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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 님의 서재입니다.

용과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ung1354
작품등록일 :
2017.11.23 17:33
최근연재일 :
2019.02.13 12:30
연재수 :
93 회
조회수 :
11,432
추천수 :
165
글자수 :
641,611

작성
17.11.23 18:28
조회
154
추천
2
글자
18쪽

알 수 없는 글

DUMMY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해는 떴다. 무슨 일이 있건 시간은 계속 흐른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리리, 에라와 나는 식탁에 둘러앉았다. 에라가 온 첫날에 창고에서 꺼내온 의자는 필요 없었다. 의자는 4개면 충분했다.


식사 시간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활기찼다.


“에라야, 이것도 먹어 봐.”


“응, 고마워. 리리야.”


“많이 드세요. 어머니.”


“할리 너도 많이 먹어라.”


만들어진 활기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우리 중에서 진정으로 활발한 건 리리뿐이었다. 나머지 사람은 리리의 기운 찬 말과 행동에 따라갈 뿐.


“너는 많이 먹지 마. 조금만 먹어.”


“리리야. 요새 나한테 너무하지 않니?”


그렇다고 우리가 리리를 배려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리리가 우리를 도와주고 있었다. 리리가 만들어준 분위기가 따르다 보면 잠깐이나마 불길한 현실을 잊을 수 있었다.


겉이나마 활기 찬 식사가 끝나고, 에라가 말했다.


“저, 오늘은 집에 좀 갔다 올게요.”


접시를 치우는 어머니. 그것을 돕던 나. 포만감을 즐기며 나른하게 의자에 앉아 있던 리리. 모두의 시선이 에라에게 집중되었다.


에라는 갑자기 몰린 시선에 당황하지 않았다.


“너무 오래 집을 비워둔 것 같아서요. 청소 좀 하고 오려고요.”


리리의 눈이 동그래져서 물었다.


“청소를 니가 해?”


“우리 집은 둘만 사니까. 아버지는 바쁘시니 나도 이 정도는 해야지. 대단한 건 아니야.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청소만 해.”


“그것만 해도 대단한 거란다.”


어머니는 에라에게 대단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에라는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였다.


어머니는 리리를 째려보며 말했다.


“그에 반해 우리 리리는...”


“같이 가자. 에리야!”


리리는 어머니의 눈빛을 가볍게 무시했다. 어머니는 조금 더 리리를 째려보다 아무 반응이 없자 시선을 돌렸다.


어머니는 나를 보며 권했다.


“그럼 할리 너도 같이 다녀오렴.”


“예.”


어차피 그럴 생각이었다. 나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출발하기 전에 에라에게 물었다.


“잠깐만 기다려줄래? 준비 좀 하고 내려올게.”


“예.”


“준비할 게 뭐 있다고. 그냥 빨리 가지.”


나는 일상이 된 리리의 투덜거림을 흘려 넘기고 계단을 올라 내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가방을 꺼내기 전에 혹시나 해서 방문 밖을 내다보았다.


모두들 나한테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


나는 침대에 가까이 다가가서 누웠다. 침대 밑의 사각 속에는 먼지 묻은 커다란 가방이 하나 있었다. 손을 뻗어 꺼냈다.


“역시 사람은 성실하게 살아야 해.”


돌아온 첫날에 내 방은 직접 청소하겠다고 한 게 이런 식으로 도움 될 줄은 몰랐다. 나는 방문에 기대고 앉아 가방 안을 확인했다.


팔고 남은 사과 몇 알. 창고에서 꺼내온 물통에 시냇가에서 담은 물. 전에 고블린을 잡을 때 아버지가 썼던 도끼. 날이 상한 식칼. 그 외에 숲에서 필요한 물품 몇 가지.


준비는 끝났다. 최선은 아니지만, 지금 내가 구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 구했다. 숲에 그리 오래 있을 것도 아니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돌아오면 출발하자.”


후우.


긴장이 몸을 타고 흘렀다. 오랜만에 하는 실전에 자연스럽게 몸이 경직되었다. 하려는 일의 위험성이 인식된다.


죽음 자체가 두렵지는 않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수십 년을 살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죽으면... 그렇게 되면...


쿵.


“악!?”


갑자기 문에 충격이 가해졌다. 문에 기댄 머리에도 충격이 전달되었다. 와중에도 누가 못 들어오게 등으로 문을 막은 건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철컥.


