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숨글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억만장자, EX급 드루이드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숨글
작품등록일 :
2024.06.22 10:15
최근연재일 :
2024.06.30 01:35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40
추천수 :
2
글자수 :
72,316

작성
24.06.27 19:45
조회
7
추천
0
글자
14쪽

하지만 남자다

DUMMY

네버다이는 멘탈이 나간 채로 응접실의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기껏 이 세계로 전이된 보람이 있나 싶었는데.

이보다 더 예쁘장한 여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네버다이는 그런 생각만을 반복하며 맹한 눈빛으로 리리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존경하는 영웅이 어떤 생각을 품고 있을지 꿈에도 모를 리리안은 순박한 미소를 지으며 로렌의 말을 경청할 뿐이었다.


“... 그러니 우선은 동선이 확보된 대악마들을 따라 동쪽으로 가야 한다는 걸세. 듣고 있는 건가, 네버다이? 아까부터 넋이 나가서는... 무슨 일이라도 있나?”


로렌은 지팡이를 뻗어 네버다이의 다리를 탁탁 때려댔다.

둔탁한 느낌에 번뜩 정신을 차린 네버다이의 입에선 꾸밈없는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에휴... 아니, 그래서 무슨 얘기를 한 거요? 미안하지만 지금 좀 집중이 안 되는지라.”


네버다이는 잠시나마 가장했던 깍듯했던 태도를 내던지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흐음, 그런가?”


로렌은 네버다이의 얼굴에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는 우울감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우울감의 원인이 다름 아닌 제자의 성별 때문이라는 것을 알 리 없는 로렌은 온화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자네가 먼저 이야기를 해 보는 건 어떻겠냐? 뭔가 고민이 있는 표정이니 말일세.”

“그래요, 네버다이 님! 고민거리가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열정 넘치는 리리안 또한 눈을 빛내며 거들었다.

그 순수한 행동이 도리어 네버다이의 심란한 마음을 더욱 요동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낳기는 했지만.


어쨌든 네버다이도 이곳까지 오는 동안 품어왔던 고민을 슬슬 해결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네버다이는 자신의 현 상황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 없도록 최대한 넌지시 운을 띄웠다.


“그렇다면... 몇 가지 묻고 싶은 게 있기는 하오. 마법에 관한 부분인데, 혹시 드루이드들이 사용하는 마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소?”


네버다이의 말을 경청하던 로렌과 리리안은 동시에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드루이드 마법에 대한 정보라면 충분히 갖추고 있다네. 우리가 그 힘을 직접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궁금한 건가?”

“으음, 뭐라고 해야 하나. 그 마법을 정확히 어떤 식으로 사용하는 건지, 그런 원리에 대해 아는 게 있나 싶어서 말이오. 혹시나 갑작스럽게 그 힘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너무 솔직하게 말해 버린 게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지만, 다행히 리리안과 로렌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선 조금도 눈치채지 못한 기색이었다.


“아하. 그건 좀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도 다양한 분야의 마법에 대한 서책을 읽어 봤지만, 사실 드루이드 마법의 원리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된 부분이 없거든요.”

“리리안 말이 맞네. 사실 드루이드들은 오랜 세월 외부와의 교류를 끊고 자기들 숲에 틀어박혀 있으니 말이야. 자네가 여러모로 특이한 케이스인 거지. 게다가, 자네 같은 드루이드 입에서 그런 질문이 나왔다는 것도 무척이나 이색적인 일이고.”

“음? 그건 또 무슨 말이오?”


네버다이는 자신이 무슨 이상한 말을 한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하지만 어린 리리안조차도 로렌의 말뜻을 이해한 듯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본래 드루이드들은... 자기들이 다루는 힘의 원리를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네. 그 점에서 마법사나 비술사, 원소술사들과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지. 그들은 자연과 야성의 힘을 이해하는 대신, 있는 그대로 느끼고 본능적으로 활용하는 거라네. 자네라면 그 의미를 알지 않나?”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리리안이 해맑은 얼굴로 끼어들었다.


“네버다이 님은 이미 드루이드의 정점에 오르신 분이시니까요! 이런 질문을 하시는 것도 새로운 관점을 받아들이고 더 높은 경지에 이르시기 위한 거겠죠? 정말 대단하세요! 사실 전 드루이드 분들을 직접 만나본 적이 없어서 꽉 막힌 배타적인 분들일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리리안.”

“아, 죄송합니다! 네버다이 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너무 기쁘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멍한 얼굴로 리리안을 바라보고 있던 네버다이는 다급히 고개를 젓고는 로렌의 말을 되새겼다.

드루이드는 원리를 이해하지 않는다. 그런 마음가짐은 지금껏 ‘엘던 홀트’로서 살아오며 품어왔던 마인드와는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부분도 있었다.

자기 마음대로 번개를 부르고, 바람을 일으키고, 대지를 솟아오르게 만드는 드루이드의 기술을 대체 어떤 과학적 원리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 세계도 엄연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인간들이 사는 곳인 만큼 그 원리를 규명하려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이들이 걷는 길은 마법사의 길.

