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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바라기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관리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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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소담바라기
작품등록일 :
2023.06.30 18:49
최근연재일 :
2023.10.31 20:03
연재수 :
1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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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980,210

작성
23.08.13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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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글자
22쪽

짧은 휴식

DUMMY

거실 한복판에 불판, 정원 과일로 담근 과일주와 살얼음이 낀 소주와 맥주까지 준비한 우진은 미리 손질해놓은 구이용 고기와 육회, 참치회, 각종 버섯하고 과일을 꺼냈다.


이 정도면 장정 네 명이 먹어도 충분할 터라 우진이 흡족하게 웃고는 물었다.


“애들 도착했지?”


[지금 주차하고 있습니다.]


“금방이네. 그보다 오늘 이거 먹고 눈 돌아가는 거 아닌지 몰라.”


[신세계를 맛보겠죠.]


확실히 신세계로 느껴질 테다. 지구에서는 절대 맛볼 수 없는 마력 빵빵한 몬스터 고기에 정원산 참치, 과일, 버섯이니까.


“그런데 신기하단 말이야. 원래 마력 양으로 따지면 몬스터 고기에 더 많이 포함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과일에 더 많이 있는 거지?”


[몬스터는 마력을 품고 있는 코어에 저장하니까요. 그래서 살에 스며드는 건 얼마 안 되죠.]


그거야 알지. 아는데 과일에 유독 많이 모인 게 이상하다는 말이다.


[딱히 중요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그건 그래. 그런데 약주까지 먹이는 건 오버겠지?”


[약초로 담근 거라면 당장은 무리지 않을까요? 자칫하면 한잔 마시고 굳은 통로가 강제로 뚫리면서 터질 수도 있습니다.]


하긴, 약성이 강한 것들이라 희석한다고 해도 자칫 위험할 수도 있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제일 약한 것도 영물들에게 줬던 약초에 비해서 족히 두 배는 되니까.


지구에 돌아와서 일부러 자연 마법으로 숙성까지 시켜놨는데 당장 마실 수도 없다니. 우진이 혀를 차고는 입맛을 쩝 다셨다.


“견딜 수만 있다면 노폐물은 쫙 빠질 텐데 아쉽네.”


[순서가 잘못됐습니다. 우선 막힌 통로부터 뚫어놓고 마력에 익숙해진 다음이면 괜찮을 겁니다. 그래 봐야 하루 한 잔이 한계겠지만요. 우선은 과일주로 하시죠.]


“그래야겠네. 그러고 보니 영물들은 어때? 약초는 흡수했어?”


[대략 100년 정도의 마력은 흩어졌습니다. 정원을 기준으로 고작 300년이라 해도 정순한 마력이 아닙니까. 지구로 치자면 족히 천년의 세월을 품은 약초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아, 그 생각을 못 했네. 실수했군.”


[그래도 영물들이 욕심부리지 않고 나눠서 섭취한 덕분에 두 단계 정도는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욕심부리다가 미쳐서 날뛰면 마스터한테 죽을까 봐 겁을 먹은 덕분이죠.]


도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한 거야? 지구에 남은 귀한 영물들을 함부로 죽일 리가 없잖아.


“내 첫인상이 그리 안 좋았나?”


[안 좋다기보다는 두려워하는 겁니다. 마스터를 지구의 신쯤으로 생각하던데요?]


“신은 개뿔.”


무슨 신이 허구한 날 일이란 말인가. 쓰레기 청소에 뒤치다꺼리에 앞으로도 할 일은 태산이다. 언제쯤이나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짜증스레 한숨을 내쉴 때였다.


복도에서 느껴지는 기척에 현관으로 다가간 우진이 문을 벌컥 열었다.


“왁! 깜짝이야!”


“도둑놈이냐? 놀라긴 왜 놀라?”


“갑자기 여니까 그렇지! 어떻게 알았어?”


뭘 어떻게 알아? 그리 시끄럽게 다가오는데 모르면 바보지.


“형님! 저 왔습니다. 잘 계셨죠?”


“오냐. 들어와.”