머리를 감싸 쥐는 내게 문손잡이를 당기는 소리가 들려온 건 후였다. 문 뒤에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왜 이렇게 안 나와? 에라 기다리잖아.”


리리의 목소리였다.


“리리야, 난 조금 늦게 가도 되는데...”


“내가 못 참겠어.”


에라도 옆에 같이 있는 듯했다. 보지 않았음에도 밖의 상황이 예상 됐다. 리리가 참지 못하고 재촉하러 왔고, 에라가 말리러 온 거겠지.


“그리고 왜 문이 안 열려? 안에서 뭔 짓하고 있는 거야?”


아이고. 리리야.


나 지금 우리 아버지 구하러 가려고 준비하고 있거든. 꼭 지금 방해해야겠니?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말했다.


“지금 나갈게.”


나는 앉은 채로 가방만 굴려 침대 밑에 들어가게 했다. 회복한 운동 능력 덕분에 어렵지는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불만스러운 얼굴의 리리와 곤란해하는 에라가 서 있었다. 나는 뒷머리를 만지며 충고했다.


“리리야, 발로 문 차지 마. 또 그러면 어머니한테 말할 거야.”


“니가 빨리 안 나와서 그렇잖아. 이 고자질범아.”


“아직 실행은 안 했거든.”


나는 가볍게 대꾸하고 에라와 리리의 기색을 살폈다. 무언가 눈치 채거나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럼 너희들도 준비는 다 된 거지? 그럼 가자.”


나는 앞장서서 걸어갔다. 리리와 에라가 뒤따라 걷는 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렸다.


“쟤는 왜 저렇게 갑자기 기운 차? 기분 나쁘게.”


“리리야. 그런 말 하지 마.”


후후.


왠지 모르게 얼굴에 웃음이 지어졌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기분이 좋았다.


그래.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 따윈 생각해선 안 된다. 차악의 가능성도 생각해선 안 된다. 난 아버지를 구해서 집으로 돌아올 것이다.


나는 에라의 집에 가는 내내 행복한 미래만 상상했다. 까짓것 전에 고블린한테도 살아남았는데 이번에도 살 수 있겠지.


“...저 녀석 왜 저렇게 기분 나쁘게 웃는 거야?”


“확, 확실히 지금 건 부정할 수 없겠지만.”


뒤에서 소곤소곤 말하는 둘도 무시했다. 다 들리고 있지만 무시했다.


아아, 세상은 아름답구나.


“헉!”


나는 황급히 두 손을 들어 뺨을 마구 후려쳤다. 각각 5번 정도 때리고 나자 고통이 밀려왔다. 현실적인 아픔에 정신이 각성됐다.


위험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다 현실을 잊을 뻔했다. 나는 퉁퉁 부운 볼을 붙잡았다.


“...야.”


“응?”


뒤에서 살짝 질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돌아보니 리리는 걱정하는 얼굴을 하고 물었다.


“너 정말로 어디 아픈 거 아니지? 아프면 그냥 쉬어도 돼. 우리끼리 갈게.”


“...괜찮아.”


리리가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있다니... 얼마나 이상해 보였던 걸까?


걱정하고 있는 건 에라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둘에게 제대로 된 웃음을 보여주고는 다시 정면을 봤다. 속에서 한숨이 푹푹 나왔다.


처음 전쟁터에 나가는 신병도 아니고.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살면서 무수히 겪을 일인데. 이 정도로 긴장할 일이 아닌데.


알고는 있지만 진정이 되지를 않는다. 그야 지금 내가 죽으면...


그때 멀리에 자그마한 집 하나가 보였다. 좋게 말하면 소박한, 나쁘게 말하면 초라한 집이었다. 나는 그 집을 손을 들어 가리켰다.


“저 집 맞아, 에라야?”


“예. 맞아요.”


본 게 너무 오래 전이라 확신이 안 들었다. 다행히도 에라는 맞다고 대답해줬다.


3분 정도 더 걷자 집의 마당에 들어설 수 있었다. 사실 마당이라 할 것도 없었다. 담 하나 없는 넓은 공간에 집 하나 덩그러니 있는 게 전부였으니까.


“아직 열흘도 안 됐는데, 그립네요.”


