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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글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억만장자, EX급 드루이드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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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글
작품등록일 :
2024.06.22 10:15
최근연재일 :
2024.06.3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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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5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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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버다이

DUMMY

멀리서도 대충 짐작은 했지만, 노파가 알려준 초소의 상태는 가까이서 보니 더더욱 충격적이었다.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허름함은 물론이고, 멀쩡한 상태였다고 해도 개집으로도 안 썼을 만한 조악한 수준의 건물이었다.


그 안에 준비된 잠자리의 퀄리티는 더더욱 끔찍했다.

당장 잠이 오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이런 곳에서 잠을 잘 수나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초소 안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곰팡이 냄새와 썩은 나무 냄새가 코를 찔렀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여러 번 이부자리로 사용된 것이 분명한 짚단이 놓여 있었다.


노파가 자기 여관을 박살 낸 것에 앙심을 품고 이런 곳으로 보낸 것일까?

아무리 자업자득이라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왠지 열이 받는 엘던이었다.

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잠을 잘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것이 정말로 마을 주민들에게는 최선의 잠자리일 수도 있었다.

사실 엘던이 지금껏 누리던 것에 비하면 그 무엇을 가져와도 하늘과 땅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도 했다.

실수로 파괴해 버려 실체를 확인할 수는 없게 됐지만, 아마도 여관에 준비되어 있었을 그 ‘가장 좋은 잠자리’에서도 엘던은 비슷한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왠지 기운이 빠진 엘던은 무의식적으로 그 짚단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당분간은, 어쩌면 영원히 누릴 수 없을지도 모를 이전의 삶이 너무나 그리워졌다.


한번 불안감에 빠지자 비슷한 생각들이 연이어 밀려들기 시작했다.

엘던은 자신이 누리던 부와 권력을 통해 인간으로서 정점에 다다랐다는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가 살고 있던 으리으리한 집과 수많은 별장들.

그의 사랑과 관심을 얻고 싶어 아양을 떨어대던 수많은 여자들.

평범한 사람들의 일 년 치 식비를 가볍게 넘길 만한 재료로 만들어지는 매일의 산해진미 식사.

그리고 평범한 사람들이 수년을 벌어도 마련하지 못할 명품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전부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물론 평소처럼 자신은 그 어떤 위기든 뛰어넘을 수 있다고, 이 상황도 그저 하나의 도전일 뿐이라고 여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엘던의 마음속에는 그런 자신감과 함께 선명한 위기감이 공존하고 있었다.

자신이 갖고 있던 모든 걸 영영 되찾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MBTI로 따지면 T에 몰빵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 엘던이 이토록 감성이 충만해져 울적해 하는 것은 사춘기가 지나고 나서 3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엘던은 제 뺨을 때리고 차분히 심호흡했다.

아직 이 세계를 제대로 겪어본 것도 아니면서 벌써부터 두려움에 사로잡혀선 안 될 일이었다.

게다가 잃어버린 모든 걸 되찾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마음을 더욱 굳게 먹어야 했다.


이 순간 엘던은 결심했다.

이곳에 있는 동안엔 자신이 차지하고 누렸던 그 모든 걸 잊고 있기로.


당장으로선 과거에 미련을 품어 봤자 득이 될 게 없었다.

오히려 그와 같은 잡념은 앞길에 방해만 될 뿐이었다.

이런 위기의 순간일수록 지금껏 자신이 해오던 대로 목표에 철저히 전념해야 했다.

그래야만 비로소 시카모어가 뺏어간 모든 걸 돌려받을 수 있을 테니까.


그는 더 이상 엘던 홀트가 아니었다.

그 이름은 다시 자신의 세상으로 돌아가는 그 날까지 머릿속에서 지워두기로 했다.

지금은 이 세계를 구해냈고, 또다시 구해낼 영웅 네버다이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과거를 되찾기 위해 과거를 잊는다.

다시 생각해도 참으로 멋지고 합리적인 아이디어였다.

엘던, 아니, 네버다이는 자신의 발상에 감탄하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어찌 됐든 네버다이는 그렇게 짚단 위에서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자신의 결심을 공고히 다졌다.

시카모어가 제시한 임무는 다소 알쏭달쏭한 면이 있었지만, 어쨌든 근본적으로는 이런저런 만화나 소설에서 본 것처럼 이 세계를 구하란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그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제 세계로 돌아가는 것만을 생각할 것이다.

이런 끔찍할 정도로 불편한 잠자리에서 자야만 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


“네버다이 님! 안에 계신 거죠? 네버다이 님!”


아침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든 네버다이는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외치는 목소리에 번뜩 눈이 뜨였다.

역시나 자고 일어나면 전부 꿈이었다, 하다못해 시카모어가 준비한 몰래카메라였다 하는 그런 전개는 아니었단 걸 확인하며 한숨을 내쉬는 네버다이였다.


“그래. 무슨 일이지?”


