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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붉은 거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32
최근연재일 :
2016.01.18 02:0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5,708
추천수 :
37
글자수 :
143,055

작성
15.06.22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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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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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22쪽

10화. 스스하 수비전 -2

DUMMY

켄츄게이트 용병단이 스스하로 통하는 길을 만드는 동안 예리엘은 광마도적단의 퇴각을 건의했다. 하지만 호우크 키즈런에게 돌아온 대답은 항상 같았다.


"우리는 다시는 스스하를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가 스스하를 떠나는 때는 오직 우리가 죽을 때 뿐이다."


예리엘이 고집불통이라고 비난하자 마렌이 우물쭈물 변명해주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요. 저, 아시잖아요? 가끔은 목숨을 거는 것도 멋진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렌..."


예리엘이 의미심장한 눈으로 마렌을 쳐다보자, 그녀는 딴청을 피우며 스스하에서 대접받은 산약초로 만든 술이 얼마나 달콤했는가에 대해 우물쭈물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런 와중에 게랄드와 레인이 학생군의 참전을 확인하고 돌아왔다. 예리엘이 유지니오가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레인은 "아직 젊지만 전략이 능하고 교섭을 할 줄 안다."라고 대답하며 동맹의 성사를 자축했다.


"근데, 그 사람 소문대로 잘생겼어?"


"에? 그건... 전 잘 모르겠지만 잘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전 잘 모르겠지만 말이에요."


"레인씨..."


예리엘은 의미심장한 눈으로 레인을 쳐다보았고, 레인은 황급히 학생군이 참전했을 때 피아조 상단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에 대해 되는대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예리엘, 알고 있어? 이런 전쟁통에 갑자기 연애바람이 부는 것 같아."


게랄드는 예리엘에게 껄껄 웃어보였다.


"마렌이나 레인씨나, 모두 사랑의 바람이 분 것 같지 않아?"


예리엘은 자기일에는 무감각한 주제에 남의 일에만 촉이 살아있는 무능한 오라버니의 목을 닭 잡듯이 비틀어버리고 싶었지만 바빠서 차마 할 여유가 없었다. 예리엘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면서 지도를 두드렸다.


"연애따위는 아무래도 좋아. 학생군이 요격대를 회피해서 스스하로 오고 있어. 그들은 학생과 농병대지만 병력은 거의 1만이라고 하니까, 분명 전력이 될거야.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하루 거리 뒤로 1만의 정예 머스킷티어가 추격해오고 있다는거야."


설명을 들은 게랄드는 중얼거렸다.


"좀 위험해 그건... 학생군들을 방치하면 적들에게 포위되버릴 수도 있어."


"그러니까 우린 그들이 오는 시간에 맞춰서 적을 공격해야해. 너무 시간을 끌다가는 학생대는 소멸해버릴거야."


"우리가 움직일 수 밖에 없게 만드는군."


게랄드는 그의 붉은 빛이 도는 머리칼을 벅벅 긁으며 한숨을 쉬었다. 학생군의 이런 마구잡이식 참전은 도무지 그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들은 너무 무모해요. 하지만 동맹군이니만큼 호응하지 않을 수도 없어요."


레인은 그렇게 말하며 아군 전체의 공격을 준비시켰다. 동시에 스스하의 리더인 로우크와 라라에게도 출격을 요청하기로 했다.


"제가 가서 전할게요~!"


마렌이 얼른 손을 들었다.


"그래... 꼭 돌아와야 한다?"


"메시지를 전하는 것 뿐인데요?""


마렌이 말똥말똥 눈을 뜨고 되묻자 예리엘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회의장 구석에서 자신의 장녀를 지켜보고 있던 아리스토틀은 예리엘의 시선의 뜻을 알아차리고 온화하게 웃었다.


"메렌의 지난 주까지의 꿈은 멋진 남자를 만나 사랑의 도피를 하는 거였지."


"... 꼭 돌아와야 한다?"


예리엘은 마렌의 얼굴이 빨개지자 다시 한 번 당부하고 전투 참전을 요청하는 서신을 전했다. 마렌이 왠지 모르게 이것저것 장신구까지 두르고 말에 오르는 것을 배웅하다가, 예리엘은 잔뜩 굳은 얼굴로 그녀의 참모에게 말했다.


"레인씨, 이번 전투는 총력전으로 가야할 것 같아. 난 기병대로 앞장서서 적의 측면을 노릴께."


