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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붉은 거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32
최근연재일 :
2016.01.18 02: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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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03
추천수 :
37
글자수 :
143,055

작성
15.06.2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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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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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2쪽

11화. 고집불통의 두 사람

DUMMY

모처럼 승전 후의 회의였기에 아미는 훈훈한 분위기일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때문에 그녀가 회의장에 들어간 다음 얼어붙을 정도의 냉기에 깜짝 놀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부상단장도 상단장도 평소처럼 나란히 앉아 있긴 했지만, 그 둘 사이에서 흐르는 기운은 누구라도 움찔할 정도로 냉냉했다. 평소라면 까불거리고 있을 마렌도 눈치만 보고 있었고, 목소리를 낮추는 일 없는 로우크도 딴청피우고 있었다. 레인은 온화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녀는 왠만해서는 회의 중에 미소짓고 있었기 때문에 상황 파악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결국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아미는 에스테파니의 옆자리로 가서 소곤소곤 물었다.


"부부싸움이라도 있었나요?"


줄인다고 줄인 그 소리는 고요하기 그지없는 회의장에 앉은 모든 사람의 귀에 들어갔다. 에스테파니는 얼른 검지손가락을 입술에 댔지만 부상단장의 눈썹이 꿈틀대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이겼지만 희생이 적지 않아."


예리엘의 나직한 목소리가 회의장에 울렸다.


"적의 잔당이 아직 엄청 많아. 그래, 엄청나게, 엄청나게 많다구. 우리보다도 많고, 스스하를 합친 것보다 많고, 학생군을 합친것 보다 많아!"


"에이, 설마요. 그래도 엄청나게 많은 적들이 항복했다구요. 게다가 흩어졌으니 조직적으로 덤벼올 수도 없을걸요?"


아미가 손사래를 치며 말하자 예리엘은 두 손바닥으로 책상을 쳤다.


"항복한다고 끝이 아냐. 그네들을 가둬둘 장소, 지키는 인원도 필요해. 우리의 병사들이 그렇게 빠져나갈 수 밖에 없다구! 포획한 만큼 우리 인원도 줄어드는 거라구!"


아미가 "어... 그건..."하고 말을 더하려고 했지만 에스테파니는 다시한번 조용히 하라는 제스쳐를 취했다.


"거기에 식량도 곱하기로 들어간다구! 더하기가 아니야! 얼마나 많은 돈이 드는지 알아? 돈, 돈, 돈이야!"


예리엘은 크오, 하고 울부짖는 것처럼 외쳐댔다.


"이긴만큼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그 돈은 또 어디서 굴러나오는 거야? 쟤들 군대에 있는 건 쇳조각과 화약뭉치 뿐이고!"


레인은 예리엘의 이유모를 분노가 가라앉길 기다렸다가 작게 헛기침하며 은근 슬쩍 끼어들었다.


"우리, 꽤 여유 있어요. 애초에 풋남 상단과 합병한 이래로 여러가지를 독점하고 있기도 하구요. 스스하에게 지원받는 광마버섯은 물론이고 통조림, 종이, 철, 석탄, 유리, 타르는 우리가 완벽히 독점하게 되었어요. 이 정도면 이제 대륙 전체에서 가장 큰 상단은 우리라 해도 괜찮겠지요."


"뭐? 어... 언제 우리가 그렇게 커졌어?"


"에스테파니씨의 수완을 칭찬할 수 밖에 없어요. 상단장과 부상단장님은 모르셨겠지만 그 사이에 큰 계약도 네건이나 해냈다구요."


예리엘이 말을 더듬자 레인은 상냥한 목소리로 대답해주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수익이 이렇게 떨어진건데?"


예리엘이 한풀 꺾인 목소리로 묻자 레인이 담담히 설명했다.


"지금 수익이 떨어진건 메렌스 지방이 초토화 되어서라구요. 이참에 식량과 의료에도 손을 뻗고 싶지만 자본이 아슬아슬하네요."


기회를 놓지지 않고 아리스토틀도 끼어들었다.