“형, 저도 왔어요.”


“알아, 인마.”


눈이 있는데 모를까. 헤실헤실 웃으며 팔에 엉겨 붙는 현수의 머리를 헝클어트리듯 쓰다듬었다. 덩치만 컸지 하는 짓은 여전히 어리다.


오랜만에 봤다고 뭐 그리 할 말이 많은지 미주알고주알 떠들어대는 현수를 데리고 거실로 들어간 우진은 갑자기 터지는 감탄사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 형님이 특별히 준비한 거니까 오늘 실컷 먹어라.”


“와! 참치! 맞죠? 그런데 이건 무슨 고기입니까, 형님? 한우라기에는 마블링이 색다른데요?”


“몸에 좋은 거니까 다 먹고 가.”


“고기가 보양식이냐? 그래봤자 고기지.”


넌 처먹지 마, 인마! 이건 챙겨줘도 지랄이야. 우진의 노려보는 눈길에 현준이 심술 난 표정으로 입을 삐죽이고는 자리에 털썩 앉았다.


누군 쉬는 날도 없이 개고생하고 있는데 누구는 팔자 편하게 휴가나 즐기고 있으니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육회 한 점을 입에 넣은 현준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이거 뭐냐? 야, 진아! 이거 무슨 고기야?”


“보약이라니까.”


“장난치지 말고. 야, 니들도 먹어봐. 입에서 살살 녹아···뭐야, 천천히 먹어, 이것들아!”


“형들, 참치가 진짜 맛있어. 육회는 그냥 살살 녹는데?”


“현수야, 고기도 같이 굽자. 과일도 맛있고 버섯도 향이 끝내주게 좋아!”


“진짜네요. 킁킁, 냄새 진짜 좋다. 머리가 맑아지는 기분인데요?”


뭐야, 이 거지들은? 먹든지 말하든지 하나만 하라고. 그리고 좀 천천히 먹어, 이놈들아!


[며칠 굶은 줄 알겠습니다. 배운 지성인들이 하는 행동치고는 품위 없습니다.]


바랄 걸 바라야지 이놈들한테 뭘 바라는 거야. 그나마 밖에서는 이런 행동을 안 해서 다행이다 싶어 혀를 찬 우진은 정신없이 먹어치우는 걸신들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우와! 이 과일주 뭐지? 우진 형! 이거 무슨 술인데 이렇게 향기가 좋아요?”


“그러게. 향기가 끝내주게 좋아! 머리까지 맑아지는 기분인데?”


그야 정원산 과일로 담근 거니까. 그보다 질문했으면 대답을 듣고 마셔야지. 도대체 듣지도 않을 거 왜 물어본 거야?


‘어째 저놈들은 변하지를 않냐.’


[다들 정신이 반쯤 나간 것 같은데요.]


‘그나저나 현준이하고 현수는 통로가 제법 깨끗해졌네?’


[꾸준하게 마력을 섭취했으니까요. 그래도 아직 막힌 통로를 뚫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거야 당연하고. 정수는 아직 멀었군.’


[두 사람과 달리 통로가 좁아서 오래 걸릴 것 같습니다.]


확실히 많이 좁은 편이었다. 아니, 저 정도면 평범할 것이다.


오히려 마력 통로가 넓은 두 사람이 특이한 경우니까. 그나마 김치와 차를 꾸준히 섭취한 덕분인지 변화는 조금씩 나타나고 있었다.


[오늘 먹은 것까지 하면 조만간 확실한 변화를 보일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여전히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대는 세 사람의 몸을 찬찬히 훑어본 우진은 곧 흘러나오는 뉴스에 시선을 돌렸다.


동시에 세 사람의 행동도 딱 멈추자 현준이 묘한 얼굴로 뉴스와 우진의 얼굴을 번갈아 봤다.


“뭘 봐?”


“그냥 봤는데?”


그냥이 아닌 것 같다만. 그 불손한 눈빛은 뭐냐고.


