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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마동의 서재입니다.

마카오 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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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마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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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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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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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글자수 :
47,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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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9.26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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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고라니 주의보1

DUMMY

마카오의 랜드마크라는 베네시안 호텔 정문 앞에서 고민식이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대형 버스에선 쉴 새 없이 관광객들이 내렸다.

호텔 로비 천장엔 미켈란젤로 풍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유서 깊은 대성당 콘셉트지만, 어떤 감동이나 궁극의 미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렇게 치장하는 데 얼마나 들었을까.’


속물적 관점으로밖에 접근할 수 없는 게 누구의 탓일까 라고 생각하며 노랫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갔다. 인공 수로 위엔 곤돌라에서 서양 사공이 세레나데를 부르며 노를 젓고 있었다. 민식은 끊임없이 사진을 찍어대는 관광객에 훨씬 흥미를 느꼈다.


‘감흥이 없다......’


카지노장으로 들어갔다. 운동장 크기의 3배라는데, 어디가 끝나는 지점인지 모를 정도다.


‘정신 줄 놓으면 들어온 입구도 못 찾겠는걸.’


우웅~~ 하는 소음이 기분 좋은 울림은 아니었다. 나쁜 기운이 자신을 감싸는 듯했다.

게임 테이블엔 사람들이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민식이 구경을 했지만 룰이 궁금하거나 게임을 하고 싶진 않았다. 한쪽으로 가자 머신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명색이 세계 최고의 카지노에 왔는데, 시늉이라도 내볼까. 알 게 뭐야, 잭팟이라도 터질지.’


100불을 기계에 넣고 버튼을 몇 번 눌렀다. 순식간에 100불이 사라졌다. 민식이 일어설까 하다 100불을 다시 넣었다.


서너 번 정도 눌렀을 때였다. 왕관 세계가 연속으로 나오고 프리게임이 시작됐다. 같은 그림이 3개 이상 나오면 점수가 올라갔다. 이번엔 조커 역할을 하는 그림이 5줄 중 4개가 나왔다. 신나는 음악이 나오면서 황금색 엽전이 화면 위에서 폭포처럼 쏟아졌다. 점수가 계속 올라갔다. 민식이 멍하게 화면을 보고 있었다. 공중에 붕 떠 있는 느낌이었다.


‘얼마를 번 거지? 백만 원? 천만 원?’


가슴이 두근댔다. 최소 중고차라도 살 수 있는 금액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점수 계산이 끝났는지 화면이 멈췄다. 페이 아웃 버튼을 누르고 영수증이 프린트되어 나왔다. 거기엔 323달러가 적혀 있었다. 민식이 조금은 실망한 눈치였다.


‘그래도 35만 원 정도는 벌었네. 200불 넣고 이 정도면 대박이지.’


영수증을 들고 카운터로 가서 영수증을 내밀었다. 직원이 바코드를 찍고 지폐와 동전을 내어 주었다. 순간 민식이 착각을 했다고 생각했다. 미화가 아니라 홍콩 달러 323불이었다. 5만원도 안 되는 돈이다.


‘그럼 그렇지, 그래도 이게 어디야? 맛있는 거라도 사 먹자.’





민식은 세나도(시청) 광장, 육포 거리, 성 바울 성당을 가볼 참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가는 길을 알아보았다. 택시를 타면 금방이지만, 급할 건 하나도 없었다. 오후 2시. 마카오에 오래 머문 듯했지만, 겨우 12시간밖에 지나지 않았다. 남는 건 시간 밖에 없다. 경비도 아낄 겸 호텔에서 제공하는 무료 셔틀을 이용해볼 생각이었다.


인터넷 개인 블로그나 카페에서 여행 정보를 찾았다. 같은 계열의 호텔과 중요지점(공항, 페리 선착장, 국경 관짜 등)은 대부분 운행했지만, 관광지까지 바로 가는 셔틀은 없었다. 그래서 세나도 광장 근처까지 가는 셔틀을 찾아야만 했다.


