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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담바라기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관리자가 됐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소담바라기
작품등록일 :
2023.06.30 18:49
최근연재일 :
2023.10.31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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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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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11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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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글자
17쪽

휴전선의 의미가 사라졌다

DUMMY

“와, 비가 이 정도로 올 수도 있구나.”


[원래 함경도 쪽에 홍수 피해가 잦습니다.]


그거야 뉴스로 가끔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매번 피해를 보면서도 왜 개선된 게 없냐고.


“하여간, 이쪽이나 저쪽이나 국민만 고생이지.”


[투덜거릴 시간 없습니다. 비는 앞으로 몇 시간은 더 올 것 같은데 어쩌실 겁니까?]


“그러게. 빗물 모아서 증발시켜? 아니면 그냥 구름을 없애?”


[잠깐이라면 몰라도 이 정도 범위를 인위적으로 바꾸면 다른 곳에 피해가 갈 수 있습니다. 중국이 인공 강우를 남발한 것 때문에 중국 다른 지역이 가뭄에 고통받지 않았습니까.]


하긴, 그것 때문에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국도 피해를 봤다고 했었지. 그래서 세계 여러 나라와 국제 환경기구가 합심해 그 부분에 대해 항의를 한 적이 있었다.


물론, 씨알도 안 먹혔지만. 아무튼, 그때 일로 인공 강우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돼서 한동안 열풍이었던 인공 강우는 사용제한이 걸리게 된 것이다.


“그보다 사람들은 다 피신한 거야?”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정부에서 해주는 게 없으니 마을 단위로 허술하게나마 나름 대비책을 마련한 것 같습니다.]


그럼 다행이고. 여차하면 구해주면 되니까.


[마스터, 차라리 정화해서 지하수로 흡수시키는 게 어떻겠습니까?]


“지하수는 왜?”


[없지는 않은데 최근 몇 년 사이 많이 부족해졌습니다. 여기가 척박한 곳이다 보니 홍수 때 외에는 대부분이 가뭄이니까요.]


매년 홍수가 나는데 가뭄이라고? 뭐야 그 극과 극은?


“아! 혹시 가뭄인 땅은 오히려 물을 흡수하지 못하는 거야?”


[맞습니다. 그 때문에 실제 지하로 흡수되는 양은 줄어들고 흘려보내서 다른 지역까지 피해를 주죠. 대신 지하에서 끌어다 쓰는 양은 늘어나 물 부족 현상을 만든 겁니다.]


“그러고 보니 한국도 물 부족 어쩌고 했는데.”


[맞습니다. 실제 한국도 지하수가 점점 말라가는 현상을 보였죠. 물론, 세계수 덕분에 그 위기를 무사히 넘기겠지만요. 영역 밖은 갈수록 최악의 상황에 빠질 겁니다.]


“물이 그 정도로 부족했어?”


[지구가 제대로 활동을 못 하고 있으니까요.]


“의지가 없어서지?”


[예. 의지의 활동이 곧 지구의 활동입니다. 내핵에 문제가 생긴 것도 그런 경우죠. 물론, 세계수가 지구 전체에 영향을 미치면 지구 또한 혜택을 보겠지만, 마스터도 알다시피 그 수준이 되려면 멀었지 않습니까.]


알지. 적어도 지구 전체를 영역에 두려면 최소 천 년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에르다가 있어 그보다는 빨리 성장할 수도 있지만, 그래 봐야 당장은 그림의 떡이라는 말이다.


“지구 청소 끝나면 물부터 해결해야겠군.”


그전에 의지가 깨어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금상첨화겠지만. 여차하면 막노동하는 심정으로 부족한 곳에 비를 뿌려서라도 해결할 생각이었다.


“쯧, 갈수록 할 일이 넘치는군.”


작게 투덜거린 우진은 이브의 재촉에 비가 많이 오는 함경도 전체를 돌아다니며 이브가 알려준 깊이까지 지하수에 닿을 수 있게 땅을 팠다.


