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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붉은 거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32
최근연재일 :
2016.01.18 02:0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5,716
추천수 :
37
글자수 :
143,055

작성
15.07.16 2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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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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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3화. 게랄드의 함정

DUMMY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노예 상인들의 거대한 손.


우악스런 남자의 손은 그의 머리칼을 뜯어버릴 기세로 잡아당겼다. 그는 모래바닥에서 질질 끌려다녔다. 모래의 맛이 입안을 가득히 채울 때 쯤에는 피부가 찢어지고 피멍이 들었다. 배를 맞고 토해서 오물투성이가 되기도 했다. 노예상인들은 그런 그를 보고 왁자지껄 웃었다. 눈에 들어온 두 동생과 어머니는 소리도 못내고 울고 있었다. 그도 따라 울었다.


자신의 처지가 한스러워서인지, 찢어진 피부의 고통 때문인지, 사랑하는 사람이 슬퍼해서인지... 지금 와서는 알 수가 없고, 지금 와서는 상관도 없다.


그를 때리는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있었다. 사흘에 한 번씩 술에 취해서 인피던을 찾아와 안면에 주먹을 날리는 아저씨는 티프소인들이 테르센트인들에게 했던 고통을 되갚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팔이 기이한 각도로 꺾여있었다. 해트해프 나이프라는 것에 신경이 잘려나갔다고 한다.


그 남자는 "네가 티프소인인 것을 원망해라."라고 말하곤 했다. 그래서 인피던은 팔이 부러지기도 하고, 늑골이 금이 가기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말 이외에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티프소인이었던 어머니는 항상 기침을 했다. 노예상인은 그런 어머니를 돼지새끼라 불렀다.


그가 10살이 되던 해의 어느 겨울날, 어머니는 그를 끌어안고 속삭였다.


"인피던, 너는 이렇게 살면 안돼. 동생들을 데리고 도망치거라."


인피던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다던가,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머니는 무리하게 그와 두 동생을 내보냈지만, 아이들은 어머니의 곁으로 다시 돌아왔고, 어머니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얻어맞고 엄지 손가락이 잘렸다. 상처는 나았지만 손가락이 다시 자랄리 없다. 처참한 절단면을 볼 때마다 그는 이를 갈았다.


얼마지나지 않아 고기를 구울 때 쓰는 긴 쇠막대 하나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 했을 때 상인은 그의 머리를 쥐어박고 욕설 몇마디를 퍼부었을 뿐, 심한 짓을 하지 않았다. 그 주에 제법 큰 거래를 몇건이나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그의 어머니가 한손을 내밀고 슬피 울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그는 쇠막대를 갈았다. 날카롭게, 더욱 날카롭게. 4주가 지난 날, 그의 어머니가 죽던 바로 그날에 그는 그 막대로 어른들을 찔러댔다.


자세히 기억나지 않는다. 머릿속은 하얗게 되고, 피의 냄새만이 강렬하게 남아있다. 어머니의 잘린 손가락을 떠올리며 그는 몇 번이고 상인의 배를 찔렀다. 하복부가 달아올랐다. 그토록 원하던 행위를 하고 있는 것에 쾌감을 느꼈다. 동생들은 어깨를 떨며 그를 겨우겨우 바라보고 있었다. 자신의 귀기어린 웃음소리는 피냄새와 함께 또렷히 기억나는 것 중 하나였다.




"형님. 이쯤에서 멈춥시다."


인피던은 눈을 깜빡였다. 말 위에서 잠깐 잠들었던 것일까. 그는 말을 건 그의 동생을 힐끔 바라보았다. 켄베트로는 볼맨목소리로 말했다.


"벌써 밤이 깊었는데, 앞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지 않습니까. 병사들도 다 지쳐있고... 적은 아까 도망친 이후로 꼬빼기도 안보입니다."


"그래."


그는 짧막하게 대답하고 앞서 말에서 내렸다. 병사들은 좋아라하고 그를 쫓아 말에서 내리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인피던은 그들을 훑어보았다. 근처에서 항복한 도적들이나 상단용병들은 지난 전투에서 대부분 도망쳐버렸다.


