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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 님의 서재입니다.

삼국지 손걸전

웹소설 > 자유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할리
작품등록일 :
2016.04.14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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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1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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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5 0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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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화. 변장, 한수의 난

DUMMY

중평 원년(184), 낙양


13주 전역에서 황건적의 난이 터지자 황제 유굉은 대장군 하진을 불러 이를 논의했다.


"대장군, 전국에서 황건적이란 자들이 날뛴다 하니 이를 막을 인재들을 빨리 보내어 막도록 해야겠는데 추천할 만한 장군들이 있소?"


"신 대장군 하진이 생각하기로는 노식, 주준, 황보숭 세 사람이 적당한 듯 싶나이다. 이 셋에게 아울러 병사들을 모아 보냄이 합당 할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 일은 대장군이 알아서 하시오."


"예, 폐하."


하진은 노식, 주준, 황보숭 세 사람에게 각각 북중랑장(北中郞將), 우중랑장(右中郞將) , 좌중랑장(左中郎將)에 임명하는 교지를 전달 했으며, 이 셋은 바로 자신들의 주 활동지역으로 가 병사들을 모집했다.


그 결과 노식은 장각의 본대와 맞서 광종(廣宗)에서 전투를 시작하였고 포위하여 공격을 했다. 주준은 남양, 영천 일대를 돌며 파재(波才)와 격돌하여 싸웠으나 패하였고, 황보숭은 장사성 일대에서 싸우다가 주준을 물리치고 내려온 파재군과 대치하다가 이어 재 합류한 주준과 함께 격돌, 후방에서 지원 온 조조(曹操)의 군대가 파재를 덮쳐 대승을 거두고 동군으로 올라갔다.


이 싸움에서 앞으로 등장할 인물들이 대거 등장하게 되는데, 기도위(騎都尉)로 임명되어 주준의 밑에서 싸운 조조와 주준의 눈에 들어 좌군사마(佐軍司馬)로 참전하게 된 손견(孫堅)이 그 들 중에 가장 눈에 띄는 인물들 이었다. 유비(劉備)는 의형제인 관우(關羽), 장비(張飛)와 의병을 모아 유주에서 교위 추정(鄒靖)과 함께 황건적을 물리쳤으며, 후에 광종에서 노식과 합류하여 병사들을 지원 받아 영천에 있는 주준에게로 내려간다.


영천 일대에서 싸움을 지속하던 주준은 황보숭군과 갈라지게 되자 완성(宛城)에 있는 황건적을 토벌하게 되었다. 원래 이들은 장만성(張曼成)이 이끌고 있었으나, 조정의 부름을 받아 남양태수로 새로 부임하게 된 진힐(秦頡)이 장만성을 죽이자 그의 부하들이 조홍(趙弘)을 새 우두머리로 받들고 저항을 계속했다.


두달 간의 농성이 지속되자 주준은 조홍을 도발하여 성 밖으로 빼내어 죽였으나, 그를 뒤이어 한충(韓忠), 손하(孫夏) 등이 이어받아 농성을 지속했다. 주준은 완성으로 합류한 유비가 내놓은 성동격서(聲東擊西)의 계로, 병사들에게 성의 서남쪽을 집중해서 공격하게 하고 자신은 성의 동북쪽에 숨어 있다가 황건적의 방비가 소홀해지자 성벽을 넘어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으로 완성을 함락시켰고, 이 전투에 패한 한충은 작은 성채로 도망갔다가 버티지 못하여 항복하려 했으나 주준이 이를 받아주지 않았고, 계속 된 공격에 필사적으로 저항하여 관군의 공격을 막아냈다. 주준이 작전을 바꾸어 포위망을 풀자, 성채에서 나와 싸웠으나 관군에게 대패했다. 한충은 교전 중에 전사했다.


손견은 이 싸움이 끝나고 조정으로부터 별부사마(別部司馬)를 제수받았다.


황건적의 수괴인 장각은 노식과의 전투 당시에 병으로 세월아 네월아 하고 있었다. 이 소식을 들은 노식이 본진을 밀어버리려 할 때 쯤, 조정에서 보낸 환관인 소황문(小黄門) 좌풍(左豊)이 노식의 군영을 감찰하러 나왔다. 노식이 주위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뇌물을 바치지 않자, 조정으로 돌아간 좌풍은 노식이 황건적을 격파할 수 있는데도 얼른 진압하지 않는다고 모함했다. 결국 영제의 진노를 산 노식은 순식간에 죄인이 되었으며, 위기에 몰렸던 장각군은 숨통이 트였다. 노식을 뒤이어 대장으로 임명 된 사람은

동탁(董卓)이었는데, 동중랑장으로 임명되어 뒤이어 장각을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그 죄로 벌을 받았다. 그 뒤를 황보숭이 이어받아 싸울 때쯤엔 장각이 병사하여 없었다.


