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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네 개의 영혼, 한 개의 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44
최근연재일 :
2015.10.21 00:48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2,685
추천수 :
12
글자수 :
99,741

작성
15.04.20 12:56
조회
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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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2쪽

3화. 정착자와 해적

DUMMY

'물이 흐르는 것과 비슷해요. 하지만 기화되는 양은 유기화학에 의거하여 친핵성 치환반응의 영향을 받아요. 특정 작용기의 반응은 이해하기가 쉬우니까, 케톤처럼 C=O작용기를 포함한 화합물의 반응을 떠올려주세요~'


"..."


내가 할말을 잊고 있는 동안 알시아는 순진한 눈을 깜빡이며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말릭 오빠?'


"에... 어흠. 그래. 그... 물이 흐르는 것과 비슷해... 그... 기화... 되는 머시냐. 의거... 영향을 받는데. 이해하기가 참 어려워서... 알지?"


알시아는 아주 잠시 고운 양 눈 사이에 주름이 잡혔지만,


"응. 알았어, 카르멘."


라고 대답하고 도도도 자신의 책상으로 돌아갔다. 어지럽게 펼쳐진 실험도구들에서 곧 신나게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 멋진 설명이었어요.'


카르멘의 목소리에는 실망감이 가득 담겨있다.


"으... 어쩔수 없었다구. 내가 이해 못하는 내용을 설명하라고 해도..."


'제가 한 말을 그대로 하면 되는 거였는데...'


"미안. 솔직히 카르멘이 뭐라고 했는지도 기억이 안났어."


'다음부터는 더 쉬운 방법으로 설명해볼게요~'


그녀는 진심으로 반성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알아듣게 말하는 거보다 달까지 도보로 왕복하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난 아무튼 과학, 역사, 문학, 수학 등 인간이 학문이라고 부르는 모든 것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래도 달까지 왕복하는 것보다는 공부하는게 쉬울걸.'


아마데오가 지당한 태클을 걸어주었다.


"알고 있지만..."


'힘내요, 말릭씨. 응원할게요.'


페티마가 쿡쿡 웃으며 응원해주었다. 부드러운 응원은 항상 감사하지만, 이 사람들 은근히 자신과 관련없는 일이면 무책임한데다가 농담으로 넘기려는 경향이 있다.


'어머, 분업은 인류 탄생이래 항상 반복되어온 효율적인 노동배분법이에요.'


물론 그렇긴 하지만, 이 경우 나 혼자 짊어져야 하는 양이 굉장히 많은 기분이 드는건 왜일까.


'힘내주세요, 말릭씨. 모두의 영양상태가 말릭씨와 카르멘에게 달려있어요.'


그녀는 어쨌든 상관없다는 듯 밝게 말해주었다.




이곳은 임시로 지은 화학공장. 그녀의 말대로 여기서 포기하면 우린 굶어죽게된다. 주 업무는 '비료만들기'인 것이다.


태양을 기준으로 측정했을 때 -카르멘이 측정법을 알려주었다.- 새로 정착한 이 땅은, 이스턴 아일랜드의 남동쪽이었다. 솔직히 매우 정착하기에 좋은 땅이 아니다. 사막 반 늪 반이었다는 것을 제외하고라도 목재가 적어서 건물을 짓는 것 자체가 어렵다. 하지만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에 아이들이 너무 지쳤고, 식량도 거의 없고, 결정적으로...


'배에 연료가 떨어졌으니 방법이 없네요.'


페티마씨의 말대로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다. 제 아무리 강력한 힘이 있다 해도 증기선을 끌고 헤엄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화석이 그냥 거리에 툭툭 던져져 있는 것도 아니고... 목탄이라도 만들자니 나무가 없고. 이런저런 이유로 우리의 발은 여기에 묶여버린 것이다.


