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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급 억만장자, EX급 드루이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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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글
작품등록일 :
2024.06.22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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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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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1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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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물컹한 감촉

DUMMY

“이쯤에서 잠시 쉬었다 가는 게 좋겠군. 어차피 케로니르 대수림은 하루 만에 갈 만한 거리가 아니니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소. 사역마에게도 마나를 공급해야 할 것 같고.”

“그러면 이 근방에 있는 마을에 들러보는 건 어떨까요? 지도상에선 지금 저희가 있는 위치에서 가까운 곳에 작은 마을이 하나 있던 거로 기억하거든요.”

“오, 그래. 좋은 생각이구나.”


이드리온은 왼손에서 마력의 구체를 만들고 마차 밖으로 날려 보냈다.

사역마들은 곧바로 이드리온의 뜻에 따라 경로를 바꾸어 달리기 시작했다.


잠을 자던 것인지 명상을 취하던 것인지는 몰라도 여행 내내 가만히 있던 이드리온과 달리, 리리안과 네버다이는 마차에 타 있는 내내 독서에 열중하고 있었다.

마땅한 놀거리도 없는 이 세계에서 그나마 리리안이 책을 잔뜩 챙겨온 것이 도움이 된 셈이었다.

네버다이는 그중에서도 장막단 마법사의 관점에서 드루이드 마법을 해설하는 이론서를 보고 있었다.


“네버다이 님이 그렇게 집중해서 그 책을 읽으실 줄은 몰랐는데, 조금 의외네요. 드루이드들은 독서와는 거리가 먼 삶을 산다고 알고 있었거든요. 거기 적힌 내용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몇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둘 사이에 흐르던 민망한 분위기도 사라졌고, 리리안은 이제 다시 태연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어? 아, 뭐... 읽을 만은 하네. 전부 낯선 내용이긴 하지만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야. 확실히 타인의 관점에서 설명하는 걸 보는 게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음? 그 책은 드루이드 마법에 관한 책이 아니오? 근데 그게 자네한테 낯설단 말이오?”

“아니, 아니. 그러니까, 아, 그래. 드루이드 마법을 이런 식으로 해설한 책은 태어나 처음 보는 것이니 말이오.”

“당연히 그러시겠죠. 애초에 드루이드들은 이런 식으로 자기들 마법을 분석하지도 않고, 그걸 책으로 남기는 일은 더더욱 없으니까요. 분명 네버다이 님한테는 그 책의 접근 방식이 신선한 관점으로 느껴지셨을 거예요.”

“아, 그런 의미였나.”

“하하! 그럼, 그럼. 그렇소.”


네버다이는 고개를 돌린 채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나마 리리안이 찰떡같이 변명거리를 덧붙여줘서 다행이었다.


리리안도 네버다이가 처한 상황을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네버다이는 자기가 원래 이 세계 사람이 아니라느니, 다른 세계로부터 잠시 전이되어 있을 뿐이라느니 하는 무의미한 소리를 해봤자 도움 될 게 전혀 없다고 판단했다.

어차피 필요한 지식들은 지금도 적당한 핑계를 대서 물어볼 수 있었고.


마법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사실을 로렌과 리리안에게 밝히긴 했어도, 네버다이는 이드리온을 비롯한 다른 이들에게까지 그 정보가 퍼져나가는 건 원치 않았다.

사실 당장으로선 구태여 그런 사실을 남들에게 알릴 이유가 없어지기도 했다.

숲에 있는 드루이드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나면 금세 마법을 다룰 수 있게 될 테니까.

나름대로 배움이 빠르다고 자부하는 네버다이로서는 그만한 자신감을 품고 있었다.


이왕이면 그전에 리리안의 책을 통해 방법을 깨우치면 더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할 것 같았다.

방금 리리안에게도 말했듯이, 책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네버다이는 그 내용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고, 이 세계 사람들의 관점을 파악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대지를 다루는 데 통달한 강력한 드루이드는 발밑의 땅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대지를 융기시켜 지형을 변화시키는 그들의 마법은 특히나 전술적인 활용 가치가 높으며, 우리 마법사들은 그들과 연계해...]


다만 이 책은 어디까지나 드루이드가 어떤 마법을 사용하는지, 악마들을 상대로 어떻게 활용하는지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마법사인 저자가 그런 마법을 쓸 일은 없을 테니, 당연하게도 그 마법을 사용하는 방법이나 원리에 대해선 단 한 줄도 적혀 있지 않았다.


그러니 네버다이는 이 책에 담긴 지식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여기 적힌 설명을 자신이 게임 속에서 보았던 스킬들과 결부시켜 이해하고 이미지화하는 것이었다.


‘이 부분은 대지 융기 같은 스킬을 의미하는 거겠지. 땅을 조종하는 방법은 어쩐지 바람을 조종하는 것보다도 더 감이 안 오긴 하지만... 대충 어떤 느낌의 스킬인지는 알겠어.’


그렇게 땅에서부터 거대한 기둥들을 솟아오르게 하는 장면들을 상상하고 있을 때였다.

덜컹 소리와 함께 마차가 갑작스럽게 멈추었다.


