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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마동의 서재입니다.

마카오 민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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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마동
작품등록일 :
2018.09.03 21:25
최근연재일 :
-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4,164
추천수 :
70
글자수 :
47,473

작성
18.09.03 22:42
조회
703
추천
11
글자
8쪽

의문의 남자

DUMMY

고민식은 민박 주인의 안내로 방으로 들어갔다. 침대와 작은 테이블, 한쪽 구석에는 암갈색의 금고가 놓여 있었다. 얼핏 금고처럼 디자인된 옷장이거니 했지만, 옷장은 벽면에 따로 빌트인 되어 있었다.


백팩을 바닥에 내려놓고 침대 위에 걸터앉는다. 창밖으로 타이파의 야경이 들어왔다. 초고층의 호텔들이 번쩍번쩍 빛을 뿜는다.


민식은 일어나 몇 발짝 떨어진 금고 쪽으로 간다. 방에 어울리지 않는 크기의 금고가 의아스러웠다. 가슴팍 높이의 금고 모서리에 두 손을 얹는다. 강철 그대로의 감촉이다.


‘콘크리트 벽과 같다.’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20층 높이의 아파트까지 어떻게 운반했는지조차 의문이다. 종이박스 크기의 금고는 호텔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지만, 이런 크기의 금고는 영화나 드라마에서 얼핏 본 적이 있었다.


‘도박 도시라 다르군. 도박꾼들은 금고 안에 현금을 꽉 채우는 망상으로 잠이 들겠지.’


은색의 금고 손잡이가 도드라져 보였다. 민식이 손잡이를 잡아본다. 차가운 금속성이 온몸에 전해진다. 손잡이를 아래위로 돌려 보지만 옴짝달싹 않는다. 직사각형의 번호 키를 몇 번 눌러보지만 맞는 번호일 리 없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금고 위에는 다이얼식 황금색 전화기가 달랑 놓여 있었다. 수화기를 들어 귀에 대본다. 새벽 2시의 침묵만큼이나 아무런 신호음이 없다. 먹통이었다.

전화선이 없는 것으로 봐 장식용 같았다.


순간 민식은 이런 사물에 호기심을 갖는 자신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의 일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마카오에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민식이 연차를 내고 도망치듯 온 곳은 마카오였다. 며칠 전 공항에서 만난 승객 때문이었다.


공항에서 근무하는 민식이 담당하는 게이트에는 마카오행 항공편이 배정되어 있었다. 태풍 경보로 마카오행 뿐 아니라 모든 항공편의 이착륙에 혼선이 이어지고 있었다. 태풍 경보 발령이 났지만, 태풍이 영향권에서 곧 벗어날거라는 기상청의 예보가 이어졌다. 중앙관제센터에서도 항공사의 재량에 맡기기로 한 모양이었다. 몇 편의 항공편은 결항 결정을 내리고 몇 편은 이륙하기도 했지만 마카오행 편은 어떠한 결정도 없었다.


민식은 결항하길 바라고 있었다. 그래야 탑승교를 기체로부터 분리하고 일과를 마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날씨만큼 정말 엿 같은 하루네.’


민식에게 있어 꿀꿀한 하루, 아니 처참한 하루였다. 오늘 하루는 기억에서 삭제하고 푼 하루였다. 공항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오늘 하루가 빨리 지나가길 바랄 뿐이다.


민식은 분위기도 파악할 겸 출국장으로 올라갔다. 이륙 예정시각에서 거의 3시간 지난 오후 1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승객들은 의자에 널브러져 있거나 항공사 직원과 실랑이를 하고 있었다. 항공사 직원들은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하는 승객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험한 질책을 받는 듯 보였다.


“결항이면 결항이고, 아니면 아니다 결정을 내려야지. 언제까지 이러고 있냐고, 제길.”


“지금 이륙하는 비행기는 뭡니까. 죽으러 가는 건가요. 죽어도 좋으니 출발이나 합시다. 허허.”


“이 정도 기상에도 이륙을 못 한다면, 그게 비행긴가. 종이 비행기지.”


“비행기 고장 난 거 아니야? 괜히 날씨 핑계 대는 거 아니냐고.”


“호텔이라도 얻어주던지 이건 그냥 나 몰라라 하네. 그거 참네.”


“식당도 문 닫아 먹을 데도 없는데. 빵 쪼가리라도, 아니 땅콩이라도 내놔야지. 이런 항공사가 무슨 국적기라고.”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중간 관리자쯤 돼 보이는 남자직원이 같은 말을 계속하고 있었다.


