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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글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억만장자, EX급 드루이드가 되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숨글
작품등록일 :
2024.06.22 10:15
최근연재일 :
2024.06.3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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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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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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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진짜로 외계인이었던 거임

DUMMY

이어서 엘던은 숨도 쉬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다.


“이건 대체 무슨 상황이지? 내가 모르는 최첨단 VR 기술이라도 되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는데. 이 정도로 정교한 기술을... 아니, 아무튼 니가 연관되어 있단 걸 알았으니 잘됐다. 당장 날 여기서 내보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줄 알아! 고소는 당연히 하겠지만 지금 내보내 주면 최대한 자비를 베풀 테니까...”


시카모어가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해 허공에다 소리를 지르는 꼴이 되기는 했지만, 다행히 효과는 확실한 모양이었다.


- 진정하십시오, 홀트 씨. 홀트 씨가 겪고 있는 그 상황은 물론 VR 같은 게 아닙니다. 단순히 게임 속 세상이라고도 할 수 없죠. 그곳은 엄연히 하나의 현실이니까요.


“헛소리하지 마. 여긴 누가 봐도 디아볼루스 3의 세계잖아? 내, 아니, 이 몸의 이름이 네버다이라는 것도 확인했어. 디아볼루스 3의 최종 보스였던 말보리스를 내가 처치했다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이상한 소리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는 거라면...”


괜히 고개를 돌려대봤자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은 엘던은 이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본 채로 말하고 있었다.

바트는 천연덕스러운 목소리로 엘던의 말을 자르고 들어왔다.


- 분명 디아볼루스라는 게임의 세계는 맞습니다. 제 말은, 디아볼루스가 이 세계를 본떠 만들어진 게임이라는 겁니다.


“그게 무슨...”


엘던은 황당한 마음을 억누르며 항변하려 했다. 하지만 바트는 더더욱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 지구인들은 다른 종족에게는 없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꿈이나 무의식을 통해 다른 차원의 세계를 엿볼 수 있는 힘이죠. 홀트 씨는 게임 속 세계로 들어간 게 아닙니다. 지금 홀트 씨가 계신 곳은 디아볼루스의 원본이 되는 세계고, 디아볼루스는 그저 그 세계를 엿본 지구인들이 모방해 만든 게임일 뿐이죠. 그 세계는 엄연히 별개의 현실이라는 의미입니다.”


“무슨 미친 소리를... 어쨌든 확실한 건 니가 이 사태에 책임이 있다는 거겠지? 게다가, 뭐? 지구인? 이제야 본색을 드러냈구나! 설마 설마 했는데 너! 진짜 외계인이라도 됐었다는 거냐?”


- 이런... 무리해서 다른 차원에 간섭한 탓에 언어 변환 기능에 오류가 생겼나 보군요. 흠...


“화성은 내가 아니라 니가 가야겠구만! 지구로 돌아가면 제일 먼저 널 고향으로 날려 보낼 로켓부터 만들어 주마! 물론 그전에 니 얼굴 가죽부터 뜯어내서 정말 렙틸리언인지도 확인할 거고! 역시 수상하다 싶었어! 우리 지구에 숨어들어서 뭔 짓을 꾸미고 있던 거냐! 지구와 내 회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니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 주마!”


엘던은 바트를 향한 분노를 담아 고래고래 외쳤다.

자길 이런 세계에 가둬두고 얼토당토않은 소리를 하는 걸로도 모자라, 이젠 뭐? 같은 인간조차 아니었다고?

반면 바트는 엘던의 쩌렁쩌렁한 고함에도 지극히 태연한 말투를 유지할 뿐이었다.


- 마음대로 하십쇼.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닙니다. 홀트 씨는 분명 한시라도 빨리 이 세계로 돌아오고 싶으실 테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얼른...”


- 홀트 씨를 그쪽 세계로 보낸 건 제가 맞습니다. 그렇긴 해도, 홀트 씨를 다시 이 세계로 복귀시킬 만한 힘은 제게도 없습니다. 이 세계로 돌아오는 것은 순전히 홀트 씨의 몫이란 말입니다.


“허어?”


너무나 무책임한 소리에 엘던은 자기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왔다.