“잠깐. 뭔가 느낌이 좋지 않군. 일단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으니 여기서부터는 걸어가는 게 낫겠소.”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이드리온은 뭔가 이상을 감지한 모양이었다.


이드리온이 경계심을 내보이자 리리안과 네버다이도 긴장감 어린 얼굴이 되었다.

마차에서 내려 어느 정도 걸었을 때 네버다이는 순간 묘한 불쾌감을 느꼈다.


네버다이의 몸은 단순히 힘이 세고 튼튼한 것만이 아니었다.

시각도, 청각도, 후각도 모두 ‘엘던 홀트’ 시절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좋아졌다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던 네버다이였다.


그리고 지금 네버다이는 점점 가까워지는 마을로부터 불길한 기운을 뚜렷하게 감지하고 있었다.

마을은 너무나 조용했고, 동시에 역겨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그 이유를 알게 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럴 수가... 대체 언제?”

“아마 일주일도 안 됐을 거다. 이 마을이 공격당했단 보고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으니까.”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길거리에도, 집 안에도 남녀노소를 막론한 사람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현실에 있는 진짜 시체를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지만, 네버다이는 의외로 차분하고 침착했다.

세계 제일의 사업가가 되려면 그 정도 담대함은 기본으로 갖추고 있어야 하는 부분이니 말이다.


“이건 역시 악마들의 짓인 건가? 이 시점에선, 그러니까 내가 말보리스를 죽인 후로는 악마들도 잠잠해져 있던 게 아니었나?”

“말보리스의 세력권이었던 대륙 서쪽에선 확실히 악마들의 기세가 약화되긴 했소. 봉인에서 풀려난 다른 대악마들은 현재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파괴의 씨앗을 뿌리고 있지만... 하지만 이상하군. 여긴 그들의 경로에서 벗어난 지역인데...”

“대악마들을 따르지 않는 다른 악마들의 소행일까요? 어쩌면 말보리스를 따르던 잔당들이 주인을 잃고 떠돌다 이곳을 습격한 걸지도 모르죠. 하여간 이런 끔찍한 참상이라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악마들은 더 잔혹하네요.”


리리안은 죽은 이들의 눈을 감겨주며 씁쓸하고도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이드리온도 곧 고인들에게 안식을 선사하는 일에 동참했다.


한편 네버다이는 곧바로 책에서 보았던 마법들을 시도해보기 시작했다.

언제 악마가 자기를 공격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제대로 맞서 싸우지 못한다면 여기 살던 사람들처럼 시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론 네버다이도 두려움을 느끼긴 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더 냉정하게 머리를 굴려야 했다.

정말로 목숨을 건 것까지는 아니었지만, 결국 그가 지금껏 엘던으로서 해오던 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 성공하기 위해 최선의 수가 무엇일지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

공포와 의심에 사로잡히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그렇긴 해도, 네버다이는 여전히 제대로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다.

기껏 다잡은 결의가 무색해질 정도로 주위의 공기도, 발밑의 땅도 그저 잠잠하기만 했다.


“으으... 뭐, 괜찮아. 여차하면 그냥 주먹질이라도 하면 되겠지. 당장 대악마랑 싸울 것도 아니니까.”


마음속에 초조함과 불안감이 스멀거리는 것을 눈치챈 네버다이는 자기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것처럼 혼잣말했다.


그때 시신들을 정리한 이드리온과 리리안이 네버다이에게로 다가왔다.


“아무래도 다른 곳으로 가는 게 좋겠군. 이곳의 상황은 바로 장막단에게 서신을 보내 알리겠소. 주위에 악마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그 수가 몇이나 될지도 알 수 없으니 일단은 여길 벗어나도록 합시다.”

“남은 흔적을 보면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닐 거예요. 단지 이 마을 사람들에게는 스스로를 지킬 힘이 없었을 뿐이죠.”


리리안의 굳은 얼굴에서는 담담한 목소리와는 대조적인 강렬한 분노가 느껴졌다.

그나마 리리안이 복수심을 불태우며 악마들을 찾아 족치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게 다행이다 싶었다.

그런 말을 한다 한들 따라주지도 않았을 네버다이였지만.


그렇게 생각했는데...


“조심해라, 리리안!”

“저, 저는 괜찮아요!”


이드리온의 말이 복선이라도 된 것인지, 세 사람은 마을 밖으로 나가자마자 악마들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마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던 길을 이삼십 마리 규모의 악마들이 가로막고 있던 것이다.


호전적인 악마들은 네버다이 일행을 보자마자 달려들기 시작했다.

허리 높이까지밖에 안 오는 작은 덩치의 악마들이었지만, 놈들은 마구잡이로 도끼와 둔기를 휘두르며 공격을 시도했다.


“으으, 흐아앗!”


네버다이는 마을의 여관을 시원하게 날려버렸을 때처럼 손을 휘저어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이드리온과 리리안은 저마다 지팡이를 휘둘러 뿜어낸 불덩이로 악마를 하나하나씩 쓰러뜨리고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이드리온은 어린 리리안을 주시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 말은 곧 네버다이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고 있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네버다이는 진지하게 도망치는 쪽을 고려했지만, 악마들은 이미 세 명 중 누가 가장 만만한 인간인지 눈치채 버린 모양이었다.


