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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붉은 거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32
최근연재일 :
2016.01.18 02:0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5,719
추천수 :
37
글자수 :
143,055

작성
15.10.1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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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8화. 선지자

DUMMY

호운타 기사단을 돕기 위해 서둘러 출진한 피아조상단이 퀼레팔라 요새에서 하루 거리에 이르러 야영을 하는 중에, 갑작스런 긴급회의가 소집되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기 때문에, 이 뜬금없는 호출은 상단원들의 불평을 유발했다. 잠이 덜 깬 아미가 융통성없는 예리엘을 잠꼬대로 욕하며 들어오는 것으로 소집한지 10분만에 모든 지휘관이 모였다.


"아미씨. 회의 시작하기 전에 미리 말하지만..."


예리엘은 무거운 눈꺼풀을 억지로 밀어올리며 아미의 불평을 맥없는 목소리로 받았다.


"내가 소집한 게 아니라구. 나도 졸려 죽겠어."


"그럼 누가 모이게 했는데요?"


아미가 입을 삐죽 내밀며 묻자 예리엘이 고자질하는 어린애처럼 옆자리의 거인을 휙, 하고 가리켰다. 이 회의 자체에 불만이 있던 모든 상단원들의 시선이 한번에 모였다. 하지만 곧 회의장은 웅성거림이 뒤따랐다. 그곳에 앉아있는 상단장은 평소의 무표정하고 멍한 표정 대신에 침통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있었기 때문이다.


회의장에 모두가 모인 뒤에도 한참동안이나 침묵을 지키던 게랄드가 마침내 꺼낸 말은, "호운타 기사단이 패했어."였다.


"호운타 기사단이? 이렇게 빨리?"


예리엘이 깜짝 놀라 외쳤다.


"우리가 갈때까지 버티는 작전 아니었어? 호운타 기사단은 상당한 전략을 구사했으니까... 충분히 버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패주한거야? 다들 무사하긴 한거지?"


예리엘의 희망적인 관측에 게랄드는 무겁게 고개를 저었다.


"전멸이야. 생존자는 없어. 모두 죽었어."


현실성이 없는 그의 말에 어리둥절하여 아미가 한 손을 들며 "혹시 농담하시는 건가요?"라고 물었지만 게랄드는 다시 한 번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회의실은 침묵과 경악에 잠식되어갔다. 호운타 기사단은 바로 몇 주전에 피아조 상단과 만나서 함께 술자리까지 벌였던 참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작전을 다시 세워야겠어요."라고 레인이 정신을 차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떻게 패했는지 그 과정도 알고 계시는 건가요?"


"솔직히 이번엔 좀 위험할지도 몰라."


게랄드는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요새가 마법에 의해 불탔는데, 보통 마법이 아닌 것 같아."


아리스토틀은 투덕투덕한 턱을 문지르며 "소문은 사실이었나."라고 중얼거렸다.


"어떤 소문요?"


마렌이 묻자 아리스토틀은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알리시아 영지에 마법사가 있고, 그 마법사가 상당한 수준이라는..."


"거기에 대해서 드릴 말씀이 있어요."


레인은 작게 헛기침을 한 다음, "전 알리시아 영지의 전 영주의 장녀입니다."라고 조심스럽게 선언했다.


"알고 있었어."


예리엘이 즉답했다.


"2년 전에 처음 왔을 때부터 알고 있었지요."


마렌도 거들었다.


"모르는 사람도 있었나?"


아리스토틀이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호우크의 곁에서 눈치를 살피고 있던 라라가 얼른 손을 들었다.


"우린 몰랐어요. 어째서 알리시아 영지의 차기 영주께서 상단에서 일하고 계신거죠?"


레인은 힘없이 "제가 영지를 떠난 이유는, 바로 그 마법사 때문이에요."라고 말했다.


"마법사는 스스로 마후라나라고 칭하고 있습니다."


"마후라나? 그 마후라나?"


예리엘이 고개를 갸웃하자 아리스토틀이 두 손을 휘저었다.


"설마, 진짜 마후라나일리 없지요. 마후라나가 인간들이 싸우는데 끼어들리가..."


레인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녀는 정말 보통 마법사가 아니었어요. 게다가 무척 아름다웠죠. 마치 인간이 아닌 것처럼..."


"예리엘만 할까."


게랄드는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운 좋게도 귀가 밝은 사람만 모여있던 회의실에는 "... 우와, 엄청난 발언인데."라든가, "우리 상단장님 눈에 뭐가 낀거 아니야?"라든가, "콩깍지 같은거?"라든가, "저런 팔불출 대사를 아무런 부끄럼없이 하다니, 어떤 의미로는 존경스럽기까지 하다."라는 비난이 조곤조곤 퍼져나갔다.


