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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네 개의 영혼, 한 개의 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4
최근연재일 :
2015.10.21 00:48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2,680
추천수 :
12
글자수 :
99,741

작성
15.04.20 12:55
조회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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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8쪽

1화. 네 개의 영혼과 한 개의 몸

DUMMY

너는 누구냐?


“말릭... 모하메드 말릭...”


넌 누구냐?


“모하메드... 말릭...”


관등성명은?


“11사단... 제7연대... 24전투대대... 중사...”


새의 날갯짓 같은 한숨소리가 들렸다. 청각만이 따로 존재하는 기분. 두통이 엄습한다. 사고를 막아버릴 정도의 두통은 왼쪽 관자놀이부터 오른쪽을 향해 날카로운 송곳처럼 뻗어가고 있었다. 감각이 둔하다. 피부 위를 달팽이가 기어가는 것 같았다. 지독한 포르말린 냄새가 후각을 자극한다. 눈을 뜨지 못하겠다. 그게 아니면 눈을 떴는데도 너무나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이거나.


“... 나는 지금 어디에...?”


실패한 것 같아. 기억이 그대로잖아.


“나는... 어디에...?”


아뇨. 기억 곳곳에 구멍이 있습니다. 뇌파가 엉망이에요.


“너희는 누구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소리가 멀어지고 있다. 대화를 나누던 사람의 인기척은-인기척이라고 해봐야 소리 뿐이었지만-날 놔두고 멀어져간다. 두통, 두통이 엄습한다. 머리를 송곳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찌르는... 왼쪽에서 오른쪽이었나? 머리를 거대한 호두까기에 넣고 두드리는 것 같다. 툭툭 칠때마다 머리가 부서진다. 부서진 머리에서는 내용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구역질이 난다. 쏟아져 나오는 것들은 뇌수와 뇌와 나의 생각과 나의 무언가와 나 자신이다. 역한 기분에 토하고 싶지만 토할 힘조차 남지 않았다. 피부가 끈적끈적하다. 감각이 회색 물감을 덮어놓은 것처럼 흐려서-좋은 표현이다. 정말 좋은 표현이다.- 제대로 인지할 수가 없다.


완전히 지워야 의미가 있어. 무얼 위한 실험인지 잊었나?


“어지러워...”


폐기하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그건 아깝지.라고 대답했다.


“폐기... 날 어떻게..”


예정대로 실험을 계속해라.


“여기는 어디지?”


영혼의 중첩실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클린(CLEAN)상태가 필요한데.


“난... 누구지?”


그건 이론상의 전제입니다. 반대 경우도 기대할 수 있어요. 게다가...


“난 뭐지...?”


어차피 폐기물이니까요. 이. 건.




정신을 차린 것은 어둠 속. 머릿속보다 더 안쪽이 시원하다. 굳이 표현하면 뇌가 개운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다. 아니, 언제부터 시간을 계산해야할 지의 기준이 없다. 난 뭔데 여기에서 이렇게... 몸을 움직이려는데 팔과 다리에 가벼운 저항이 있었다. 어두운데도 눈 앞은 그럭저럭 보인다. 붉은색의 빛이 희미하게 천장과 바닥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몸상태는 매우 좋다. 가볍다. 마치 하늘이라도 날아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렇다면 이제 일어나면 되는 건가.


나는 몸을 일으켰다. 구속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스르륵 풀렸다. 구속구? 철제 구속구는 바닥으로 요란한 쇳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묶여있었던건가. 그렇다면 누군가에게 감시라도 당하고 있나?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요.’


젊은 여성 목소리가 말했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뭔가 사고가 난 것 같군.’


늙은 남자 목소리가 말했다.


‘도망칠 기회~ 일단 문을 열도록 하죠~’


어린 여자아이 목소리도 말했다.


“...”


그래서 난 가만히 서있었다. 뭐지 방금은?


‘가만히 서있을 때가 아니라구요.’


여성이 다시 말했다. 내가 아니잖아?!


‘잠깐. 이 녀석, 패닉이야. 설마 아무것도 기억 못하는 건가?’


늙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난 오른쪽 귀를 후볐다.


‘거기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아니에요~’


좀 딱하다는 듯 어린 여자아이가 말했다. 난 얼른 왼쪽 귀를 후볐다.


‘... 바보냐 이 녀석.’


‘바보네요.’


‘아하하하, 바보같아요.’


난 세 명의 나에게 놀림감이 되어버렸다.


“아악! 시끄러워! 뭐야 이건!”


내 머리를 주먹으로 두 대 쯤 쳤다. 그저 손과 이마가 아플 뿐이었지만 날 제외한 누구의 신음소리도 나지 않았다.