우진이 한번 손짓할 때마다 쩍쩍 갈라진 땅 사이로 허리까지 고인 물이 정화되어 빠른 속도로 줄어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을 알찬 노동을 하면서 버티다 보니 서서히 비가 그칠 기미가 보였다.


그제야 안도하며 땅을 원상복구 했다. 덤으로 산사태로 무너진 흙더미도 단단하게 다진 우진은 뿌듯한 얼굴로 기지개를 켰다.


“끝! 드디어 쉴 수 있겠군.”


[수고하셨습니다. 이젠 대지진이 와도 앞으로는 마스터가 직접 하면 되겠습니다.]


“시끄러워. 아직 세심하게 조절하는 게 힘들다고. 쯧, 에르다를 시켰어야 했는데.”


[직접 좀 움직이세요. 매일같이 부려먹기만 하고 관리자로서 마이너스입니다.]


마이너스는 무슨. 부려먹는 것도 다 능력이다. 그리고 할 때는 확실하게 한다니까.


“이브, 이게 다 너 때문이야. 꼭 네가 무슨 말만 하면 일이 터지더라.”


우진의 핀잔에 이브의 코웃음 섞인 반박이 돌아왔다.


[고작 이 정도로 원망하는 게 더 꼴불견입니다. 앞으로 더 가속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누가 몰라? 하루도 안 지나서 또 터지니까 그렇지.”


[몇 시간이 아닌 걸 감사히 생각하세요.]


하여간 한마디도 안 져요.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은 우진은 이왕 북한까지 온 거 영물들이나 보고 갈 생각에 백두산으로 방향을 정했을 때였다. 남쪽에서 느껴지는 파동에 미간을 확 구겼다.


[제주 앞바다 지진입니다. 3.6입니다만, 더 큰 지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니 가보시죠.]


“후, 너무하네, 진짜.”


막노동 끝난 지 얼마나 됐다고. 별수 있나. 떠넘겨야지.


<에르다, 제주 앞바다에 지진이다. 더 큰 지진이 올 수도 있으니까 큰 피해 없이 막아주고. 사람들도 최대한 구해주고, 이왕 간 거 제주도 소방관들 축복도 걸어주고.>


<아오 씨! 이제 좀 쉬나 했더니.>


거참, 성질머리하고는.


<어쩌냐. 한반도는 안전하게 보호해야지. 너라면 금방 마무리하고 쉴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부탁해, 에르다.>


<씨잉, 알았어.>


좋아. 그런데 어디서 귀여운 척이냐? 술고래 먹깨비 주제에.


[백두산은 나중에 들리시고 이젠 집으로 가서 대기하시죠.]


“이왕이면 푹 쉬라고 해줄래?”


꼭 무슨 일이 터질 것처럼 대기하래! 입을 삐죽거린 우진이 바람도 쐴 겸 느긋하게 날아서 38선 인근에 도착했을 때였다.


어린아이와 노인 포함해서 50여 명의 사람이 손수레를 끌고 줄지어 이동하는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야, 저 사람들은?”


[탈북민입니다.]


“헐. 저 사람들이 지금 도망치는 중이라고?”


[예.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없다고 생각한 겁니다.]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명색이 탈북자면 조심 좀 하고 주변 눈치도 봐가면서 도망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런데 저렇게 대놓고 보따리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수레까지 끌면서 가족들 단위로 당당히 걸어서 도망을 쳐?


“저건 그냥 피난민이잖아.”


[정식명칭은 북한 이탈 주민이죠.]


아니 그러니까 탈북자 같지가 않다니까. 긴장감이 없어요, 긴장감이!


‘아씨, 내 편견 물어내.’


*


살아있는 닭을 보자기에 싼 모습이 꼭 대한한국의 70년대 시골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삶은 달걀을 까서 건네며 어떻게든 먹이려는 북한 할머니와 사양하면서 쩔쩔매는 남한 청년의 모습을 보면서 박주용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들은 남북한이 똑같구나.”