검색하다 깔끔하게 정리한 블로그가 눈에 들어왔다.


1. 베네시안 호텔 맞은편 시티 오브 드림 호텔로 간다.

2. 셔틀 승강장으로 가서 페닌슐라 호텔 승강장을 찾는다.

3. 그 버스를 타고 그랜드 엠 퍼렐 호텔에서 하차한다.

4. 하차 후 구글 맵으로 세나도 광장을 찾는다.


설명은 간단했지만, 하나하나 찾는 과정이 간단치만은 않았다.


엠 퍼렐 호텔 하차 후 세나도 광장까지 10분 남짓 걸었는데, 반소매 티셔츠가 땀으로 젖어 있었다. 그나마 선글라스와 반바지를 준비한 게 다행이었다. 후덥지근하고 햇살이 강했지만, 광장은 많은 사람으로 붐볐다.

세나도 광장 주변의 유럽풍 건물이 멋스러웠다. 광장을 가로질러 성 바울 성당으로 가는 길목에 들어서자 육포 거리가 나왔다. 소매치기 많기로 악명이 높은 이유를 알만했다. 골목엔 수많은 관광객이 뒤엉켜있었다. 그 와중에 점포 앞엔 점원들이 목청을 높이며 시식을 권했다. 민식은 점포마다 내놓은 시식용 육포와 전통 과자를 하나하나 집어 먹으며 사람들 사이를 요령껏 피해갔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성당 길목엔 묵주나, 십자가, 성모 마리아상 등 종교 관련 기념품점이 자리하리라는 예상을 깨고 육포 거리가 있는 게 아이러니했다. 이런 고난(?)의 길을 통해 드디어 성 바울 성당을 마주할 수 있었다. 마카오 하면 성 바울 성당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는데, 보자마자 고개가 끄덕여졌다. 민식은 처음으로 사진을 찍었다. 주변에 많은 사람으로 온전히 건물 전체를 찍을 수가 없었지만.


성 바울 성당은 대형 화재로 건물 전면만 남아있었다. 건물을 톱으로 얇게 썰어 뒷부분은 잘라내고 전면만 남겨둔 듯 좁은 옆벽이 건축물을 지탱하고 있었다. 건물이 넘어지지 않고 수백 년 동안 서 있는 게 의아했다. 화려한 앞면과 달리 후면은 너무나 보잘것없어 가슴이 짠할 정도였다.


배도 고프고 더웠지만, 리스보아 호텔까지 걸어갔다. 그곳 뷔페가 가성비가 좋다고 인터넷서 본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베네시안에서 딴 돈이면 충분했다.


민식은 구글맵을 켜고 리스보아 호텔을 찾아갔다. 지도를 따라 20분 정도 헤매자 리스보아 호텔이 나타났다. 용의 머리를 형상화해 지은 호텔이라는데, 주변을 압도할 만큼 웅장하고 화려했다.


뷔페는 6시 30분에 오픈이었다. 5시 정도 됐으니 한 시간 이상 시간을 때워야 했다. 밖은 너무 더워, 어쩔 수 없이 호텔 내 카지노에서 어슬렁대며 공짜 음료를 마셨다. 바카라 게임을 하는 사람들의 표정에는 한판 한판의 결과에 따라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아까 자신도 기계에서 한탕의 꿈을 꾸지 않았던가. 중고차라도 살 수 있길 바라지 않았는가. 하물며 자신보다 몇십 배 몇백 배의 돈을 베팅하는 도박꾼은 훨씬 큰 걸 바라겠지 하고 민식은 생각했다.


‘마카오엔 왜 왔을까.’


민식은 스스로 묻는다. 물론 노신사 때문에 왔지만, 아직 그를 만나지 못했다.


노신사가 며칠 전 공항에서


‘훗날 다시 보길 바랍니다.’


하고는 명함을 주지 않았던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했는데, 다른 이가 전화를 받았다. 민박 주인이라는 사내는 노신사를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마카오가 도박 도시라고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카지노가 많은 줄은 몰랐다. 큰 호텔이든 작은 호텔이든 어김없이 카지노가 있었다.