‘역시 설명해드려야겠군요.’


젊은 여성의 목소리는 차분히 설명을 시작했다.


‘간단히 말해서, 당신을 사용한 실험은 성공했어요. 그 결과 당신의 육체에는 네 명의 영혼이 머물게 되었죠.’


“...”


‘어라? 설명이 어려웠나요?’


‘역시 바보로구먼.’


‘아하하~ 말릭 오빠는 이해력 부족이에요~’


“이해는 했는데 납득을 못하고 있다구.”


나는 중얼중얼 대답했다.


‘음... 그럼 빨리 납득해주세요. 서두르지 않으면 도망칠 타이밍을 놓친다구요.’


젊은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 키득 웃었다. 귀엽다. 귀여운 건 좋은데 내 머릿속에서 나는 소리다.


‘어머, 고마워요.’


함부로 생각도 못하겠군.


‘자신을 꼬셔볼 생각인가. 이래서 젊은 놈들은...’


‘이거 나르시시즘이라고 부르는 거죠~?’


나는 벽면에 붙어있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180센티 정도의, 탄탄한 근육을 가진 건장한 남자. 내 기억속에 있는 내 얼굴이 틀림없다. 젊고 매혹적인 여자도, 늙고 걸걸한 남자도, 10살 정도의 어린 여자애의 얼굴도 아니다.

그럼 나는 누구인가?


‘모하메드 말릭이에요.’


그래. 나는 모하메드 말릭이다. 본래는...


‘군인이었지.’


전투대대 소속의...


‘실험에 자원했었죠~’


실험에 자원했었다. 강화실험이었다. 티프소를 위한, 중요한 실험.


‘그런 실험이었어요?’


‘난 수명을 늘리는 실험이라고 하던데.’


‘아. 불온한 발상이네요~’


‘늙어 죽으면 그걸로 끝이잖아. 단백질 덩어리가 되는 거라구.’


‘아뇨. 영혼이란 게 있잖아요.’


‘흥. 알게 뭐야. 죽으면 그걸로 끝. 술도 못마시고, 담배도 못피고, 여자도...’


“시끄러워! 생각 좀 하게 다 잠깐만 조용히 해 봐!”


세 사람(?)은 침묵 상태로 돌아섰다.

좋아. 이제부터 어떻게 해야하는지 생각해보자. 어떤 실험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지금 사로잡힌 실험체의 위치인 것은 틀림없다. 아무래도 언젠가의 SF영화에 나온 말하는 침팬지 같은 입장인 것 같다.


‘아, 나도 그 영화 봤어요. 엔딩이 멋있었죠~’


‘음? 언제적 영화야 그거?’


시끄럽다고. 다 조용히 있어봐 좀.


‘네~’


‘신경질 적인 녀석이로군.’


가만... 이대로 계속 있으면 머릿속의 녀석들을 포함해서 내가 가진 문제를 모두 해결해줄지도 모른다. 굳이 도망갈 이유가 없다. 아니, 실험 중이라고 한다면 실험을 끝마치면서 내가 정상으로 되돌아간다던가 할 수도 있잖아.


‘바보냐, 네 놈은.’


‘바보네요...’


‘아하하하, 바보에요~’


이 셋이 실험의 부작용 같은 거라면, 실험이 끝나야 해소되는 걸지도 모른다. 기억이 불완전한 것도 어떻게든 해소가 될지도...


‘그거라면 제가 설명할 수 있어요, 말릭 씨.’


“..."


난 설명해 보세요. 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녀는 노래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인간의 뇌는 100% 전부 사용되고 있진 않아요. 사람 한명이 쓰기엔 좀 여유분이 많죠. 하지만 네 명이 쓰니까 꽉차버린거에요. 상대적으로 용량이 많은 말릭씨의 기억이 감소되는거죠.’


“그럼 내 머릿속에서 나가라구.”


내가 퉁명스럽게 말하자 여자의 목소리는 들으란 듯이 한숨을 쉬었다.


‘모르시겠어요? 우리 셋도 원해서 들어온 게 아니에요. 당신은 그래도 이렇게 살아있지만... 우린...’


난 할 말을 잊었다. 그렇다. 이 실험의 결과 세 사람의 ‘몸’은 죽었다. 내가 불평을 하자면 이 세 사람은 더욱 슬퍼질 것이다.


‘난 어차피 늙어죽었는데 말이지.’


‘아하하~ 전 지금 상태가 더 재밌어요~’


별로 안 슬퍼한다. 아니, 재밌어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튼 좋아. 그럼 탈출하는 걸로 하자. 근데 어떻게? 난 보는 바와 같이 이 연구실에 갇혀있다구. 그리고...”


