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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붉은 거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32
최근연재일 :
2016.01.18 02:00
연재수 :
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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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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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글자수 :
143,055

작성
15.07.1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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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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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2화. 볼페레

DUMMY

브이젠 상단의 본사가 있는 도시인 세드러에서부터 스스하까지 이르는 길은, 지도상으로 보면 도보로 이틀거리에 불과했지만 실제로 걸어보면 무려 일주일이나 걸릴 정도의 고행이 요구되었다. 그 길은 오래 전부터 설인이 살고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높고 험한 산악지대를 관통하고 있었다. 테르센트에서는 다시 보기 힘든 이 험준한 산맥을 고대인들은 리베리아 고대어로 '고난'이라는 뜻인 '볼페레'라고 불렀다.


볼페레는 마차나 수레는커녕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도 없었지만 없었지만, 놀랍게도 아주 역사가 긴, 제대로 된 마을이 하나 있었다. 경사면을 반쯤 깎아서 만든 마을은 다른 지역과 고립된 상태로 역사속에서 등장했다.


처음 마을을 세운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그 문화를 지키며 평화롭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마을은 사실상 고도(孤島)이며, 길 잃은 사람조차 오는 일이 없었다.


그들은 해가 제대로 드는 8주간 고사리와 겨울콩 농사를 지었고, 그 이외의 시간에는 야크를 돌보았다. 험한 산악을 뛰어 다닐 수 있는 야크는 볼페레 사람들의 다리가 되어주었고, 고기와 젖과 가죽을 주기도 했다. 야크의 젖으로 만든 전통치즈는 각 가정마다 다른 맛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그들의 자랑거리였다.


그랬던 이 산맥의 마을이 재조명 된 것은 백 여 년 전, 야크의 희소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면서 브이젠 상단은 상단 연합에 볼페레를 관통하는 길을 만들자고 제의했다. 테르센트의 마도사들은 토굴작업에 적합한 주문을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공사는 수월하게 흘러갔다.


볼페레 산을 관통하는 동굴이 생기고 길이 뚫린 다음 몇번의 보수 공사를 거치며 볼페레 루트는 상단들이 누구나 군침을 흘리는 핵심 돈줄이 되었다. 마차는 물론이고 기병대가 달려서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뚫리자 많은 이들이 볼페레를 방문했다.


이 평화로운 마을 사람들, 특히 새로운 문화를 접한 젊은이들은 야크의 축산업을 시작했고, 그들이 벌어들이는 돈은 마을을 윤택하게 만들었다. 다만 더 이상 마을은 그들이 알던 마을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티프소에 수출까지 되는 겨울콩은 이제 1년 내내 경작되었고, 계단식 밭에는 티프소에서 지원한 탈곡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쉬지 않고 석탄연기를 뿜어냈다. 각자 자신의 일을 하면서 자발적으로 지켜지던 평화는 사라진지 오래였다. 마을 사람들은 서로를 믿지 않았고, 유입된 외부인을 경계하면서 치안도 나빠졌다. 그들의 친구였던 야크는 고가의 수입을 보장하는 축산물이 되어버렸다. 수 백 마리의 야크가 축사에 갇혀서 윤기 없는 털을 바짝 세우고 투실투실하게 살이 붙는 모습을 보는 것은 이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켄츄게이트 용병단이 근처 세력을 공격할 때 볼페레는 싸우지도 않고 두 손을 들었고, 용병단에게 공물을 착취당했다. 때문에 피아조 상단이 그들의 마을에 왔을 때 상업에 찌들어 있던 사람들은 켄츄게이트가 피아조로 바뀌는 것에 불과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마을의 정신을 지켜왔던 몇몇 노인들은 크게 기뻐하며 기꺼이 겨울콩떡을 내놓고, 야크를 잡아 고기와 치즈를 대접했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거대한 솥을 곁에 두고 조금 이른 식사가 시작되었지만, 워낙에 좋은 냄새가 나서 불만을 갖는 사람은 없었다.


