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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손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할리
작품등록일 :
2016.04.14 17:07
최근연재일 :
2021.03.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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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8 0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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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3화. 십상시의 난, 반 동탁 토벌 발발

DUMMY

장온이 낙양으로 떠난 후, 부장으로 있던 손견 역시 부임지로 돌아와 지내다 장사군에서 구성(區星), 영릉군과 계양군에서 주조(周朝)와 곽석(郭石), 관곡(觀鵠)이 함께 난을 일으키자 장사태수에 임명되어 그 진압을 맡았다.


진압 도중에 육강(陸康)의 조카인 의춘현장(宜春縣長)이 이들의 습격을 받아 구원을 청하였다. 손견 수하의 주부(主簿)가 주군의 경계를 넘으면 죄가 된다고 간했다.


"부임지인 형주(荊州)에서 양주(揚州)로 넘어가는 것은 아니 되옵니다. 양주자사에게 먼저 말을 전한 후에 건너가야 되는 줄로 아룁니다."


“나는 문덕이 없어 무공으로 봉사하는 사람이오. 경계를 넘음으로써 죄를 짓는다 해도 다른 군국을 도와주는 것이 얼마나 부끄럽겠소? 그리고 한시가 급한 상황에 언제 그에게 전하여 일을 치르겠소.”


손견은 이에 자신은 무장이니 도움을 청하면 응당 이에 응하는 것이 맞다 하며 출병하였다. 허나 사실 양주 호족 중 세력이 강한 육씨 가문에 빚을 지어 두는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구성은 장사에서 장군을 칭하고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장사성을 포위하였으나 장사 태수로 임명 되어 온 손견에게 불과 23일 만에 진압당했으며, 구성은 사로잡혀 참수당했고, 주조, 곽석, 관곡 또한 의춘으로 넘어가 반란을 이어가려다 전부 손견에게 진압되었다.


손견은 그 공으로 오정후(烏程侯)에 봉해졌다.


손견 일가는 손견의 잦은 부임지 변경으로 여강군 서현(舒縣)에 머물러 있었는데, 이 곳에서 손견의 아들 손책은 주유(周瑜)와 친분을 맺어 '단금(斷金), 즉 금속 끊을 정도로 굳은 정' 으로 연결 되었다. 그 당시의 인식으로 쌍둥이는 좋지 않았기에 손걸은 집안에서 거의 없는 자식으로 자라고 있었다. 손가의 혜택은 받지만 바깥에서는 없는 사람인 셈 지내게 하였던 것이다. 그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둘째 아들은 손권으로 알고 있었고, 손걸은 집안의 대우에 못 마땅하던 차..


중평 6년(189년), 낙양에서 큰 일이 터졌다. 이름하야 십상시의 난!


십상시에 의해 발생하여 무려 2,000명에 달하는 환관과 사람들이 죽은 사건으로 동탁이 이 사건을 이용해 권력을 잡았으며, 권력을 휘두르던 대장군 하진이 죽었다.


당시 후한의 정치와 권력은 십상시라 불리는 10명의 환관들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후한 12대 황제 영제는 무능하고 병약해 십상시들의 말을 따랐고 수많은 충신들을 죽였다. 십상시는 장양, 조충, 건석, 곽승, 단규, 후람, 조절, 하운, 정광, 봉서 이 10명을 일컬어 칭했다. 이 중 봉서는 184년 황건적의 난과 연루되어 옥에 갇혀 처형되었다.


189년 후한 영제의 병이 깊자 후한 영제는 십상시 중 한 명인 건석과 후계자 자리를 논의하고 건석은 후한 영제의 황후 하황후의 오빠인 대장군 하진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건석의 계획은 사마 반은에 의해 하진에게 발각되고, 후한 영제가 곧바로 승하하자 하진은 자신의 조카 유변(劉辯)을 황제로 세우기 위해 사예교위 원소(袁紹)에게 5000명의 군사를 주어 궁궐로 쳐들어가게 한다. 뒤이어 전군교위 조조와 신하 하옹, 순유, 정태 등 대신 30명도 궁궐로 들어와, 태자 유변을 후한 13대 황제로 즉위시킨다.