하긴, 따지고 보면 같은 민족인데 별다를 게 있을까. 박주용은 웃음 섞인 얼굴로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주변을 돌아봤다. 그리고는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여 위에는 쎄게 들리고 했는데 여까지 올 줄은 몰랐소.”


“남조선도 앤 더우요.”


“어마이! 이기 또 발가 안지요!”


“곰방 난나보제. 곰방 난기면 안 발가진단 말이.”


“버스는 언제 오젭니까? 오늘 중으로 갈 수 있습네까?”


수백 명이 내는 소리는 큰 목소리가 아님에도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그에 질린 얼굴로 멀찌감치 떨어져 시계를 확인한 박주용은 거한 한숨과 함께 지친 듯 중얼거렸다.


“정신이 하나도 없군. 도대체 이게 무슨 난리야.”


명색이 휴전선인데 긴장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었다. 오히려 몇백 명이 내뿜는 기대와 희망, 불안이 섞인 열기로 인해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쯧, 꼴이 말이 아니군.”


북한을 덮친 안개로 군사시설을 비롯해 군대, 항만, 일반 시설 등.


현재 북한은 재산피해와 인명피해가 그야말로 최악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피골이 상접한 북한 주민들을 보자 오히려 과소평가된 상황인 것만 같았다.


매년 탈북자들을 만나봤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던 탓이다.


그도 그럴 것이 브로커들이 성행하고부터는 어느 정도 돈이 있는 자들이 탈북을 결정하고 비교적 편히 한국으로 입국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정말 굶주려서 산을 넘고 강을 건너 도망치는 이들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 이곳으로 모여들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색도 초라했고 오랜 굶주림과 병으로 정상이 없었다. 그런 그들을 돌아본 박주용의 표정이 착잡해졌다.


“내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어째 불안하다?”


어쩐지 이게 끝이 아닐 것 같은 느낌에 박주용은 한숨을 내쉬고는 주변을 돌아봤다. 그때 자신의 팀원이 황급히 다가오는 모습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또 뭐야?”


“팀장님, 25km 떨어진 곳에서 이동하는 무리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른 쪽에서도 비슷한 무리가 이동하고 있다니 준비하라는 연락입니다.”


“준비라니? 설마, 그 사람들이 다 이곳으로 오는 거냐?”


“예. 피난민 행색에다 움직이는 방향도 이곳이랍니다.”


“허, 환장하겠네. 아니 어떻게 알고 오는 거야?”


휴전선이 무너졌다고 대대적으로 알린 것도 아닌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남하한단 말인가. 설마 국정원에서 첩자라도 보내서 소문을 퍼트렸나? 설사 그렇다 한들 이렇게 갑자기?


“미치겠군. 무슨 일 처리가 이래?”


“제 생각에는 지난번 군인들 때문인 것 같습니다만.”


“응? 무슨 군인?”


“무기가 사라지고 난 다음에 북한군이 한국 입국을 신청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일부는 가족들을 데리고 온다며 다시 북한으로 돌아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놈들이 가는 길에 이곳 상황을 알렸다? 그래서 소문이 퍼지게 됐고?”


“그렇지 않을까요? 실제 북한은 무기뿐만 아니라 군인들도 대부분 사라진 거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회는 이때다 싶었겠지요.”


하물며 북한은 현재 재난 상황으로 최악이었다. 안 그래도 굶주리는 마당에 재난 상황까지 겹치니 북한 주민들의 선택은 같은 민족인 한국밖에 없었을 것이다.


“아까 주민들 이야기 들어보니까 이미 북한에서 무기와 군인들이 사라진 사실이 소문으로 퍼졌다고 합니다.”


“사라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소문으로 퍼져? 그런 걸 방송할 리도 없는데 어떻게?”


“전화로 먼저 소식을 전했다면 가능합니다. 도청이나 감시하는 공작원들까지 사라졌다면 연락하는 건 어렵지 않았을 테니까요. 그게 아니라면 국정원에서 전단을 돌렸거나 직접 연락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브로커들이 나선 것일 수도 있죠.”