"그녀는 도시에 마력을 이용한 건축물을 세우고, 사람들을 끌어모으기 시작했어요. 분명 도시는 발전했지만... 평화롭던 알리시아 영지는 그 전의 모습을 잃고 말았죠. 전 그 당시의 영주였던 아버지께 그녀에 대해 경고하다가 도시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레인이 말을 마치자 예리엘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럼 우리가 지금부터 싸워야 할 상대는 레인씨의 고향군대네. 아는 사람이 전장에 나오면 역시 싸우기 힘들지 않아?"


"잘 모르겠어요. 알리시아 영지는 애초에 점령전이 가능할 정도로 강한 군대가 없어요. 지금 전장에 나와 싸우고 있는 이들은 용병이거나... 아니면..."


"아니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지만... 괴물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엥? 괴물?"


예리엘이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묻자 레인은 "소문일 뿐이지만요."라고 대답했다.


"괴물이라니, 그거 농담같은거에요? 괴물처럼 강하다던가요."


잠은 이미 예전에 다 날아가버린 아미가 "우리 상단장님을 말하는 건가?"하고 끼어들었다. 마렌은 끄덕이며 "좋아, 그거 좋네. 괴물 대 괴물이라면 우리쪽 괴물이 이기지."라고 이야기를 받았다. 하지만 그런 농담에도 분위기는 밝아지지 않았다. 친분이 있던 호운타 기사단의 패배, 전력을 알수 없는 적의 소문, 거기에 입을 꾹 다물고 생각에 빠진 게랄드는 모두 긍정적인 면이 없었다.


"게랄드, 왜 그래?"


게랄드의 평소와 다른 모습에 불안해하던 예리엘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자 게랄드는 결심한 것처럼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새로운 무기가 필요해."


피아조 상단원들은 이 의외의 발언에 전원 입을 열어 한마디씩 내뱉었다.


"저, 제 기억이 맞다면 상단장님은 아무거나 휘둘러도 다 최고의 효과를 뽑아내시던 것 같은데요."라고 아미가 말했다.


"창, 검, 방패, 미늘창... 양손검이나 투창은 물론 마차바퀴도 휘두르지."라며 아리스토틀은 혀를 내둘렀다.


"아, 난 죽은 말의 다리를 휘두르는 것도 봤어요."라고 말한 것은 라라였다.


"그냥 아무거나 줘도 싸울 수 있는거 아냐? 나무젓가락으로 100명 베기를 한다던가?"라며 마렌이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말했다.


"이번에는 달라. 제대로 된 무기가 필요해."


게랄드의 진지한 목소리에 예리엘이 고개를 갸웃갸웃하다가 "무슨 무기?"라고 물었다.


"마법을 격파할 수 있는 무기."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어제 밤에 어떤 남자가 말해줬어. 다음 전투를 위해서 반드시 마력을 깨뜨릴 수 있는 무기가 필요할 거라고. 은으로 만든 무기가 효과적이라고 했어."


예리엘이 버럭 소리쳤다.


"은? 은으로 무기를 만들라고?! 그 비싼 은으로???"


"예리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거야."


아미가 동그란 눈을 깜빡이다가 "얼마나 만들어야 하는데요?"라고 조심스레 물자, "사람 수만큼."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곧 이어,


"안 돼!"


라는 외침이 이어졌다.


"왜 갑자기 그러는거야? 애초에 그 남자가 누군데?"


예리엘이 모두가 궁금해하던 것을 호쾌하게 물어보자 게랄드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이야."라고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대답을 내놓았다.


"그는 호운타 기사단이 멸망했다는 것을 알려줬어. 앞으로 어떻게 되는지도... 처음에는 믿을 수 없었지만... 그는 정말로 미래를 알고 있었어."


"어떤 사람이었는데? 이름은? 성은? 나이는? 신발 사이즈는!"


예리엘는 이제 아예 화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게랄드는 완고하게 "우리 역시 이대로 싸우면 멸망하게 돼."라고 중얼거릴 뿐이었다.


"은으로 만든 무기는 적들에게 최소한의 타격을 줄 수 있다고 했어. 우리쪽에는마법사는 아예 없으니까. 효과면에서는 마법 부여가 된 무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런 것은 구할 수 없어."


"에잇! 잠깐 따라와봐!"


예리엘은 그대로 벌떡 일어나 게랄드의 팔을 잡고 회의장 밖으로 끌고 나갔다. 순순히 따라나가는 게랄드의 뒷모습을 보며 상단원들은 각각 한마디씩 내뱉었다.


"상단장님의 의견대로 은제 무기를 만드는 것을 생각해보자면..."


"사람수만큼 만들기에는 은이 모자라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은화가 얼마나 되죠?"


"금화를 은화로 바꾸면 될 것 같기도 한데... 호운타로 가서 거래를 해볼까요?"