황보숭은 장각의 시체를 찾아 목을 베어 낙양으로 보냈으며, 10월에 황건적 진영을 야습하여 3만 명을 베고 장각의 동생인 장량을 죽였다. 그 후 승기를 잡아 계속 추격하여 11월에는 하곡양(下曲陽)에서 장보를 죽이고 대승을 거두었다. 이 공으로 기주목 겸 좌거기장군(左車騎將軍)이 되었으며, 괴리후(槐里侯)로 봉해지고 식읍 8천 호를 받았다. 그러나 황건적 토벌 중 장양의 뇌물 요구를 거절하고 조충이 법을 어긴 큰 집을 지은 것을 고발하는 상소를 올렸기 때문에, 185년 둘의 모함을 받아 좌거기장군 벼슬을 박탈당하고 식읍 6천 호가 깎였다.


그렇게 황건적의 난은 일단락 되는 듯 했다. 그러나 다음 해인 185년 량주(凉州)에서 변장(邊章), 한수(韓遂)의 난이 터졌다.


변장은 신안현령(新安縣令)과 독군종사(督軍從事)를 지냈을 정도로 량주에서 이름이 있었다. 184년 겨울 북지군(北地郡), 농서군(隴西郡) 부한현(枹罕縣)·하관현(河關縣)의 선령강(先零羌)[강족(羌族)]과 의종호(義從胡)[월지(月氏)] 등 여러 세력이 북궁백옥(北宮伯玉)를 왕으로, 이문후(李文侯)를 장군으로 추대하고 한나라에 대항하였다. 그 과정에서 호강교위(護羌校尉) 영징(泠徵)과 금성태수 진의(陳懿)는 목숨을 잃었고, 변장과 한수는 그들의 위협을 받아 뒤를 이어 군정을 맡았다. 그렇게 되자 한나라 조정에서는 변장과 한수는 반군이라고 하였고, 그 둘의 현상금으로 식읍 1,000호의 제후 자리가 걸렸다.


185년 봄, 환관을 주살한다는 명분으로 원릉이 있는 삼보(三輔)까지 침범하였다. 좌거기장군 황보숭이 진압하러 왔다가 장양에게 뇌물을 주지 않아서 7월에 면직되고 장온이 대신 부임하였다. 그리고 모든 군에서 보기(步騎) 10만 명을 거두어 미양(美陽)에 주둔하였다. 장온의 휘하에는 파로장군(破虜將軍) 동탁, 탕구장군(盪寇將軍) 주신(周愼)이 추가로 배속되었는데, 이에 덧붙여 조정에 따로 요청하여 의랑(儀郞) 조기를 장사(長史)에, 의랑 도겸을 사마(司馬)로 임명하고 별부사마(別部司馬) 손견을 도겸과 함께 두었다. 공손찬(公孫瓚)도 오환돌기(烏桓突騎)의 감독으로 종군하였으나, 오환이 군량 지급이 미뤄지자 본국으로 돌아가버려 부득이하게 유주로 돌아갔다.


조정의 배속 요청으로 장온의 수하로 배속 된 동탁은 늑장을 부리며 군에 합류하였고, 이에 보다못한 손견이 장온의 막사로 가 군법으로써 동탁을 엄히 처벌 할 것을 요청하였다.


"동탁은 죄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거만하고 무례하니, 군법에 따라 참형에 처해야 합니다."


"문대(손견의 자)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동탁은 예전부터 농서·파촉 일대에서 이민족들에게 친분과 명성을 떨치고 있으니, 오늘 그를 죽이면 서쪽을 평정할 수가 없게 될 것이오."


