방은 여기고. 혹여나 단 생활에 애로사항이 생기면 나한테 상담 받으러 와도 좋아.”

“예. 꼭 들르겠습니다.”

“후후. 그래. 아! 지금 시간이면 1팀장님은 동관 회의실에 있을 거야. 1번대는 주로 거기서 회의를 가지거든. 그리고 이건 특별히 말해주는 건데. 지금 1번대 분위기 엄청 안 좋으니까 행동에 조심하도록 해. 괜히 튀려고 하지 말고.”

“유념하겠습니다.”

“그래그래.”


타일러가 떠나고. 남겨진 이반은 숙소에 대충 짐을 정리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속에 대해 생각했다.


‘백랑 1번대 1팀.......’


백랑에는 1번대와 2번대, 그리고 흑랑대 총 세 개의 용병대로 나뉘어져있었다.

흑랑대는 단장 직속의 특수부대라 제외하고.


1번대는 내부관리와 자국의뢰를, 2번대는 타국대상 원정의뢰를 중심으로 활동하는데, 두 용병대는 사이가 무척이나 나빴다.


후에, 백랑의 자멸을 불러올 만큼 말이다.


소속은 딱히 상관없는 이반이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분위기의 2번대보다야 1번대가 행동하기는 더 좋았다.


숙소를 나온 이반은 신상기록부를 챙겨 1번대가 머무는 동관으로 향했다.

동관 건물은 과연 본청과 바깥공기부터가 달랐다.

무척 잔잔하다고나 할까.


바람소리 하나 없는 고요함.


평화로움보단,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폭풍전야의 침묵에 조금 더 가까웠다.

이반은 테일러의 경고를 떠올렸다.

그때였다.

기다렸다는 듯 우당탕! 소리와 함께 복도 끝 쪽에 있는 문에서 찢어질 듯한 고성이 들려왔다.


벌컥, 부서지듯 문이 열리며 서너 명의 용병들이 동시에 복도로 뛰쳐나온다.


이반은 재빨리 몸만 비틀어 길을 내주었다.

힐끗 돌아보니 하나같이 경직된 얼굴들로 우르르 밖으로 향한다.


“분위기 한 번 살벌하네.”


다른 신입이었더라면 그대로 바짝 쫄았겠지만, 무슨 상황인지 훤히 아는 이반은 대수롭지 않게 걸음을 옮겼다.


1팀 회의실.


공교롭게도 그곳은 방금 전 고성과 함께 용병들이 우르르 뛰쳐나온 곳이었다.

회의실의 문은 열려있었지만, 이반은 노크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아. 또 뭐야? 내가 분명 나가서 대기하라고 했을 텐데?”


곧장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밖을 응시하고 있던 사내가 구겨진 얼굴로 이반을 바라본다.


퀭한 얼굴에 다크 서클이 짙게 내려앉은 눈.


1번대 1팀장, 자이로 카이엔이었다.


“오늘 새로 입단한 이반 그레이라고 합니다.”

“이반 그레이?”

“예.”


이반은 타일러에게 받은 신상기록부를 앞으로 내밀었다.

자이로는 그것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받자마자 책상 위로 던져버리고는 담배를 꺼내 문다.

그리고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알았으니까 나가봐.”

“어디로요? 행정과에선 1팀장님의 다음 지시가 있을 거라고 하시던데.”

“아 씁.......”


자이로가 날카로운 눈으로 힐끗 이반을 흘겨보았다.

이 새끼 뭐지? 라는 눈빛.


“이봐. 미안한데 우리가 좀 바빠. 지금 당장 신입을 챙길 시간도, 여력도, 여유도 없단 말이야. 아까 너 선배들 뛰쳐나가는 거 봤지? 그만큼 정신이 없다, 우리가.”


후우, 연기를 내뱉은 그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어디 가서 대충 시간 좀 때우고 있어. 좀 돌아다니면서 단 시설이라도 익히던가. 그래. 그게 좋겠네.”

“그럼 특별히 시키실 일은 없는 겁니까?”

“아! 자꾸 뭔 일?”


결국 자이로는 고함을 치며 이반을 돌아보았다.

안 그래도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옆에서 자꾸 성질을 건드리는 이반을 창문 밖으로 던질 기세였다.


하지만 무덤덤한 이반의 검은 눈동자를 마주한 순간, 그는 갑자기 힘을 풀고 눈을 가늘게 떴다.


“.......쯧. 그럼 너도 같이 찾아보던가.”


자이로는 아까부터 만지작거리던 사진 한 장을 이반에게 건네주었다.

그리고 물었다.


“그게 뭐 같이 보이냐?”


힐끗 사진을 내려다본 이반이 지체없이 답했다.


“개같군요.”


자이로가 픽 웃었다.


“뭐, 개 같은 상황이긴 하지. 여러모로 말이야.”


하지만 그의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그거 개 맞아. 찾아서 여기로 데리고 와.”


이반은 사진을 품에 넣었다.

다른 의문이나,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는 기색따위는 없었다.


“그럼.”


그 말을 끝으로 등을 돌려 회의실을 나갔다.


"......."


자이로는 그런 이반의 뒷모습을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응시했다.


#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뭐하는 새끼지?’