'아무튼 테르센트에는 화석연료가 거의 없으니까요... 게다가 우린 가난하구요. 어차피 이스턴 아일랜드까지는 왔으니까, 이제 정착하면 되는 거랍니다! 우리는 개척자라구요~'


"나무가 없는데 괜찮아?"


'문제없어요~'


카르멘은 환한 표정으로-아마도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은 목소리로- 선언했다.


'벽돌로 집을 짓도록 하죠~!'


그녀는 배에 실려있던 몇가지 화학품을 이용하여 햇빛을 활용해 벽돌을 빚었다. 아이들은 자그마한 손으로 기꺼이 노동력을 제공했으며, 우리는 수십채의 건물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거기에 배를 뜯어내서 필요한 도구를 만들고, 자갈을 모아서 물을 정화하고, 낚시와 그물을 만들고, 섬유를 뽑아내고... 정말 많은 것들이 그녀를 통해 가능했다.


다만 농업만큼은 어떻게 될 기미가 안보여서 이렇게 비료를 만들고 있는 건데...


'종자가 될만한 식물이 그리 많지 않네요. 좀더 멀리까지 탐험해볼까요?'


"그것도 괜찮을지도... 하지만 너무 오래 자리를 비우면 불안해."


실험체가 되었던 영향일까. 아이들은 지나치게 순진했다. 뇌의 일부가 정지된 것이라 해도 맞는 말이 아닐까. 게다가, 이렇게 말하면 어울릴지 모르겠지만, 모두가 "포악"하다.

정확히, 동정심이라는 감정이 없는 것 같다. 설치류와 조류를 사냥하면, 그 순간 그것들은 모두 음식재료로 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봐도 귀여워서 눈이 하트가 될것 같은 작은 생명체들인데, 이 아이들은 목을 비틀고 효과적으로 털을 뽑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도리어 그러는 순간 조금 웃는 걸로도 보인다. 아이라면 작고 털난 생물을 귀여워 해야하는 것 아닐까?



여기에 온지 벌써 몇 주째. 티프소의 추격자들은 오지 않는다. 우리가 어디로 갔는지 정말 모르는 모양. 그래도 매일 경계하며 파수탑을 지어놓고 교대로 바다를 주시하고 있긴 하다.


이 거대한 섬(혹은 작은 대륙)은 무인도가 아니긴 하다. 이미 40년 전, 티프소인들이 이곳에 이주한 기록이 있다고 페티마가 알려주었다.


'그들은 죄수집단이었어요. 티프소 안에서는 불순분자, 정도의 위치에 있었죠. 제법 거물 범죄집단도 있었어요.'


그럼 이 대륙 어딘가에서 그 흉폭한 이들과 자손이 마을을 만들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다 죽었을지도 모르죠~ 자기들끼리 뜯어먹다가~'


확실히 여기는 너무 척박하다. 인육문화가 싹터도 이상할 것이 없을 정도로. 하지만 그 발상은 너무 잔인하다구, 카르멘.


'그러니까, 탐험을 해보면 된다니까.'


아마데오가 투덜거리듯 말했다. 이 노인의 말처럼 직접 가보면 되는 일이긴 하다. 그렇지만 난 두려워 하고 있었다.


이 대륙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들, 나 자신마저도...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던 것이다.


'괜찮아요. 말릭. 제가 보증할게요. 여기 있는 아이들, 그리고 당신은 뭔가 결손되어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매우 착한 사람들이랍니다.'


페티마가 날 달랬다. 그녀의 목소리는 제법 안도감을 주는 힘이 있다.


'... 우... 차별이에요. 제 목소리에는 그런 힘이 없나요?'


별로 없다. 귀엽다는 건 인정하지만.


'꺄아~ 귀엽데요~ 그건, 매력적이라는 뜻인가요? 여자로서 받아들여지고 있는건가요??'


'로리콤이군.'


"아냣!"


하지만 점점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위험이 다가오고 있었다.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적은 이 대륙의 사람들도, 우리 자신도, 나도, 심지어 티프소의 추격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목책위의 감시탑에 올라서 있던 알시아의 목소리가 울린 것은 1028년 1주의 마지막 날.