"그렇게 해야할 것 같지만, 그래도 그냥 들어갔다가는 당해요. 적의 시선을 끌어줄 필요가 있어요."


"어떻게 하면 되지?"


"적의 사격 방향을 틀어주기만 해도 충분할 것 같아요."


레인은 뭔가를 기대하는 눈으로 게랄드를 바라보았다.


"왜요?"


"게랄드씨, 선두로 선다면 적의 크로스파이어에 서게 될거에요."


"크로스 파이어?"


"총알이 모이는 지점이죠. 혹시 총알도 막을 수 있나요?"


어이 없는 질문에 예리엘은 레인의 질문에 대신 대답하려고 했다. 그런데, "정면에서 오는 총알이면 어떻게 될것도 같은데."라고 게랄드가 냉큼 대답해버렸다.


"좋아요, 게랄드씨가 보병대를 이끌고 선두에 서서 총알을 '막아'주세요. 적들의 사격이 한번 끝나는 순간 예리엘님은 적의 측면을 노려주세요."


"총알도 막을 수 있어?"


예리엘은 어이없는 눈으로 게랄드를 바라보았다.


"아니, 그냥... 쟤들은 앞에서만 쏘는거잖아? 그럼 방패로 막으면 되잖아."


게랄드가 너무 당연하다는 식으로 대답했기 때문에 예리엘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


인피던은 학생군이 접근해 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도리어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위센에게 물었다.


"적의 병력은 얼마인가?"


"학생군은 1만쯤 된다고 합니다."


"피아조 상단, 스스하의 도적단, 그리고 학생군을 전부 합쳐도 5만이군."


"그... 그렇죠."


"우리의 병력은 이제 10만이다. 그럼 우리가 질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 하지만 우리는 포위되는 중이라서..."


"포위라고?"


그는 들으라는 듯이 외쳤다.


"토끼가 사자무리를 포위하는 것을 경계해야하는가! 전군 전투를 준비해라! 우리를 얕본 놈들을 모두 죽이고 약탈해라!"


위센을 제외한 용병단은 그들의 대장의 외침을 이어 환호했다. 그런데 인피던의 부대가 움직이기도 전에 큰 포향이 한 번 울리더니 피아조 상단의 보병대가 시야에 나타났다.


"... 보병대로 우리에게 덤빈다고?"


인피던은 직접 선두에 나가 적을 확인했다. 피아조 상단의 중갑보병은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그 중 가장 선두에 선 장수는 보통사람보다 거의 두 배 가까이 거대했는데, 붉은 머리칼을 흩날리며 투구조차 쓰지 않았다. 그는 자기 신장만큼이나 거대한 강철방패를 들고 있었고, 반대쪽 손에는 미늘창을 들고 있었다. 그외에는 갑옷조차 입지 않았고, 가벼운 천옷만 걸치고 있었다. 인피던은 어이없다는 얼굴로 그의 곁에 있는 여동생에게 물었다.


"저건 뭐야?"


"오라버니, 저 장수가 피아조 상단의 게랄드 피아조에요. 웨폰 마스터, 게랄드라고 불리죠."


세타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인피던은 눈에 핏줄을 세우고 중얼거렸다.


"저 놈이... 메렌스에서 싸웠던 놈이군.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도 총알을 막을 수는 없다. 세타, 머스킷티어를 선두에 배치해라... 저 놈을 맞추는 자에게 부장 자리를 주고 스스하 약탈금의 반을 주지."


세타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가려고 했다.


"... 왜 그런 표정을 짓고 있지."


인피던이 그녀의 뒤에 묻자 세타는 애써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오라버니. 꼭 이기도록 해요."


어리둥절한 인피던을 두고 세타는 앞으로 나섰다.




중갑의 보병대는 머스킷티어에게 치명상을 입지 않는다. 하지만 피아조 상단의 중갑보병대라해도 그 수가 500기밖에 안되었다. 치명상이 아니어도 몰리는 탄환은 접근 자체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레인도, 예리엘도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게랄드대의 목표는 적의 시선을 잡는 거에요. 중갑보병이 앞서게 되면 적은 머스킷티어를 앞세울 수 밖에 없죠. 이미 궁병으로는 우리를 잡는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스스하에서 증명해보였으니까요."


레인의 설명은 지당했지만 예리엘은 여전히 썩 내키지 않았다.


"그래도 게랄드는 상단장인데, 저런 위험한 곳으로 앞장서게 하는 것은..."


