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필더 님의 서재입니다.

테르센트 연대기 ~ 붉은 거인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퓨전

필더
작품등록일 :
2015.04.20 11:32
최근연재일 :
2016.01.18 02:0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5,717
추천수 :
37
글자수 :
143,055

작성
15.04.27 10:08
조회
276
추천
2
글자
16쪽

6화. 파키스 공략전

DUMMY

어린 시절, 마렌 슈노는 아버지인 아리스토틀 슈노를 자주 원망했었다. 마렌과 그녀의 언니 셰르는 혼혈이라는 이유로 어디에도 있을 수 없었다. 티프소인들 사이에서도 테르센트인들 사이에서도 그녀는 병균취급을 당했고, 그것이 당연하다는 것을 이해했었다. 어린 시절의 분노의 대상은 부모에게 돌아갔다.


"어째서 날 낳았어?!"


그녀의 입버릇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녀의 아버지는 가끔은 화를 냈고, 가끔은 술을 마시고 울었지만, 대부분 웃어넘겼다. 그래도 아버지의 웃음은 언제나 슬퍼보였다.


세 사람이 피아조 상단에 정착한 후에 마렌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언니인 셰르와 다르게 그녀는 선천적으로 발랄했다. 마렌은 열성적으로 일을 배웠고, 어느덧 누구보다도 즐겁게 웃게 되었다.


"이야, 마렌, 참 여기 잘 온 것 같아."


"뭐가요?"


"너 웃을 때 목젖도 보인다?"


"이상한 소리를 할 거면 아빠라도 때릴거에요?"


아리스토틀은 껄껄 웃었다. 드디어 한숨을 돌린 듯한 그의 모습에 마렌은 피식 웃을 여유가 생겼다. 그 때 쯤 되어서는 냉정하게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티프소인이었던 어머니를 사랑했다고 했다.


"네 엄마는 정말 챠밍했지."


아리스토틀은 아내를 잃은지 15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이야기를 하며 행복하게 웃었다.


"그런 엄마가 없는데 슬프지 않아?"


마렌이 묻자 그는 늘 그렇듯 허허 웃었다.


"네 엄마를 똑같이 닮은 너희가 있잖아. 그리고..."


아리스토틀은 마차에서 짐을 꺼내며 큰 소리로 갯수를 복창하는 예리엘과 게랄드 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마렌은 그 뜻을 알아듣고 피식 웃었다. 즐거웠다. 마렌도 피아조 상단의 사람들을 가족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이 곳의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 무엇이든 할 자신이 있었다. 다만 마렌과 셰르는 상단에서 밖으로 나가는 일을 전혀 할 수 없었다. 두 사람은 여전히 피아조 상단 이외의 세계를 부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번에 레인이 키알루로 파견할 사람으로 마렌을 지목했을 때, 그녀는 한참이나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서둘러줘."


"하.. 하지만 다른 사람도...!"


"마렌, 네가 제일 말을 잘타잖아."


"그건 그렇지만..."


"메신저의 가장 중요한 능력은 속도야. 부탁해. 상단의 미래가 너에게 달려있어."


마렌은 꿀꺽 마른 침을 삼키고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투덜거리면서도 빠른 말을 골라타고 남쪽을 향해 질주했다. 약간의 기대는 있었다. 새로운 세상에 대해 끝없이 피할 마음이 있던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여태까지 눈을 돌리고 있던 세계를 바라보게 되었다. 어린 기억 속에 있던 세상은 훨씬 더 어두웠던 것일까. 마렌은 말을 타고 가는 내내 미소짓거나 놀라워했고, 호기심이 많은 눈으로 주변을 모두 기억하려는 것처럼 둘러보았다. 겨우 17세 소녀였던 그녀에게 세상은 굉장히 진기한 것이 가득했다.


그러나 메렌스 외각을 지나면서 그녀는 생각을 바꿔야 했다.


