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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네 개의 영혼, 한 개의 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4
최근연재일 :
2015.10.21 00:48
연재수 :
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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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수 :
99,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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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7.22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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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9화. 새로운 무기를 -2

DUMMY

난 티프소의 병사였다. 그런데 도통 병사였을 때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병사로서 받은 훈련이 있을 터인데, 씁쓸할 정도로 머리 속은 백지상태다. 아니, 완벽한 백지는 아닌데 뭘 그려놓았는지 알아보기 힘든 것 같은 미묘한 상황이라 하는게 정답일까. 다행히도 몸은 모든 전투 상황에 대해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지만, 생각하기도 전에 몸이 멋대로 반응하는 것은 그리 환영할 일이 아니다.


'왜요? 굉장히 편할 것 같은데~ 내상을 입고 기억을 잃어버린 60갑자의 무림고수의 느낌이죠?'


너무 난해한 예는 들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그건 티프소 시대보다도 더 과거에나 있던 이야기잖아.


'계산을 해서 움직여야 할 때 그렇게 못하기 때문에 문제인거다.'


아마데오가 카르멘에게 설명해주었다.


'게다가 상대가 군인이라면 이쪽 반응을 예상하기가 더 좋겠지. 그래서야 소규모 전투에서 승률이 낮다.'


뭐, 그런 이유로 난 아마데오에게 조언을 받아 내 몸이 기억하고 있는 기술을 하나씩 확인해 보려고 했다. 이왕이면 머스킷 사격술을 포함해서.




카르멘의 머스킷 개발은 아주 완벽하게 성공했다. 4주(=60일)만에 우리는 화약포도 아니고 총탄고리를 메고 있는 소총대를 만들 수 있었다. 염초를 만드는 것부터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대소변을 이용하여 비료를 만들고 있었는데, 카루멘은 바로 그 비료에서 삼산화질소를 추출해내는 묘기를 보여주었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닌데요?'


카르멘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지만, 이론과 현실이 접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마법 이상의 감동이다. 재를 태워서 혼합하고 건조시키는 것은 비전투원인 10세 이하의 아이들이 맡아서 했는데, 꽤나 즐거워보였다. 유치원에서 진흙장난을 하는 것으로 안보이는 것도 아니다.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만드는 건데도...'


페티마씨는 안타까운 듯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도 저런 귀여운 아이들이 전장에 나가는 건 원치 않는다. 아이들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지만 그마저도 슬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페티마씨가 감성적이 되는 것은 아이들을 이렇게 만드는 실험을 진행하던 연구원이기 때문이지.




원래대로 염초를 끓여서 뽑아내거나, 염초밭을 만든다면 반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건 지금의 장비로 줄일 방도가 없으니 어쩔 수 없으려나,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헥터는 결정화 시키던 염초의 냄새를 킁킁, 하고 맡더니 손가락을 들었다.


"말릭 형. 이거랑 같은 게 저쪽으로 가면 있어요."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15킬로미터쯤 가서야 우리는 초석의 덩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말 그대로 자연적인 염초이니 우리의 작업은 훨씬 빨라진 것은 당연하다. 훌륭한 성과지만 도대체 어떻게 이런 묘기가 가능할까?


'헥터는 후각이 좋거든요~'


티프소의 기계나 테르센트의 마법으로도 이렇게 정밀하게는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거니 많은 생각은 안하기로 했다.


'점점 말릭 오빠도 마음을 편하게 먹기 시작하는군요~'


아니, 그냥 신경 안쓰려고 하는 거야. 일일히 방법을 물어도 돌아오는 대답은 항상 상식 밖이니까.




나이가 가장 많은 알시아는 눈으로 슥 보는 것만으로 금속의 조합비를 알아내는 능력이 있다. 카르멘과 비슷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녀는 불의 온도를 측정하거나 가마를 만들거나 하는 것에 익숙해서 무기 제조에 굉장히 도움이 된다. 불을 피우는 데에도 재능이 있는데, 자갈 두개를 구부린 베어링에 끼워서 단 한번 부딪힌 것만으로 불을 피워낸다. 나도 시험삼아 따라해보았지만 불똥조차 튀지 않는다.