"게다가 메렌스와는 아무래도 계약을 맺어도 이익보기가 힘들것 같습니다. 그 사람들은 너무 가난해져서 말이지. 허허, 출전 대가도 아직 못받았는데..."


마렌도 "스스하의 이익은 꽤 좋아요. 광마버섯은 귀한 약재니까요. 하지만 판매루트가 막혀있어서야 한계가 있죠."라고 거들었다. 예리엘은 그런 마렌을 찌릿, 한번 노려보고, "뭐야. 한마디로 고객이 가난해졌다는 거잖아."라고 중얼거렸다.


"그래요, 그러니까 우리가 일을 열심히 안했거나 한 게 아니라구요."


마렌이 까불거리며 얼른 말하자 예리엘은 다시 한 번 핏줄을 세우고 노려보았다. 레인은 두 사람 사이를 가로 막듯이 앞으로 나서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하나 뿐이겠네요."라고 회의를 진행해갔다.


"브이젠 상단의 잔여군을 공격해야해요. 숲에 들어간 패잔병이 도적이 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입니다. 그들을 몰아낼 병력을 즉시 확충할 수 없지만 켄츄게이트 용병단의 수장 인피던을 축출해내면 그 뒤로는 여유가 생길 거에요. 당장 우리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세력이 없을 테니까요. 각 조장은 출진을 위해 준비해주세요. 연전이지만 이번만 싸우면 다시 평화롭게 돌아갈 수 있을 것 같네요. 학생군의 지원도 다시 한번 요청해보도록 하죠. 뭐하고 있나요? 각자 자기 할일을 하러 가세요."


레인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회의장의 사람들은 거미새끼가 흩어지듯 사라져버렸다.


"으으..."


예리엘은 낮은 신음소리를 내더니, "흥!"하고 누군가 들으라는 듯 콧방귀를 뀌고 찬바람을 날리며 나가버렸다. 굳은 표정으로 팔장을 끼고 앉아 있는 게랄드에게 레인이 조심스럽게 권했다.


"... 게랄드씨. 예리엘 씨랑 화해하면 안되나요?"


"난 예리엘이 더는 안싸웠으면 좋겠어.."


"예리엘씨의 무공은 굉장히 뛰어나요. 그런 그녀에게 약하니 싸우지마! 라고 말한 건 너무했어요."


"나도 화났어. 그렇게 위험한 일이 있었는데 계속 싸우려고 하다니."


"예리엘 씨는 게랄드 씨의 곁에서 계속 싸우고 싶은 걸 모르겠나요?"


"난 예리엘이 더는 안싸웠으면 좋겠어.."


"..."


"그렇게 위험한 일이 있었는데 계속 싸우려고 하다니말야."


레인은 "아, 답답해!"라고 외치면서 게랄드의 뒤통수라도 때려주고 싶었지만 어차피 피할 것 같아서 한숨을 쉬고, 그를 내버려둔 채로 예리엘의 뒤를 쫓았다. 우물가에서 무릎을 끌어안고 지나치게 소심한 포즈로 앉아있는 예리엘의 곁으로 간 레인은 다시한번 조심스럽게 권했다.


"예리엘씨. 게랄드씨랑 화해하면 안되나요?"


"약하니 싸우지 말라고 했는 걸. 게랄드만큼은 아니지만 난 이 상단의 전투력으로는 넘버 투 아냐? 그런데 약하다고 말하다니, 너무한 거잖아. 게랄드의 등을 지켜준다던가, 하는 그런 전우애조차 못느끼는 존재야?"


"아뇨, 그게 아니라, 예리엘 씨가 이번에 정말로 위험했으니까 걱정하는 거잖아요."


"약하다고 말하는 건 너무했어. 보통 지켜주고 싶은 사람하고는 같이 있고 싶은 거잖아. 같이 전장에 설 자격도 없다고 말하는 거야?"


"아뇨, 그게 아니라..."