"이미 명공께서는 친히 천자의 군세를 이끄시며, 위신을 천하에 떨치고 계십니다. 헌데 어찌하여 동탁에게 의지하려 하십니까? 동탁의 말을 살펴보니 명공을 깔보고 있는데다가 윗사람을 가벼이 여겨 무례하기 짝이 없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죄입니다. 변장과 한수는 해를 넘도록 도량발호(跳梁跋扈 : 권세(權勢)나 세력(勢力)을 제멋대로 부리며 함부로 날뛰는 행동(行動)이 만연(蔓延ㆍ蔓衍)함)하고 있는데, 시기를 봐가며 토벌했어야 할 것을 동탁은 아직 안 된다고 하여 군세를 미혹되게 하였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죄입니다. 동탁은 임무를 받았음에도 공적이 없고, 부름에도 늦게 응하였는데도 오히려 의기양양하며 우쭐해 있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죄입니다. 옛 명장은 도끼를 손에 쥐고 군세를 다스리며, 단죄하여 위엄을 보이지 않은 자가 없었습니다. 때문에 사마양저는 장가(莊賈)를 베었고, 위강(魏絳)은 양간(楊干)의 노복을 죽인 것입니다. 지금 명공께서 동탁의 말대로 주살하지 않으시면, 위신과 형벌을 잃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장온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손견의 간언을 물리쳤다.


그 해 11월, 미양에서 북궁백옥을 물리쳤다. 장온은 조기에게 별동대를 주어 안정에 주둔시켰다. 고전하던 중에 갑자기 자신의 진영 쪽으로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고 불안해하는 반군을 동탁과 우부풍 포홍(鮑鴻)이 바로 공격하여 크게 깨트리고 수천 명을 베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중(楡中)으로 퇴각하니 탕구장군(盪寇將軍) 주신(周愼)이 그들을 추격하였다. 주신은 금성의 유중에서 변장과 한수를 포위하였으나, 동탁은 주신이 이기지 못하리라고 짐작하고 장온에게 말하였다.


"휘하의 군세를 돌려 배후를 치셔야 합니다."


장온은 듣지 않았고, 그에게 선령강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어쩔 수 없이 동탁은 별부사마(別部司馬) 유정(劉靖)에게 보기 4천 명을 이끌도록 하고, 안정에 주둔시켜 견제하였다. 선령강은 군세를 돌려 동탁의 퇴로를 끊으려 하였으나, 안정에 수만의 군세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기 때문에 동탁이 조금만 공격하여도 길을 열어주었다.


한편 주신도 보급로를 차단하라는 손견의 진언을 물리쳤고, 몸소 금성을 포위하여 외벽을 부수었다. 하지만 적들은 규원(葵園)으로 진출하여 보급로를 차단하고 퇴로를 끊었으며, 이에 주신은 치중을 버리고 달아나니, 결국 아무도 이기지 못하였다.


동탁은 수만 명의 강족에게 포위당했지만 둑을 쌓은 후 물고기를 잡는 척하면서 그 아래로 자맥질해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둑을 무너트리니 강족은 물이 깊어 쫓아오지 못했다. 진압군이 모두 패퇴하는 와중에도 동탁군만이 전력을 보전한 채 돌아와 부풍에 주둔했으므로 태향후(斄鄕侯)에 봉해지고 식읍 1,000호를 받았다.


이듬 해 봄, 장온은 태위로 승진하였고, 겨울 쯤 되어 낙양으로 돌아갔다.


변장·북궁백옥·이문후는 유중성에서 한수에게 살해당하였고, 그들의 군세는 한수에게 흡수되었다. 중평 4년(187년), 한수가 10만 명을 거느리며 농서를 공격했다. 이에 농서태수였던 이상여(李相如)는 그의 군세에 겁을 먹고 항복했다. 양주자사 경비(耿鄙)가 이 소식을 듣고 농서 여섯개 군 병력을 소집하여 한수를 토벌하려 했으나 적도(狄道)에서 부하 왕국(王國)에게 배반당해 죽었다.


왕국은 계속해서 병사들을 이끌고 다음 성인 한양성을 포위하여 공격했고, 성 안의 병사들은 적었으며 군량도 바닥을 드러냈으나, 부섭은 성을 견고히 지켰다. 북지의 호기(胡騎) 수천 명이 반란군의 꾐에 넘어가 군을 공격하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전에 부섭의 은혜를 입어 깊히 감복하고 있었기 때문에 성 밖에서 땅바닥에 엎드려 절하며 왕국에게 부섭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것을 간절히 청하였다.


이때 부섭의 아들 부간(傅幹)은 이때 열세 살이었는데, 부친을 따라 관사에 머물러 있었다. 부간은 부친의 성격이 강직하여 절개가 높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친을 걱정하여 말하였다.


"현재 나라가 혼란에 빠진 것은 사람들이 아버지를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천하는 반란에 휘말렸으며, 군세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도 못합니다. 일단 고향으로 돌아가 의거를 장려하시고, 도의를 실천하는 자가 있으면 그를 밀어주어 천하를 바르게 하십시오."