이미 목소리로 알아보긴 했지만, 문밖에는 여관주인 노파의 손자라던 그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장막단의 장로님이 마을에 막 도착하셨대요. 네버다이 님도 어서 만나길 원하실 것 같아서 바로 여기로 달려왔는데... 혹시 제가 잠을 방해해 버린 걸까요?”


남자는 혼이라도 날까 봐 겁이 난 표정으로 네버다이를 힐긋거렸다.

그 말을 들은 네버다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분명 잠을 잔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다.

시계가 없으니 확신할 수는 없어도 체감상 3시간, 어쩌면 2시간도 채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몸은 개운했다. 마치 8시간도 넘게 잠을 자고 일어난 것처럼.


이상한 점은 또 있었다.

처음 이 세계에 전이되었을 땐 그렇다 쳐도, 지금은 그 후로도 이미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

하지만 네버다이는 어째서인지 아직도 전혀 배가 고프지 않았다.


네버다이는 직감적으로 그럴듯한 이유를 떠올려냈다.

수많은 악마와 싸우고 대악마마저 처치한 이 몸은 말 그대로 인간을 초월한 스펙을 갖고 있었다.

그런 육체인 만큼 인간에게 있어 기본적이고 필수적이라고 여겨지는 음식과 수면의 필요성조차도 초월한 것이 아닐까?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손을 휘저은 것만으로 가뿐하게 건물 반쪽을 날려버린 몸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을 직접 목격한 이상, 이 ‘영웅적인’ 육체에 그런 비밀이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어제도 노파는 네버다이에게 식사가 필요하지 않을 거라는 식으로 먼저 말을 꺼냈었다.

어제는 대수롭지 않게 넘긴 말이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확실히 이상한 말이었다.


“네버다이 님...?”

“내가 이 마을에 온 후로 뭔가를 먹은 적이 있었나?”


네버다이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한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곧장 대답했다.


“네? 아, 아니요. 식사는 한 끼도 하지 않으셨죠. 지난번에 오셨을 때도 그렇고요. 그래서 저랑 할머니는 네버다이 님 정도 되는 영웅은 밥을 먹지 않아도 멀쩡한가 보다 했는데... 혹시 배가 고프신 건가요?”

“아니, 여전히 배는 안 고파. 역시 그랬던 건가.”


게다가 어제 뿜어냈던 그 힘. 그 돌풍을 만들어낸 힘에 대해서도 계속해서 의문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어제 그 일이 벌어진 직후에는 워낙 정신이 없었고, 또 밤이 지새는 동안엔 지구에서의 삶을 잊기 위해 심적으로 애를 쓰다 보니 그 문제에 대해선 신경 쓸 겨를이 더더욱 없어졌었다.


하지만 역시나 이상한 일이었다.

그 어마어마한 위력을 보면 분명 게임 속에서 ‘네버다이’가 갖고 있던 힘이 사라진 건 아닌 모양이었다.

그건 확실히 잘된 일이지만, 문제는 자신이 그 힘을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머릿속이 다시 복잡해지려던 찰나, 네버다이는 눈앞에 있는 남자의 존재를 다시 의식하고는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흠. 장막단의 사람이 왔다 그랬지. 게임에서처럼 여기서도 도움이 되어주겠지. 이참에 물어볼 수 있는 건 전부 물어봐야겠다.”

“네?”

“어디로 가면 되냐?”

“아, 네! 일단 광장으로 가 보시죠! 아마 마을 사람들이 거기서 장로님께 인사를 드리고 있을 거예요.”

“그래. 나도 거기로 가봐야겠군.”


네버다이는 장막단의 장로에게 무엇을 물어보면 좋을지 머릿속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머릿속에는 한 가지 음흉한 생각도 함께 떠올랐다.


‘이렇게 이세계로 전이된 주인공은 미녀 히로인이 동료로 따라붙는 게 당연한 흐름인데. 로렌... 이름도 제법 예쁘고 글씨체도 아름다웠지.’


네버다이는 이 세계를 경험한 지 하루가 채 되지 않았지만, 최소한 이곳에 있는 모든 게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점만큼은 확신하고 있었다.

고도로 문명화된 지구에서도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호화로운 삶을 살았던 그였으니 더더욱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딱 하나.

이곳에 와서 더 우월해진 유일한 단 하나의 요소가 있었다.

이 육체의 아랫도리만큼은 지구에 돌아가도 그리워질 만큼 경이로웠다.


문제는 그걸 쓸 기회가 오냐는 것이었다.

이미 전 세계의 최상급 미녀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 본 ‘엘던 홀트’에게 있어서, 웬만한 수준의 여자는 그의 눈에 차지도 않을 지경이 되었다.


어제 얼핏 둘러본 마을 여인들의 외모는 말할 것도 없었다.

기본적인 위생도 관리하지 못해 꼬질꼬질할 뿐만 아니라, 젊은 나이의 여자들조차도 피부결이 거칠고 주름이 보일 정도였다.


게다가 웬만한 여자들은 하나같이 우락부락한 덩치에 험상궂은 외모를 하고 있었다.