한편 건석은 원소의 군사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십상시들 중 한 명이자 하진을 지지하고 있던 동료 곽승에게 살해당한다. 그 뒤 하진과 하황후는 진류왕 유협(劉協)의 어머니 왕미인을 내쫓아 독살하는 만행을 저지른다. 그리고 원소는 주부 진림과 노식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각지의 영웅들을 불러 모아 십상시들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이에 십상시의 수장 장양은 하진을 죽일 계획을 세운다.


한편 이 소식을 들은 서량 자사 동탁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올라와 민지에 주둔한다.


189년 9월 22일, 십상시들은 하태후의 명령을 위조해 하진을 장락궁으로 불러들이고 하진은 결국 십상시들과 상방감 거목에 의해 살해당한다. 이에 하진이 죽자 하진의 부하 오광이 청쇄문 밖에 불을 질렀고 진군교위 조조와 사예교위 원소는 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궁궐로 쳐들어가고 원소의 사촌 동생 뻘인 원술(袁術)도 10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참여하면서 사태는 더욱 커졌다.


취화루 아래에서 조충, 정광, 하운, 곽승 등이 베이고 군사들은 십상시의 가족들을 모두 죽였으며 환관들도 모두 살해했는데 이 때문에 수염 없는 사람들도 환관으로 오해받아 살해당했다. 하진의 동생 하묘도 난입해 십상시 중 한 명이던 조충을 죽였으나 오광에게 가담자로 오해받아 살해당했고, 하진을 살해했던 상방감 거목을 포함해 20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장락궁에서 살해당해 '십상시의 난'이라 불리게 되었다.


십상시들 중 남아있던 장양, 단규, 후람, 조절 하태후를 납치해 가려고 하나 중랑장 노식의 참여로 실패하며, 결국 이들은 황제 소제와 진류왕 유협을 데리고 낙양 북망산으로 피신한다. 장양과 단규는 소제와 유협을 데리고 피신하다가 하남 중부연리 민공(閔貢)의 습격을 받아 장양은 연못에 빠져 자결하고 단규, 후람, 조절은 소제와 유협을 잃어버려 뒤쫓아온 민공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후 소제와 유협은 선비 최의의 도움으로 구출되어 원소와 조조, 왕윤, 양표, 순우경, 조맹, 포신 등의 신하들을 만나 낙양으로 향한다. 이때 민지에 주둔하던 서량 자사 동탁이 사위 이유, 동생 동민과 함께 20만 대군을 이끌고 낙양으로 오고, 동탁은 병권을 장악하여 원소를 발해 태수로 내쫓았으며 하진의 어머니 무양군을 비롯해 하씨 일족을 모두 멸족시키면서 하진을 죽게 했다는 혐의로 죽은 하묘의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절단하여 길에다 아무렇게나 버렸다.


그리고 진류왕 유협을 황제로 세우려 드는 이에 병주 자사 정원(丁原)이 양아들 여포(呂布)를 내세워 동탁을 막으려 하지만 도리어 동탁의 부하인 중랑장 이숙의 음모로 양아들 여포가 동탁의 밑으로 들어가면서, 동시에 여포에 의해 살해당하며 허무한 죽음을 맞는다. 이 기세로 동탁은 자신의 의견에 계속해서 반대하던 신하 정관을 죽이고 황제 유변과 하태후를 폐위시켰고, 유변을 홍농왕(弘農王)으로 강등시켰다. 그 후 진류왕 유협을 후한 14대 황제로 즉위시킨다.


그리고 이내 자신의 벼슬을 태위로 옮겼다가 헌제를 옹립한 공이 있다 하여 스스로 상국에 오르고 자신은 미후(郿侯), 어머니는 지양군(池陽君)에 봉했다. 황제를 배알할 때 자신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으며 칼을 찬 채 전각에 올랐다. 동탁과 그 휘하 군대는 살인·약탈·겁탈·축재 등 온갖 전횡을 저질렀다.