네버다이는 드루이드, 그것도 그냥 드루이드가 아닌, 세계에서 가장 강하다고 여겨질 만한 드루이드계의 대표이자 영웅이었다.


“혹시 지금이라도 내가 드루이드의 길을 벗어나 마법사가 되는 것은...”

“허허, 말도 안 되는 소리! 모든 인간에게는 각자 어울리는 길이 있네. 자네는 이미 드루이드로서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역량을 발휘해 냈지. 그러지 않고서야 대악마를 쓰러뜨릴 수는 없었을 테니까.”

“모두에겐 저마다 적성이 있다는 의미죠. 물론 네버다이 님이 지금이라도 마법사들의 방식을 익히신다면 어느 정도 따라잡을 수는 있으시겠지만... 그래도 드루이드로서 보여주셨던 역량의 백 분의 일도 채 내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역시 이런 식인가.

애초에 이 몸은 게임 속에서 드루이드로 정해졌던 캐릭터. 그리고 디아볼루스 시리즈에서 한 번 선택했던 직업은 절대로 바꿀 수 없었다.

그것 또한 이 세계에 통용되는 법칙이 적당한 룰의 형태로 반영되었다는 의미일 것이고.


“하...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순간적으로 밀려든 절망감에 네버다이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리리안은 그 미세한 반응을 놓치지 않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왜 그러세요, 네버다이 님? 혹시 방금 하셨던 질문에 다른 의미가 있으셨던 건가요? 혹시 드루이드의 마법을 갑자기 쓸 수 없게 되셨다든가...”


뜨끔!

너무나 예리하게 정곡을 찌른 리리안의 말에 네버다이는 얼굴을 돌린 채로 어떻게든 표정을 감추려 했다.


“뭣? 그게 사실인가? 설마... 대악마 말보리스가 최후의 순간 저주를 걸어 자네의 힘을 봉인했다든가...”


로렌도 덩달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이렇게 된 이상 오해가 더 커지기 전에 어느 정도는 사실을 밝힐 필요가 있어 보였다.

일단 이 두 명이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감이 오기도 했으니까.


***


“힘 자체는 그대로 남아있는 것 같지만 통제가 잘 안 된다는 게로군. 그리도 난처한 일이 생기다니...”

“그런 증상은 어떤 책에서도 본 적이 없어요. 이제 막 기술을 익힌 견습 마법사도 아니고, 무려 말보리스를 제거하기까지 한 대드루이드가 갑자기 힘을 통제할 수 없게 되다니... 정말 저주가 아닌 건 확실한 건가요?”


네버다이는 자신의 상황을 최대한 자세하게 언급해 봤지만, 로렌에게도 리리안에게도 뚜렷한 해법은 없는 모양이었다.

응접실에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괜히 무능하다는 낙인만 찍히고 여기서 쫓겨나 버리는 거 아니야? 어떻게든 숨겼어야 했나?’


네버다이는 이들에게 괜한 소리를 한 건가 싶어 슬슬 불안해질 정도였다.

그때였다.


우우웅-


“으앗, 깜짝이야!”


응접실 중앙에 박혀 있던 보석으로부터 빛과 함께 진동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로렌과 리리안은 이런 일을 전에도 겪은 듯 호들갑을 떨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얼굴에도 놀란 기색은 역력해 보였다.


“이건...”

“어? 장로님이 안 계신 동안에도 달리 연락이 온 건 없었는데...”

“아마도 내 편지가 전달된 모양이구나. 네버다이 자네가 여기 온 걸 알고 직접 만나 뵈려 하시는 모양이야. 다들 준비하게.”


그 말과 함께 로렌과 리리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는 네버다이는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하필이면 제 약점이 다 까진 상황에서 또 누군가를, 그것도 상당히 높아 보이는 인물을 만나야 한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대체 누가? 누가 날 만나러 오는 건데?”

“장막단의 수장이신 대현자님이요! 방금 신호는 그분이 곧 여기로 오신다는 의미예요!”

“대현자?”


물론 장막단쯤 되는 단체라면 지도자에 해당하는 인물이 있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네버다이는 게임 속에서 단 한 번도 그런 언급을 들은 적이 없었다.


장막단은 그저 적당적당히 플레이어에게 도움이 되는 NPC들이었을 뿐,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세하게 언급된 적은 없었으니까.

게다가 3편 시점에서는 장막단 소속의 NPC들을 거의 본 적이 없기도 했고.


“그렇다네. 그렇지 않아도 대현자께서는 말보리스를 쓰러뜨린 자네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하셨지. 하지만 정말로 여기까지 오실 줄이야. 지금도 해야 할 일이 많아 바쁘신 걸로 알고 있는데.”


네버다이는 로렌과 리리안을 따라 처소를 나와 걷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둘이 향하는 방향은 네버다이가 들어왔던 쪽이 아닌 정반대 쪽이었다.


“저쪽에도 문이 있는 거요? 우리가 왔던 방향이 아닌데.”

“하하, 아뇨. 일반적인 통로는 네버다이 님이 들어오신 그 문뿐이에요. 다만 대현자님은... 조금 특별한 방법으로 여기에 오실 수 있죠.”