“말도 안 되는 소리. 브로커 그놈들이 얼마나 악랄한지 몰라서 그래? 돈 안 되는 일에는 절대 안 나선다니까. 그보다 국정원 그놈들은 왜 그런데? 그리 중요한 문제를 우리 쪽에는 알리지도 않고 처리하는 게 말이 돼?”


탈북자들을 포함해 북한에 대한 문제는 국정원뿐만 아니라 통일부와 군부, 경찰청도 함께 처리하는 게 기본이다.


특히나 이번처럼 이변에 가까운 일에는 어느 한쪽도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난리가 났는데도 통일부가 가능 늦게 투입됐다.


“윗선에서도 별말 없는 걸 보면 이야기가 된 게 아닐까요.”


“염병. 그럼 처음부터 말을 해줬어야지. 다짜고짜 불러서 무작정 정리만 하라니 너무한 거 아니냐. 솔직히 이것도 우리가 할 일은 아니지.”


“그래도 간단한 일 아닙니까. 우리야 뭐 시키는 대로 신원 작성하고 버스에 태워 보내면 끝이니까요.”


“알아. 누가 몰라서 그래? 답답해서 그렇지!”


아침 일찍 나와서 저녁이 다 되도록 이러고 있으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박주용의 짜증에 호영이 어색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비단 두 사람뿐만 아니라 아침부터 이곳에 불려온 팀원들과 뒤늦게 부랴부랴 달려온 특전사 소속 군인들 또한 당황하고 질리기는 매한가지였던 탓이다.


“그런데 군인들 무기도 다 사라진 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명색이 군인인데 총은커녕 군용 나이프 두 자루가 전부라니. 하물며 장소가 휴전선이 아닌가.


비록 허울뿐인 휴전선이 되고 말았지만, 볼수록 어이없는 상황이라 호영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런 그의 옆구리를 툭 친 박주용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핀잔을 주었다.


“조용히 해.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래?”


“이미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을 겁니다.”


“그래도 일반인들은 모르잖아. 여기 일반 공무원들도 있다고.”


물론, 그들이라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니었다. 단지 의심스러운 시선을 보내기에는 너무 정신이 없는 상황이라 마음속으로만 의문을 품고 있는 것뿐이다.


“만약, 모든 무기가 사라진 게 사실이라면 정부에서 뭔가 조치를 하겠지. 솔직히 숨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잖아.”


“그렇죠. 나라의 국력에 이상이 생겼는데 조용히 넘어가지는 못할 겁니다. 거기다 경찰들 무기까지 사라졌다니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아무리 작정하고 숨긴다고 해도 그 많은 경찰과 근 60만이 넘는 군인들의 입까지 다 막지는 못할 것이다.


“쯧, 또 한바탕 난리가 나겠군. 어떻게 된 게 요즘은 잠잠할 날이 없어.”


“난리 수준이 아닐 것 같습니다만.”


“어쩔 수 있나. 어차피 우리가 뭘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보다 버스는 왜 안 와? 그냥 다른 버스 보내주면 안 되나?”


“안 그래도 문의했는데 소문이 퍼질 수 있어서 이 이상 늘리지는 못한답니다.”


“소문은 지랄. 지금 상황 보니까 앞으로도 계속 내려올 것 같은데 이리 더뎌져서야 언제 마무리를 해? 오히려 소문만 더 빨리 퍼질 것 같은데? 하여간, 일하는 꼴하고는!”


“후, 그리 불만이시면 이참에 팀장님이 강경하게 건의 좀 하시죠? 맨날 저 붙잡고 투덜거리지 마시고.”


“새끼, 성질은”


누군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나? 안 그래도 대차게 대거리했다가 찍혔는데 또 그랬다가는 진짜 감봉까지 갈지도 모를 일이라 참는 것뿐이었다.