그러자 부섭은 부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에게 화내며 말했다.


"너는 내가 죽음을 각오한 것을 알 것이다!! 성인은 절의를 이루며, 그에 버금가는 자는 절의를 지킨다고 하였다. 은(殷)나라 주왕(紂王)은 폭정을 행하였는데도 백이(伯夷)는 (은을 물리친) 주(周)나라의 곡식을 먹지 않고 죽었으니, 중니(仲尼)는 그를 현자라고 칭송하였다. 지금 한 조정은 주왕만큼 심하지 않으며, 나의 덕도 백이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고는 할 수 없다. 녹을 먹는데도 어찌 위난을 피한단 말이냐! 너는 재주가 있으니 더욱 정진하거라. 주부(注簿) 양회(楊會)가 나의 정영(程嬰)이다."


이에 부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왕국은 량주에서 명망이 자자한 부섭을 설득하기 위해, 전 주천태수였던 황연(黃衍)을 보내 말하였다.


“성패가 이미 알 만합니다. 먼저 일어나셔야 위로는 패왕(霸王)의 업적을 이루고 아래로는 이려(伊呂)의 공적을 올릴 수 있습니다. 천하에 한나라는 더이상 없을 것입니다. 태수께서 저희의 스승이 되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물러가시오. 내 듣지 않은 걸로 하겠소. 이 이상의 예의는 차릴 수 없을 듯 하니."


그러나 부섭은 이를 칼같이 거절하였고, 이것을 들은 왕국은 하는 수 없이 병사들을 몰아쳐 성을 함락시켰고, 그를 찾아내 죽였다. 한수의 세력이 커지자 경비의 부장이던 마등은 한수에게 가담하였다. 상황이 악화되자 조정은 황보숭을 좌장군에 임명하여 보내 반란군을 진압하게 했고, 황보숭이 반란군을 상대로 연달아 승리하자 한수는 왕국에게 찾아가 그를 급습하여 죽인 뒤 머리와 몸을 각각 다른데로 멀리 버렸다.


이후 한수와 마등이 전 신도현령(信都―) 염충(閻忠)을 강제로 삼십육개 군을 통솔하는 거기장군으로 임명하여 내세웠지만, 염충이 반군의 맹주가 된 화병으로 세상을 뜨자 반란군의 인물들이 서로 다투면서 내부 분열로 무너졌다.


작가의말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그럼 화요일날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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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화. 손책 vs 손걸 +3 20.03.03 2,726 62 17쪽
18 17화. 인재를 대거 영입하다. +5 20.02.29 2,672 52 12쪽
17 16화. 손걸, 유요를 격퇴하다. 20.02.27 2,595 59 14쪽
16 15화. 손견의 죽음 +5 20.02.25 2,644 56 10쪽
15 14화. 허저와 겨루다. +5 20.02.22 2,654 54 14쪽
14 13화. 손걸, 주정뱅이를 만나다. +6 20.02.20 2,661 58 13쪽
13 12화. 허저와 주태 만나다. +3 20.02.18 2,686 55 10쪽
12 11화. 손걸, 낙양에서 도망쳐 온 자를 설득하다. +4 20.02.15 2,802 52 14쪽
11 10화. 손걸, 뒤늦게 낙양의 소식을 듣다 20.02.13 2,746 57 10쪽
10 9화. 손견, 전국옥새를 얻다. +1 20.02.11 2,840 42 9쪽
9 8화. 허소를 만나다. +7 20.02.08 2,946 56 14쪽
8 7화. 수적과 싸우다. 수괴를 잡다. +5 20.02.06 3,180 50 14쪽
7 6화. 첫 전투를 승리로 이끌다. 형을 재회하다. +9 20.02.04 3,527 64 14쪽
6 5화. 황건적 잔당을 마주하다. 20.02.01 3,579 62 10쪽
5 4화. 손걸, 집을 떠나게 되다. 주유를 만나다. +5 20.01.30 3,867 74 13쪽
4 3화. 십상시의 난, 반 동탁 토벌 발발 +4 20.01.28 3,953 47 9쪽
» 2화. 변장, 한수의 난 +3 20.01.25 4,565 58 13쪽
2 1화. 손가의 등장, 황건적의 난 +2 20.01.23 5,090 64 7쪽
1 프롤로그. +5 20.01.21 6,021 62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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