"카르멘! 배야!"


작업장에서 대패질을 하던 나는 황급히 달려나갔다. 멀리, 테르센트의 대형 범선이 다가오고 있었다.


'저 깃발은 본적이 있지.'


아마데오는 으스대며 말했다.


'저건 해적이다.'



바다 너머로 해가 지고 있다. 석양이 드리워지는 바다 멀리서 다가오는 겔리온 급 범선은 위풍당당한 편은 아니다. 배라 부르기엔 여기저기 구멍이 너무 뚫려있었고, 마스트도 기울어져 있었으며, 바람을 받아 오는 것 치고는 굉장히 느렸다. 잘 보면 돛도 너덜너덜하다. 악어가 물어뜯은것 같은 해적기만이 외롭게 펄럭이고 있다.


'곧 침몰할것 같네요.'


페티마씨가 차마 못한 말을 대신 해주었다.


'와아~ 그래도 해적이네요~ 전 처음봐요~ 한손이 갈고리로 되어있는 시계를 무서워하는 해적을 책에서 본적이 있었는데~ 말릭오빠, 좀 더 가까이에서 보면 안될까요?'


카르멘은 신났다. 하지만 그래도 해적은 해적인데, 엄청 위험한 상황 아닐까? 급히 마을을 만든다고 만들었지만, 어쨌든 우리 도시에는 어른이라곤 나밖에 없다. 가장 나이가 많은 건 알시아 정도인데, 그 알시아도 기본 멍한 속성이니 의지가 될리 만무하다. 참고로 그녀는 내 옆에서서 멀리서 다가오는 해적과 날 번갈아보다가 눈이 마주치자 귀엽게 생긋 웃었다. 귀엽긴 하지만 이 상황을 전혀 이해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서 솔직히 안쓰럽기도 하다.


전력이 이러하니 싸우는걸 피하는게 최선일것 같다. 상대는 무기를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즉시 아이들을 모아서 피난을 가야만...


'이렇게 일찍 전쟁이 벌어질 줄 몰랐는 걸. 후후, 이거 이럴 줄 알았으면 무기부터 만드는건데.'


"잠깐, 아마데오. 싸울 생각이야? 여기서 싸울 수 있는 건 나뿐이라구."


즐기려는 듯한 그를 말려보았지만 내 몸 속에 내 편은 없었다.


'염려말아요, 말릭씨. 말릭씨 혼자서도 이길 수 있어요.'


'이 아이들은 보통 아이가 아니라니깐요~ 분명 잘 싸울 수 있어요~'


'이 아이들은 병사로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해줄 것이다. 그러니 염려말고 내 작전대로 움직여.'


"... 하긴... 도망칠 수도 없나."


이 마을을 만드는데 우리가 흘린 땀과 정성은 크다. 해적이 약탈하게 둘 수야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철저하게 이겨주겠어!


'믿음직스럽네요, 말릭씨.'


'멋져요~ 오빠때문에 두근두근거려요~'


'작전을 설명하지, 애송이.'


아마데오는 매우 상세하게 내가 해야할 일을 말해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말하는 대로 상대가 움직여 줄지 모르겠고, 우리 애들이 그 정도의 작전수행력이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누구에게 물어야 할지도 잘 모르겠고, 물어도 대답해줄 것 같지도 않으며, 설령 대답해줘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얌전히 따르기로 했다.




난 수풀 속에서 가만히 기다리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범선은 마을에서 100피야메세정도 떨어진 곳까지 꾸역꾸역 밀고 들어오고 있다. 이미 해는 거의다 져서 앞뒤를 구분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저 지경이니 배가 저 모양이죠. 바보네요~'


카르멘이 꺄르륵 웃었다.


'험한 항해네요. 이 근처는 암초도 많은데.'