바트는 정말로 미안한 것인지, 아니면 미안한 척을 하는 것인지는 몰라도 멋쩍어하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 저도 홀트 씨에게 더 많은 도움을 드리고 싶지만... 안타깝게도 한계가 있습니다. 사실 홀트 씨와 연락하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이 될 겁니다. 이 유일한 기회를 그냥 허비할 수는 없으니 필요한 것들은 최대한 다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엘던의 타고난 직감은 바트의 말이 결코 위선이나 거짓말이 아니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사실일지라도, 바트는 그를 함부로 다른 세계로 보내버린 사악한 외계인일 뿐이었다.

여러모로 마음이 복잡했지만, 엘던은 일단 냉정을 되찾고 바트의 말을 경청하는 쪽을 택했다.


- 홀트 씨라면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지금의 홀트 씨, 정확히 말하자면 네버다이 씨에게는 막대한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지구인이 발휘할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말 그대로 게임 속의 캐릭터처럼 수많은 괴물을 가볍게 처치할 수 있을 정도의 힘이죠.


“그래, 그런 것 같더군.”


- 홀트 씨는 그 힘으로... 그 세계에 납득할 수 있는 결말을 만들어 주면 됩니다. 그 세계의 주민들에게 진정한 안정과 평화를 안겨주는 겁니다. 그곳에 사는 모두가 당신에게 빚을 지도록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결국 그런 거냐? 뭐, 게임에서처럼 남아있는 대악마들을 처치하기라도 하라고? 대충 그럴 것 같기는 했어. 나도 이세계물 애니메이션 같은 건 몇 개 챙겨봤었으니까.”


- 글쎄요. 구체적인 형태가 정확히 어떨지는 저도 알 수 없습니다. 그저 그 세계에 필요한 일을 하신다면... 그러고 나면 이 세계로 돌아오실 수 있게 될 겁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이 힘을 실제로 활용한 건 지금이 처음이라서 똑 부러지게 대답해 드리기는 힘들 것 같네요.


“하, 진짜 열받게 만드네. 뭐, 좋아... 아무튼 이 일에 대한 보상은 확실하게 받아낼 거다. 내가 기절한, 아니, 실종된 걸 알면 주가도 난리가 날 텐데... 그걸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외계 기술이든 뭐든 전부 다 토해내야 할 거다!”


- 그 부분에 대해선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현재 지구인들의 지식으로는 이해하긴 힘들겠지만, 하여간 시간선을 정밀하게 조정해 뒀으니까. 무사히 돌아오시기만 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겁니다. 구체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냥 홀트 씨가 그곳에 계신 동안은 지구 쪽의 시간이 멈춰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그, 그래? 그렇다면 다행인데.”


엘던은 가장 우려하던 부분인 재산 쪽에는 타격이 없을 거라는 말에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여전히 머릿속이 뒤죽박죽 혼란스럽긴 해도, 최소한 무엇을 해야 할지 갈피가 잡히는 감각에 희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 제 계획에 홀트 씨를 휘말리게 한 일에 대해선 정말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대로 사례도 해 드릴 생각입니다. 하지만 제가 사랑하는 지구를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희 종족으로부터 이 세계를 지킬 방법은 이것뿐이었으니까요...


“이젠 숨길 생각도 없나 보군.”


엘던은 바트의 사과에는 딱히 귀를 기울이지 않고, 그저 퉁명스럽게 꼬투리만 잡을 뿐이었다.

하여간 그 바트 시카모어가 정말로 외계인이었다니.

기가 차면서도 어쩐지 세간에 떠돌던 황당한 루머가 사실이었다는 생각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인간으로서 외계인의 기술력에 당당히 맞서고 있었다는 자부심이 느껴지기도 했고.


- 크흠. 아무튼 홀트 씨가 놓치고 있을 만한 부분에 대해 알려드려야겠군요. 디아볼루스에서 전개됐던 이야기와 그쪽 세계의 역사는 사실상 동일할 겁니다. 홀트 씨는 네버다이로서 게임에서 사용했던 힘을 전부 사용할 수도 있을 거고요. 그리고 게임 속 기능으로는 인벤토리에 해당하는 힘...


“아, 그래! 분명 이 캐릭터의 인벤토리에는 온갖 귀한 장비들이 다 들어 있어야 하는데. 딱히 가방 같은 것도 보이지 않고...”


- 그 세계의 용사들은 마법의 주머니를 통해 물관을 보관할 수 있다... 뭐, 그런 전설이 전해지고 있을 겁니다. 스킬을 사용하실 때처럼 정신을 집중하신다면 그 주머니를 소환하실 수 있을 겁니다.