"애초에, 은으로 무기를 만들면 너무 약할 것 같은데?"


"은으로 도금을 하면 되지 않아요?"


"그것도 괜찮을지도."





예리엘은 회의장 밖으로 나가자마자 게랄드를 올려다보며 "그 남자가 그거 말고 또 무슨 말을 했어?"라고 물었다.


"응?"


"미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했지?"


"응."


"그리고 그 미래가 믿을 만하니까 게랄드가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거잖아."


"... 응."


"그럼 나에게도 알려줘. 도대체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길래 상단의 재산의 반을 날려먹을 만한 무기를 만들려는거야?"


"음..."


애초부터 그는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말라는 언급을 했었다. 그렇지만 그렇게는 예리엘을 납득시킬 수 없을 것이다. 게랄드는 열심히 거짓말을 생각해보았지만, 예리엘이 도끼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럴싸한 변명이 생각나지 않았다. 결국 그는 "그 사람이 말하지 말랬어."라고 한숨을 섞어 진실을 꺼내놓았다.


"그게 뭐야!"


"화내는 건 이해하지만... 사정이 있어보였어."


"무슨 사정!"


"그건 잘 모르겠지만..."


"모르면서 모르는 사람은 막 믿지마!"


예리엘이 꽥꽥 소리치는 동안 게랄드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예리엘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자고 있다. 잠든 그녀의 뺨을 살짝 간지럽히자 그녀는 뭔가 중얼거리며 인상을 찡그리고 다시 쌔근쌔근 숨소리를 냈다. 게랄드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방을 나섰다. 그가 밖으로 나서서 문단속을 마치는 순간에 바로 그의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게랄드 피아조, 당신에게 전할 말이 있습니다."


게랄드는 이 목소리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사람의 기척을 읽는 것에는 누구보다 자신이 있었다. 문을 닫는 그 순간까지, 겨우 자신과 2미터 떨어진 곳의 어둠 속에 그가 서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은 단순히 깜짝 놀랐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암살자인가?'


은발의 머리칼을 가진 청년을 보며 그는 가장 먼저 그렇게 생각했지만 곧 생각을 바꾸었다. 그의 목숨을 노린 암살자라면 말을 걸기 전에 단검이라도 휘둘렀을것이다. 거기에-어둠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그는 희미하게 미소짓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지금은 검술 연습을 하러 나가는 중이군요."


그는 나직한 목소리로, 마치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게 하려는 듯이 그렇게 나직히 말했다.


"절 알고 있습니까?"라고 게랄드는 물었다. 그는 이상한 빛을 띄는 팔찌를 차고 있었고 얇은 망토를 걸치고 있었는데, 온통 검은색이었다.


'기척이 너무나 옅다.'


아니, 아예 살아있는 것같지도 않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다.


"전 나덜론이라고 합니다. 당신에게 미래를 알려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그는 조용히, 하지만 또렷하게 그렇게 말했다.


작가의말

알피엑시 대륙에서는 모다스 영지의 화폐개혁 이후 지폐가 사용됩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쓰이던 은화는 여전히 주요한 교환 수단입니다. 사실 몇몇 노인들은 “종이가 무슨 돈이야!”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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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 붉은 거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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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3 16.01.18 213 1 12쪽
22 21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2 16.01.14 126 0 19쪽
21 20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1 16.01.14 212 0 8쪽
20 19화. 전야 16.01.14 238 0 10쪽
» 18화. 선지자 15.10.16 204 0 12쪽
18 17화. 알리시아 영지의 마녀 15.08.21 273 1 13쪽
17 16화. 마후라나 15.08.17 281 1 14쪽
16 언젠가의 이야기 15.08.12 220 2 22쪽
15 15화. 해피엔딩 15.07.22 200 2 12쪽
14 14화. 검과 탄환 15.07.20 250 1 11쪽
13 13화. 게랄드의 함정 15.07.16 276 3 9쪽
12 12화. 볼페레 15.07.15 340 2 9쪽
11 11화. 고집불통의 두 사람 15.06.29 241 3 12쪽
10 10화. 스스하 수비전 -2 15.06.22 264 2 22쪽
9 9화. 게랄드의 교섭, 그리고 동맹 15.06.17 222 3 7쪽
8 8화. 스스하 수비전 -1 15.06.01 257 2 7쪽
7 7화. 광마 도적단 15.05.08 254 2 28쪽
6 6화. 파키스 공략전 15.04.27 277 2 16쪽
5 5장. 후퇴 15.04.24 247 2 12쪽
4 4화. 복수만을 위하여 15.04.20 245 2 8쪽
3 3화. 나보 수비전 15.04.20 267 3 23쪽
2 2화. 소녀와 소년 15.04.20 311 1 8쪽
1 1화. 게랄드와 예리엘 15.04.20 302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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