남은 것은 어릴 때부터 그를 따라온 티프소인들. 대부분이 티프소 노예들이었다. 테르센트인들에게 괴롭힘 당하는 노예들을 만날 때마다 그는 노예의 손에 총을 쥐어주고 말했다.


"넌 너의 손으로 자유를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그때부터 죽을 때까지 날 쫓아올 자격을 얻는 거다."


몇몇 노예들은 방아쇠를 당기고 그에게 충성을 맹세했지만, 몇몇 노예들은 총을 버렸다. 인피던은 그들을 탓하는 대신 따뜻하게 말해주었다.


"너희는 용기가 없지만 그건 너희의 잘못이 아니다. 테르센트인들이 너희를 그렇게 만든거다."


그리고 그 총을 대신 들고 방아쇠를 당겨주었다. 노예상인을 향해서 한 번, 노예를 향해서 한 번.


"어차피 살아있어봐야 너희는 다시 고통을 겪을 뿐이야. 그렇다면 이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겠지. 저항을 하지 않을 거라면 죽음만이 남는다."


인피던을 따르는 사람은 늘어갔다. 그들은 저항을 포기하지 않았다. 인피던은 점차 잔인해졌다. 사람의 시체위에 올라서면서 점점 그에게는 양심과 동정심이 사라져갔다. 그때쯤, 인피던은 직접 잘라낸 절단면을 보며 웃기 시작했다. 세타는 그런 오라버니의 곁을 지켜왔다. 그것은 동정이었을까. 지금와서는 알 수 없다.


"켄베트로."


인피던은 자기보다 머리하나만큼이나 큰 아우를 불렀다.


"세타는 복수하는 것을 원했을까?"


"물론입니다, 형님. 당연한 것 아니오."


"그렇다면 됐다."


"왜 그러십니까?"


"술을 한잔 하고 싶군."


"가져오게 할까요?"


인피던은 고개를 끄덕였다. 밤이 지나고 있었다. 인피던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몇 잔의 술과 함께 지나갔다. 그는 술잔 바닥만 쳐다보느라 하늘조차 올려다보지 않았다.




이튿날 새벽, 차가운 하늘 아래에서 인피던은 전군에게 공격을 지시했다. 켄츄게이트 용병단의 전투법은 보통의 방법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그들의 무기는 일반 머스킷과 급이 달랐다. 티프소의 기술력을 포함한 사격은 정밀하기 그지없었다.


게랄드가 단 한 번 방패를 앞세워 사격을 막아낸 적이 있지만, 그것은 보통 병사에게 가능한 묘기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볼페레 마을을 향해 머스킷을 겨누고 접근한 적과 맞서는 피아조 상단의 작전은 단순명료했다.


"형님, 놈들이 마을에서 농성을 할 생각인 것 같습니다."


켄베트로는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아닌게 아니라, 마을의 입구와 벽에는 온갖 것들-뜯어낸 문짝, 지붕, 축사의 나무벽 등이 세워져 있던 것이다. 고기를 삶을 때 쓰는 거대한 가마솥마저 몇개 널려있는 것을 보고 인피던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저놈들, 정말 저런 걸로 우리를 막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는 건가?"


인피던은 앞으로 나서서 큰 목소리로 외쳤다.


"게랄드! 게랄드 피아조!"


인피던의 외침에 슬쩍 게랄드가 고개를 내밀었다. 두개의 가마솥 사이에서 고개를 내미는 모습은 영락없는 거북이의 그것과 같았다.


"숨을테면 숨어라! 게랄드 피아조! 하지만 잘 듣는 것이 좋아! 난 세타의 복수를, 나의 복수를 할 것이다! 네놈이 지키고자 한 그 여자를 네가 보는 앞에서 총구멍을 내주겠다! 그 다음에 너의 모든 상단의 놈들을 갈가리 찢어주마! 그때까지 계속 숨어라! 그리고나서 널 같은 꼴을 만들어 줄테니까 말이야!"


인피던의 도발에 게랄드는 다시 고개를 집어넣는 것으로 대응했다.


"저 놈들은 우리를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켄베트로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인피던은 씨익 웃었다.