“스킬... 그러고 보니 스킬도 어떻게 해야 제대로 쓸 수 있는지 모르겠던데.”


- 그건 저도 어떻게 도와드릴 수가 없겠군요. 하지만 웬만한 해답이라면 지금 홀트 씨가 계신 그 세계 안에서 구하실 수 있을 겁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홀트 씨라면 분명 찾아낼 능력이 있으실 거고요.


“흠, 흠. 뭐, 그렇긴 하겠지만...”


엘던은 지난 몇 년간 라이벌로 지내 온 바트에게 이토록 진심 어린 칭찬을 듣는 것이 처음이었다.

시카모어가 뭘 꾸미고 있든, 심지어 허락도 없이 자기를 이런 세계로 보냈을지라도, 그런 그에게 인정을 받는 것은 제법 유쾌한 기분이었다.

더군다나 시카모어는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 아마도 놀라운 기술력을 갖춘 외계인이라는 게 확실해지기도 했고.


- 큭. 더 이상은 교신을 이어가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홀트 씨...


“뭐? 벌써? 아직 알아야 할 게 많은데! 뭔가 더 도움이 될 만한 걸 알려줘야 할 거 아니야!”


- 어차피 저도 다른 차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건 많지 않았습니다. 홀트 씨를 그 세계로 보낸 건 제 입장에서도 일생일대의 도박... 그저 홀트 씨의 능력만을 믿고 시도한 베팅입니다. 홀트 씨가 아무리 오만방자하고 교활하고 막돼먹은 데다가 자기가 항상 옳은 줄 아는 독선적인 아집쟁이, 이기적인 허언증 환자에 무책임하게 헛소리나 지껄이면서 허영심으로 가득하고...


“그, 그만! 어디까지 할 셈이야!”


- 탐욕스러운 인간이라고 해도 그 능력만큼은, 그리고 이 세계로 돌아오고 싶어 할 동기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테니까요.


“으음. 그건 그렇지.”


- 그러니 어떻게든 그곳에 있는 주민들을 도와주십시오. 모두가 홀트 씨를 진정한 은인으로 여기도록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그렇게 하면... 지구를... 구할...


막바지에 가서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도 없던 그 말을 끝으로 시카모어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게 되었다.

시카모어에게 들은 건 아무리 생각해도 황당무계한 말들 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눈앞에 놓인 이 현실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아직도 의문이 드는 구석은 많았다. 그러나 바트는 결국 그 모든 걸 자신에게 떠넘기고 사라져 버렸다.

외계인이 제 능력을 그만큼 믿어 준다니 어깨가 으쓱거리긴 해도, 막막한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이제 엘던의 머릿속을 사로잡은 건 단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원래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


어떻게든 현실로 돌아가고 나면 시카모어의 정체를 온 세상에 밝히든, 그걸로 협박을 하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잘만 하면 자신은 외계인으로부터 인류를 구한 영웅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런 기대감에 엘던의 가슴이 오싹거리며 부풀기 시작했다.


이미 지구상에 엘던 홀트라는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 이름이 전 세계에 영웅으로 기억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물론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엘던을 존경(한다고 스스로 생각하기는)하지만, 그만큼이나 엘던을 문제아나 괴짜, 또는 사이코패스라고 여기기도 했다.

비록 당장은 시카모어의 함정에 빠져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일지 몰라도, 이 위기를 극복한다면 세간의 부정적인 평가를 모조리 뒤집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는 셈이었다.


그리고 엘던은 세상의 관심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충분히 목숨을 걸 수 있는 남자이기도 했다.

이미 벌여놓은 사업이 궤도에 안착한 요즘에는 이처럼 모험심을 불태울 일이 없기도 했고.


“좋아, 좋아! 후, 지금껏 생각했던 거랑은 좀 다르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식으로 인류의 영웅이 되는 것도 나쁘진 않지!”


관심과 인정에 대한 욕구는 때때로 엘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지금만큼은 확실하게 동기를 부여해 주는 기폭제가 되었다.

엘던은 이미 이 세계에 존재하는 악마들과 싸우는 자신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리기 시작했다.

문제가 있다면, 그 상상을 실제로 실현하기엔 아직 요원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흐읍! 핫! 아 씨, 왜 이렇게 안 되지...”


엘던은 다시 한번 정신을 집중하고 손을 휘저어댔다. 하지만 여전히 기본 기술인 ‘돌풍 베기’조차도 제대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창 부질없이 애를 쓰고 있을 때, 멀리서부터 어떤 목소리가 들려 왔다.