[마스터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요즘 일어나는 모든 일에 마스터를 연관 지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몸의 변화를 겪고 나서부터는 더 심해진 거죠. 솔직히 인간의 관점으로 보자면 망상에 가까울 텐데 그걸 의심해서 연결하는 걸 보면 한편으로는 대단합니다.]


‘대단하긴 개뿔. 징글징글한 놈이지.’


저놈의 의심병은 갈수록 심해지니 문제다. 언젠가는 저 녀석한테만큼은 모든 사실을 말할 날이 오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알아봐야 딱히 좋을 것도 없고.


라이를 시켜 기억을 살짝 바꿀까 하다가 곧 고개를 흔들어 생각을 떨쳐냈다. 그런 우진을 찬찬히 뜯어보던 현준이 픽 웃고는 말했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는 것 같군.”


“제 말이 그겁니다, 형님. 요즘 뉴스 보면 하나같이 이상해서 솔직히 처음에는 죄다 거짓말인 줄 알았습니다.”


“평범한 상황이 아니니까요. 그래도 우리나라는 안전해서 좋은데요?”


“그건 그래. 다른 나라에 비하면 한국은 천국이지.”


그렇게 안도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닌데. 이성적이고 과학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간들로서는 인지에서 벗어난 비상식적인 일은 절로 공포와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설사 그게 아니더라도 상식이 통하지 않은 모습을 봤다면 보통은 불신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놈들은 뭘까? 뭐 이리 태평한 건데?


‘원래 이상한 놈들이긴 하지만, 이 정도면 지나친 거 아닌가? 얘들 뭐 인지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겠지?’


[마스터에 비하면 지극히 정상입니다. 게다가 드물게 착하죠.]


그건 인정한다만. 착한 거하고 태평한 건 엄연히 다른 문제다. 이 정도면 안전불감증도 심각한 수준이 아닌가. 물론 한국인 대부분이 안전불감증은 기본 탑재하고 있는 것 같지만.


[좋게 생각하십시오. 어차피 한반도는 마스터가 지켜낼 거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 세계와 상관없이 한반도만큼은 무사할 테니까.


“그런데 창문 열어야 하지 않아? 고기 냄새 밸 텐데.”


“안 열어도 돼.”


알아서 정화할 텐데 굳이 열 필요가 있나. 열어봐야 미세먼지만 들어오지.


“설마, 공기청정기 더 샀어? 고기 굽는데 냄새도 빨리 빠지는 것 같은데?”


“안 샀다. 그보다 고기 탄다. 쓸데없는데 신경 쓰지 말고 고기나 구워.”


뭘 자꾸 캐묻고 그러니. 피곤하게. 우진의 턱짓에 눈을 가늘게 뜨고 보던 현준이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고는 시선을 돌렸다.


때마침 뉴스에 북한 함경도의 역대급 홍수와 이상할 정도로 피해가 미미하다는 소식에 현수가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큰 피해가 없다니 다행이긴 한데, 요즘 분위기가 진짜 안 좋아요. 워낙 흉흉한 일이 많이 생겨서 그런가.”


“그러게. 이상기후도 갈수록 심해지고, 뭔가 꼭 큰일이 생길 것 같단 말이야.”


“한국은 괜찮은 편입니다. 외국은 지금 종말론이다 뭐다 난리랍니다. 치안은 개판이 되고 무력시위에 사이비 집단은 사람들 선동해서 이상한 행위까지 한다는데 참. 세상이 미쳐가니까 인간들도 같이 미쳐가는 것 같습니다.”


“사이비는 원래 미친놈들이야. 예전부터 연말이나 재난만 생기면 제일 먼저 튀어나와서 지랄하는 놈들이잖아.”


[정작 그런 집단도 지구가 진짜 망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요. 정말 정신 나간 곳은 자신들이 종말에 힘을 보태야 사후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곳도 있죠.]


그러니까 등신 집단 소리나 듣지. 생각하는 게 아메바 수준이잖아.


“사이비만 그런 게 아니던데요? 일반 종교에서도 종말이다 뭐다 매일같이 집회를 연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지진으로 바티칸도 피해가 극심했는데 그 와중에도 사람들이 모였답니다.”