"게랄드씨는 우리에게 큰 전력이에요. 그가 선두에 서지 않으면 수백의 병사들의 목숨이 사라질거에요."


레인은 단언했다. 게랄드는 예리엘에게 웃어보였다.


"괜찮아. 막아볼게."


"총알은 화살과 다르다고. 눈에 보일리도 없잖아."


"그야 그렇지. 하지만 큰 방패를 들고 가잖아."


"방패가 뚫리면 어떻게 하려구?"


"이건 우리 상단의 최고급품이니까 문제 없을거야."


"그건 그냥 비싸게 팔려고 갖다 붙인 말이야."


"그런 거였어?"


"만약 방패가 부서지기라도 한다면..."


"그럼 피해볼께."


"그러니까 총알은 못피한다니까!"


"그럼 쳐낼게."


"그게 될리가...!"


"어, 빨리 출발해야겠다. 방패가 안깨지면 우리 상단의 방패값이 많이 오르겠지?"


"알게 뭐야!"


"상인이 그럼 못써."


"바보!"


예리엘은 결국 불안한 기분을 잔뜩 안고 게랄드의 뒤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


가벼운 복장으로 적 앞에 선 게랄드는 스스하쪽에서 불어오는 산바람을 기분좋게 맞았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따뜻하기 그지 없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들려온다. 뻐꾸기의 소리가 숲에서부터 울린다. 이곳이 전쟁터만 아니라면 즉시라도 예리엘과 소풍이라도 가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다. 하지만 잠시후 이 대지가 화약 냄새와 피 냄새로 가득해 질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도 안 싸울 수야 없지."


슬슬 적의 사정거리에 들어오고 있다. 그는 강철방패를 들고 그를 따르는 부대에게는 정지신호를 내렸다. 그리고 대담하게도 그는 홀로 적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어이쿠, 이건 정말 못보겠군."


아리스토틀은 엉겹결에 눈을 가리며 탄식했다.


"우리 상단장이 무모한 건 알았지만... 이건 너무하네요."


기가 죽은 에스테파니도 손톱을 물어뜯으며 중얼거렸다.


"괜찮아, 저 사람은 인간이 아닌 거랑 싸워도 이길만한 사람이니까..."


10분 전부터 창백해진 얼굴로 다리를 떨고 있던 아미가 근거없는 희망적인 말을 꺼내보았다.




첫번째 사격은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 켄츄게이트 머스킷티어 중 누군가가 방아쇠를 잘못당긴 것 같았다. 총알은 게랄드에게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날아갔다. 그것을 신호로 총성이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용서없이 무수한 탄환이 쏟아졌다. 곡선을 그리는 방패에 탄환이 부딪히고 튕겨나갔다. 한발 한발의 물리적 충격은 게랄드의 왼팔에 그대로 흘러들어갔지만, 게랄드는 넘어지지 않았다. 도리어 허리를 구부린 채로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강철이 깎여나가는 소리가 전장을 잠시 채우더니, 1분여의 총성이 멈추었다. 사격 중지 지시가 있던 것이 아니었다. 그저 머스킷의 특성상 재 사격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 뿐이다. 그들은 눈앞의 거인이 아직도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방패가 아무리 단단하더라도 총탄이 주는 압력은 인간이 견딜만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탄환의 타격을 모두 견뎌내고 그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던 것이다.


"재사격 준비! 장전해라!"


게랄드는 그 순간 방패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손이 크게 움직이는가 했더니, 거대한 강철 창이 날아와 머스킷티어의 한가운데에 떨어졌다. 애초 던지라고 만든 창이 아니었다. 기병을 막기 위해 만든 이 무거운 창은,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적진으로 날아들었고, 세 명의 병사가 산산조각나서 흩어졌다. 이 말도 안나오는 퍼포먼스에 적들 사이에서 공포가 터져나갔다.


"돌진!"


그 장면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예리엘은 기병대를 통솔하여 적의 좌측을 향해 진격했다. 동시에 아미의 기병대도 적의 우측으로 돌진해갔다. 기병대의 출격과 동시에 레인은 직접 궁수대의 선두에 서서 외쳤다.


"궁병대는 지원을! 목표는 적의 후방입니다! 연락궁수는 전투 개시를 알려주세요."


요란한 소리를 내며 대나무 화살이 날아올랐다. 그 뒤를 이어 하늘을 가르는 화살의 소리가 전장을 채웠다.