“네버다이 님! 네버다이 님!”


여관에 있던 젊은 남자였다. 엘던은 멍청하게 몸을 흔들어대는 모습을 들켰을까 봐 민망해하며 헛기침을 내뱉었다.


“크흠. 무슨 일이지?”

“이런 곳에 계셨군요! 다른 게 아니라 네버다이 님 앞으로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네버다이... 내 앞으로? 대체 누가? 왜 보낸 건데?”


그 말을 내뱉는 동시에 홀트는 몇 가지 그럴듯한 이유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찌 됐든, 이 세계에서 네버다이는 이미 위대한 영웅 취급을 받는 모양이었으니까.

그 정도의 명성을 쌓았다면 여기저기서 자기를 만나려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이미 현실의 엘던에게도 그런 건 익숙한 상황이었으니 말이다.


“장막단에서 네버다이 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는 모양입니다. 서신이 봉인되어 있어 자세한 내용은 저도 보지 못했지만요.”

“장막단? 아하...”


엘던은 게임 속에서 틈틈이 들었던 그 이름을 기억해냈다.


장막단.

장막단은 디아볼루스 전 시리즈에 빠짐없이 등장했던 NPC 집단의 이름이었다.

스토리상 플레이어 캐릭터의 핵심적인 아군 세력인 동시에, 이 거지 같은 세계관에서 유일하게 도움이 될 만큼 막대한 힘을 지닌 단체이기도 했다.


엘던이 디아볼루스 3 이상으로 푹 빠져 있던 2편에서는 특히나 더 많은 활약을 펼치기도 했다.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플레이어 캐릭터를 도와 대악마들을 봉인시킨 주체도 그 장막단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현재로선 장막단이 플레이어 캐릭터에게, 즉 지금의 네버다이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좋아! 어서 그 편지를 내놔봐라!”

“아, 네!”


젊은 남자는 돌돌 말린 두루마리 편지를 건넸다.

엘던이 그 편지를 붙잡은 순간, 두루마리를 봉인하고 있던 끈이 풀리며 공중으로 종이가 날아올랐다.


‘존경하는 영웅, 네버다이 님께’로 시작되는 그 편지는 온갖 미사여구로 점철된 장황한 글을 담고 있었다.

서신을 보낸 자는 자신을 장막단의 장로인 로렌이라고 소개했다.


‘로렌이라... 최소한 게임에서 들어본 적은 없는 이름인데. 그런 여자가 있었던가?’


엘던은 계속해서 편지를 읽어내렸다.

편지를 작성한 로렌이라는 사람은 미려하고 정중한 문체로 말보리스를 처단한 네버다이의 위업을 칭송했다.

그리고 역시나 그 후에는 정말로 말하고 싶었을 본론이 적혀 있었다.


“무슨 내용인가요, 네버다이 님? 장막단에서 네버다이 님을 직접 찾고 있다니 놀랐습니다. 아니, 세상을 구하신 영웅이니 당연히 장막단에서도 관심을 두는 건 당연하지만... 거긴 말 그대로 전설처럼 전해 내려오는 신비한 단체니까요.”


남자는 호기심 어린 눈초리로 엘던을 똘망똘망 바라보며 성가시게 굴었다.

그렇긴 해도 엘던은 자신을 우러러보는 이 젊은 청년에게 쓸데없이 가혹하게 굴지는 않았다.

그저 조용히 편지를 접으며 대답할 뿐이었다.


“흠. 나 보고 이 마을에 잠시만 더 머물러 달라는구나. 내게 할 말이 있어서 이곳으로 오는 중이라고.”

“세상에! 장막단의 사람이 저희 마을에 찾아온다고요? 네버다이 님에 이어 장막단까지? 어떻게 이런 일이! 당장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야겠어요!”

“그 정도인가? 나도 장막단에 대해서 아예 모르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말해서 저나 다른 사람들도 아는 건 많지 않을 거예요, 하하! 그냥 워낙 유명한 단체니까 관심이 가는 거죠!”

“흥, 그런가.”


새로운 정보를 얻길 바랐던 엘던은 괜히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굳이 조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곧 이 로렌이라는 자와 대화를 나눠 보면 장막단은 물론 이 세계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럼 전 다시 여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요란스러운 청년은 어서 소식을 전하고 싶은 듯 마을을 향해 열심히 달려갔다.