“불안하니까 그런 거야. 신에게라도 의지하고 싶은 거지.”


“그렇겠죠. 그런다고 기현상 같은 재난이 멈출 것 같지는 않지만요. 이번에 유럽 지진도 그렇고 기현상으로 엄청나게 죽었다면서요?”


“지진은 그나마 낫지. 살아남은 사람도 많으니까. 문제는 기현상이야. 사람뿐만이 아니라 그런 현상이 생기는 곳은 남아나는 게 없단다. 거참, 도대체 이게 뭔 난리인지 모르겠네.”


뭐긴, 대청소 중이지.


“진짜 지구 수명이 다 됐는지도 몰라요. 그동안 인간들이 지구를 망치긴 했잖아요.”


“단순히 망쳤다는 말로는 부족하지. 지금도 실시간으로 망가지고 있을 텐데.”


“헐, 저긴 진짜 난리가 났네. 도대체 저 안개는 뭐로 만들어진 거야? 태풍에도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잖아?”


“요즘 느끼는 건데 이때까지 알고 있던 상식이 파괴되는 것 같습니다.”


아니 애초에 상식이라는 게 존재하기는 한 건가 싶었다. 정수의 푸념과도 같은 말에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연거푸 술과 고기를 흡입하면서 심각한 얼굴로 뉴스를 시청했다.


곧이어 이어진 국내 뉴스에 현수가 의심스럽다는 얼굴로 말했다.


“역시 뉴스는 막았나 보네요.”


“응? 뭘?”


“국내 실종자요. 실종자 수가 백만 단위가 넘는다는 말도 있고, 단체로 사라진 곳도 많답니다. 특히 연예인들이 갑자기 사라져서 팬들 사이에 난리가 난 것 같더라고요.”


“아! 들었어. 교회나 언론, 방송국도 마찬가지라던데. 거기, 일본이라면 환장하고 빨아주는 친일파 언론 있잖아. 거기는 사주부터 일가족에 기자들까지 일부만 남고 싹 사라졌다고 하더라.”


어디 그뿐일까. 범죄자부터 재벌, 정치인, 법조계, 교육계, 의료계, 군인, 학생 등등.


일차로 걸러낸 쓰레기만 수백만이다. 이 좁은 땅덩어리에 뭐 먹을 게 있다고 바글바글 모여 사는지.


[외국으로 나가면 더 많을 겁니다. 말 나온 김에 외국도 처리하셔야지요.]


‘길은 다 막아놨으니까 급할 것 없어. 일단 한반도부터 끝내놓고 하면 돼.’


어수선한 거 정리하고 사람 정리도 한 후에 밖을 신경 쓸 생각이었다.


“실종자가 그렇게 많다고?”


“그것도 집계가 안 된 거라던데요? 생각보다 사태가 더 심각하다는 거죠. 그리고 인터넷에 정보가 풀렸는데 그게 진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실종된 사람 중 일부가 당시 상황이 블랙박스하고 CCTV에 찍힌 것도 있다고 하던데요?”


“증거가 남았다고? 뉴스에서는 그런 말이 없던데.”


“정부에서 막았겠지. 괜한 혼란만 주느니 일단 사태파악부터 하려는 것일 수도 있고. 솔직히 믿기 힘든 일이잖아. 지금쯤 온갖 음모가 판을 치고 있을걸?”


그러면서 왜 나를 보냐? 현준의 의심스러운 눈빛을 마주한 우진이 코웃음을 치고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도 집요한 눈빛이 한참이나 머물다가 다른 뉴스로 넘어가자 그제야 시선이 떨어졌다. 에베레스트 만년설이 이젠 진짜 끝부분만 남기고 거의 사라져가고 있었다.


“와, 만년설도 저 지경이 됐을 줄이야. 이젠 남극이니 북극이니 하는 말도 옛말이 됐네.”


“접근 금지령까지 내렸다면서요?”