티프소든, 테르센트든, 혼혈인이든 이 세상에는 있을 수 없었다. 피의 웅덩이에 시체가 하늘로 손을 뻗고 있었다. 네번째 손가락은 잘려있다. 아마도 반지라도 끼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이들이 발가벗겨진채로 바닥을 뒹굴고 있었다. 아이들 중 몇몇은 이미 살아있는 것 같지 않았다. 배고픈 사람들이 전쟁통에 죽은 말고기를 굽고 있었다. 고기에는 파리가 달라붙어있다가 불길속에서 같이 타들어갔다. 구더기가 불타서 몸부림쳤다. 몇 명은 공포에 질린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자신의 몸을 지키기라도 하려는 듯 허공으로 칼을 휘둘러렀다. 마렌은 말을 달렸다.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자신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강도가 덤벼든다해도 질리 없다. 그녀는 마상전투에 특히나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이 광경은 그녀의 마음을 꺾어놓기에 충분했다. 마치 세상은 미쳐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둠이 드러워진 키알루에 도착한 것은 4주 1일. 그녀는 적잖게 침울해져 있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의지가 타올랐다.


"반드시 토뷔스로 원군을 요청하겠어. 저런 꼴이 나게 둘성 싶냐."


모다스 영지와 전투를 벌인지 얼마 안된 학생군들이 키알루에서 재건사업에 매진하고 있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마렌은 솔직히 그 규모에 실망했다. 겨우 몇 천의 학생들은 군대라고 부르기에는 너무나 약해보였다.


'자원봉사자 같은데.'


그녀는 투덜거리며 말에서 뛰어내렸다.


"유지니오라는 사람이 여기 대장이죠? 피아조 상단에서 왔어요! 할 말이 있습니다!"




유지니오와 그들의 참모들이 있는 곳에 안내된 마렌은 누군가 꺼내준 마실 것을 확인도 안하고 세잔 연거푸 들이마셨다. 테이블 가운데에 자리잡은, 아마도 유지니오는 평소라면 눈을 빛내며 구경할 정도로 잘생겼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마렌은 한숨을 돌리자마자 속사포를 터뜨렸다.


"피아조 상단에서 왔어요. 마렌 슈노라고 합니다. 이 곳의 지휘관인 유지니오 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요. 지금 켄츄게이트 용병대가 브이젠 상단을 점령하고 메렌스를 폐허로 만들어버렸어요. 피아조 상단에서 그들과 교전하여 간신히 나보는 지켜냈는데, 그 틈에 벨루통 상단이 배신을 해서 전투를 속행할 수가 없어요! 이대로 돌아가면 켄츄게이트 녀석들이 토뷔스의 모든 사람을 죽일거에요. 도움이 필요해요!"


너무나 빠르게 말했지만 그 자리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지난 한주, 브이젠 상단의 잔혹함은 대륙 전체를 흔들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도우면 어떤 이익이 있는데? 우리도 지금 전쟁중이잖아. 병력을 나눌 여유는 없다구."


거대한 덩치의 남자가 짐짓 거드름피우며 말했다.


마렌은 "이 근육 곰처럼 생긴 녀석아!"라고 욕을 퍼붓고 싶은 것 외치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이익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이대로 토뷔스가 멸망해버리면 동전 한닢도 여기로 가져올 자신이 없으니까요."라고 이를 갈며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휴식할 곳으로 안내하겠어요. 아나, 이 분을 방으로 모시고 필요한 걸 드리렴."


유지니오의 그 말을 기다리던 마렌은 두말 없이 귀엽게 생긴 여자아이의 뒤를 쫓았다. 솔직히 그녀는 쓰러지자마자 3일 밤낮은 잘 자신이 있었다.


손님용 막사의 침대는 생각보다 푹신했다. 지칠만큼 지쳤으니 즉시 잠들만도 하지만, 이상하게도 잠이 오지 않았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으니까...'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오갔다. 억지로 잠을 청해도 계속 생각이 이어졌다.


'상단 밖으로는 처음... 나왔네.'


처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강아지를 본 적이 있었다. 열흘 정도를 꿈틀거리다가, 걷기 시작한 이후 모든 것이 신기한 듯이 돌아다녔다.


'그 강아지도 나랑 기분이 비슷했을까?'