"교전 신호에요, 오빠!"


라라가 말하자 호우크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한 쪽 팔에 매달려있는 마렌에게 말했다.


"마렌, 당신은 뒤에 있어요. 우리는 적의 측면을 치겠습니다."


마렌은 재미있다는 듯이 깔깔거리고는 외쳤다.


"무슨 말이에요! 난 피아조 상단의 일원이에요. 피아조 상단의 가족들이 싸우고 있는데 구경만 할 수 있겠어요?"


스스하의 광마도적단은 용병단이 공격을 위해 만든 길을 반대로 따라 돌격을 시작했다. 진입로의 수비를 맡고 있던 켄츄게이트 용병단의 병사들은 이 급작스런 공격에 흩어지기 시작했다. 애초부터 그들이 인피던에게 굴복한 것은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지 않기 위해서였다. 수비를 담당하던 좁 후아나가 가장 먼저 도망쳐버리자 남은 병사들도 서서히 뭉그러지기 시작했다.




학생군의 선두에서 정찰하던 젠데온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투가 시작 됐어! 유지니오, 엄청나다구!"


유지니오는 사열한 학생군의 앞에서 크게 외쳤다.


"우리의 바로 뒤에 강렬한 적이 추격해오고 있다! 지금부터 24시간 내에 정면의 적들을 섬멸하지 못하면 우린 오도가도 못하고 죽는것이다! 싸우겠는가, 아니면 죽겠는가!"


학생군의 병사들은 당황해할 수도 없었다. 아카드가 노린대로, 물러설 길이 없어진 병사들은 무기를 들었다.




"전군 공격해라! 적장을 저격해라! 적들에게 기세를 넘겨주지마!"


인피던은 선두에서 지휘했다. 하지만 한번 흔들린 사기는 쉽게 복구할 수 없었다. 그들은 단번에 난전을 허용하고 말았다.



예리엘은 누구보다 먼저 적진에 돌입했다. 그녀는 말에서 뛰어 내리며 자신을 겨누고 있던 머스킷병을 창으로 내리찍었다. 장전을 마친 적병들은 갑자기 등장한 그녀에게 당황하는 대신 총구를 겨누었다. 예리엘은 반원을 그리며 창을 휘둘러 그들이 방아쇠를 당기기 전에 손목을 날려버렸다.


그녀의 근력은 보통 남자 수준에 불과했지만, 창술의 정교함은 상상을 초월했다. 빠르게 찌르는 것은 각각이 총탄처럼 적을 관통했다. 그녀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거대한 적의 목을 절반만 베어버리고 흩어지는 피를 피하며 창을 낮게 휘둘렀다. 세명의 적병의 발목이 날아갔다.

예리엘은 호흡을 고르며 다시 정면의 적에게 창을 겨누었다. 수적인 열세는 틀림없었다. 하지만 예리엘은 멈추지 않았다. 기병의 목표는 적을 갈라놓는 것이라는 것을 그녀는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들은 쉽게 그녀의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아무리 무너뜨려도 다시 진형을 짜고 그녀를 압박해왔다.


'이놈들, 역시 강해.'


예리엘은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그녀라 해도 동시에 여러 적을 베어낼 수 없었다. 1:1로는 누구에게도 질 리 없지만, 적은 너무도 많았다. 여섯명의 적들이 창과 칼을 앞세워 동시에 그녀를 향해 돌진해오자 예리엘이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게랄드!"


단 한번의 창이 휘둘러졌다. 그리고 여섯명의 적은 모두 반으로 잘려 공중에서 핏덩어리가 되었다.


"예리엘, 괜찮아?"


적진에 뛰어든 동생을 위해 단신으로 달려온 게랄드는 피로한 기색도 없이 다시 한번 창을 휘둘러 수명의 적병을 날려버렸다. 이것은 이미 베어낸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붉은 머리의 근육질 거인이 들고 있는 무기는 적에게 빼앗은 창이고 이미 창끝은 무뎌져 있었다. 휘두르는 창대에 맞은 적은 몇 미터고 날아가서 곤두박질쳤다.


게랄드도 예리엘과 같이 달인이었지만, 예리엘의 범궤에 있지 않았다. 게랄드의 무예는 예리엘마저도 어린애로 보일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괴.. 괴물이다!"


적들이 그렇게 외치는 것은 어찌봐도 당연한 것이리라.