페티마씨는 걱정해주고 있다. 하지만 저 녀석들을 걱정할 여유가 없다. 솔직히 먼저 공격하는 것도 내키지 않다. 만약 저들이 식량과 물 정도만 부탁하면 주라고 알시아에게 말해두었지만...


'해적기를 걸고 그런 걸 부탁하겠냐. 당연히 약탈해가겠지. 덤비면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리면 그만인거야.'


인도적인 의견을 말하는 아마데오. 전생(?)에 어땠길래 이런 삐뚤어진 어른이 된걸까.


'아, 누가 나와요.'


범선 앞머리로 낡아떨어진 금색과 붉은 색의 제복을 입은 사람이 걸어나왔다. 거대한 해적모가 참 인상적이다. 게다가 한 팔은 갈고리다. 모 동화책에서 당장이라도 튀어나온 것 같다.


'저도 봤어요~ 재밌었는데 엔딩이 재미없었어요~'


'하지만 참신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해요. 저도 원더랜드에 가보고 싶어요.'


이 아가씨들은 언제나 태평하다. 어느 쪽이냐고 하면, 내가 조종사고 이 사람들은 훈육교관같은 기분이다. 혹은 구경꾼이나.


'아. 이왕이면 조언자로 해주세요~ 저 도움 많이 되잖아요? 그렇죠?'


확실히 카르멘은 뛰어난 조언자이다. 내가 머리가 나쁘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엄청난 정보를 전해준다.


'... 저는요?'


페티마씨는... 으음... 마음을 안정시켜준다고 해야하나.


'역시 저에 대해서는 고민하시는군요. 대답도 왠지 마지못해서 하는 것 같고. 저도 조언자하고 싶은데.'


'꺄~ 너무해요~ 그럴땐 넌 나의 정렬을 바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야~ 라고 해야하지 않나요~?'


우리가 이렇게 수다를 떨고 있는 사이 알시아가 십 여 명의 아이들과 함께 해안으로 걸어나왔다.


범선의 선두상에 멋지게 올라선 해적은 크게 외쳤다.


"나는 그 유명한 해적왕 담담 무스탕님이시다!"


유명한 사람인가? 들어본 적 없다.


'저도요.'


'알게 뭐야.'


'꺄하하하하! 이름이 담담 무스탕이래요~! 아하하하하!'


아마 아무도 못들어본 것 같다.


"들어본 적 없어."


게다가 알시아도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해적왕이라 자칭한 사내는 심히 자존심이 상한 것 같았다. 그는 그의 갈고리 손을 마구 위협적으로 흔들어댔다.


"너같은 어린애는 필요없다! 이 마을의 대표를 불러라!"


"내가 이 마을의 대표야. 알시아라고 해."


"뭣이?!"


해적왕은 뒤에 정렬한 부하들과 뭔가를 상의하는 것 같다. 아무리 내 청력이 강력해졌다고 하지만 저 정도 목소리는 드문드문 들릴 뿐이다. 정말인가? 어린애의 마을인가? 우린 그럼 저 애들을 상대로 협박을 해야하는건가? 등의 진지한 고민이 바람을 타고 전해져온다.


'의외로 좋은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네요.'


페티마씨가 한가로운 의견을 낸다. 하지만 잠시 후,


"좋아! 꼬맹이 알시아! 난 해적왕 담담 무스탕이다!"


"아까 들었어."


"네 녀석의 목을 꼬챙이에 걸어버리기 전에 이 마을의 모든 돈과 여자와 식량과 물과 술을 가져와라!"


"... ..."


알시아는 조금 곤란해하고 있다. 식량과 물을 요구하면 내주라는 내 말때문인가.


"식량과 물은 줄 수 있지만, 다른 건 곤란해."