“응. 동토가 녹으면서 각종 오염 가스와 고대 바이러스로 난리라더라. 방호벽 설치하니 마니 하던데 어떻게 됐나 몰라. 저 상태에서 만약 일대에 지진이라도 터진다면 그야말로 재앙이 되는 건 순식간이겠지.”


“지금 세계가 난리니까 저기까지 신경 쓸 틈이 없을걸?”


당장 자신들 안위가 급급할 터라 다른 일은 뒷전일 것이다. 설사 후에 더 큰 불행으로 닥친다고 해도 말이다.


“어후, 답답해. 진짜 지구가 망하려고 그러나.”


“그러게. 그보다 빙하가 녹아서 기온이 더 올라간다고 하던데. 저거 어떻게 다시 얼리는 방법은 없나.”


“그런 게 있었으면 벌써 시도했겠지.”


“일본은 빙하기라던데, 그 빙하기를 다시 저기로 옮겨가면 좋겠네요.”


그러고 보니 저 문제도 심각하다. 정식 취재도 아니고 만년설 조사하러 갔던 과학자들이 그곳에 발이 묶이면서 영상을 찍어 인터넷에 올린 게 뉴스로 보도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더 심각하군. 이브, 만약 만년설이나 남극 북극을 다시 얼리면 어떻게 될 것 같아?’


[확실히 급상승하는 기온은 낮출 수 있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기온도 내려가게 되지만 유입되는 자외선도 많이 차단하게 될 겁니다. 얼음이 반사 작용을 하니까요.]


‘반사 작용이라.’


[기온이 내려가면 전기 사용도 줄어들고 그만큼 온실가스 사용도 줄어들 겁니다. 무엇보다 얼음 안에 갇힌 각종 메탄가스, 바이러스 등을 막아낼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지구가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꾸준한 관리가 필요하겠지만요.]


‘그거야 당연한 일이고. 베나 일 끝나는 대로 보내야겠군.’


안에서부터 녹여서 소멸시키는 얼음도 있지만, 말 그대로 폭설로 쌓아 단순한 얼음 역할만 할 수도 있었다.


만년설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강도 높은 얼음이 되는 것이다. 뭐 여차하면 정령들 보내서 정화하고 베나가 얼리는 방법도 있고.


‘그러고 보니 대기 중 탄소는 어때? 그쪽도 심각하지?’


[현재 기준치로 하면 1조 9500억 톤 정도 됩니다. 그나마 신수들의 활동으로 유해가스가 줄어들면서 쌓이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졌습니다.]


‘떨어진 게 그 정도라니 탄소 정화부터 해야겠는데? 한국은 세계수가 있어서 괜찮겠지만 다른 곳은 아니니까.’


[에르다를 보내시죠. 마스터는 할 일이 많습니다.]


‘그럴까?’


에르다가 알면 또 난리를 치겠지만 어쩔 수 있나. 우선 베나가 일 끝나면 먼저 보내놓고 에르다는 잠시 놀게 해준 뒤에 부려먹어야겠다.


우진은 여전히 토론 삼매경에 빠진 세 사람의 모습에 픽 웃음을 흘렸다.


“형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일은 무슨. 여전하다 싶어서.”


정말 어릴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었다. 현준이나 현수는 워낙 바르게 커서 어긋난 적도 없었고, 정수만 파란만장한 중학생 시절을 아주 잠깐 보냈더랬다.


물론 곧바로 정신 차리고 바르게 자라서 다행이랄까.


“그러고 보니까 정수 빼고는 다 고만고만하게 살아왔네.”


“저요? 제가 문제 있었습니까?”


몰라서 묻냐? 아니면 흑역사라 시치미 떼는 거야?


“아, 그때 말하는 거지? 정수 이 녀석 한동안 방황한 거.”


“정수형이요?”


“으음, 아니야. 방황이라기보다는 아버지에 대한 반발로 마음을 못 잡은 적이 있었지. 짧게, 아주 짧은 시기였어.”


“정확히는 그 유명한 중2병에 제대로 걸렸었지.”


“아, 형님! 그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부끄러운 줄은 아나 보다. 하긴, 그때 꼴을 생각하면 부끄럽고도 남지.