"... 이렇게 말하긴 좀 그런데 말이에요."


양념이 벤 야크의 다리살을 우물거리는 예리엘에게 레인이 작게 헛기침을 하고 말했다.


"우리가 여기를 지키는 건 무리일 것 같아요."


"움?"


예리엘은 고기를 삼키던 도중에 뭔가 말했지만 잘 들리지 않았으므로 레인은 말을 이었다.


"이 곳은 우리에게 너무 불리해요. 터널을 막고 지킨다는 것은 보통의 전술에서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겠죠. 하지만 상대는 머스켓티어에요. 우리가 지키는 것도 쉽지 않을 거고, 타격을 줄 방법도 없을 것 같네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지?"


게랄드가 기름진 힘줄을 열심히 씹고 있는 예리엘을 대신해서 물었다.


"터널에서 적들이 빠져나오면 그 때 후방을 끊고 기습하는 것이 좋겠지요. 터널에서 나오는 쪽의 출입구는 근처가 제법 넓거든요. 많은 수의 잠복은 불가능해도, 적을 갈라놓을 만한 수는 충분히 숨어있을 수 있어요. 적들이 우리의 기습을 예측하지 못한다면 좋고, 예상한다해도 제대로 대응할만한 작전은 없어요. 우리에겐 대륙 최고의 백병전 투톱이 있으니까요."


레인이 은근히 말하자, 다른 참모진의 시선은 두사람을 향했다. 예리엘은 씹던 힘줄을 억지로 꿀꺽 삼키고, "당연하지. 앞장 서겠어."라고 선언했다. 게랄드는 즉시 반대하려 했지만, 예리엘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적을 끊는 것은 반드시 두 방향에서 이루어져야해. 한쪽은 당연히 우리 상단에서 가장 강하신 게랄드 상단장님이 맡아주시겠지만 반대쪽에서 서는 사람의 공격이 약하면 적들을 갈라놓는데 시간이 들고 작전은 실패해. 작전이 실패하면 우리 상단도 끝나고 대륙도 멸망하고 세계도 멸망하니까 이견이 있으면 잘 아껴뒀다가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몰래 외치라구!"


"......"


아니, 아무래도 그 정도일리는 없지. 게랄드는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예리엘이 워낙 떽떽거려서 말을 하는 대신 야크의 내장을 끓인 국을 한모금 마시고 조금 시간 간격을 둔 다음 입을 열었다.


"그럼 이 마을은 못 지킨다는거야?"


"응?"


"우리가 방금 지나온 터널로 되돌아가서 싸우자는 이야기 아냐?"


"그런 이야기야?"


레인은 예리엘에게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 돼! 그럼 우리에게 야크 뒷다리살을 구워주신 이 분들은 모조리 살해될테고 우리 상단도 끝나고 대륙도 멸망하고 세계도 멸망하잖아!"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도일리는 없죠."


레인은 누구와는 다르게 단언했다. 하지만 예리엘은 척, 하고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아무튼 이 사람들을 지키는 전술을 만들어줘. 최근 들어 상업에 길들여져서 물건값을 자꾸 올려받고 있지만, 이 사람들 기본적으로는 착한 사람들이라구."


게랄드도 예리엘의 등 뒤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레인은 두 사람의 고집을 꺾는 것을 포기하고 한숨을 연속으로 두 번 쉬었다.


"그럼 이길 방법이 없다니까요."


"어떻게든 생각해내요, 레인양. 당신은 내가 믿고 있는 참모니까, 이 정도는 해주지 않으면 곤란해."


예리엘은 갈비 소스를 입가에 묻힌 채로 겨울콩으로 만든 쫄깃한 떡을 우물거리며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레인이 자타공인 유능한 전략가라 해도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었다.


예리엘의 의견으로 나무를 베어내어 마을 앞에 엄폐물을 만들고 적의 사격을 막아내려 했는데, 워낙에 나무가 적은 산이라서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더구나 적의 이동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다.