해적들은 다시한번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또 바람을 타고 회의내용이 드문드문 전해져온다. 식량과 물이면 충분한 거 아냐? 당장 굶어죽겠다구요 선장, 목도 말라요 선장, 어차피 애들만 있는 마을인데 털어갈것도 없잖아. 거짓말일지도 몰라. 어른들이 비겁하게도 아이들을 내세운거지. 그게 그럴싸한데. 그럼 저 애한테 일단 마을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한다음 샅샅히 뒤져보자구.


불온한 회의를 끝낸 해적왕은 고개를 내밀고 큭큭 웃었다.


"좋아, 그걸로 받아들이지. 우리가 배에서 내려서 거기로 갈테니 물과 식량을 다오."


"좋아."


알시아는 너무 순진하다. 아무리 봐도 저건 모략이잖아. 바보인 나도 알 정도인데...


'아까 누구씨가 시키는대로 하는거잖아, 멍청한 놈. 할수 없다. 작전대로 밀어붙이자.'


확실히 이 뒤는 없다. 작전대로 녀석들을 쫓아내자.


"알시아!"


나는 수풀에서 일어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불을 붙여!"


나의 외침에 알시아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손을 들었다. 배의 위치는 실로 절묘. 아마데오가 예측한 곳이다. 그의 말에 의하면 해적 입장에서는 쉽게 포격을 하기 위해 배를 측면으로 세워야 한다고 한다. 대포의 사정거리, 그리고 상륙을 예상한 위치는 바로 저곳. 처음부터 전투병을 앞세우면 그들은 가장 먼저 마을을 향해 대포를 쏴댈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작전은 저들을 방심하게 하고, 그 사이에 양 측면으로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병력을 보내는 것.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병력이 어딨어?"


'있어.'/'그게말이죠~ 있다구요~'


나의 질문에 아마데오와 카르멘은 동시에 대답했다. 화학실에서 만들던 비료는 아주 간단하게 폭발물이 되어준다는 것이다. 그것을 미리 만들어둔 파이프에 넣고 포탄 대용품을 넣기만하면 오케이.


"... 한마디로 이건..."


'대포네요.'


페티마씨도 감동한 듯 말했던 것이다.




해적선을 향해 강렬한 포격이 날아들었다. 쾅쾅쾅! 하는 요란한 폭음과 함께, 포탄이라고 쓰고 잡동사니라고 읽는 것들이 해적선이 쏟아져내렸다.


"... 근데 정말 잡동사니네."


'아무래도 포탄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제련된 철은 비싸다구요~'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유리조각과 돌가루를 날리면 효과가 있을까?


'최소한 놈들이 당황하긴 하겠지. 그 뒤는 네 차례다.'


아마데오는 큭큭 웃었다. 뭐, 알고 있다. 그래서 내가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거니까. 그럼...


'가라!'


아마데오는 탑승식 거대로봇의 열혈 조종자처럼 외쳤다. 불평할 거리는 없다. 크게 다를 건 없고.


"에이잇!"


난 있는 힘껏 몸을 날렸다. 절벽 위에서 해적선까지의 거리는 거의 50미터. 당연히 보통 사람이면 닿을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난 보통 사람이 아니다.


'말릭씨, 너무 힘을 많이 쓰면 배 뒤로 날아가버릴거에요.'


'그럼 다시 수영해서 돌아와야겠네요~'


두사람들은 그 와중에도 조언자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정도 거리실패는 하지 않는다. 이 강화된 몸-페티마씨는 영혼을 강화했다고 했지만 솔직히 이해불능이다-에 익숙해지기 위해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자의적인 훈련이라기보다 아마데오의 강압적 훈육이었지만.


쏟아지는 먼지구름사이에서 당황하고 있는 해적들. 난 정확히 그 한복판에 착지했다. 빠직, 하고 낡은 해적선의 갑판에 금이가는 소리가 들렸다.


"너... 너는...! 어디서 나타난거지?!"


난 당황하는 해적왕인지 뭔지를 향해 씨익 웃었다. 이들은 분명 이런저런 무기를 쓰는 해적이지만, 난 이런 녀석들에게 질것같지 않다.