이 세계가 얼마나 험난하고 고됐으면 그와 같은 꼴이 됐는지 안쓰러울 정도였다.

여긴 말 그대로 강한 자들만이 살아남은 세계일 테니까.


다만 앞으로 만날 여자들이 전부 그런 상태라면 모처럼 얻게 된 이 훌륭한 아랫도리의 물건도 의미가 없는 셈이었다.

그건 곧 이 세계에서 찾은 유일한 장점이 아무런 쓸모가 없어진다는 의미이기도 했고.


그러나 이런 하잘것없는 시골 마을이 아닌, 이 세계에서 엘리트 집단으로 통하는 장막단 소속의 여인이라면?

어제 받은 그 교양 넘치는 편지는 자연스럽게 우아하고 고상한 여교수의 이미지를 연상시켰다.

순식간에 망상이 폭주하기 시작한 네버다이는 엉큼하게 입꼬리를 씰룩이며 걸음을 재촉했다.


“아, 저기 계시네요! 소문으로만 듣던 장막단의 망토예요! 멀리서도 무지하게 눈에 띄는 느낌이네요!”

“오오, 그렇구나!”


엘던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아진 시력이 곧바로 그 형체를 포착했다.

광장은 어제 여관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고 모였을 때와 비슷하게 마을 주민들로 바글거렸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광장 중앙의 석상 앞에는 로브를 입고 후드를 뒤집어쓴 한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뒷모습뿐이었지만, 네버다이는 그 사람이 자신에게 편지를 보낸 ‘로렌’이라고 확신했다.

몸 전체를 덮은 옷 때문에 구체적으로 식별할 수는 없어도 로렌이 가녀린 체형의 소유자라는 것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네버다이는 손을 내밀어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려는 주민들을 자제시켰다.

곧 그 아담한 형체 앞에 다다른 네버다이는 헛기침을 하며 입을 열었다.


“흠, 흠. 그쪽이 장막단에서 날 보러 찾아온 장로 로렌이오?”


그 순간 후드를 입은 형체도 몸을 돌렸다.


“오호. 자네가 대악마 말보리스를 처치했다는 그 용사, 네버다이로구먼. 이렇게 얼굴을 보게 되어 영광일세.”

“어엉?”


방금까지 품었던 기대감이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네버다이의 앞에 마주 선 그 로렌이라는 자는 얼굴의 하관 또한 복면으로 가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 이어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 이 자가 네버다이가 바라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늙을 대로 늙은 남성이라는 점을 확실히 해 주었다.


검은 천 뒤에 가려져 있긴 해도 네버다이는 로렌이 자기를 향해 반가운 미소를 짓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네버다이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으음, 그렇소.”


그와 동시에 로렌은 입을 가리던 베일을 벗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영화 속의 대마법사처럼 길게 늘어뜨려진 것은 아니었지만, 로렌은 인상적일 정도로 짙고 수북한 흰 수염을 턱에 달고 있었다.


“역시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구먼. 이렇게 직접 보니 더더욱 신뢰가 가는 느낌이야.”

“그래서, 날 찾아온 용건이 정확히 뭐요?”


로렌은 단도직입적인 네버다이의 태도가 마음에 든 듯 껄껄 웃었다.


“내 편지를 읽어 봤다니 알겠지만, 우리 장막단에서는 자네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네. 다른 대악마들이 봉인에서 풀려났다는 소식은 이미 들었는가?”

“흠, 알고 있소.”

“그 문제에 대해 더 자세히 논의를 해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이곳은 그런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지 않은 듯하군. 갑작스러울 수 있겠지만, 여유가 된다면 나와 함께 장막단의 비밀 거처로 가 주지 않겠나?”


장막단의 비밀 거처.

그 단어를 듣는 순간 네버다이는 무의식적으로 호기심이 동했다.

디아볼루스 시리즈에서 장막단은 그저 플레이어 캐릭터와 동행하거나 특정 마을에서 도움을 줄 뿐, 그들의 기지 같은 곳은 한 번도 공개된 적이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로렌의 제안은 열혈 게이머인 네버다이의 흥미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또한 마을 사람들이 다들 보는 앞에서 시시콜콜한 질문들을, 더 나아가 자신이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원인 같은 걸 물어보는 건 어쩐지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좋소. 나도 당신들에게 묻고 싶은 점이 많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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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정의 시작 24.06.30 4 0 14쪽
9 그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24.06.29 5 0 14쪽
8 대현자 하루난 24.06.28 5 0 20쪽
7 하지만 남자다 24.06.27 8 0 14쪽
6 장막단 24.06.26 8 0 16쪽
» 네버다이 24.06.25 8 0 13쪽
4 우리 여관이 무너진 거예요 24.06.24 10 0 17쪽
3 진짜로 외계인이었던 거임 24.06.23 18 0 20쪽
2 디아볼루스 24.06.22 25 1 15쪽
1 엘던 홀트 vs. 바트 시카모어 24.06.22 52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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