"이렇게, 부딪힐 때 불을 붙인다고 생각하면 돼."


마음 먹는 것만으로 불을 피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튼 난 그런 재능은 없다.


한편 피델은 나무로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단히 능숙한데, 나무를 밟고 다니는 건 물론이고, 나무와 나무 사이를 원숭이처럼 날아다닌다. 나도 비슷한 흉내는 낼 수 있지만, 악력과 근력으로 뛰어다니는 나와 다르게, 피델을 위해 나무가 길을 내주는 것처럼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이다.


"이렇게 뛸 때, 나무에게 받쳐달라고 생각하면 돼요."


피델은 키득키득 웃으며 말해주었다. 그리고 당연히 난 그런 재능은 없다.




겨우 1주일만에 흑색화약을 개발해내자마자 카르멘의 지도하에 황동을 채취하기 시작했다. 카르멘과 알시아는 단 20분간의 회의 결과로 솜씨좋게 탄피를 만들어 냈고, 볼트액션급의 소총을 프로토 타입으로 한 자루만 만든 다음, 문명의 발달 과정을 몇단계는 건너 뛰어 후장총 방식까지 달성했다.


'황은 유황에서, 니트로글리세린은 비누에서 뽑아냈어요~'


카르멘이 설명해줬지만 난 그때 하늘에 날아가는 저 갈매기를 잡아먹으면 어떤 맛이 날지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세한 건 기억나지 않는다.


알시아는 내가 카르멘의 설명을 전화기 처럼 입 밖으로 내는 것을 듣고 알겠다는 듯 끄덕인 다음, 다른 아이들을 지도해서 철을 제련하기 시작했다. 그때도 난 마찬가지로 뭘 하는지 아예 관심을 끊기로 했다. 난 수학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이때쯤 알았다. 아무리 과학의 축복 속에 살아왔다고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에게는 무연화약으로 총알을 만드는 기술 따위는 알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전 알고 있는데요.'


'나도 알고 있다. 그정도는 상식이다 애송아.'


내 몸속의 거주자들은 스스로가 보통사람이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뭐, 어쨌든저쨌든, 11킬로짜리 머스켓 200정이 만들어진 다음에야 난 우리가 뭘 만들어 냈는지 자각할 수 있었다. 우리의 무기는 해적들이 들고나니는 머스킷티어와 급이 다르다. 우리의 소총은 거의 티프소의 주력무기에 근접하고 있다. 연사는 불가능하지만 화력은 전혀 밀리지 않는다. 개량한 대포와 이 소총을 대량생산할 수만 있다면 전쟁도 가능하겠지.


'하지만 대량생산은 힘들어요~ 철을 다루기 좋은 공장을 지어주면 대량생산 시스템도 만들어 볼게요~'


거기까지는 무리겠지. 애초에 대량생산해도 쓸 사람이 없다. 우리의 전투 인구는 아무튼 150명이라 정해져있다. 각자 한정씩만 들고다니면, 고장나기 전까지는 더 필요도 없다.


'이대로면 티프소의 추격자가 와도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건 아닙니다. 페티마씨의 희망사항은 저도 갖고 있는 거지만 우리는 철을 다루는 기술이 모자라요.


'기술은 충분해요! 시간과 도구가 부족할 뿐이라구요~'


뭐, 카르멘의 말대로다. 카르멘이 있다면 달로 가는 로켓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시간과 도구만 있다면 말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어느 쪽도 부족하다. 우리의 제강기술은 얇게 편 철판을 때려서 돌돌말아 하나하나를 만드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니 티프소군만큼 싸우는 건 무리다.


그나마 승리의 가능성을 높인다면 훈련 뿐인데...