스킬을 써 보려 해도 별 소득을 얻지 못한 엘던 또한 슬슬 마을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확인할 게 남아있었다.


“인벤토리... 그런 주머니를 소환할 수 있다고 했지.”


엘던은 다시 눈을 감고 이미지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엘던은 손바닥 위에 갑자기 생겨난 어떤 부드러운 감촉을 느낄 수 있었다.


“이거구나!”


그와 동시에 엘던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아이템들의 이미지가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엘던은 그 아이템들 하나하나를 똑똑히 기억할 수 있었다.

예상대로 게임 속의 네버다이가 갖고 있던 수많은 장비들이었다.


“됐어! 이거지!”


엘던은 직감적으로 이 주머니의 사용법을 알 수 있었다.

엘던은 인벤토리 속에 있던 자신의 지팡이를 떠올리며 주머니 속에 손을 집어넣었다.

역시나 그 텅 빈 주머니 속에서 무언가가 잡히고 있었다.


물리 법칙을 완전히 무시하는 그 주머니로부터 엘던은 커다란 지팡이를 꺼내는 데 성공했다.


“이러면 제대로 스킬을 쓸 수 있을지도...”


엘던은 그렇게 혼잣말하며 주머니 속에서 다른 옷들을 하나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행동에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지금 엘던이 네버다이로서 입고 있는 옷, 즉 장비들은 바트와의 PvP를 위해 준비된 장비들이었다.

하나하나가 전 세계에서도 손꼽힐 만큼 최상위 수준의 장비들이었지만, 지금 네버다이가 쓰고자 하는 스킬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지금 착용하고 있던 장비들은 엘던이 두 번 다시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변신 스킬과 관련된 것들. 그러니 사실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장비들이었다.

다행히 엘던은 인벤토리 속에 다른 스킬을 위한 장비도 보관하고 있었다.

플랜 B, 플랜 C... 그렇게 대충 플랜 K까지는 구성할 수 있는 온갖 장비들이 말이다.


그리고 엘던은 그중에서 지금의 자신에게 도움이 될 만한, 즉 자연 속성 스킬들을 강화하는 장비들을 빠르게 분류해냈다.

어느새 흙바닥 위에는 엘던이 주머니 속에서 끄집어낸 여러 화려한 옷들이 전시되었다.


여기서부터는 이제 반대로 할 차례였다.

엘던은 입고 있던 가죽 갑옷을 벗은 후 주머니를 향해 갖다 댔다.

예상대로 몇 초가 채 지나지 않아 그 갑옷이 주머니 안을 향해 빨려 들어갔다.


“그래, 그렇지! 이것도 정확히 상상했던 그대로고.”


그 순간 엘던은 벌거벗은 상체를 스치는 바람을 느꼈다.

지금껏 뚜렷하게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훤히 드러난 가슴팍의 맨살을 보고 나니 새로운 제 육체가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엘던은 여러모로 자존감이 높은 인간이었지만, 신체 능력 자체에 있어선 딱히 남들보다 우월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 엘던의 몸뚱이와는 전혀 다른, 수십 년 동안 운동만 해도 결코 만들 수 없을 이 네버다이의 육체는 새삼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그리고 곧, 엘던은 아랫도리에서 느껴지는 어떤 감각을 깨닫게 되었다.

말 그대로 제 몸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져서 잊고 있었던,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면 너무나 낯설고 이상한 감각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순간, 엘던은 자기도 모르게 바지를 벗기 시작했다.


“허, 허억!!”


엘던은 이 누추하고 더럽고 위험한 세계에 있는 게 썩 내키지 않았지만, 최소한 이 몸에서만큼은 제법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아내게 되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지구의 과학 기술을 총동원해도 가질 수 없는, 엘던 홀트로서는 절대로 다다를 수 없을 것만 같은 어떤 부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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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여정의 시작 24.06.30 4 0 14쪽
9 그 즐거움을 아직 모르는 24.06.29 5 0 14쪽
8 대현자 하루난 24.06.28 5 0 20쪽
7 하지만 남자다 24.06.27 8 0 14쪽
6 장막단 24.06.26 8 0 16쪽
5 네버다이 24.06.25 8 0 13쪽
4 우리 여관이 무너진 거예요 24.06.24 10 0 17쪽
» 진짜로 외계인이었던 거임 24.06.23 19 0 20쪽
2 디아볼루스 24.06.22 25 1 15쪽
1 엘던 홀트 vs. 바트 시카모어 24.06.22 52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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