세타는 진형을 무너뜨리고 있는 두사람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라이플을 들었다. 그녀는 저격에 한하여서는 인피던을 능가할 정도의 재능이 있었다. 그녀는 호흡을 가다듬고 망원랜즈에 잡힌 예리엘의 이마를 노렸다. 거리는 겨우 200미터. 예리엘이 호흡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춰선 순간, 세타는 방아쇠를 당겼다.


모두의 시선이 모였다. 예리엘의 움직임이 멈췄다. 아리스토틀의 입에서 신음이 새어나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예리엘의 무릎이 풀썩 꺾였다. 그녀의 시선이 머리 위를 향했다.


"다친 데는 없어?"


게랄드의 창날이 예리엘의 머리가 있던 곳 바로 앞에 있었다.


"으.. 응. 좀 놀랐을 뿐이야."


게랄드의 창에 총탄이 박혀있었다. 강철을 덧씌운 나무가 총알을 막아낸 것은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 절묘했다. 게랄드는 예리엘이 무사하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지만, 그것을 바라본 피아조 상단의 사기는 하늘을 찔렀다. 동시에 적들은 총알을 눈으로 보고 막아내는 이 광경에 넋을 잃고 말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게랄드의 눈에 단 한번도 보이지 않던 노기가 차올랐다. 그의 몸이 활처럼 크게 젖혀지는 순간, 그가 들고 있던 창은 거대한 활에서 발사된 화살처럼 날아올랐다.


"에?"


총알을 막아내는 묘기에 깜짝 놀란 세타는 이 갑작스런 투창을 피해낼 수 없었다. 창은 그녀의 한쪽 어깨에 박혔고, 그녀는 몸을 뒤틀며 넘어졌다. 게랄드는 근처에 떨어져 있는 두번째 창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젖혔다.


"자... 잠깐, 게랄드!"


"감히 예리엘에게!"


예리엘의 제지도 막지 못한 게랄드의 창은 쓰러져 있던 세타의 복부에 정확히 박혔다.


"커.. 헉..."


세타의 입에서 신음소리와 함께 피가 쏟아져나왔다. 게랄드는 다시 창을 집어들었다.


"기다려! 게랄드!"


예리엘이 직접 게랄드의 한팔을 잡고서야, 게랄드는 움직임을 멈췄다.


"일단 전투를 속행해. 적을 갈라놓지 못하면 우리의 작전이 물거품이 된다구."


"... 알았어. 예리엘은 즉시 본진으로 돌아가."


"아, 어? 아니, 근데 나도.."


"돌아가."


"잠깐, 나도 싸울 수 있다구."


"싸우지 마."


"싫어! 누구에게 무슨 명령을 하는거야!"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싸워."


두 사람의 모습을 구경하던 아미, 아리스토틀, 레인은 서로 한번씩 마주보고 동시에 전군에게 공격명령을 내렸다. 게랄드와 예리엘이 입싸움을 하는 동안 전투의 승기는 피아조 상단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세타...?"


인피던은 그의 여동생 앞에 서서 망연자실했다.


"세타?"


"오라..버니..."


힘겨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총성이 시끄럽다. 그녀가 말하는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인피던은 그래서 검을 뽑았다. 그의 바로 옆에서 적을 향해 총을 쏘던 아군 호위대의 목을 날려버리고 다시 세타의 옆에 무릎을 꿇었다.


"세타, 괜찮니?"


"... 난... 괜찮아요, 오라버니..."


바닥의 피는 이미 한참 퍼져 있었다. 그녀의 한 팔이 힘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오라버니.. 이제... 그만 둬요..."


"응? 세타, 뭐라고 했니?"


"이제... 복수는... 싸움은... 그만둬요... "


세타의 입에서는 거친 기침이 몇번 터져나왔다. 그리고 잠시후, 조용해졌다.


"저... 이.. 인피던님, 적이 우리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위센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보고했다. 하지만 인피던은 듣지 않았다.


"이.. 인피던님?"


"세타, 가자."


인피던은 세타를 일으켜 안았다. 창에 박혀있던 한 팔이 찌지직, 하는 소리를 내며 뜯어져 나갔다. 인피던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세타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걸음을 옮겼다.


"어.. 어딜 가십니까! 교전 명령을...!"