힘들었겠네, 하고 마렌은 중얼거렸다.


학생군의 토뷔스 출진이 확정된 것은 그 날 오후였다.


--------------------


"좋아, 이걸로 우리는 벨루통과 싸울 수 있게 되었어."


수레 위에서 마렌의 보고를 받은 예리엘은 손바닥을 짝 쳤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처리해야해요. 학생군은 그리 강하지 않아요."


마렌이 그렇게 말하자 예리엘은 잠시 고개를 갸웃하다가 "마렌이 보기에 그 사람들 어땠어?"라고 물었다.


"제가 보기에요? 학생군은 켄츄게이트 용병단이 총을 쏘면 한 발 쏠 때마다 셋 씩 쓰러질 것 같았어요."


"..."


예리엘의 표정이 우울해지는 것을 힐끔 확인한 다음, 게랄드는 더 빨리 수레를 몰았다.




피아조의 본진인 예리엘 부대가 북진한다는 소식을 듣고 뤼크 벨루통은 거의 울 지경이 되어 캐트릭을 나무랐다.


"게랄드 피아조가 파키스로 쳐들어오고 있다! 캐트릭, 우리 상단은 이제 어찌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제게 승리의 방책이 있습니다."


캐트릭은 창백한 얼굴이 되어서도 침착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건 무슨 말이냐? 지금이라도 화해를 청하는 편이 낫지 않겠느냐?"


뤼크가 바들바들 떨며 말하자 캐트릭은 이를 악물고 고개를 저었다.


"파키스는 성벽이 높고 곳곳에 망루를 설치해 두었기에 공성전에는 절호의 지형입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전력은 적에게 뒤지지 않습니다."


캐트릭이 그렇게까지 말하자 뤼크는 정신을 가다듬고 물었다.


"어떻게 막아야 하겠느냐?"


"게랄드와 예리엘은 엄청난 무인이지만 지략가가 아닙니다. 힘이 강해도 부딪칠 곳이 없다면 패하는 법이지요."


캐트릭의 눈빛이 안경 안에서 빛났다.




"우리는 절대 유리하지 않아."


예리엘은 지도를 한참 들여다보고 결론을 내렸다.


"길은 좁고, 다른 길도 없어. 망루에는 궁병들이 배치되어있을테고, 희생없이 파키스 성문 앞에 이를 수 없어. 심지어 풋남 상단의 성벽은 높고 튼튼하기로 유명하다구. 성벽을 넘어갈 수도 없고, 문을 부수는 것도 쉽지 않아."


게랄드는 그런 예리엘을 위해 무언가 말해주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입을 한일자로 다물고 듣기만 했다. 침묵이 이어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아미가 물었다.


"그럼 함부로 들어가면 안되잖아요? 일단 상황을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긴 한데..."


예리엘은 말을 흐렸다.


"그럼 어떻게 할까?"


게랄드의 질문에 예리엘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 가자. 가서 부딪치면 이길 방법이 보이겠지."


"일단 가?"


게랄드가 되물었다.


"응. 일단."


예리엘은 그녀의 긴 머리칼을 찰랑거리며 크게 끄덕였다. 아리스토틀은 딸들에게 유서라도 남겨야 하나? 라고 농담을 했고, 아미가 마구 핀잔을 주었다. 그 정도로 절망적인 출진이었지만 그녀의 선택은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옳았다. 왜냐하면 캐트릭의 작전을 우연히 깨뜨렸기 때문이다.




"적은 함부로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그렇다고 너무 오래 시간을 주면 피아조 상단에서 우리를 앞뒤로 포위하겠지요. 그러니 적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우리가 먼저 출진하여 기습병력을 배치하는 겁니다. 우리의 망루를 비워놓고 말이죠. 적들은 우리의 방비가 허술하다고 생각하고 진격할테고, 성문 앞에 이른 적을 후방에서 공격하면, 하루가 넘지 않는 사이 승리할 수 있을 겁니다."


케트릭은 검지 손가락을 세우고 멋진 미소와 함께 덧붙였다.