레인은 "둘이 정말 고집쌘 건 꼭 닮았네요."라고 핀잔을 주고 싶었지만 어차피 말해봐야 투덜거리기만 할것 같아서 한숨을 쉬는 걸로 대신할 수 밖에 없었다.





켄베트로는 병력을 이끌고 세드러로 향했다. 브이젠 상단의 본사가 있던 활기가 넘치는 도시는 이제 욕설과 시체만이 가득했다. 여기저기에서 들리는 곡소리에 그는 서둘러 상단 본사로 향했다.


제법 넓은 상단장사무소의 한가운데에는 인피던이 상의를 벗은 채로 앉아있었다 그는 거대한 인형과 같은 시체를 끌어안고 있었다.


한팔이 없는 세타의 시체는 서서히 썩어가고 있었지만 인피던은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는 듯이 세타의 뺨에 자신의 뺨을 부비대고 있었다.


"형님... 이게 뭐하는 거요."


"이것봐, 세타. 막내 동생이 왔다. 안녕?"


인피던은 세타의 남은 손을 흔들어주었다.


"세타누님이... 죽은거요?"


코를 찌르는 썩은 역한 냄새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인피던은 아랑곳하지 않고 세타의 뺨에 가볍게 키스했다.


"피는 이제 안나니까 곧 괜찮아 질거야."


그 모습이 너무나 다정해보였기에 켄베트로는 화조차 나지 않았다.


"형님... 세타 누님은... 이보시오, 형님. 누님은 죽었소. 팔도 하나가 없지않소."


"한 팔은 없어도 돼. 오빠가 너의 팔이 되어줄게. 염려할 것 없어, 세타."


켄베트로는 인피던의 앞에 가서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형님, 복수합시다. 누님을 죽인 것은 게랄드 피아조요. 그놈을 죽이지 않으면 누님도 눈을 감지 못할 거외다."


"세타를 위한 복수..."


"뿐만이 아니오. 우리는 이 테르센트 놈들에게 복수해야 하지 않겠소. 아버지와 어머니의 복수를 하기 전까지 멈추면 안되는 것이 아닙니까?"


"복수... 테르센트 놈들에게..."


"우리 용병단도 마찬가지요, 형님. 모두 티프소 출신의 노예잖소. 테르센트 놈들에게 잔인하게 가족을 잃은 놈들이지 않소. 다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소. 싸웁시다. 다 죽일 때까지 싸웁시다, 형님."


켄베트로는 어느새 인피던을 일으키고 있었다. 인피던은 세타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의 몸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그는 중얼거렸다.


"그래, 테르센트가 멸망하기 전까지 멈추지 않겠다. 전쟁을 준비해라."


켄베트로는 각오를 다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즉시 달려나갔다.




뒤늦게 세드러에 도착한 위센은 겨우 3000명의 병사만 데리고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즉시 인피던에게 달려가서 "강화를 요청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이상 싸우면 모두 죽게 됩니다."


"위센, 이 싸움은 모두 죽을 때까지 하는 거야."


"그... 그게 무슨 말입니까."


"나의 머스킷티어는 아직 건재하다. 그 놈들에게 납탄환을 박기전까지 멈출 수 없어."


인피던의 눈빛이 불길처럼 타오르는 것을 보고 위센은 더 이상 그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즉시 손을 들어 그의 호위병들에게 신호했다. 병장기를 뽑아드는 소리가 피가 가득한 방안에 울렸다.


"무슨 짓이냐, 위센?"


그의 목소리는 너무나 온화했다. 위센은 악에 받혀서 소리질렀다.


"너같은 놈을 고용한 내가 멍청했어! 넌 미치광이다! 내 손으로 네 목을 치고 이 전쟁을 끝내겠어!"


"무슨 말을 하는거냐? 난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었어. 네가 나에게 말하지 않았느냐? 땅을 점령하고 싶다고. 난 너에게 땅을 주었어."


인피던이 태연하게 말하자 위센은 목에 핏줄을 세워서 외쳤다.


