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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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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마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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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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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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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1
추천수 :
70
글자수 :
47,473

작성
18.09.29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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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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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7쪽

고라니 주의보2

DUMMY

입에 갖다 댄 두툼한 검지, 감은 눈, 들창코와 검은빛의 입술, 이중 턱.

주인 얼굴 주위의 근육들과 눈코입의 위치가 바뀌며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부위별로 따로 놀다 합치하고 다시 배열됐다. 슬로우 모션처럼 아주아주 느리게 움직이다, 필름을 감듯 빠르게 제 얼굴을 되찾았다. 희미한 노란색 전등 아래 그 모습은 기괴하면서 우스꽝스러웠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는 듯했다.


민식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오늘 너무 무리한 탓에 머리가 어떻게 됐나 하며 허둥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것은 현실이 아닌 환상이라 생각했다. 민식이 세면대 위의 거울을 보며 눈을 치뜨기도 하고 손으로 눈 주위도 두드려보고 얼굴을 꼬집기도 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어 보였다. 평상시와 같다. 얼굴이 약간 탄 거 말고는 변한 건 하나도 없었다.


“잠시 정신 줄을 놓았을 뿐이야. 고민식 정신 차리자!”


거울 속 자신을 보며 양 손바닥으로 철썩 얼굴을 때렸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며 2호실로 들어온 민식이 에어컨을 켰다. 차가운 물로 샤워 후 여벌로 가져온 내의와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여전히 꺼림칙한 게 남아있었다.

민식이 둥그런 간이 의자에 앉은 채 탁자에 팔을 대고 턱을 받쳤다.


‘주인의 얼굴 변형이 환상이라 치자. 몇 초간 정신이 나갔다고 치자고. 근데 주인이 경고하며, 눈을 감고 입에 검지를 얹은 건 무슨 의미일까.’


주인의 행동이 위협적으로 보이진 않았다.


‘입에 검지를 댄 건 입을 조심하라는 말일 텐데. 아니, 그 노신사에 대해 더는 묻지 말라는 말인가.’


어떻게 보면 장난기가 묻어있었다.


‘얼굴을 찡그리면서까지 몇 초간 눈을 꾹 감은 건 또 무슨 의미일까.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못 들은 척하라는 말인가.’


노신사와 민박 주인이 연결되어 있고 주인이 뭔가를 숨기고 있다고 민식은 생각했다. 숨기려는 것을 애써 파헤칠 생각은 없다.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틀간 이승희를 미행하며 얻은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직장 일로 머리가 아파서 여기까지 왔는데, 복잡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 집은 뭔가가 수상하다. 노신사, 민박 주인의 행동, 잠깐의 환각, 대머리 아저씨와 리사, 그리고.......’


누군가가 나를 이상한 장소로 툭 하고 밀친 것만 같다. 새벽 산길의 고라니같이 무언가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고 민식이 생각했다.


방에 맞지 않은 큰 금고, 금고 위의 오래된 전화기도 묘하게 보이긴 마찬가지였다. 기분 때문일까. 금고의 암갈색도 조금은 옅어 보이기까지 했다.


‘도대체 저 바위 같은 금고는 뭐고, 저 먹통인 장식용 전화는 또 뭘까. 어휴, 잠이나 자자.’




민식이 운전대를 잡고 어둡고 안개 낀 길을 달리고 있다. 뒷좌석에서 중년의 여자가 말한다.


“내가 새벽에 이 길을 지나면서 고라니를 두 번이나 치였죠. 한 번은 어미와 새끼를 동시에 친 적이 있어요. 어미는 튕겨 나가고 새끼는 두 바퀴에 깔렸죠. 덜컹, 덜컹하고 말이죠. 내 생애 첫 번째 로드 킬이었죠.”


중년 여자의 담담한 목소리. 오디오 북에서 나오는 음성 같았다.


“차를 세우고 한동안 가만히 있었어요.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지요. 율곡리에서 기사식당을 하는데, 새벽 장을 보고 들어가는 길이었죠.”


민식은 꿈에서 대리기사였다. 손님을 태우고 시내에서 파주 파평면 율곡리까지 가는 길이었다.


“급브레이크를 밟고 한동안 차 안에 있었어요. 현실을 직시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했죠.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죠.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어요. 몇 미터 떨어진 곳엔 고라니 어미가 일어나려고 네 다리를 허공에서 버둥댔고 새끼는 쓰러진 채 아무런 미동도 없었어요.”


민식은 도대체 손님이 이런 말을 하는지 이해가 안됐다.


‘대리를 불렀으면 입 닫고 잠이나 쳐 잘 것이지.’


지금 가는 산길도 조심해야 하는데, 운전하는데 집중할 수 없었다.


“나는 죽은 새끼 고라니를 풀숲으로 옮기려고 했지만, 도저히 용기가 안 났어요. 어미는 버둥대면서 새끼 쪽으로 고개를 돌렸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민식이 상향등을 켜고 전방을 주시했다. 운전자가 동물이나 사람을 치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마치 자신이 차에 치이는 것처럼 고통이 수반되는 상상이었다. 머리통이 반쯤 날아가 골수가 터져 나오고, 배 속의 내장이 도로 위에 나뒹굴고 있는 동영상이 떠올랐다.


‘이번 콜은 완전 똥 콜이네. 파주 가는 걸 잡지 말았어야 했는데.’


여자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저쪽 모서리를 돌자마자 고양이를 치인 적이 있죠.”


‘제길, 로드 킬 자랑질하는 사람은 처음 보겠네, 오늘 일진 더러운 날이네.’


“저기 안쪽으로 가면 저수지가 나오는데, 사람 죽여도 못 찾을 거예요.”


여자는 겁을 주려는지 흉흉한 얘기를 계속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지만, 민식은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여자가 높낮이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여기부터 정신 바싹 차려야 해요.”


민식이 상향등을 켰다. 그리고 무언가가 풀숲에서 튀어나왔다. 어, 하는 순간 고양이를 밟고 넘어간 뒤였다.


“호호호, 그것 봐요. 자기만은 피해갈 수 있다는 생각. 그거 기만이에요. 누구에겐들 닥치는 일이죠.”


민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이제야 느낌을 알 수 있었다. 상상 속의 고통보다는 덜 했다. 하지만 맥박이 빨라지면서 혈관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잘하고 있네요. 로드 킬 하더라도 직진, 쭈욱 직진할 것. 어중간하게 피했다간 골로 가는 수가 있죠.”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수 없는 일이 있다. 로드킬처럼.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온다. 민식은 방금 친 고양이가 길을 건너려 한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 전조등과 차의 진동이 들고양이의 신경 체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차가 다니지 않은 새벽에 갑자기 차로 뛰어든 걸 보면.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이건 또 뭐야. 고양이 말고 고라니.’


“따르르르릉, 따르르르릉.”


‘저 여자, 전화를 받질 않는 걸까....... 내 전화인가.’


민식이 상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찾으면서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았다. 차가 기우뚱대며 중앙선을 넘는다.


"호 호 호 호 호. 헤 헤 헤 헤 헤."


여자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민식은 여자가 궁금했다. 뒤를 돌아본다.


'여자가 없다........'


여자가 있어야할 좌석엔 작은 카세트 플레이어만 덩그러니 놓여있을 뿐이다. 다시 전면을 응시하며 핸들을 꺾었지만, 낭떨어지다. 차가 떨어지는 찰라 민식이 눈을 번쩍 떴다.


민식이 주위를 더듬는다. 민박집 침대 위. 전화 벨은 현실을 알리는 울림이었고 계속 울리는 중이었다. 그것은 저쪽에서 이쪽으로 부르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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