난 좌우개폐형 문앞에 서서 가볍게 두드려보았다. 탱... 하는 육중한 쇳소리가 울린다.


“이 문은 보는 바와 같이 강철인데?”


‘음... 한 번 열어볼래요?’


무리한 걸 말하는 여자다. 자기 몸이 아니라서 대충 힘쓰다가 근육파열이라도 일어나는 것을 재밌어하고 싶은 건가.


‘무리한지 아닌지는 열어보고 말씀하시죠?’


“... 좋아. 잠겨있는 걸 확인시켜서 탈출 실패 스토리를 써주지.”


난 보란 듯 소매를 걷어 올리고 문고리를 잡았다.


“타앗..!”


기합과 함께 좌우로 벌리는 순간, 후투두둑,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열렸다? 부서져?? 바닥을 보니 문의 잠금쇠 부분이 통째로 떨어져 나와있었다.


‘요즘 젊은 것들은 해보지도 않고 투덜거린단 말이야.’


‘아하하~ 멋져요~ 이대로 남은 문짝도 파파팍에 팍이에요~’


“... 어라?”


‘놀랍죠? 티프소의 과학력이란건.’


“아니, 그... 난 이어라트가 된건가?”


그래, 이어라트라면 말이 된다. 티프소에서 만든 인조기계인간. 인간의 육체, 특히 내장과 두뇌만을 활용해서 기계 몸에 담아내는 기술. 하지만 테르센트로 오면서 이어라트고 뭐고 대부분의 전자기기는 사용할 수 없게 된 것이 아니었나? 지금의 이어라트는 아무튼 근력의 강화율이 좋지 않으니 이런 강철문을 마구 부술 수 있는 것은 아닐 터인데.


‘이어라트는 아니에요. 일종의 육체강화... 마법... 같은거죠.’


“마법? 테르센트인처럼?”


‘그 불가사의한 힘을 티프소인에게 적용시켜보았습니다.’


여자는 키득 웃으며 말했다. 적용시켜 보았다니... 마치 직접 실험한 것처럼 말하는군.


‘직접 했어요. 최소한 지금 제가 여기 있는 건 그 실험의 결과죠.’


“네?”


나도 모르게 존댓말로 되물었다.


‘전 페티마라고 해요. 연구소 직원입니다. 아, 그렇지만 이런 결과는 제가 노리던 것이 아니에요. 오해하진 마세요. 지금 화내려고 했었죠?’


“...”


화낼 타이밍을 놓쳤기 때문에 난 맘 속으로 불평을 해댔다. 궁시렁궁시렁...


‘그건 말이 좀 심하네요... 말했잖아요. 원래 목적은 강화 뿐이었어요. 이렇게 영혼이 마구 겹칠줄 몰랐어요. 심지어 저 역시 여기에 들어와 있잖아요? 설마 제가 바란 거겠어요?’


듣고보니 그렇긴 하다. 아무튼 그녀도 피해자니까...


‘어이, 뭐든 상관없으니 슬슬 탈출해라. 경보가 해체되었다.’


“경보?”


노인의 히스테리틱한 목소리에 난 고개를 들었다. 천장의 희미한 붉은 색 등은 어느새 백색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 건물은 경보가 울리면 전 직원이 대피하게 되어있지. 지금 해제되었으니 슬슬 돌아올 거라구.’


“당신은 어떻게 그 정도로 잘 알지? 당신도 설마 저 여자처럼...”


‘페티마에요.’


목소리에 가시가 돋혀있군.


“페티마씨처럼 연구소직원인가?”


‘씨자는 빼줘요. 친근하게 불러주면 좋을텐데...’


못 들은 걸로 했다.


‘아니, 난 군인이었다. 적당히 유명한... 뭐, 신경쓰지마라. 어차피 병으로 죽기 직전이었어. 이 건물뿐만 아니라 모든 티프소의 시스템은 알고 있지.’


“그럼 뭐라고 부를까? 당신은...”


‘흠... 지금처럼 부르는 건 확실히 기분나쁘군. 경어를 쓰라고는 말하지 않겠지만 당신은 좀 심하지. 난... 그래. 아마데오라고 불러라.’


“아마데오?”


‘내가 키우던 망치앵무새의 이름이었다. 멋진 놈이었지. 말버릇은 빌어먹을 이었지.’


‘귀엽겠네요~’


여자아이가 기뻐한다. 하지만 망치앵무새 따위에게 신경쓸 여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으니 다음 갈 곳을 물어보는 수 밖에 없다.