아마데오의 조언에 따라 공터에서 몸을 움직여보고 무기를 겨누어보았지만 은근히 도수 체조수준에서 끝나버렸다. 아무래도 혈액순환 이외에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 체조는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몇가지 훈련을 해보기로 했다. 격투 훈련, 사격 훈련, 체력강화 훈련 정도를 해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최소한의 도구가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솜을 채운 가죽미트나 샌드백, 보호도구, 소규모 사격장, 장애물 등을 만들어 보았는데, 머스켓 제작이 끝나고 한가해진 아이들이 와서 물어보았다.


"카르멘, 뭐하고 있어?"


"어... 훈련 도구를 만들고 있어."


"우리도 같이 해도 돼?"


안될 이유는 없다. 우리는 몇 개의 사격로를 만들고 달리기 코스와 장애물을 늘렸다. 준비가 끝나자마자 나는 하나씩을 직접 테스트해보았다. 그것을 바라보고 있던 아이들이 다시 물어보았다.


"우리도 같이 해도 돼?"




소규모 군사 훈련장에서, 군대라고 하기에는 가벼운 분위기로 훈련이 전개되었다. 일단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은 프릴이 잔뜩 붙어있는 드레스이고, 남자애들마저도 귀족집 영애와 같은 복장을 하고 있다. 성 정체성따위는 메르데나씨에게 문제가 되지 않는듯 하다.


그녀는 식사 준비 이외의 모든 시간에 옷을 만들고 있으며, 300명의 아이들 옷 전부를 드레스로 꾸며줄 생각인 듯하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도구라던가, 내가 몸을 움직이는 것에 대해 왕성한 호기심을 보이고 있다. 분위기는 군사훈련이 아니라 장난감 상점 관광정도이다.


하지만 그 내용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아이들은 눈으로 본 격투 기술을 즉시 흉내낸다. 흉내내기이지만 완성도는 높으며, 근육과 호흡을 본능적으로 조절한다. 사격시에 총성과 불꽃에도 동요하지 않는다. 호흡을 멈추는 격발은 완벽하고, 목표를 노리면 총이 불량품이 아닌 한 반드시 맞춘다. 숨이 턱까지 차도, 고통이 한계까지 느껴져도 아이들은 지시받은 것을 반드시 해낸다. 아마데오는 나의 훈련은 뒷전으로 미루고 아이들의 전투교육 커리큘럼을 잡아주었다.


'이 아이들이 훈련을 소화해내면 금새 전력이 될거다.'


그는 만족스러운 것 같지만... 나와 페티마씨는 몇번이나 쉬었던 한숨을 다시 한번 쉬었다.


'이래도 되는 걸까요..."


페티마씨의 중얼거림에는 슬픈 기색이 가득하다.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나 역시 아이들을 전장으로 내보내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싸워야 할 때 싸우지 않으면 더 큰 고통을 받을 수 있다. 아예 죽을지도 모른다.




"말릭형, 점심 가져왔어요."


헥터가 몇명의 아이들과 함께 무거워보이는 짐을 짐차에 끌고 훈련장까지 왔다. 여섯명의 아이들이 끄는 인력차에는 메르데나씨가 준비한 식사가 가득 들어있다. 아이들은 교대로 메르데나씨의 식사준비를 돕는 모양. 난 지시한 적 없으니 자발적으로 규칙을 정한 것이겠지.


"수고했어. 무겁지 않았어?"


헥터는 고개를 몇 번 젓고 식사를 내려놓는다. 아이들은 어느새 한줄로 서서 배급을 받을 준비를 한다. 웅성거림도, 장난도 없다. 모두 가만히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것은 어쩐지 기계와 같았다. 난 곧 아이들에게 실례되는 생각을 했다는 걸 깨닫고, 생각을 바꾸기 위해 가만히 서있는 작은 소년에게 말을 걸었다.


"헥터는 날 카르멘이라고 안부르네."


"카르멘의 냄새가 나지만, 다른 사람도 섞여 있어서... 카르멘이지만 카르멘이 아니에요."


"그런 것도 알 수 있어? 어떻게 알지?"


"그냥 알아요."