“크아아!”


어색하게 대치하고 있던 악마들 중 하나가 네버다이를 향해 용감히 달려들었다.


“으아악!”


목숨에 위협을 느낀 네버다이는 마법을 사용하는 건 포기하고, 뛰어오른 악마를 향해 무작정 주먹을 내질렀다.


물컹...?


손에서 불쾌한 촉감이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질끈 감았던 눈을 뜬 순간, 네버다이는 제 손목에 꽂혀 있는, 제 주먹의 형태대로 배에 구멍이 뻥 뚫려 버린 악마를 보게 되었다.


“끄아아악!”

“캬아아악!”


그 역겨운 광경에 놀란 것은 네버다이만이 아니었다.

동료의 끔찍한 최후를 목격한 악마들은 겁에 질린 듯 방방 뛰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오옷, 훌륭하오! 아무 대비도 없이 뒤를 보이는 적이야말로 마법사의 먹잇감이라고 할 수 있지!”


그 순간 적의 공격을 의식할 필요가 없어진 이드리온이 지팡이 끝에서 거대한 화염 줄기들을 여러 갈래로 뿜어냈다.


“우아악!”


노릇노릇하게 구워지는 악마들은 지독한 냄새와 비명을 퍼뜨렸고, 결국 하나도 빠짐없이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네버다이는 꽂혀 있던 악마를 내동댕이치고는, 악마가 입고 있던 천 쪼가리로 손에 묻은 내장을 열심히 닦아내려 했다.

하지만 태어나 경험해 본 것 중 가장 소름 돋는 감촉이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히 남아있었다.

그런 네버다이의 심정을 알 리 없는 이드리온은 처음으로 밝은 미소를 지으며 등을 팡팡 때려댔다.


“참으로 멋졌소! 그저 주먹 하나로 놈들의 사기를 꺾어 버리다니. 야만전사들이나 쓸 방법이 아닌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놀라울 만큼 효과적이었소!”

“역시 대단하세요, 네버다이 님! 이드리온 님도 굉장하셨고요. 이런 식으로도 연계 공격을 펼칠 수가 있는 거였군요. 전 기껏해야 대여섯 마리를 처치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두 분이서 힘을 합치니까 열 마리도 넘는 임피온이 저항도 못 하고 죽어버렸네요!”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하니 네버다이는 당당하게 웃으며 머리를 긁적일 뿐이었다.


“하하하! 뭘 이런 걸 가지고. 저런 하급 악마들한테는 굳이 마법을 쓸 필요도 없을 것 같아서 말이지.”

“확실히 임피온 정도면 대악마까지 처치한 자네 눈에는 우습게 보일 만도 하겠군.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란 걸 잊지 마시오. 지금은 다행히 서른 마리 정도만이 모여 있었지만, 많게는 수백 마리가 몰려다니는 녀석들이니.”

“그, 그럼. 지금은 그냥 두 사람의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소. 두 사람 다 정말 잘 싸우더군. 리리안 너도 그 정도면 내가 딱히 걱정하고 있을 필요가 없겠어, 하하!”


과장된 웃음을 섞긴 했지만 이건 네버다이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리리안은 정말로 악마에 맞서 조금도 겁먹지 않았고, 실제로도 다친 곳 하나 없이 네버다이보다 훨씬 더 많은 악마들을 죽이기까지 했으니까.


물론 네버다이가 주먹만 휘두르면 죽을 만큼 약한 악마들이긴 했어도, 로렌이 자식 자랑하듯 읊어댄 평가나 리리안 스스로 내비친 자신감에는 확실한 근거가 있던 셈이었다.


“정말이신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버다이 님이 제 실력을 인정해주시다니! 진짜 감동이에요!”


리리안은 네버다이를 끌어안으려는 듯 두 팔을 벌리며 해맑은 얼굴로 다가왔다.

당황한 네버다이는 리리안의 머리를 슬며시 밀어내며 발을 옮겼다.


“어어, 그래. 아무튼 얼른 마차로 돌아가자.”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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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대수림의 드루이드들 NEW 8시간 전 1 0 17쪽
13 케로니르 대수림 24.07.03 4 0 13쪽
12 다섯 대악마 24.07.02 5 0 14쪽
» 물컹한 감촉 24.07.01 8 0 13쪽
10 여정의 시작 24.06.30 9 0 14쪽
9 그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24.06.29 9 0 14쪽
8 대현자 하루난 24.06.28 10 0 20쪽
7 하지만 남자다 24.06.27 10 0 14쪽
6 장막단 24.06.26 10 0 16쪽
5 네버다이 24.06.25 10 0 13쪽
4 우리 여관이 무너진 거예요 24.06.24 13 0 17쪽
3 진짜로 외계인이었던 거임 24.06.23 22 0 20쪽
2 디아볼루스 24.06.22 30 1 15쪽
1 엘던 홀트 vs. 바트 시카모어 24.06.22 65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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