"크... 미친 놈, 네 놈은 나에게 시체의 산을 주었을 뿐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야 만족하겠느냐! 뭣들 하느냐, 당장 이 놈을 죽여라!"


맨 앞의 호위병이 롱소드를 내리쳤다. 인피던은 뒤로 뛰어 그 검을 피했다. 검은 대리석 바닥을 치며 불꽃을 일으켰다. 인피던은 멍한 얼굴로 호위병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는 선잠을 자는 것처럼 눈을 천천히 꿈뻑였다.


"죽여라! 뭐하느냐, 어서 죽여!"


한 호위병이 창을 내질렀다. 인피던은 몸을 숙여 창을 피하면서 몸을 돌려 호위병의 복부를 걷어차버렸다.


"이놈이!"


다른 호위병이 검을 휘둘렀다. 인피던은 검을 피해냈다. 그리고 호위병의 검은 세타의 시체에 박혔다.


"... 세타...!"


인피던은 세타의 시체를 향해 달려가려 했다. 그러나 위센의 레이피어가 시체의 목에 닿자 걸음을 멈췄다.


"그만둬, 세타를... 건드리지마..."


"이게, 이 시체가 그렇게 소중한가?"


위센은 기분나쁜 미소를 짓고, 레이피어를 치켜들었다.


"겨우 이까짓 시체가?!"


레이피어는 세타의 목에 박혔다. 찌지직, 하고 피부가 찢어지는 소리가 이어지고 목이 굴러 떨어졌다.


"... 세타를... 죽였어."


인피던의 눈에서 흐르던 눈물에 핏방울이 섞였다. 그는 몸을 숙이고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집어 들었다.


"다음은 네가 이 시체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이다!"


위센의 지시로 호위병들이 달려들었다. 인피던이 달려갔다.




겨우 1분이 걸렸다. 10여명의 시체가 쌓이고, 그 위에 위센의 시체가 놓일 때까지 겨우 1분이 걸렸다. 시체의 위에서 인피던은 세타의 머리를 끌어안고 안고 뺨에 키스했다.


"다녀올게, 세타.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으렴."


인피던은 누이동생의 머리를 시체의 산 위에 내려놓았다. 세타의 시체는 눈조차 감지 못했다. 그 표정은 어느 때보다도 슬퍼 보였다.


작가의말

리베리아 대륙과 알피엑시 대륙에는 대지의 여신 엘리츠나를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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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센트 연대기 ~ 붉은 거인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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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3 16.01.18 212 1 12쪽
22 21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2 16.01.14 125 0 19쪽
21 20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1 16.01.14 211 0 8쪽
20 19화. 전야 16.01.14 237 0 10쪽
19 18화. 선지자 15.10.16 203 0 12쪽
18 17화. 알리시아 영지의 마녀 15.08.21 273 1 13쪽
17 16화. 마후라나 15.08.17 280 1 14쪽
16 언젠가의 이야기 15.08.12 219 2 22쪽
15 15화. 해피엔딩 15.07.22 199 2 12쪽
14 14화. 검과 탄환 15.07.20 249 1 11쪽
13 13화. 게랄드의 함정 15.07.16 275 3 9쪽
12 12화. 볼페레 15.07.15 339 2 9쪽
» 11화. 고집불통의 두 사람 15.06.29 241 3 12쪽
10 10화. 스스하 수비전 -2 15.06.22 263 2 22쪽
9 9화. 게랄드의 교섭, 그리고 동맹 15.06.17 221 3 7쪽
8 8화. 스스하 수비전 -1 15.06.01 257 2 7쪽
7 7화. 광마 도적단 15.05.08 254 2 28쪽
6 6화. 파키스 공략전 15.04.27 276 2 16쪽
5 5장. 후퇴 15.04.24 246 2 12쪽
4 4화. 복수만을 위하여 15.04.20 245 2 8쪽
3 3화. 나보 수비전 15.04.20 266 3 23쪽
2 2화. 소녀와 소년 15.04.20 311 1 8쪽
1 1화. 게랄드와 예리엘 15.04.20 302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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