에라는 잠깐이나마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진 것 같았다. 맑은 웃음과 함께 집 안으로 달렸다. 나는 아이들 특유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우리도 가자고 말할 생각으로 리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리는 놀란 듯 주변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래, 리리야?”


“아니, 그게...”


리리는 동정하는 시선으로 주변을 보았다.


“아트 아저씨랑 에라가 이렇게 힘들게 사는 줄은 몰랐어. 조금 불쌍해져서...”


“너 그 말 에라한테는 하지 마.”


난 단호한 눈동자로 말했다. 리리는 투덜거리며 대답했다.


“나도 그 정도는 알거든. 상처 받을 수도 있단 건.”


“다행이네.”


난 금방 눈에 힘을 풀었다. 고개를 저은 다음, 리리의 말을 정정해주었다.


“참고로 니 말은 틀렸어.”


리리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에라 집이 못 사는 게 아니라, 우리 집이 잘 사는 거야.”


이 시대 대부분의 평민은 비참하게 살아간다. 끼니를 굶는 경우도 많고, 전쟁 같은 걸로 인해 가족을 잃는 사람도 많다.


그런 사람들에 비하면 아버지는 굉장히 재산이 많은 편이다. 2층집에, 넓은 토지까지. 우리 집 생활수준이면 평민 중 상위권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리리는 실감하지 못했다.


“그래? 우리 집이 잘 사는 거였어?”


리리는 태어나서 한 번도 이 마을을 나가본 적이 없다. 비교 대상 자체가 없으니, 우리 집이 보통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리리의 머리를 헝클였다.


“그래, 그러니까 아버지가 돌아오시면 꼭 감사하다고 말해.”


돌아오시면.


나는 그 말은 속으로 삼켰다. 리리는 여전히 이해를 못한 듯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리리의 머리에서 손을 떼고 앞을 보았다.


에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쨌든 가자. 리리야.”


“응.”


리리는 고개를 끄덕이고 에라를 향해 뛰었다. 나도 뒤따라서 빠른 걸음을 했다. 에라는 우리가 집안에 들어서자 물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어요?”


“별 거 아냐.”


난 대답하고는 안을 보았다. 방은 우리 셋이 들어선 것만으로도 비좁았다. 단순히 방이 비좁기 때문이 아니었다.


나는 방안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들을 보며 물었다.


“뭐야. 저 차곡차곡 정리된 잡동사니들은?”


방 한 벽면에는 대량의 나무판이 쌓여 있었다. 크기가 제각각인 나무판들이 쏟아지지 않게 잘 쌓아 놨다. 중에는 높이가 리리나 에라의 키만 한 것도 있었다.


에라가 대답했다.


“책들이에요.”


“그렇구나.”


“와, 이게?”


덤덤하게 받는 나와 다르게 리리는 신기하다는 듯 나무판에 가까이 다가갔다. 리리는 책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나무판들을 이리저리 살펴본 리리의 입에서 탄성이 나왔다.


“이게 책이라는 거구나...”


정확히 말하면 아니다. 책은 종이로 만드는 거니까.


하지만 종이는 평민에겐 너무 비싸다. 평민들이 기록을 하기 위해서 자주 쓰는 건 종이가 아니다. 이런 나무판 같은 거지.


리리의 기쁨을 깨고 싶진 않았기에 말하진 않았다. 리리는 초롱초롱한 눈에 흥미를 가득 담은 채로 물었다.


“에라야, 이거 읽어봐도 돼?”


“어, 되긴 하지만 너는...”


리리는 에라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았다. 리리는 하나의 줄에서 맨 위의 나무판을 들어 자세히 봤다. 수작업으로 만든 것치고는 굉장히 얇았다.


리리의 눈에서 빛이 빠지는 데는 5초도 걸리지 않았다.


“어, 이게 뭐야...”


나는 예정된 결과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리리의 입에서 실망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전혀 못 읽겠잖아!”


“당연하지.”


내 말이었다. 에라는 억지로 웃음을 지은 채 리리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나는 어이없단 듯이 리리를 보았다.


“리리 넌 글 모르잖아. 오히려 뭘 근거로 읽힐 거라고 생각한 거야?”


“으으... 하지만 하나도 못 읽을 줄은 몰랐다고.”


“그거야 하나도 아는 게 없으니까.”


리리는 눈을 치켜뜨며 버럭 화냈다.