다짜고짜 사진 하나 던져주고 찾아오라고 하면 허둥댈 만도 한데.

아니. 그게 정상 아닌가?


‘신입이잖아.’


저건 마치 산전수전 다 겪은 용병을 보는 듯했다.

한창 용병단 분위기에 적응하기 바쁜 신입의 태도라고 보기엔, 꽤나 위화감이 든다.


‘그리고 또 뭐가 저리 건방져?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문득 호기심이 생긴 자이로는 책상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신입용병의 성적증명과 신상이 적힌 생활기록부가 놓여있었다.


자이로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그것을 훑었다.


“와우. 성적이 죄다.......커트라인이네.”


이반의 성적은 백랑이 요구하는 수준의 미달도, 초과도 아닌 정확히 적정선이었다.

일부러 짜맞추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항목들이 백랑이 요구하는 커트라인에 정확히 걸쳐져있다.


그 외에 특별한 건 없었다.


출신도, 특출난 능력도, 기록부에 적힌 용병학교에서의 생활도.


모두 지극히 평범하다.


과거 백랑이었다면 다른 인재들에게 밀려 탈락됐을 프로필.


그저 운이 좋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수준이다.


잠시나마 뭔가를 기대했던 자이로는 곧장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난 또. 오랜만에 쓸만한 녀석이 들어온 줄 알았지.”


그는 신상기록부를 탁자에 던지고 새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러다 피식, 자조 섞인 웃음을 흘렸다.


이제 막 들어온 신입한테 뭘 기대하는 건지.


자이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자기 자신을 비웃었다.


치익──


“후우........”


.......다르게 말하면, 그만큼 최악의 상황이란 뜻이기도 했다.

현재 백랑은, 절벽 끝에 몰려있었다.


남문제일의 용병단이었던 백랑.


위기는 한 용병단의 출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남문에서 갑작스럽게 세력을 확장한 피발톱 용병단.


현재 백랑은 이 피발톱과 남문의 상권을 양분하고 있었다.

말이 양분이지 이미 대부분이 넘어간 시점이었다.

언제 피발톱에 흡수돼도 이상하지 않으며, 다른 용병단마저 이것을 시기상조로 보고 있다.


거기에 불행은 한꺼번에 온다고 했던가.

갑자기 찾아온 단장의 실종은 이 모든 악재를 가속화했다.


현재 백랑의 용병들은 이것들을 바로잡고자 백방으로 뛰어다니는 실정이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현재 남문의 시민들은 피발톱만 찾았고, 고정의뢰인들 역시 하나 둘 뺏기고 있는 실정이었다.


신입용병들의 수준이 갈수록 떨어져 가는 것도 당연하지만 아주 큰 문제였다.

인재들은 죄다 다른 용병단으로. 백랑엔 이도 저도 아닌 신입들만 들어오고 있었다.


그야말로 악순환인 셈.


이럴 때일수록 의뢰의 완수율을 높여 백랑의 건재함을 알리고, 의뢰주와의 신뢰도를 다시 올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그런데.......


“이런 게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지.”


자이로는 품에서 사진을 꺼냈다.

방금 전, 신입에게 줬던 것과 똑같은 개의 사진이었다.

이 사진을 백랑 1번대 전체가 지니고 있었다.


‘실망이네, 1팀장. 그간 나눈 백랑과의 정을 생각해 지금까지 기다려줬건만. 이제 나도 더 이상은 못 참겠네. 내 다른 용병단에게도 의뢰를 청구할 테니 그리 알게.’

‘역시 우두머리 잃은 늑대무리는 별 수 없었던 게야.’


남문의 세력가인 루디어스 남작가는 오랫동안 백랑 용병단과 거래를 해왔었다.

당연히 영애가 키우는 개가 사라졌을 때도, 남작가는 제일 먼저 백랑 용병단에게 의뢰를 맡겼다.


그러나 백랑 용병단은 개를 찾지 못했다. 5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말이다.


단순한 실종의뢰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백랑을 깎아내렸다. 백랑의 명성은 지금 이 순간도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지금쯤이면 다른 용병단들에게도 의뢰가 들어갔겠지.’


만약, 피발톱 용병단이 찾게 된다면.......?


그건, 정말 생각하기도 싫었다.

의뢰를 완수하는 것은, 틀림없는 백랑이어야 했다.


“도대체 그놈의 개새끼는 어디에 있는 건지. 정보가 너무 없구나, 정보가.”


영애는 우연히 휴향지에서 이 개를 발견하고는 거두었다고 한다.

그 외 다른 정보는 사진에 담긴 외형과 개의 성별이 수컷이라는 점.

그리고 아나스타샤라는 웃기지도 않은 개의 이름뿐이다.


“후. 일단은 움직이자.”


문득, 머리 한 번 식히는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했단 생각이 들었다.

자이로는 어느새 꺼진 꽁초를 털어버리고 서둘러 장구류를 챙겼다.

팀장인 그마저 움직여야 할 정도로, 이 의뢰는 1번대에게 그리고 백랑에게 무척이나 중요했다.



그 시각, 이반은 아이샤 동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오늘 안에 해결할 수 있겠네.”


발걸음은 무척 가벼웠다.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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