그는 예상했던 답을 돌려준다. 식사를 받은 아이들은 예의바르게 앉아서 식사를 한다. 자세히 관찰해보면 씹는 횟수마저 똑같지 않을까.


"헥터, 넌 이렇게 지내는 게 어떻니? 지루하지 않아?"


난 날 힐끔힐끔 바라보는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지루하지 않아요."


"여기는 놀것도 없고... 위험하기도 한데..."


'여기가 싫다는 말을 듣고 싶은건가요?'


카르멘이 정콕을 찔러서 난 입을 다물었다. 아이들에게는 이 상황이 즐거울 리 없다. 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헥터는 예상대로 내 생각을 깨주었다.


"연구소에 있을 때는 불쾌한 냄새가 났어요. 여기는 그렇지 않으니까, 좋아요."


"불쾌한 냄새?"


"새끼 쥐를 노리는 늙다리 고양이의 냄새가 났어요."


시적인 표현이군. 게다가 어느 정도 공감도 간다.


"여기는 상쾌해요. 하늘의 냄새가 나요."


그는 천진난만하게 깊은 숨을 들이쉬고 조금 웃어보였다. 감정이 무딘 거라고 생각했지만, 시인과 같은 표현을 하는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가.


'말릭 오빠는 괜한 걱정이 많네요. 연구소에 있는 것보다 더 나쁜 생활은 없어요.'


그러니까 아이들을 데려온 것은 잘못되지 않았다고 카르멘이 말했다. 하늘의 냄새가 나는 건가.


"카르멘, 다 먹었어요. 이제 다시 훈련해도 돼요?"


피델이 곁으로 살그머니 다가와있었다.


"어, 훈련?"


"총을 더 쏴보고 싶어요. 아까는 얘한테 졌거든요."


헥터는 조금 웃음을 띠는 것 같았다. 잘 보면 피델은 조금 분해보이는 것도 같다.


"아아, 그래."


내가 허락하자 두 사람은 쪼르르 달려가서 소총을 집어든다. 그렇군. 저게 저 애들의 놀이일지도 모르겠다. 잔인한 일이지만, 조금만 생각을 바꿔보면 저 애들은 정말로 아이다운 것일지도 몰라.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아이들은 다시 훈련으로 복귀하고 있었다. 알시아는 격투술 교정에서 내가 오기를 바라는 듯이 빤히 바라보고 있기에, 난 서둘러 아이들에게 달려가기로 했다.


'조금 안심한 건가.'


아마데오가 왠지 재밌다는 듯한 말투로 말했다. 난 침묵했지만 그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아챈 것 같다. 킥킥 소리내서 웃고 있으니 말이야.


작가의말

금요일 분량입니다. 서울에 없어서 금요일에 올릴 수 있을지 어쩔지 몰라 미리 올렸습니다.

오늘 정말 정말 덥네요. 이번 여름놈은 도대체가 여유가 없는 녀석이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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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 네 개의 영혼, 한 개의 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4 14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3 +1 15.10.21 165 1 17쪽
13 13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2 15.10.19 192 0 16쪽
12 12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1 15.09.11 145 0 8쪽
11 11화. 그리고 첫번째 싸움 15.08.28 95 1 23쪽
10 10화. 첫번째 교전 15.08.26 118 1 9쪽
» 9화. 새로운 무기를 -2 15.07.22 224 1 13쪽
8 8화. 새로운 무기를 -1 15.05.22 229 1 12쪽
7 7화. 미끼가 사는 방법 -2 15.05.06 148 1 17쪽
6 6화. 미끼가 사는 방법 -1 15.05.06 163 1 20쪽
5 5화. 원조 15.05.01 182 1 16쪽
4 4화. 새로운 가족 15.04.20 258 1 17쪽
3 3화. 정착자와 해적 15.04.20 347 1 22쪽
2 2화. 그리고 출항 15.04.20 192 1 10쪽
1 1화. 네 개의 영혼과 한 개의 몸 15.04.20 226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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