“푸훗, 중2병이라니 정수형, 이불킥 좀 했겠네요.”


“큼, 했지. 지금도 가끔 누워있다가 진저리치면서 벌떡 일어난다니까.”


“그래도 다행히 멀쩡해졌네요.”


“진이 형님 때문이지.”


“진이 형이요?”


“응. 그때 형님이 나보고 그러더라. 누구세요? 이러는 거야? 얼마나 황당했는지. 현수 너도 알다시피 내가 어릴 때부터 진이 형님 얼마나 좋아했냐고. 하, 그때 그 충격이란 진짜.”


충격은 개뿔. 주변 사람들이 더 충격이었다. 그때 정수 꼴이 얼마나 개판이었는지 보자마자 손이 올라갈 뻔했었으니까.


“무심한 표정으로 내가 아는 동생 정수는 죽은 것 같은데? 그래서 정신 나간 것 같은 넌 누구니? 이러더라니까?”


“푸핫! 형한테 대놓고 그랬다고요?”


“네가 몰라서 그래. 그때 이 녀석 머리는 하얗게 탈색하고 눈 밑은 시커먼 화장을 하고, 이상한 일본 변태 만화에 빠져서 헛소리나 해대더니 문신한다고 지랄 염병을 떨어댔다니까.”


“맞아. 그랬지. 그때 저 녀석 정신이 많이 아프구나 했어.”


“그, 그 정도로 심했습니까?”


그걸 말이라고. 솔직히 말해서 꿈에 나올까 무서운 모습이었다.


“큼! 다 지난 일이니까요. 아무튼, 괜히 섭섭해서 반항했다가 범호 아저씨한테 엄청나게 맞았어. 며칠간 정신교육 제대로 당했다니까. 얼마나 요령껏 사람을 패는지 어디 부러진 데도 없이 골고루 때려서 정말 살려달라고 싹싹 빌고 나서야 풀려났어.”


당시 생각이 나는지 온몸을 부르르 떨며 진저리를 친 정수가 별안간 손뼉을 짝 쳤다.


“그러고 보니까 현수 너는 모르겠구나? 고2 때 진이 형님에 대한 엄청난 일화가 있었지.”


“일화? 내가?”


당사자도 모르는 일화가 있었나?


“이 녀석은 모를걸? 아니 기억에서 싹 사라졌을 거다. 워낙 무심한 놈이잖아.”


“진이 형님이 그런 면이 있죠.”


이것들이 뭐라는 거야.


“그래서 그 일화가 뭔데요?”


“그게 말이야. 너도 알다시피 진이 형님 인기가 많잖아. 얼굴도 잘생겼고 공부도 잘하고 돈도 많고. 아무튼, 그것 때문에 일진들의 표적이 된 적이 있었거든?”


그런 일이 있었던가? 기억나지 않는 일에 우진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현준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고는 말했다.


“내가 말해줄게. 평소에는 진이 놈 근처에도 못 오던 놈들이 진이 부모님 없다는 소문을 듣고는 우습게 봤나 봐. 점심때 그 흔한 옥상으로 따라오라는 말을 들었거든?”


“어, 잠깐만. 진이 형 부모님 없다고 해서 우습게 볼 수는 없을 텐데.”


“내 말이 그거야. 아무튼, 그 멍청한 놈들이 불렀는데 이 녀석은 옥상에 가기는커녕 개무시하고 나하고 점심이나 먹고 있었단 말이지."


일진? 그런 일이 있었던가?


"그래서요?"


"뻔하잖아? 며칠 후에 그놈들 줄줄이 퇴학당하고, 몇 놈은 전학 가고 그 새끼들 부모한테 돈 받아먹은 선생은 교사 자격 박탈당해서 쫓겨나고 학교에 경찰까지 오고 난리가 났었어. 물론, 그 부모 같지도 않은 부모들도 사회적으로 매장당하고.”


“와, 대박이다. 뭘 어떻게 했는데?”