"그렇군! 아까 그 꼬맹이 알시아의 부하인가!"


어째서 그런 위치가 되어있지? 설마 이 녀석...


'바보네요.'


'바보다~ 꺄르르~'


'멍청한 건 너와 비슷한 수준이군.'


아무리 나라도 이런 정도의 바보와 비교당하면 좀 씁쓸하다.


"아니. 부하는 아니야. 일단, 덤벼줄래? 정당방위로 하고 싶다구. 나도 인간인지라, 먼저 죽이는 건 선뜻 내키지가 않아."


차분한 말투로 설득했지만 해적들은 바짝 긴장해서는 덤빌 생각을 못한다. 뭐야 이 놈들은. 엄청 겁쟁이잖아?


'먼저 날려버려. 대장을 죽이면 싸움은 끝난다.'


"싫어. 별로 죽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구."


지난 번 싸움에서 알았다. 난 아무 죄책감없이 사람을 죽인 것이다. 원래 성격이 그랬을지도 모르고, 실험의 결과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감각은 사양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강화되었잖아. 안죽는다고."


'흠... 넌 생각보다 바보구나.'


"... 응?"


탕!


등뒤에서 화약이 폭발하는 소리가 들렸다. 머스킷이 불을 뿜었다. 그리고 등이 크게 흔들렸다. 풀썩 무릎이 꺾였다.


'말릭씨! 괜찮아요?'


'어깨를 당했어요. 뼈까지 다쳤어요.'


"... 어?"


나, 강화된 것 아니었어? 이렇게 맞아도 안아프다던가, 즉시 낫는다던가...


'역시 바보로군. 너, 이러다간 죽어.'


"뭐야, 이놈! 별거 아니잖아! 죽여버려라!"


해적왕이 기세좋게 외쳤다. 그의 부하이 욕설을 퍼부으며 달려들었다.


'넌 강화된 게 아니라, 원래부터 엄청난 육체적 축복을 갖고 태어난, 보통의 인간이다. 강화된건 영혼뿐이야. 네 몸을 최대한 잘 쓰는 법을 알게 된거지.'


아마데오는 차분히, 왠지 어른스러운 말투로 설명해주었다.


'그러니 싸워라. 말릭, 네가 죽으면 네가 데려온 저 모든 아이들도 죽는다.'


난 머리위로 떨어지는 대검을 주먹으로 쳐냈다. 죽는다는 걸 알자마자 공포를 느꼈다. 몸이 무겁다.


'출혈이 심해요. 당장 응급처치를 해야해요.'


카르멘의 목소리가 웅웅 울린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야하지?


'왼쪽으로 몸을 날려!'


아마데오의 외침은 매우 컸다. 그 목소리를 쫓아 난 몸을 날렸다. 머스킷의 총성이 몇 발 울린 것은 바로 그 때였다.


'몸을 숙여, 얼간아!'


아마데오의 말은 반사적으로 날 움직이게 한다. 이마를 노렸던 단검이 마스트에 박혔다.


'이제, 싸워라! 죽고 싶지 않다면!'


그래. 죽고 싶지는 않아. 그렇다면, 난...


"싸울 수 밖에 없잖아! 제기이일!"


나의 주먹이 방금 단검을 던진 우락부락한 해적의 이마를 쳤다. 그의 몸이 부웅 날아가 바다로 떨어졌다. 오른쪽 어깨가 징징 울린다.


'등 뒤!'


난 앞으로 몸을 날려 뒤에서부터 찔러오는 검을 피했다. 동시에 내 앞에 있던 해적 둘을 동시에 잡아 바다로 집어던졌다. 그들은 거의 10미터를 날아갔다.


"뭐, 뭐냐! 이놈은!"