속으로 어쭙잖은 변명을 늘어놓은 주용은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는 호영의 눈빛에 헛기침을 하고는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에 호영이 작게 혀를 차고는 슬쩍 목소리를 낮췄다.


“그보다 소문 들었습니까?”


“응? 무슨 소문?”


“우리 부서 말입니다. 심현철 그 인간하고 간부진만 사라진 게 아니랍니다. 신입하고 일반 직원들도 많이 사라졌답니다.”


“뭐야. 벌써 정확한 통계가 나왔어?”


“정확한 건 모르겠는데 우리 부서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실종된 인원이 꽤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종된 이들의 공통점이 평소 문제가 많은 이들이었다는 점이죠. 뭐 신입은 모르겠지만, 간부들은 알게 모르게 비리가 많지 않았습니까?”


“하, 많다 뿐이냐. 쓰레기 새끼들이지.”


온갖 비리란 비리는 다 저지르는 놈들이 나라의 녹을 먹고 있으니 제대로 돌아갈 리가 있나. 게다가 개 같은 성질머리로 갑질은 또 얼마나 심한지!


고발해도 오히려 고발한 당사자만 극심한 피해를 보고 막상 죄를 지은 놈들은 그놈의 인맥으로 흐지부지 넘어가는 일이 태반이었다. 결국, 바뀌는 건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들이 다 사라졌단 말이지? 하, 염병할 해충 새끼들, 잘 뒤졌다.”


“아직 생사는 모릅니다.”


“죽었어. 아니 죽어야 하는 게 맞지. 만약 그놈들이 살아있잖아? 그럼 진짜 신은 없는 거야.”


“참나, 언제부터 신을 찾았다고 그러십니까?”


“올해부터. 솔직히 지금 지구에서 일어나는 사태를 봐? 뭐 하나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없잖아. 신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인간이 아닌 존재가 있다고 봐야지. 인간이 하도 지구를 못살게 구니까 지구가 칼을 빼 든 거야. 한마디로 팍팍 솎아내는 거지!”


제 말이 백번 옳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씩 웃는 상관의 행동에 영호는 코웃음을 치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딱히 반박하지는 않았다. 내심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아무튼, 그 새끼들을 우리나라 법으로 심판할 수 있을 것 같아? 어림도 없지! 그러니까 미스터리든 뭐든 그 새끼들은 천벌 받은 거야.”


아직 실종자들이 어떻게 됐는지 정확하게 알려진 건 없었다. 하지만 평판이 최악인 자들이니만큼 오히려 실종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알게 모르게 천벌이 적용됐을 것이라는 기대를 품은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야, 그보다 피곤한 게 싹 사라지는 것 같지 않냐?”


“갑자기 뭔 엉뚱한 소립니까?”


“네가 뭘 모르는데 이런 희소식은 피로를 한방에 딱! 날린다니까.”


“잘됐네요. 마침 버스도 들어오고 있는데 더 열심히 하시면 되겠습니다.”


영호의 턱짓에 고개를 돌린 주용의 표정이 순식간에 썩어들어갔다. 대형버스 열다섯 대가 줄줄이 들어오는 모습이 또다시 노가다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라 주용은 피우던 담배를 끄고는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휴식 끝이네. 젠장,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아마, 북한 주민이 반 이상 내려오면 멈추지 않겠습니까?”


북한 인구가 대략 2700만이었다. 거기서 안개로 사라진 사람들과 실종자들을 뺀다고 해도 반 이상이라면 그 또한 어마어마한 숫자였다.


그 말은 곧 이곳에서 꼼짝도 못 한다는 소리나 마찬가지라 박주용의 얼굴이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너 이 새끼, 빈말이라도 그런 말 하지 마라.”


누구 죽일 일 있나! 상관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영호는 모르는 척 고개를 돌리고는 픽 웃었다. 농담에 돌아온 반응이 격정적이라 웃은 것이다.


하지만 그런 그도 짐작하지 못했다. 이곳을 떠나 일터로 복귀하는 날이 아주 오래 걸린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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