위센의 목소리는 그에게 이미 들리지 않았다. 품에 안고 있는 동생은 아직도 따뜻했다. 복수. 언제부터인가 계속 해오던 복수. 그러고보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 싸움은 왜 시작하게 된거지? 뭘 복수해야 하는거지? 아득한 기억 속에 있다. 잘려나간 모친의 시체. 아니, 내가 자른 모친의 시체였나? 기억나지 않는다. 세타에게 물어보면 대답해줄까?




스스하를 지켜낸 호우크는 승리의 환성을 외쳤다.


"우린 피아조 상단을 도와 적의 잔당을 처리한다! 적의 퇴로를 끊어라!"


그의 외침에 광마도적단은 전력을 다한 외침으로 호응했고, 마렌은 그들 사이에서 같이 크게 외쳤다.


"이겼다~! 우리가 이겼다구~!"




학생군은 검을 휘둘렀다. 시체와 화약이 가득한 전장은 그들에게 너무나 두려운 곳이었다. 하지만 물러설 곳은 없었다. 선두에 선 유지니오의 손에서 얼음의 화살이 쏟아져 나와 적병에게 뿌려졌다. 지면이 파이고 핏물이 채워졌다.


"물러서지 마라! 우리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카드는 수레에 앉아서 전장을 바라보았다. 아나스타시아는 자신의 생각을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는 그의 동료들이 너무나 좋았다. 그들을 위해서는 죽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절대로 죽으면 안돼."


죽지 않기 위해 해야할 일을 했다고,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앞으로도 무수히 많은 전투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거라는 예감이 들었으니까.




전투는 일방적이 되었다. 인피던은 사라졌고 인피던을 따르던 이들은 전투의지를 잃고 퇴각하기 시작했다. 위센 브이젠은 자신을 따르던 이들을 데리고 겨우 세드러로 도망쳤다. 뒤늦게 추격해온 켄베트로는 합류할 기회를 잃고 도주해버렸다. 그토록 강성했던 켄츄게이트 용병단은 그렇게 절반 이상의 세력이 깎여나가 본거지인 세드러로 후퇴할수 밖에 없었다.


"내가 대장인데 돌아가면 사기는 어떻게 하려고!"


"나도 대장이야."


"상대는 그 켄츄게이트야! 내가 빠져도 이길거라고 생각해?"


"내가 막아주지 않았으면 예리엘은 큰일날 뻔 했어."


"바보! 멍청이! 그깟 총알 나도 피할 수 있었어!"


"못 피해."


"피해!"


"못 피해."


아미는 레인에게 "우리 전투는 한시간 전에 끝났다고 말해야하나요?"라고 물었다. 레인은 고개를 저었다.


"모처럼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 중이니까, 그냥 두죠."


"허허, 설마 총알도 막을 줄이야. 우리 상단장님은 엄청나구만."


아리스토틀은 껄껄 웃으며 승전록을 기록했다.


작가의말

가이아 프레디히는 티프소의 역사에는 변절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역사서에 등장할 때면 티프소인들은 조국을 배신한 그의 악행에 대해 낱낱히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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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0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1 16.01.14 212 0 8쪽
20 19화. 전야 16.01.14 237 0 10쪽
19 18화. 선지자 15.10.16 203 0 12쪽
18 17화. 알리시아 영지의 마녀 15.08.21 273 1 13쪽
17 16화. 마후라나 15.08.17 280 1 14쪽
16 언젠가의 이야기 15.08.12 219 2 22쪽
15 15화. 해피엔딩 15.07.22 199 2 12쪽
14 14화. 검과 탄환 15.07.20 249 1 11쪽
13 13화. 게랄드의 함정 15.07.16 275 3 9쪽
12 12화. 볼페레 15.07.15 339 2 9쪽
11 11화. 고집불통의 두 사람 15.06.29 241 3 12쪽
» 10화. 스스하 수비전 -2 15.06.22 264 2 22쪽
9 9화. 게랄드의 교섭, 그리고 동맹 15.06.17 222 3 7쪽
8 8화. 스스하 수비전 -1 15.06.01 257 2 7쪽
7 7화. 광마 도적단 15.05.08 254 2 28쪽
6 6화. 파키스 공략전 15.04.27 276 2 16쪽
5 5장. 후퇴 15.04.24 247 2 12쪽
4 4화. 복수만을 위하여 15.04.20 245 2 8쪽
3 3화. 나보 수비전 15.04.20 267 3 23쪽
2 2화. 소녀와 소년 15.04.20 311 1 8쪽
1 1화. 게랄드와 예리엘 15.04.20 302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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