해적왕 담담 무스탕의 목소리가 울렸다. 해적들은 급격히 당황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연구소 지하의 재연일 뿐이다. 난 집중했다. 놈들의 움직임을 피하고, 상황에 따라 주먹을 내지르거나 놈들을 바다로 던졌다. 해적들은 급속히 전투의지를 잃어갔다.


'공포를 새겨주면 돼. 이런 얼뜨기들은 그것만으로 싸우는 법을 잊는다.'


아마데오는 왠지 웃고 있는 것 같았다.


"큭.. 대포! 대포를 쏴라! 이놈을 날려버려라!"


해적왕이 갑자기 굉장한 소릴 했다. 여긴 배 위인데?


'흠.. 드디어 제정신을 잃었군.'


게다가 그 명령대로 사방의 외부대포가 억지로 꺾여서 날 노리기 시작했다.


"쏴라! 쏴라! 쏴버려라!"


'피해라, 애송아!'


이미 알고 있다. 아마데오가 말하기 전에 난 바다로 뛰어들고 있었다.


콰앙! 하고 거대한 폭음이 등뒤에서 울렸다. 그리고 멋진 불꽃이 하늘을 수놓았다.


'화약고에 불붙었네요. 아하하~'


카르멘이 즐겁게 웃었다. 불꽃속에서 해적선은 황급히 노를 꺼냈고, 이 지옥과 같은 바다에서 멀어져갔다. 도망쳐라! 지금이다! 불이 붙었는댑쇼! 빨리 노나 저어 멍청아! 등의 목소리를 바닷속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오른 팔이 매우 아프다. 게다가 파도때문에 멀미가 난다. 그리고 내가 의식을 잃기전에 누군가가 날 물 속에서 안아 들어주었다.


"카르멘. 괜찮아?"


알시아의 목소리는 평소와 달리 매우 걱정스러웠다. 다른 아이들도 모두 바닷가로 모여들고 있었다. 아이들은 모두 당황해하고 있었다.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던 이들이지만, 날 위해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유쾌한 기분도 들었다. 누군가가 걱정해준다는 것은 생각보다 기분 좋은 일이다.


'바보같은 사람.'


페티마씨가 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매도해주자 난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갑자기 잠이 쏟아졌다.


'긴장하다가 갑자기 정신을 놔버리면 어쩌냐, 멍청이. 그럼 당연히 기절하지.'


'역시 페티마씨는 말릭 오빠의 마음을 안정시켜주는군요~!'


아마데오의 칼칼한 목소리를 배경으로 카르멘이 까불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난 수마에 굴복했다. 좋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라든가 별 의미없는 생각을 했던 추억이 남았다.


작가의말

이스턴 아일랜드는 정확히 적도에 걸쳐있으며, 계절변화가 없습니다. 사막, 정글, 늪으로 만들어진 이 땅에 테르센트인은 살지 않았기 때문에, 오팔협정에 의거하여 티프소인들의 정착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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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 네 개의 영혼, 한 개의 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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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14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3 +1 15.10.21 165 1 17쪽
13 13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2 15.10.19 192 0 16쪽
12 12화. 하이데바라드를 점령하는 가장 쉬운 방법 -1 15.09.11 145 0 8쪽
11 11화. 그리고 첫번째 싸움 15.08.28 95 1 23쪽
10 10화. 첫번째 교전 15.08.26 118 1 9쪽
9 9화. 새로운 무기를 -2 15.07.22 224 1 13쪽
8 8화. 새로운 무기를 -1 15.05.22 229 1 12쪽
7 7화. 미끼가 사는 방법 -2 15.05.06 149 1 17쪽
6 6화. 미끼가 사는 방법 -1 15.05.06 163 1 20쪽
5 5화. 원조 15.05.01 182 1 16쪽
4 4화. 새로운 가족 15.04.20 258 1 17쪽
» 3화. 정착자와 해적 15.04.20 348 1 22쪽
2 2화. 그리고 출항 15.04.20 192 1 10쪽
1 1화. 네 개의 영혼과 한 개의 몸 15.04.20 226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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