노신사가


‘고민식 씨의 얼굴에서 절망을 보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절망까진 아니라도 민식의 얼굴은 그때 일그러져 있었던 건 사실이다. ‘절망’ 이란 단어가 좀 오버라고 민식이 생각했었다.


‘그럼 마카오에 오면 절망에서 헤어 나올 수 있다는 말 아니던가. 카지노에서 희망을 찾으라는 얘기인가. 말도 안 돼.’


노신사의 정중한 말투와 행동이 장난이었을까. 진실한 눈빛에서 정말로 자신을 걱정해준다고 느꼈었다. 지금 생각건대 장난 같기도 했다. 노신사가 명함을 준 이유가 궁금했다. 천둥 번개가 친 그날 무언가에 홀린 기분이었다.


‘헛것을 본 걸까.’


삼일 후면 한국으로 돌아가 다시 직장생활을 하며 하루하루 무료하게 보낼 것이다. 변화가 없는 삶. 삼일 동안 마카오에 머문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료하기는 마카오나 한국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래도 첫 해외 여행인데......


‘이왕 왔으니, 여기저기 다녀보자.’


뷔페에서 저녁을 푸짐하게 먹고 몇 시간이 걸리든 타이파섬에 있는 민박집까지 걸아갈 계획이었다.





저녁 9시. 마침 민박집 주인 도병준이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민식이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가자, 도병준이 인사를 했다.


“오늘 괜찮았어요? 어디에서 게임 했어요?”


민식이 엉거주춤하게 서서 돈을 내밀었다.


“네.....여기.”


민식이 4박의 숙박비를 주자, 병준이 받아 셈을 했다.


“고맙습니다. 땀을 많이 흘렸네요?”


“네...... 좀 걸었습니다.”


“더운데 샤워라도 하시죠. 수건은 세면실 선반에 있으니 맘대로 쓰고요. 빨랫거리는 저기에 넣으면 됩니다.”


도병준이 가리킨 곳엔 큰 바구니가 있었고 그 안엔 빨래거리가 반쯤 채워져 있었다. 병준이 한국 드라마에 눈을 고정했다.


“저, 혹시. 궁금한 게 있는데....”


“네. 뭔 대요?”


TV에 눈을 고정한 채 병준이 건성으로 대답했다. 민식이 창가 쪽 의자에 앉자, 힐끗 민식을 쳐다봤다.


“저, 사실. 여기 민박집에 온 이유가.......”


“알고 있어요. 어떤 노인이 준 명함 때문에 왔다, 그 말이죠.”


병준이 탁자 위의 담뱃갑에서 담배를 빼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근데, 와보니 그 노인네는 없고 내가 있더라.”


“네, 맞습니다. 분명 그 노인이 훗날 보자고 했거든요.”


병준이 담배를 피우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민박집을 여기서 5년 넘게 했는데, 명함 같은 걸 만들어 본 적이 없어요....... 그 명함 좀 볼 수 있어요?”


민식이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 병준에게 건넸다. 하얀색 바탕에 마카오 갤럭시 민박이라 쓰여 있었고 그 아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상호도 맞고 전화번호도 맞는데....... 이 정도면 쉽게 만들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누군가가 장난삼아 만든 거 같기도 하고.”


도병준은 관심 밖이라는 듯 명함을 탁자 위에 툭 던지면서 말을 했다.


“민박집 주인이 누구든 뭐가 그리 중요하나요. 왔으면 재밌게 놀다 가면 됩니다.”


병준이 뭔가를 숨기는 듯 보였지만, 더는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식이 2호실로 가는데 뒤에서 병준이 말을 했다.


“경고하는데.”


“네?”


민식이 뒤돌아 병준을 쳐다봤는데, 병준은 같은 자세로 TV를 보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민식에게 향한다. 그리고 눈을 꾹 감고 오른 검지를 세운 채 자기 입술에 바싹 갖다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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