“별거 없어. 정작 이 녀석은 밥 먹으러 가면서 범호 아저씨를 대신 옥상으로 보낸 것뿐이거든. 문제는 보고를 받은 할아버지가 노발대발하셔서 난리가 난 거지."


기억났다. 당시에 할아버지가 엄청나게 화를 내셨었지.


"너희도 할아버지 성정 알지? 평소에는 인자하신데 진이 이 녀석 문제만 얽히면 물불을 안 가리시는 거. 나중에 알게 됐는데 이미 개개인의 신상 조사는 다 하셨더라고. 그것도 유치원부터 초중고 싹 다.”


확실히 좀 유별난 면이 있으셨지. 뭐 덕분에 편한 학창시절을 보냈으니까 상관없지만.


“이 녀석도 할아버지한테 보고가 들어갈 거 뻔히 알면서 경호원들을 보낸 거지.”


“원래 잡초는 뿌리까지 뽑는 거야. 어설프게 잘라 내봐라, 그것들이 얼마나 생명력이 질긴데.”


“맞습니다, 형님! 이왕이면 제초제까지 확 뿌려야지요.”


“맞아. 우진 형이 그런 건 잘해. 진짜 멋있다니까!”


“멋이 얼어 죽었냐? 이런 미친놈이 뭐가···악! 왜 때려?”


그냥 때리고 싶어서?


“뒤통수가 동글동글 귀엽기도 하고.”


“뭔 개소리야? 너도 귀여운데 한 대 때려주랴?”


“거절할게. 원래 뒤통수는 치는 거지, 맞는 게 아니거든.”


때린다고 맞지도 않을 테지만. 악악대는 현준을 무시한 우진의 입가에 슬쩍 웃음이 맺혔다.


이미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게 됐지만 어쩐지 지금 만큼은 멸망이니 뭐니 다 떠나서 조급했던 마음이 스르륵 풀어졌다.


가끔 이런 시간을 가지는 것도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싶다. 조급해한다고 능사는 아니니까.


[오늘만입니다. 앞으로 더 바빠질 테니 오늘은 편안하게 즐기십시오.]


네가 그런 말만 안 했으면 더 편했을 것 같다만. 하여간 눈치 없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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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세계수의 정원 23.08.26 1,801 53 17쪽
88 차근차근 그러나 빠르게 +1 23.08.25 1,826 51 17쪽
87 관리자 +2 23.08.24 1,867 48 13쪽
86 두 번은 없다 23.08.23 1,862 52 15쪽
85 마무리는 깔끔하게 23.08.22 1,855 55 17쪽
84 일본을 휩쓴 검은빛 23.08.21 1,875 49 13쪽
83 믿고 말고는 선택이다 +2 23.08.20 1,815 51 12쪽
82 기자회견 23.08.19 1,829 50 19쪽
81 가장 밑바닥부터 23.08.18 1,769 53 17쪽
80 국고를 채워보자 23.08.17 1,789 51 12쪽
79 만남 23.08.16 1,812 49 21쪽
78 단서 23.08.15 1,775 52 14쪽
77 빨리 정리해야지 23.08.14 1,730 46 12쪽
» 짧은 휴식 23.08.13 1,774 51 22쪽
75 해저균열 +1 23.08.12 1,746 52 14쪽
74 휴전선의 의미가 사라졌다 23.08.11 1,798 49 17쪽
73 나름 신경 썼다 23.08.10 1,778 48 12쪽
72 유럽에서 왔습니다 23.08.09 1,797 51 14쪽
71 유럽을 강타한 지진 +1 23.08.08 1,802 51 13쪽
70 수습이 가능한가 23.08.07 1,791 51 16쪽
69 균열 23.08.06 1,797 49 13쪽
68 한국을 향한 시선과 의심 (2) 23.08.05 1,837 52 16쪽
67 한국을 향한 시선과 의심 23.08.04 1,828 54 13쪽
66 사라진 무기 23.08.03 1,815 52 13쪽
65 실종 (2) 23.08.02 1,825 47 16쪽
64 실종 23.08.01 1,850 48 13쪽
63 재해에는 고대 정령이 제격이지! 23.07.31 1,864 53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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