“넌 또 왜 시비질이야?”


“걱정하지 마. 리리야.”


나는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뜻을 표정에 담으며 말했다.


“나는 리리가 멍청해도 상관없으니까.”


“너!”


“어, 잠깐만!”


리리는 나무판을 던지고 달려와서 내 배를 마구 때렸다. 에라가 말렸는데도 신경 쓰지 않았다. 난 이해한다고 했는데 왜 때리는지 모르겠다.


나는 좁은 방 안에서 리리의 공격을 열심히 피했다. 리리는 내가 다 피하자 더욱 짜증이 나서 주먹을 휘둘렀다.


“피하지 마!”


“순순히 맞아줄 수는 없잖아.”


“둘 다 잠깐만 기다려...”


“그냥 순순히 맞아!”


“싫어.”


“기다려 달라니...”


“이익!”


“안 맞는다. 리...”


“기다리라니까!”


우리의 움직임이 우뚝 멈췄다. 옆에서 익숙한 여자아이가 익숙하지 않은 행동을 한 탓이었다.


에라는 리리가 손에 던진 나무판을 손에 들고 있었다. 에라는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리리와 나를 보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 보는 에라의 화난 모습에 입을 열지 못했다.


에라는 크게 성난 표정으로 우리에게 소리쳤다.


“기다리라고 했잖아! 이것들아!”


“어, 저기. 에라야?”


“입 다물어!”


나는 상황을 수습하려 말을 걸었다. 처음 듣는 에라의 반말에 곧장 포기할 수밖에 없었지만. 옆을 보니 리리도 겁을 먹은 얼굴로 에라를 보고 있었다.


에라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기다리라면 기다려야지! 너희들 때문에 아빠의 책이 망가지기라도 하면 책임질 거야!?”


“에라야. 뭔가 오해가 있는...”


“다물라고 했다!?”


두 번째로 입이 닫혔다. 나는 수습을 포기하고 얌전히 에라의 말을 들었다.


“특히 리리 너!”


지목된 리리는 크게 몸을 떨었다.


“왜 아빠 책을 던져!? 부서질 뻔했잖아!”


“미, 미안.”


“미안하다고만 하면 해결돼!?”


“히익.”


리리는 고양이 앞의 생쥐처럼 몸을 덜덜 떨었다. 나는 리리의 몸을 꼭 안아주었다. 리리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리리는 감동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오빠...’


괜찮아. 오빠가 지켜줄게.


‘고마워.’


“또 뭔 장난을 치고 있는 거야!?”


“히익!”


“미안해!”


남매간의 애틋한 정은 현실에 밀려 부서졌다. 부서트린 당사자는 아직도 열을 내고 있었다.


“아빠의 책들이 부서질 뻔했잖아! 당장 책들에게 사과해!”


“미안.”


“미안해.”


“아빠에게도 사과해!”


“죄송해요. 아트 아저씨.”


“죄송해요. 아트 님.”


“헉헉...”


우리는 에라의 명령에 그대로 따랐다. 에라는 열심히 숨을 골랐다. 화가 나 빨라졌던 호흡이 점점 정상으로 복귀됐다.


나와 리리는 그럼에도 말을 걸지 않았다. 한 마디라도 했다간 다시 에라가 폭발해버릴 것 같았다.


우리는 에라가 혼자서 화를 진압하길 오랫동안 기다렸다. 곧 에라가 입을 열었다. 첫 마디는 나와 리리의 예상을 깨부쉈다.


“죄, 죄송해요.”


“응?”


“어?”


나와 리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여기서 사과가 나오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방금 전까지의 에라가 너무 무서웠다. 설마 첫 마디가 사과일 거라고 예상도 못했다.


에라는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였다.


“미, 미안해. 리리야.”


“아, 아냐. 괜찮아.”


사과하는 사람과 사과 받는 사람 모두 당황하고 있었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얌전히 있었다. 에라의 해명이 이어졌다.


“누군가 아빠의 물건을 망가트리려고 하니까 너무 화가 나서. 나도 자제 못할 정도로 화가 났어. 미안해.”


그때서야 리리와 나는 에라가 왜 그랬는지 알 수 있었다. 리리와 나의 시선이 하나가 되었다. 나는 이 순간 리리가 나와 같은 생각을 했을 거라 확신한다.