“어디로 갈까?”


솔직히 난 적당히 자포자기한 상태다. 혹시 이게 꿈은 아닐까?


'어이, 슬슬 정신을 차리라고, 애송아. 컨디션은 좋을 터이다.'


아마데오씨의 말처럼 내 피폐해진 마음은 그렇다쳐도 육체의 상태는 너무나 좋다. 마치 방금 태어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그 표현 좋네요~ 시적이다~'


... 컨디션이 좋았다. 난 문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보았다. 다른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어지는건 긴 복도, 그리고 하얀색 벽과 천장. 병원의 색이다.


‘일단 왼쪽으로.. 그래요. 왼쪽으로 뛰어요.’


‘그 다음은 오른쪽이다, 얼간아. 틀려. 대각선 오른쪽이야.’


‘다음엔 저 문으로 가서, 비밀번호는 5539921입니다.’


‘아하하, 서둘러요~ 손가락이 느려요~’


“아악! 시끄러워! 한 명만 말해!


난 그들이 시키는 것을 차곡차곡 해내면서 허공에다 외쳤다.


비밀번호를 입력한 문은 맑은 전자음을 내며 열렸다. 복도는 길게 뻗어있다. 게다가 복잡하다. 여기저기에 문이 있고, 계단이 있고, 엘리베이터도 있다.


“좋아, 다음은?”


‘무기고를 털자.’


‘즉시 탈출하죠.’


‘지하로 가주세요~’


“...”


난 일단 침묵을 하기로 했다. 내가 조용히 하면 알아서 다음 갈 곳을 정해줄 거라 믿고.


‘무기고를 털어야 싸움도 하고 인질도 잡지!’


‘지금은 무기 같은 건 필요 없어요! 어차피 말릭씨는 몸이 무기라니깐요!’


‘저기~ 지하로 가주세요~ 데리고 가야할 것들이 있어요~’


'아무리 육체가 강해도 무기가 없으면 별거 없다는 걸 모르는건가!'


'이 실험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결과를 냈어요! 무기는 필요 없다니까요!'


'말릭 오빠~ 지하로 가줘요~'


“뭘 데리고 가야하는데?”


난 카르멘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오빠라는 호칭이 맘에 들어서 물어본 것은 아니다.


‘실험체요.’


소녀는 쿡쿡 웃으며 말했다.


“실험체라니... 나와 같은?”


‘네, 말릭 오빠 같은... 데리고 가야 해요. 다 불쌍한 아이들이니까...’


“... 넌 누구지?”


난 조심스럽게 물었다. 소녀는 여전히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전 카르멘. 실험체였어요.’


“이 연구소는 어린 아이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는 건가?”


‘... 네. 하지만 죽이거나 하지는 않아요... 그저...’


“자원했을거 같지는 않군.”


‘... 그렇죠. 주로 고아들입니다.’


페티마씨가 변명하듯이 말한다. 좋아, 그런 실험체로 희생당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거지? 전부 데리고 도망치겠어.


‘애송아, 지금 네 녀석의 상황을 모르는거냐?’


알지. 도망치는 중이고, 왠지 잡히면 온갖 실험을 위해 산 체로 해부당한다는 것도 알고는 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의 손에 의해 지켜져야 할 존재라는 것이 변하는 건 아니다.


'허접잖은 도덕성이군.'


아마데오가 날 대놓고 매도했지만 카르멘은 꺄르륵 웃었다.


‘와아~ 고마워요~ 분명 아이들도 좋아할 거에요~’


난 몸을 날려 지하로 향하는 계단을 한번에 스무계단쯤 내려갔다. 지금 내 속도는 얼마나 될까? 잘은 몰라도 100미터를 4초정도에 주파하는 것 같은 기분이다. 정말 날아가버릴 정도로 빠르다. 이것이 실험의 결과라는 건가. 나와, 아이들에게 이런 실험을 하다니, 정말 몹쓸 사람들이다.


‘...’


“별로 페티마씨에게 화내고 있는 건 아니에요.”


‘... 예.’


‘힘내요, 페티마.’


‘여자를 울리다니, 몹쓸 녀석이군.’


‘... 별로 우는 건 아니에요.’


‘여자를 못살게 굴다니, 몹쓸 녀석이군.’


‘... 맞아요.’


“에잇! 시끄러! 다음은 어디로 가지, 카르멘?”


‘음~’, 하고 카르멘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길을 알려주었다. 나는 세 개의 문을 부수고 한 개의 문을 연 다음에야 빼곡이 들어찬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 큭... 뭐야, 이렇게 많아?”


