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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 님의 서재입니다.

용과 전생

웹소설 > 자유연재 > 판타지

sung1354
작품등록일 :
2017.11.23 17:33
최근연재일 :
2019.02.13 12:30
연재수 :
93 회
조회수 :
11,441
추천수 :
165
글자수 :
641,611

작성
17.11.23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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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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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불길한 마지막

DUMMY

“무슨 이야기를 하셨습니까?”


“별 거 아니었네. 에라에 관한 것 몇 가지를 물어보더군.”


아트 님은 별 의미 없는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그 말이 예상 못한 효과를 낳았다.


“호오, 할리가 에라에 관한 걸요?”


아버지는 나를 보며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 금방 이유를 알아낸 나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래, 이해한다.”


아버지는 조금도 이해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딱히 부정하고 싶은 생각도 안 들었다. 머리를 긁적이며 옆을 보았다.


에라는 얼굴을 붉히며 물었다.


“저기, 오빠. 정말로 저에 관한 걸 물은 거에요?”


여기서 아니라고 했다간 긴 해명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난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궁금한 게 있으시면 직접 물어주세요. 대답 가능한 거면 전부 대답할게요.”


에라는 부끄러워하면서도 할 말은 다 했다. 목소리가 작긴 했지만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마 물어볼 일은 없을 테지만 여기서 싫다고 말할 순 없지.


“알겠어.”


고개를 끄덕이고 옆을 보았다. 이번엔 못마땅한 기색으로 이쪽을 보는 리리가 서 있었다.


리리는 기색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리리는 에라의 뒤로 이동해서 끌어안았다. 에라의 허리에 손을 두른 리리는 나를 째려보며 입을 열었다.


“내 친구 건들지 마.”


“리, 리리야?”


자기 딴에는 무섭게 노려보고 있을 거라 생각하겠지만 귀여울 뿐인 리리. 갑작스러운 행동 때문에 당황한 에라. 나는 그 사이에서 어깨를 으쓱했다.


“지금은 그럴 생각 없거든.”


“지금?”


요새 리리가 너무 머리가 좋아진 것 같다. 이렇게 말꼬리를 잡을 줄도 알고. 나는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뭐, 미래는 모르는 거잖아?”


지금 내가 에라와 사귀는 건 범죄다. 그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10년, 20년 후에는 그렇지 않겠지만. 그때쯤 되면 어쨌든 스스로의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나이잖아?


만약 그때쯤에 내가 진심으로 에라를 좋아한다면, 사귈 수도 있다. 물론 난 그런 걸 생각하고 말한 게 아니라 그냥 놀린 거지만.


“너...”


“자, 그만하고 이만 가지.”


리리가 입을 열려 할 때 아트 님이 끊었다. 어느새 아트 님은 자신의 가방을 돌려받아 등에 맨 채였다. 아버지와 아트 님은 이미 숲으로 갈 만반의 준비가 되있었다.


나는 곧바로 분위기에 따랐다.


“자, 배웅이나 하자고.”


나는 리리가 말하기 전에 아버지의 옆으로 갔다. 슬쩍 뒤를 돌아보니 리리는 안았던 손을 놓은 채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뒤따라오고 있었다. 에라는 옆에서 열심히 달래고 있었고.


나는 아버지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히 다녀오세요.”


“그래, 리리나 에라랑 싸우지 말고.”


“예.”


다음엔 아트 님께 인사했다.


“아트 님도 조심히 다녀오세요.”


“그러지. 그리고 잠깐 귀 좀 빌려주겠느냐?”


“예?”


의아해하면서도 나는 아트 님 앞에 귀를 갖다 댔다. 아트 님은 아주 작게 말했다. 결코 다른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만한 크기였다.


“에라한테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했다간 죽여 버린다.”


“...예.”


나는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그럼 가볍지 않게 접근하면 되는 건가?’라는 의문은 내뱉지 않았다.


내가 입을 다물고 있는 동안에도 각자의 부모님과의 인사는 마무리되어 가고 있었다.


“잘 다녀와요. 아빠.”


“그래, 리리 너도 갔다 올 동안 잘 지내고 있어라.”


“몸조심하세요. 아빠.”


“그래, 귀여운 우리 딸. 그리고 저 할리라는 녀석은 조심해라.”