1만의 군세를 이끈 인피던과 켄베트로는 볼페레로 접어들자마자 신속하게 접근했다. 500의 병사를 통솔하여 부실한 목책을 보강하던 아미와 아리스토틀은 적의 접근을 확인하자마자 목책을 포기하고 즉시 마을로 퇴각했다.


"그렇게 적이 많았어?"


예리엘이 깜짝 놀라 묻자 아리스토틀은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도저히 지켜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거기에 서있었다가는 걸어다니는 표적이 될 뿐이라구요."


땀을 닦으며 아미도 아리스토틀을 거들었다.


"이렇게 되면 마을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어요. 터널의 반대편으로 돌아나가도록 하죠."


레인이 말했으나 예리엘은 으으, 하고 나직히 신음할 뿐 끄덕이지 않았다.


"우리도 정예병이 동수잖아. 같은 수인데도 물러나야 하는거야?"


"부상단장님. 저들을 정면에서 맞서면 승산이 높지 않아요. 설령 이긴다해도 피해가 크면 의미가 없어요. 잊으면 안돼요. 우린 상인이라구요. 적자가 나는 싸움을 할 수는 없습니다."


레인이 차분히 그녀를 달랬다. 예리엘은 반쯤 포기한 얼굴로 게랄드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시선이 "어떻게하지?"라고 묻고 있는 것을 눈치채고 게랄드는 고개를 갸우뚱하고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라고 시선으로 답했다.


"에?"


"저들의 목표는 우리랑 싸우는 게 아냐. 날 잡는거야."


"그런거야? 정말 그래?"


예리엘은 뭔가 계산을 하는 레인의 옆모습에 물었다.


"그야 그렇겠죠."라고 대답하면서도 검지 손가락을 손바닥위에 까딱거리는 레인. 게랄드는 그 모습에 자신의 생각이 맞았음을 알고 조금 목소리를 올렸다.


"그럼 내가 가는 곳으로 적이 온다는 뜻이잖아."


"그거야... 그런데?"


예리엘의 불안한 목소리에도 게랄드는 씨익 웃었다.


"그럼 내가 미끼가 되겠어. 레인씨. 거기에 맞춰서 작전을 짜줘."


작가의말

Q. 등장 인물 중에 누가 가장 쌘가요?

A. 무기가 있다면 게랄드가 가장 강하고, 무기가 없다면 말릭이 가장 강합니다.

질문은 댓글로 부탁드려요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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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2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3 16.01.18 212 1 12쪽
22 21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2 16.01.14 125 0 19쪽
21 20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1 16.01.14 212 0 8쪽
20 19화. 전야 16.01.14 237 0 10쪽
19 18화. 선지자 15.10.16 203 0 12쪽
18 17화. 알리시아 영지의 마녀 15.08.21 273 1 13쪽
17 16화. 마후라나 15.08.17 280 1 14쪽
16 언젠가의 이야기 15.08.12 220 2 22쪽
15 15화. 해피엔딩 15.07.22 200 2 12쪽
14 14화. 검과 탄환 15.07.20 249 1 11쪽
13 13화. 게랄드의 함정 15.07.16 275 3 9쪽
» 12화. 볼페레 15.07.15 340 2 9쪽
11 11화. 고집불통의 두 사람 15.06.29 241 3 12쪽
10 10화. 스스하 수비전 -2 15.06.22 264 2 22쪽
9 9화. 게랄드의 교섭, 그리고 동맹 15.06.17 222 3 7쪽
8 8화. 스스하 수비전 -1 15.06.01 257 2 7쪽
7 7화. 광마 도적단 15.05.08 254 2 28쪽
6 6화. 파키스 공략전 15.04.27 276 2 16쪽
5 5장. 후퇴 15.04.24 247 2 12쪽
4 4화. 복수만을 위하여 15.04.20 245 2 8쪽
3 3화. 나보 수비전 15.04.20 267 3 23쪽
2 2화. 소녀와 소년 15.04.20 311 1 8쪽
1 1화. 게랄드와 예리엘 15.04.20 302 2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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