‘사 백 명 정도에요.’


‘휴우~ 일개 대대급인걸. 이 아이들도 이녀석처럼 강한가?’


‘아닐 거에요. 아직 실험중인 아이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갇혀있는거니까요. 다만... 전원이 실험을 받았었으니까, 보통의 아이는 아니에요.’


“큭... 제길... 티프소인이라는데 환멸을 느낀다.”


‘... 미안해요.’


“화내는거 아냐. 못살게 구는것도 아냐.”


‘... 알아요.’


난 페티마씨가 울적한 목소리를 내는 것을 무시하고, 아이들을 향해 가급적 밝은 목소리로 외쳤다.


“모두! 여기서 나가자! 아저씨를 따라와! 이 건물에서 나가는 거야!”


열화와 같은 환호성을 기대했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도리어 날 쳐다보는 아이도 거의 없었다. 한 둘의 시선이 잠시 내게 머물렀다가 사라졌다.


“뭐야, 이건.. 어떻게 하지?”


‘제 이름을 대고 따라오라고 해봐요. 절 기억하고 있을 거에요~’


난 크게 숨을 들이쉬고 다시 외쳤다.


“카르멘이 너희를 구하라고 해서 왔다! 날 따라와!”


난 깜작 놀라고 말았다. 외치자 마자 모든 아이들이 날 바라보았다. 그것도 동시에. 호러영화에서 이런 장면이 있었지 아마. 무서울 정도의 싱크로나이즈다. 그들의 표정은 이내 밝아졌다.


“카르멘이?”


“우릴 구하러 왔어.”


“카르멘이 돌아왔어.”


아이들은 우루루 내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그리고 작은 아이가 걸어나와 나의 손을 잡고 코를 들이댔다. 킁킁, 하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냄새라. 담배를 피우는 걸 확인하기 위해 내 학교 선생님이 종종 이랬다는, 아무래도 좋은 기억이 머릿속 한 구석에서 떠올랐다.


“... 카르멘이야. 이 사람은 카르멘이야.”


그 아이가 말하자 모두의 얼굴에 웃음이 퍼졌다. 따지고 싶은 것도, 물어보고 싶은 것도 산처럼 있지만, 시간이라는 것이 전혀 없으니 난 즉시 달려나왔다.


“이제 어디로 가?!”


‘지금 와서 위로 나가는 건 무리겠네요. 지하통로를 따라가죠.’


페티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난 페티마의 지시대로 아이들을 이끌고 지하통로로 향했다. 그리고 통로 입구가 보이는 복도에 이르렀을 때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이미 복귀한 무장 병력이 1개 소대... 그것도 소총과 나이프로 무장을 하고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 여긴 무리야. 다른 길은 없어?”


‘없어요... 이미 다 막혔을 거에요.’


여기까진가... 탈출을 시작한지 15분도 안되어서 끝나버리다니... 영화 속의 침팬지만큼도 못하는구나 나는. 그 침팬지는 말도 타드먼.


‘멍청아. 아직이야. 내가 시키는 대로 해라.’


아마데오가 한심하다는 듯 말했다.


‘싸움은 포기하는 순간 지는거라구.’


아마데오는 왠지 재밌다는 듯이 킬킬대는 것 같다.


작가의말

티프소의 탐사대는 50년 전, 테르센트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군대를 보내 테르센트를 침공했지만, 테르센트는 맞서서 이겨냈습니다. 하지만 세번째 침공에서 테르센트 본토는 티프소에게 철저히 유린당했고, 결국 테르센트는 오팔 협정을 맺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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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 네 개의 영혼, 한 개의 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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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3 +1 15.10.21 165 1 17쪽
13 13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2 15.10.19 192 0 16쪽
12 12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1 15.09.11 145 0 8쪽
11 11화. 그리고 첫번째 싸움 15.08.28 95 1 23쪽
10 10화. 첫번째 교전 15.08.26 117 1 9쪽
9 9화. 새로운 무기를 -2 15.07.22 223 1 13쪽
8 8화. 새로운 무기를 -1 15.05.22 229 1 12쪽
7 7화. 미끼가 사는 방법 -2 15.05.06 148 1 17쪽
6 6화. 미끼가 사는 방법 -1 15.05.06 163 1 20쪽
5 5화. 원조 15.05.01 182 1 16쪽
4 4화. 새로운 가족 15.04.20 258 1 17쪽
3 3화. 정착자와 해적 15.04.20 347 1 22쪽
2 2화. 그리고 출항 15.04.20 191 1 10쪽
» 1화. 네 개의 영혼과 한 개의 몸 15.04.20 225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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