아, 저 딸바보 인간이 진짜. 우리 방금 전까지 엄청 진지한 이야기 나눴잖아요? 벌써 그런 말을 해도 되요?


속으로 욕을 한 번 했다. 에라는 그냥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조심할게요.”


“쉬이 듣지 말거라, 에라야. 어쩌면 이건 니 미래가 달린...”


“그만 가시죠. 아트 님.”


이쯤 되니까 아버지도 조금 지겨웠던 것 같다. 아버지가 여정을 재촉했다. 아트 님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헛기침을 했다.


“험험, 그럼 갔다 오마.”


“다녀오세요.”


우리 셋이 동시에 말했다. 그 말을 끝으로 아트 님과 아버지는 마을을 벗어나 숲 쪽을 향했다. 우리는 둘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아버지와 아트 님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우리는 잠깐 동안 남은 여운을 즐겼다.


문득 리리가 물었다.


“그런데 말이야.”


“응?”


대답을 한 건 나였다. 에라는 여전히 감상에 젖은 채였다. 리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아트 아저씨는 그렇다쳐도 왜 아빠도 숲 쪽으로 가는 거야?”


움찔.


에라의 어깨가 눈에 보일 정도로 크게 흔들렸다. 즉, 리리도 보였다는 뜻이다.


“응? 에라야 왜 그래?”


“하하, 그게...”


에라는 감상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왔다. 에라는 쉽게 리리의 말에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 에라는 어른의 뻔뻔함을 얻지 못했다. 양심의 가책 없이 친구를 속일 수가 없다.


이럴 때는 진짜 어른이 나가는 수밖에. 나는 에라와 리리 사이를 가로막고 말했다.


“아버지는 숲 앞까지 아트 님을 배웅해 드린 다음 도시로 갈 거야.”


“아, 그렇구나.”


나는 입술에 침도 안 바르고 거짓말을 했다. 리리는 완전히 속아 넘어간 듯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했다.


뒤를 돌아보자 에라가 동경한다는 듯 눈을 초롱초롱 빛내고 있었다. 난 리리한테 안 보이게 엄지를 들었다. 나는 집 쪽을 보며 말했다.


“어쨌든 이제 그만 해산하자. 너희들은 집으로 돌아가 있어.”


“오빠는 안 돌아가요?”


에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여줬다.


“응, 이제 운동을 해야지.”


“너, 그거 오늘도 해?”


“어제만 빼면 매일 했거든.”


“잘났다.”


리리의 비아냥을 무시하고 집의 반대 방향으로 향하려 했다. 마을 밖에서 운동을 하는 건 다른 아이들한테도 비밀이다. 마을 안에서 몇 바퀴 돌다가 다른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그런 나를 잡은 건 에라였다.


“저기, 오빠.”


“왜 그래? 에라야?”


물었지만 이미 용건은 알고 있었다. 나는 뒤돌아서 에라의 말을 기다렸다. 머뭇거리던 에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하루 정도는 쉬어도 되지 않을까요?”


“어제도 쉬었던 터라 오늘은 좀 힘들 것 같은데.”


“그러면 좀 짧게 하시면...”


“말했듯이 어제 쉬었던지라 오늘은 좀.”


“...그렇군요.”


에라는 침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같이 놀자고 싶으면서도 나한테 폐 끼칠까봐 더 권하지 못하는 모습이 가엽다. 옛날의 나처럼 소심한 성격 때문에 남한테 피해를 주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도 왠만하면 그냥 들어주고 싶지만 일정이 바빠서 그럴 수가 없다.


그때 예상치 못하는 곳에서 지원사격이 들어 왔다.


“야, 너 왜 그렇게 싫다고만 해?”


난 리리의 얼굴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리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뭐야?”


“아니, 니가 그런 말을 한 이유가 나랑 놀고 싶어서인지, 에라를 도와주려는 건지 모르겠어서.”


“뭐!?”


리리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뒷걸음쳤다. 리리는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나를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내, 내가 너랑 놀고 싶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난 그냥 에라를 도와주려는 거라고!”


“야, 손 치워. 그거 나쁜 버릇이야.”


내 핀잔에도 리리는 손을 치우지 않았다. 그저 더욱더 붉어진 얼굴로 빠르게 쏟아냈다.


“애초에 말이야. 오빠가 멀어지는 것 같아서 애인을 사귀는 게 싫다니. 그럴 리가 없잖아? 난 그냥 내 친구가 너 같은 녀석이랑 가까워지는 게 싫어서 그런 거라고. 응, 알겠어?”