190년 정월, 원소는 후장군 원술, 기주목 한복,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劉代), 하내태수 왕광(王匡), 진류태수 장막(張邈), 광릉태수 장초(張超), 동군태수 교모(喬瑁), 산양태수 원유(袁遺), 제북상 포신(鮑信) 등과 더불어 연합했고 무리는 각기 수만을 헤아렸다고 한다. 조조 역시 분위장군을 칭하며 연합군에 가세했다. 이리하여 원소가 맹주가 된 반(反) 동탁 연합군이 창설 되었다.


부임지였던 장사군에 있던 손견 역시 휘하 장수인 조무, 황개, 정보, 한당과 병사 1만 여 명을 이끌고 합류하기로 하였으며, 가는 길에 같은 연합군의 일원인 형주자사 왕예(王叡)와 남양태수 장자(張咨)를 살해했다. 왕예는 손견이 무관이라고 자못 가벼이 대했으며, 예전부터 무릉태수 조인(曹寅)과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 왕예가 동탁을 치기 전에 조인을 먼저 죽이고 출병하여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고 다녔다. 이에 두려워진 조인은 광록대부(光祿大夫) 온의(溫毅)의 이름으로 왕예의 죄를 성토하는 격문이라 꾸며 쓴 것을 손견에게 보여주며 왕예를 죽이자고 부추겼다. 이에 평소에 왕예에게 냉대를 받았던 손견이 응하며 병사를 이끌고 그를 습격하였다. 자신의 죄가 무엇이냐는 왕예의 질문에 ‘모르는 것이 죄’라 답하고 죽였다. 장자는 보급을 잘 안 해준다는 이유로 군중으로 유인해서 죽였다.


손견의 군세는 왕예, 장자, 조인의 군대를 흡수하여 수만 명으로 그 수가 늘었으며, 그 길로 동탁으로부터 남양으로 몸을 피했던 후장군 원술으로 가 그를 따랐다. 그러자 원술이 표를 올려 손견에게 파로장군과 예주자사를 겸하게 했다. 그리고 노양(魯陽)에서 군대를 조련하며 전쟁에 대비했다,


작가의말

설 연휴 잘 보내셨나요? 시간이 금방 지나갔네요. ㅎㅎ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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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손책 vs 손걸 +3 20.03.03 2,726 62 17쪽
18 17화. 인재를 대거 영입하다. +5 20.02.29 2,672 5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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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14화. 허저와 겨루다. +5 20.02.22 2,654 54 14쪽
14 13화. 손걸, 주정뱅이를 만나다. +6 20.02.20 2,661 58 13쪽
13 12화. 허저와 주태 만나다. +3 20.02.18 2,685 55 10쪽
12 11화. 손걸, 낙양에서 도망쳐 온 자를 설득하다. +4 20.02.15 2,802 52 14쪽
11 10화. 손걸, 뒤늦게 낙양의 소식을 듣다 20.02.13 2,745 57 10쪽
10 9화. 손견, 전국옥새를 얻다. +1 20.02.11 2,840 42 9쪽
9 8화. 허소를 만나다. +7 20.02.08 2,946 56 14쪽
8 7화. 수적과 싸우다. 수괴를 잡다. +5 20.02.06 3,180 50 14쪽
7 6화. 첫 전투를 승리로 이끌다. 형을 재회하다. +9 20.02.04 3,527 64 14쪽
6 5화. 황건적 잔당을 마주하다. 20.02.01 3,579 62 10쪽
5 4화. 손걸, 집을 떠나게 되다. 주유를 만나다. +5 20.01.30 3,867 74 13쪽
» 3화. 십상시의 난, 반 동탁 토벌 발발 +4 20.01.28 3,953 47 9쪽
3 2화. 변장, 한수의 난 +3 20.01.25 4,564 58 13쪽
2 1화. 손가의 등장, 황건적의 난 +2 20.01.23 5,090 64 7쪽
1 프롤로그. +5 20.01.21 6,020 6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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