"게랄드와 예리엘이 항복이라도 한다면, 우리는 알피엑시 대륙의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지요!"


캐트릭의 작전은 듣기에 그럴싸 했기에 뤼크는 휘하의 장수들에게 명령하여 조용히 출격을 명령했다. 병사들에게 아침을 일찍 먹이고 새벽같이 성문을 빠져나온 캐트릭은 잠복병력을 배치하기 위해 길을 따라 나섰다.




"어? 저것들은 뭐야?"


마찬가지로 조용히 진군하던 피아조 부대의 선봉의 게랄드는 숲으로 바스락거리며 들어가는 수백명의 병사를 보고 후군 예리엘에게 서둘러 보고했다.


"적들이 기습을 하려고 숨는 걸 봤다고?"


예리엘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낄낄 웃었다.


"그럼 모른 척하고 계속 가자."


예리엘은 정예병력을 후방에 서게 하고 진군을 계속했다. 예상보다 빨리 예리엘의 부대가 지나가자 당황한 캐트릭은 함부로 기습하지 못하고 숨죽였으나, 숨어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것을 알자 승리를 예감했다.


"작전대로 녀석들을 포위할 수 있겠구나!"


하지만 그 예감도 잠시.


"쏴라!"


예리엘의 큰 외침과 함께, 피아조 상단의 후미가 숲을 향해 화살을 날렸다. 캐트릭은 깜짝 놀라 잠복부대에게 공격을 명령했는데, 그것도 이미 예측된 일이었다. 전장이 된 후미에 선 장수는 게랄드 피아조였던 것이다.


게랄드는 옆에 병사가 들고 있던 창을 빼앗아 들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는데, 치고 찌르는 것이 변칙적인데다가 정확했다.


보통 달인은 자신의 무기를 정해놓는데, 이는 무기의 길이와 무게가 익숙해져야만 최대의 무력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랄드는 그 점에서는 천부적이었다. 그는 어떤 무기를 들어도 최대의 효과를 낼 수 있었고, 때문에 무기에 구애를 받지 않았다. 심지어 무기가 아니라도 상관 없었는데, 창이 반으로 부러지자 양손 검술로 즉시 변화시켰고, 자신을 노리는 궁병을 향해 동시에 던져버린다음,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검을 집어 든 다음에도 날아오는 화살을 칼끝으로 튕겨낼 정도로 완벽했으며, 심지어 검이 부러지자 수송대에서 굴러나온 마차 바퀴를 휘둘러 적을 날려버렸다.


이쯤되자 벨루통 상단의 병사들은 공포에 질려 도주했고, 캐트릭도 허둥지둥 살길을 찾아 도망쳤다. 파키스 성에 이른 패잔병을 수용한 것은 그날 해가 질 무렵으로, 한나절에 걸친 싸움에 파키스 병력의 대부분이 전멸하는 참사가 벌어졌다.


그렇게 성에 돌아온 캐트릭을 탓하지 않고 뤼크는 다시 작전 회의를 열었다.


"우리의 작전은 읽혔으나 아직 패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높은 성벽이 있고, 적들은 이 곳에 이르지 못한다. 다만 염려가 되는 것은, 익스에 병력이 적다는 것이다. 즉시 누군가 가서 익스를 지켜야 한다."


뤼크의 말에 용기를 얻은 캐트릭은 자신이 직접 가겠다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그가 출격하기도 전에 속보가 이어졌다.


"피아조 상단의 부대에 익스가 함락했습니다! 그들은 상인으로 숨어 들어와 익스의 성벽을 점령하고, 그대로 무혈점령했다고 합니다!"


뤼크는 깊게 한숨을 쉬고 씁쓸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패한 것은 우리의 욕심 때문이니, 이 이상 사람들을 죽일 수 없다. 여기서는 항복하는 것이 도리인 듯 하다."


캐트릭도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뤼크는 그에게 온화하게 말했다.


"너는 아직 젊고 총명하니 나는 널 중히 쓰려 했지만 기회가 좋지 않았다. 네가 항복하면 그들은 널 높게 쓸 것이니 직접 가서 나의 뜻을 전해다오."