“우와, 리리가 오빠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니, 감동인데.”


“손 안 치워!?”


나는 리리의 머리에 손을 얹고 쓰다듬었다. 그러자 리리가 굉장한 빠르기로 내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정말로 진심을 다해야만 피할 수 있는 속도였다.


바로 머리에 댄 손을 치우고 옆으로 피한 나는 어이없어하며 말했다.


“리리야, 방금 전 거는 맞았으면 정말로 다칠 뻔했거든? 그보다 말로 안 되면 때리는 건 누구한테 배운 거야?”


“시끄러!”


나는 슬퍼졌다. 아, 언제 내 위엄이 이렇게까지 떨어졌던 걸까. 리리한테서 오빠에 대한 존경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다.


위엄을 잃은 오빠가 동생한테 해줄 말이라곤 하나밖에 없었다.


“근데 솔직히 머릿결은 너보다 에라 쪽이 좋더라.”


“으아!”


리리가 달려와서 나를 때렸다. 작은 손이지만 나도 아직 어린지라 맞으면 아플 것이다.


물론 작정하고 막으면 별 문제는 없다. 나는 리리가 안 다치게 주먹을 받아내며 엄살을 부렸다.


“아이고, 불량 동생이 오빠를 친다!”


“너, 진짜!”


“풋.”


그때 우리 사이를 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나와 리리는 동시에 그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갑자기 주목 받은 에라는 크게 당황했다.


“아, 저기 죄송해요!”


“아, 괜찮아.”


나는 에라에게 집중하고 있는 틈을 타서 기습적으로 날린 리리의 주먹을 잡으며 말했다.


“으윽!”


리리는 내 손에서 주먹을 빼내려 노력했지만, 전혀 성과는 없었다. 나와 리리의 악력은 단위가 다른 수준이다.


나는 빼내는 걸 포기한 리리가 남은 손으로 때리는 걸 무시하고 에라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그래? 우리가 하는 게 재밌어 보였어?”


“예. 정확히는...”


에라는 나이에 맞지 않는 쓴웃음을 지었다.


“재밌는 것도 있지만...”


“있지만?”


“...그렇게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 않고 행동할 수 있는 게 부러워서요.”


“...”


나는 입을 닫았다. 방금 전까지 내 옆구리를 신나게 때리던 리리의 주먹을 잡아챘다.


“이익!”


나는 바동대며 성을 내는 리리를 진정시켰다.


“리리야. 잠깐 가만히 있어봐.”


“싫어! 니가 뭔...”


“리리야.”


나는 살짝 고개를 숙여 보였다.


“오빠가 미안해. 놀린 거 사과할게.”


“...응.”


리리의 기세가 눈에 띄게 줄었다.


“에라랑 이야기를 할 동안 조금만 조용히 해줄래? 그리고 조금 늦었지만 아무리 화가 나도 다른 사람을 때리면 안 돼.”


“...너한테만 그래.”


“그럼 다행이네.”


피식 웃은 나는 에라를 보았다. 에라는 긴장한 기색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래?”


“아뇨. 진지한 오빠는 오랜만에 봐서요.”


“...나 진지할 때랑 평소랑 나뉘어 있는 거야?”


나는 실없는 웃음을 흘리며 에라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경직되어 있는 모습이 더욱 눈에 잘 띈다. 일단 이걸 풀어줘야 대화가 좀 될 것 같다.


그런 판단과 개인적인 욕망으로 에라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어.”


에라는 살짝 놀라며 눈만을 움직여 나를 보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에라의 감촉에 심취해 있었다. 물론 머리를 말하는 거다.


나는 에라의 머리를 천천히 헝클어트렸다. 이마 바로 위에서부터 정수리까지 느린 속도로 쓸었다. 손에 닿는 푹신하고 보드라운 느낌을 한창 즐길 때 에라가 입을 열었다.


“저기 갑자기 뭐하시는 건가요? 아니, 싫은 건 아닌데요...”


“아, 맞다.”


나는 퍼뜩 현실로 돌아와서 머리에서 손을 뗐다. 나는 방금 전까지 머리를 만지던 손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에라야.”


“예?”


“너 머릿결이 엄청 좋구나.”


“...감사합니다?”