"함정이 있다면 깨부수면 된다. 우리의 머스킷티어는 약하지 않아. 켄베트로, 너는 일군을 이끌고 마을의 측면을 공격해라. 나는 정면에서 놈의 여자를 잡겠다. 잊지마라. 이것은 세타의 복수다."


"예, 형님."


켄베트로는 이를 뿌득 갈고, 고개를 끄덕였다. 인피던은 리볼버를 들고 맨 앞에 섰다.


"전군, 사격개시!"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여태까지와 같았다. 켄츄게이트의 사격은 반격의 여지를 남기지 않을 정도로 절대적이었다. 나무판을 이어 붙인 방어선은 너무도 쉽게 무너져내렸다. 사격을 시작한지 겨우 15분만에 피아조 상단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계속 쏴라! 단 한 놈도 놓치지 마라!"


인피던이 다시 외치는데 갑자기 징소리가 울렸다. 마을의 외각에서부터 예리엘을 선두로 한 다수의 병력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쏴라!"


예리엘이 이끌고 있는 석궁병대는 작전대로 화살을 날렸다. 사각에서부터 동시에 날아드는 근접화살은 치명적이어야 하겠지만, 인피던의 예측을 벗어나지 않았다. 인피던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겨우 이런 함정으로 날 잡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인피던의 지시에 따라 석궁병들을 향해 탄환을 날리자 견디지 못한 예리엘은 병사를 급히 퇴각시키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였다. 누가 쏜 탄환이었을까. 예리엘이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쓰러졌다. 인피던은 그 장면을 놓치지 않았다. 그는 게랄드가 마을에서부터 달려나와 예리엘을 안고 도망치는 것을 내버려두지 않았다.


"저 두놈을 잡아라! 저 두놈을 잡아! 추격하라!"


게랄드가 아무리 민첩하다 해도, 갑옷을 입은 사람을 들쳐업고 달리는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마을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그대로 터널쪽으로 도망쳤다.


인피던은 앞장서서 리볼버를 들고 그들을 쫓았다. 수백의 머스킷티어가 추적해오는 것을 힐끔 확인하고 게랄드는 입술을 핥았다. 미끼를 문 것이다.


"예상보다 가까워."


게랄드는 업고 있던 예리엘에게 말했다.


"예리엘은 먼저 빠져나가."


예리엘은 게랄드의 머리카락을 잡고 마구 당기는 걸로 싫다는 표현을 대신했다.


작가의말

알피엑시 대륙의 사람들은 특히 티프소인을 증오합니다. 알피엑시 대륙의 최강국이었던 로드리제로스는 티프소군에 의해 완전히 멸망했기 때문입니다. 알피엑시 대륙을 공략한 사령관인 헤스는 로드리제로스 군에 의해 연인을 잃은 청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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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3 16.01.18 213 1 12쪽
22 21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2 16.01.14 126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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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마후라나 15.08.17 280 1 14쪽
16 언젠가의 이야기 15.08.12 220 2 22쪽
15 15화. 해피엔딩 15.07.22 200 2 12쪽
14 14화. 검과 탄환 15.07.20 250 1 11쪽
» 13화. 게랄드의 함정 15.07.16 276 3 9쪽
12 12화. 볼페레 15.07.15 340 2 9쪽
11 11화. 고집불통의 두 사람 15.06.29 241 3 12쪽
10 10화. 스스하 수비전 -2 15.06.22 264 2 22쪽
9 9화. 게랄드의 교섭, 그리고 동맹 15.06.17 222 3 7쪽
8 8화. 스스하 수비전 -1 15.06.01 257 2 7쪽
7 7화. 광마 도적단 15.05.08 254 2 28쪽
6 6화. 파키스 공략전 15.04.27 276 2 16쪽
5 5장. 후퇴 15.04.24 247 2 12쪽
4 4화. 복수만을 위하여 15.04.20 245 2 8쪽
3 3화. 나보 수비전 15.04.20 267 3 23쪽
2 2화. 소녀와 소년 15.04.20 311 1 8쪽
1 1화. 게랄드와 예리엘 15.04.20 302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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