“불편하시더라도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곧 지시가 내려올 것입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승객분들의 생명과 직결된 만큼 우리 항공사는 태풍의 경로를 시시각각 모니터링하고 있습니다.”


“3시간째 같은 말만 반복하다니, 제길. 이런 갑질 항공사는 영업 정지시키고, 다 환불하고 손해배상 하라고.”


또 다른 승객이 소리를 빽 질렀다.


“옳소! 맞는 말이요, 함께 합시다.”


여기저기서 불만의 목소리가 폭죽처럼 터져 나왔다. 어찌 보면 승객들의 지겨움을 해소하려는 놀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보딩 카운터 쪽 얼음기둥처럼 서 있는 신입 여직원의 시선은 자신의 갈색 구두에 멈춰 있었다. 유니폼 차림이 아니라 사복이었고 ‘연수중’이라고 프린팅된 명찰이 가슴팍에 큼지막하게 달려 있었다. 중간 관리자는 신입을 다그치듯 쏘아보며 어깨를 툭툭 치며 어딘가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민식은 얼음 기둥처럼 서 있는 저 신입 직원이 자신과 같은 처지라 생각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

아수라장이 따로 없었다. 민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놀이에 동참하지 않은 몇몇 승객은 체념하는 분위기다. 그래도 젊은 커플들은 아랑곳없이 즐거워 보였다. 몇 분 간격으로 안내 방송이 나오고 있는 산만한 분위기를 피해 민식은 한적한 곳을 찾아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비가 쏟아지는 활주로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깔끔한 옷차림에 점잖게 생긴 7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작은 캐리어를 끌고 민식과 좀 떨어진 의자에 앉았다. 인기척에 민식이 흘끔 그곳을 쳐다보았다. 의자가 널렸는데 같은 줄에 앉은 게 신경 쓰였다. 다른 승객들과 달리 그는 여유가 있었고 차분했다. 흰 머리카락에 흰 수염이 어울렸다. 노신사가 민식에게 시선을 주며 입을 열었다.


“항공사 직원은 아닌 것 같고......”


민식의 목에 단 출입증을 보고 알았을 것이다. 대부분 승객이 묻는 내용은 게이트 번호나 시설물 이용에 관한 것이었다.


“저기.......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만......”


“말씀하세요.”


민식이 성의 없이 대답했다.


“괜한 오지랖일 수 있지만 무슨 일이라도......”


“예?”


민식이 그 남자를 보고 흠칫했다.

그 남자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어디서 본 듯도 하다. 낯은 익는데......


“혹시 저를 아세요?”


민식이 묻자 남자는 민식에게 다가와 인자하게 미소만 짓고 있었다.


“지나가는데 눈에 밟혔을 뿐이에요.”


남자는 민식의 출입증을 보며


“고 민식 씨군요. 그래요, 고 민식 씨의 얼굴에서 절망을 보았습니다.”


남자의 말과 동시에 천둥과 번개가 쳤다. 천둥소리는 고막이 찢길 만큼 컸고, 여러 갈래의 번개가 땅을 가르려는 듯 내리꽂혔다. 순간적으로 민식은 두 손을 귀에 댔으나, 남자는 의연하게 서 있었다.


“웬만하면 그냥 지나쳤지만 댁이, 누군가와 겹쳐서 그랬습니다. 늙은이의 쓸데없는 주책이라 이해해 주세요.”


‘누군가와 겹친다.’


남자의 말에 의아했지만 민식은 마음이 가라앉는 듯 묘한 감정을 느꼈다. 아버지의 정 없이 자랐지만, 부정이 있다면 이런 게 부정이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너무 뜬금없는 일 아닌가.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을 걱정해준다는 것이.


“자, 여기.”


남자가 금속 명함집에서 명함을 꺼내 민식에게 건넸다. 받은 민식이 명함을 본다.


‘마카오 갤럭시 민박’


명함에는 마카오 갤럭시 민박이라고 쓰여 있고 그 아래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훗날 다시 보길 바랍니다.”


남자는 가죽 캐리어를 끌고 유유히 걸어갔다. 민식은 명함을 다시 보고 저만치 멀어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뭐에 홀린 기분 같았다. 의도성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지만,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나 같은 놈에게 어떤 의도가 있기는 있나? 아니지, 나도 민박 손님이 될 수 있지. 민박 영업을 저렇게 멋지게도 할 수 있구나.’


살짝 웃음이 났다. 민식이 명함을 쓰레기통에 던지려다 뒷주머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잠시나마 풀어진 표정이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몇 시간 전 직장 선배 이승희가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엿듣고는 어떡해 대처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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