역시 에라는 파더...


후의 말은 상상에 맡긴다.


@


또 한 차례 소동이 끝난 후, 에라는 방안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종이판을 하나씩 들어서 먼지를 털고 다시 자리에 갖다 놓는 지루한 작업을 묵묵히 계속했다.


나와 리리는 얌전히 방구석에 앉아 있었다. 우리가 양심이 없어서 에라만 일 시켜 놓고 우리는 쉬고 있는 건 아니었다. 우리도 처음에는 도우려 했지만, 에라의 말 한 마디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초보자는 앉으세요. 아빠의 물건은 조심히 다뤄야 한다고요.’


나는 내 생각에 한층 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하여튼 그래서 우리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아까 전에 리리가 나무판을 던진 후로 보지도 못하게 해서 할 일이 없었다.


나는 허공만 바라보며 멍을 때렸다. 슬슬 돌아가서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곧장 에라에게 말을 걸었다. 먼저 돌아가 보겠다는 말을 할 생각이었다. 그때 에라가 무언가를 가지고 방 밖으로 나가는 게 보였다.


“응? 에라야.”


“네?”


“니가 들고 있는 건 뭐야?”


에라가 손에 들고 있는 건 방안에 있는 것과 다를 바 없는 나무판이었다.


“아, 이건 버리는 거에요. 여기에 표시된 건 버리라고 하셨거든요. 원래는 아빠가 돌아오시면 버릴 생각이었는데...”


“그래? 그럼 내가 봐도 될까?”


나는 에라가 최악의 상황을 입에 담기 전에 나무판을 뺏어들면서 주제를 바꿨다. 나무판의 왼쪽 위에는 엑스 표시가 되어 있었다.


옆에서 리리가 비아냥 거렸다.


“너도 글은 모르잖아?”


“뭐 그렇기야 하지만...”


나는 리리의 말을 적당히 넘기며 나무판에 적힌 글을 들여다보았다. 사실 리리는 모르지만, 나는 글을 읽을 줄 안다. 인생 후반기에 배웠...


“어?”


“왜 그러세요?”


“잠깐만.”


난 심각한 눈으로 천천히 처음부터 다시 글을 읽어 내려갔다. 혹시 무언가 잘못 봤나 확인했다.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머릿속에서 되새기며 맞는지 재확인했다.


틀린 건 없었다.


“왜 그러세요?”


에라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나는 혼란을 숨기며 황급히 대답했다.


“아냐. 글자를 그림으로 봤어.”


“뭐하는 거야? 멍청아.”


난 나무판을 에라에게 건넸다. 에라는 내 얼굴을 확인하더니 물었다.


“괜찮으세요? 안색이 안 좋아요.”


“괜찮아. 그치만 조금 컨디션이 안 좋긴 한 것 같네. 미안하지만 먼저 돌아가볼게.”


“예. 쉬세요.”


나는 리리에게 애써 웃음을 보여줬다.


“그럼 가볼게. 리리야.”


“것 봐. 내가 아까 쉬랬지.”


리리는 걱정을 담아 투덜거렸다. 나는 나빠진 안색으로 방을 빠져나와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그게 무슨...”


이제 집으로 돌아가서 숲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하지만, 혼란이 멈추질 않았다. 방금 전에 본 글의 내용이 잊히지 않는다.


내 머리만한 크기의 나무판에는 길지 않은 글이 쓰여 있었다.


‘에라는 무사하다. 마물 앞에서도 각성하지 않았다. 순전히 우연이었지만, 이제 에라의 완치를 확신할 수 있었다. 이제 이번 약을 마지막으로 먹이면 평범한 아이가 됐다고 봐도 되리라. 다행이다.’


마지막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제야 내가 죽인 아이들에게 사과할 수 있게 됐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Lv.23 g8******..
    작성일
    19.01.13 23:17
    No. 1

    않이;;안돌아올것처럼 암시하지 말란 말이여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 su******
    작성일
    19.01.14 21:14
    No. 2

    실제로도 안 돌아왔죠. 불쌍한 아트. 아트는 희생된 것입니다. 작품의 진행을 위한 희생. 그 희생에 말이지요.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g8330_ax 님.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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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뒷수습 17.11.23 233 2 15쪽
7 구사일생 17.11.23 217 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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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숲으로 17.11.23 211 3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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