캐트릭은 벨루통 상단의 마지막 임무를 받고 출격했고, 뤼크는 그가 떠나자 조용히 방으로 돌아와 세잔의 포도주를 마시고 마지막 한잔에 독을 넣어 자살하였다. 뤼크가 죽자 그의 부하들은 하나같이 도망치기 바빴고, 파키스의 백성들은 자발적으로 피아조 상단을 환영하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체스터 캐트릭은 게랄드와 예리엘의 앞에 서서 당당히 말했다.


"우리 벨루통 상단은 피아조 상단에게 항복하고자 합니다. 이는 상단장 뤼크 벨루통님의 뜻입니다."


뜻 밖의 종결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고 아무말 하지 못했다. 캐트릭은 뤼크의 인장이 찍힌 항복서를 건네고 흔들림 없이 말했다.


"뤼크님은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제가 그 분에게 강요하여 전쟁을 일으킨 것이니, 제 목숨으로 그 죄를 갚도록 해주십시고 그 분과 부하들을 용서해주십오. 이미 성문을 열었습니다."


게랄드는 그를 바라보았다. 파리해보이는 외모에, 볼품없는 안경을 쓰고 있었으나 항복을 청하러 왔는데도 굽히지 않는 기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다. 그런 게랄드의 시선을 읽은 예리엘은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짓고 말했다.


"좋아요. 전쟁의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거짓 항복은 아닐까요?"


아미가 조심스럽게 속삭였지만 예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만한 병력은 없을거야. 게다가 뤼크 아저씨는 그렇게까지 할 사람이 아냐."


캐트릭은 이에 감사하고 피아조 부대를 인도하여 파키스로 들어섰다. 백성들의 환호를 뒤로하고 아리스토틀과 아미는 민심을 수습하고 상단의 재산을 관리했다. 뤼크의 자택 앞에 와서야 그의 자살을 알게 된 캐트릭은 통곡했고, 벽에 머리를 부딪혀 혼절하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이튿날 주군을 쫓고 말았다.


예리엘과 게랄드는 그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같은 날 장사를 치르게 했으며, 장례일을 전후하여 모든 병사에게 검은 완장을 달게 하고 금주령을 내렸다.


작가의말

테르센트인과 티프소인은 기본적으로 외형에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테르센트의 평균 신장은 티프소인보다 크며, 반사신경과 근력이 높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테르센트 연대기 ~ 붉은 거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2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3 16.01.18 213 1 12쪽
22 21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2 16.01.14 126 0 19쪽
21 20화. 그와 그녀의 잔혹했던 이야기 -1 16.01.14 212 0 8쪽
20 19화. 전야 16.01.14 238 0 10쪽
19 18화. 선지자 15.10.16 203 0 12쪽
18 17화. 알리시아 영지의 마녀 15.08.21 273 1 13쪽
17 16화. 마후라나 15.08.17 280 1 14쪽
16 언젠가의 이야기 15.08.12 220 2 22쪽
15 15화. 해피엔딩 15.07.22 200 2 12쪽
14 14화. 검과 탄환 15.07.20 250 1 11쪽
13 13화. 게랄드의 함정 15.07.16 276 3 9쪽
12 12화. 볼페레 15.07.15 340 2 9쪽
11 11화. 고집불통의 두 사람 15.06.29 241 3 12쪽
10 10화. 스스하 수비전 -2 15.06.22 264 2 22쪽
9 9화. 게랄드의 교섭, 그리고 동맹 15.06.17 222 3 7쪽
8 8화. 스스하 수비전 -1 15.06.01 257 2 7쪽
7 7화. 광마 도적단 15.05.08 254 2 28쪽
» 6화. 파키스 공략전 15.04.27 277 2 16쪽
5 5장. 후퇴 15.04.24 247 2 12쪽
4 4화. 복수만을 위하여 15.04.20 245 2 8쪽
3 3화. 나보 수비전 15.04.20 267 3 23쪽
2 2화. 소녀와 소년 15.04.20 311 1 8쪽
1 1화. 게랄드와 예리엘 15.04.20 302 2 2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