그렇게 말하는 리리안의 표정에는 묘한 기대감이 어려 있었다.

잠시 후 도시 중앙에 있는 첨탑 앞에 도착한 네버다이는 그 말의 의미를 똑똑히 이해하게 되었다.


“오오...”

“저기 로렌 장로님 옆에 계신 분이 그분이시구나.”

“아하, 역시 그만한 거물이 오셨으니 대현자님도 모처럼 이곳에 오시는 거겠네.”


주위에는 네버다이 일행 외에도 다른 장막단의 일원들이 모여있었다.

사람들의 시선은 네버다이와 첨탑 위쪽을 번갈아 향했고, 네버다이는 그저 첨탑에서 뿜어져 나오는 희미한 빛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그 빛이 천천히 퍼져 나가면서 중심부에 한 형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현자님!”


말 그대로 첨탑 위에 강림한 그 형체는 눈부신 빛을 발하며 사람들이 모인 땅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네버다이는 그 빛 안에 사람의 형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하지만 그 역시 다른 장막단의 일원들처럼, 특히나 처음으로 만났던 로렌처럼 온몸을 천으로 덮고 있었다.


“장막이 우리 모두를 지켜주기를. 그리고 장막이 걷어지는 순간 우리 모두가 준비되어 있기를.”


중후함과 인자함이 느껴지는 노인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가 도시 전체에 울려 퍼짐에 따라 장막단의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대현자님의 지혜가 우리를 인도해 주기를.””


네버다이는 자기 앞으로 다가오는 형상을 가만히 응시했다.

로브와 후드, 그리고 베일로 전신과 얼굴이 가려져 있었지만, 그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백과 아우라는 가히 압도적인 수준이었다.

웬만한 국가의 GDP에 맞먹는 재산을 가진 엘던 홀트는 여러 국가의 고위 관료들은 물론이고, 그 나라의 정상들을 마주할 때도 당당함을 잃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대현자라고 불리는 이 자는 무언가가 달랐다.

얼굴조차 드러내지 않은 노인인데도 그 기품으로부터 위압감이 느껴져 다리가 다 떨릴 지경이었다.


“드디어 만나게 되었군. 자네의 영웅담에 들어선 익히 들어 알고 있다네, 네버다이.”


대현자는 그렇게 말하며 얼굴을 덮고 있던 베일과 후드를 벗었다.

그러자 목소리만큼이나 중후하고 고상한 외모를 한 미노년의 모습이 드러났다.


눈가에는 주름이 선명했지만, 짧게 쳐진 머리와 정돈된 턱수염은 귀족적인 풍모를 연상시켰다.

백발이라기보단 은발에 가까운 머리 색과 금빛 눈동자도 신비한 위엄을 자아냈다.

당장이라도 영화나 드라마에 출연해도 현존하는 모든 노년 배우들의 뺨을 후려칠 만한 외모였다.


“난 현재 장막단을 이끌고 있는 하루난이라고 하네. 이들은 나를 대현자라는 과분한 칭호로 부르기는 하네만...”

“하루난? 엇...”


네버다이는 자기도 모르게 그 이름을 부르곤 입을 가렸다.

하지만 분명히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었다.

대체 어디서?


그 순간 뇌리를 스치는 어떤 기억에 네버다이는 소리 없이 경악했다.


디아볼루스 2에 등장했던, 최후의 순간까지 플레이어 캐릭터와 동행하며 역대 시리즈 중 그 누구보다도 가장 큰 도움을 주었던 그 꼬맹이 NPC. 바로 그 소년의 이름이었다.


십 년도 더 전에 플레이했던 게임이지만, 네버다이는 그때 등장했던 하루난의 얼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루난은 나름 인터넷상에서도 컬트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소년 캐릭터였다.

지금 바로 옆에 있는 리리안과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말 그대로 여자보다 예쁜 캐릭터의 대표, 오토코노코 열풍의 선두주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금도 잘 관리받은 헐리웃 배우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만한 외모를 하고 있었으니 그 이름값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최소한 여자라고 착각할 일만큼은 절대로 없는, 그저 아주 잘생긴 할아버지에 불과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그 순간 네버다이는 무의식적으로 리리안의 얼굴을 힐끗거렸다.


‘역시 너도 그럼 언젠가는...’


뭇 남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그 이쁘장한 아이가 이제 이런 할아범이 되었다니 세월이 야속할 따름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EX급 억만장자, EX급 드루이드가 되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여정의 시작 24.06.30 4 0 14쪽
9 그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24.06.29 5 0 14쪽
8 대현자 하루난 24.06.28 5 0 20쪽
» 하지만 남자다 24.06.27 8 0 14쪽
6 장막단 24.06.26 8 0 16쪽
5 네버다이 24.06.25 7 0 13쪽
4 우리 여관이 무너진 거예요 24.06.24 10 0 17쪽
3 진짜로 외계인이었던 거임 24.06.23 18 0 20쪽
2 디아볼루스 24.06.22 25 1 15쪽
1 엘던 홀트 vs. 바트 시카모어 24.06.22 51 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