에라가 대답할 말을 못 찾는 건 상관없었다. 나는 스스로의 손을 내려다보며 전율했다. 아직까지 감촉이 남아 있었다. 잠깐 동안 현실을 잊을 뻔했다.


“대단한 재능이야. 자랑스러워해도 좋아.”


“아, 예.”


“야, 너 뭐하는 거야?”


그때 리리의 어이없단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진지한 모습이 돼서 비켜줬더니만, 왜 이상한 소리나 하고 있어?”


“너도 나누고 있는 거였냐?”


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확실히 분위기 좀 풀려다 이상한 짓을 해버렸다. 풀어도 너무 풀었지.


그래도 이야기를 안 할 수는 없다. 나는 헛기침을 한 다음 하려던 이야기를 시작했다.


“험험, 방금 전에 했던 이야기는 됐어.”


“예.”


“아무튼 에라 넌 한 달 전의 나에 대해서 알고 있어?”


“아뇨. 리리에게 들은 것 말고는 별로...”


“그렇지?”


난 고개를 끄덕인 다음 자연스럽게 사기를 쳤다.


“한 달 전의 나는 굉장히 소심해서 다른 사람 앞에서는 말도 잘 못했어.”


“예?”


에라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을 했다. 당연하다. 에라가 나를 처음 봤을 때는 이미 회귀한 후였으니까. 에라가 본 나는 적극적이고 장난기 많은 성격일 것이다.


에라는 여전히 믿지 못하는 눈으로 물었다.


“정말인가요?”


“응. 정말이야.”


옛말에 이런 게 있다. 다른 사람한테 무언가를 할 때는 스스로도 그런 일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에라는 이미 한 번 리리를 속인 전례가 있다. 그러니 에라도 한 번 속아봐야 한다!


난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말을 계속했다.


“딱 한 달 전만 해도 난 가족 이외의 사람한테는 말도 못했어. 너보다도 더 심했지. 넌 리리라도 있었지만 난 친구 한 명 없었으니까.”


“그런데 어떻게...”


뒤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어떻게 바뀔 수 있었냐는 거겠지.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기가 사기의 하이라이트다.


“잘 들어. 에라야.”


나는 집중하는 에라와 안 하는 척하지만 잘 듣고 있는 리리를 주시하며 말했다.


“사람이 바뀌는데 꼭 무언가 계기가 필요한 건 아니야.”


“예?”


이해하지 못하는 에라에게 추가적으로 설명했다.


“나는 오랫동안 다른 사람한테 자신감 있게 말하고 싶어 했어. 그리고 자신감 있게 말하게 됐지. 그것뿐이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어. 그냥 행동하면 돼.”


난 본격적으로 사기에 들어갔다. 예전에 사기꾼 친구한테서 들은 사기 치는 법을 최대한 활용해 에라를 속였다.


“니가 적극적으로 살고 싶다면, 적극적으로 행동해. 그러다 보면 어느새 적극적인 성격이 되 있을 거야.”


“...”


“우와.”


감탄사를 낸 건 리리였다. 리리는 인정할 수밖에 없단 듯이 말했다.


“너, 엄청 멋져...”


“드디어 우리 리리도 오빠의 위대함을 깨달았구나.”


장난스럽게 어깨를 으쓱하는 동안에도 에라는 고개를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고개를 의아해하는 순간 에라가 고개를 들고 말했다.


“감사해요.”


에라는 말과 함께 활짝 웃었다. 난 소아 성애자가 아닌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아름다운 미소였다.


아직 만개하지 않은 꽃과 같은 미성숙한 소녀의 웃음이었다. 이성적인 매력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 대신이랄까? 에라의 웃음에는 어둠 속에서 만난 빛과도 같은 성스러움이 담겨 있었다.


스스로의 두근거림에 당황하며 시선을 먼 곳으로 돌렸다.


“그, 그래?”


“예. 앞으로 뭘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에라의 미소가 장난스럽게 변했다. 에라는 내 팔을 몸으로 끌어안고 말했다.


“지금 뭘 해야 할지는 알겠네요.”


“...뭔데?”


“오빠.”


에라는 팔에 자신의 몸을 깊숙이 밀었다. 어느 순간 잊고 있던 주제를 꺼냈다.


“운동 같은 거 하지 마요. 오늘은 저랑 놀아요.”


이런 말을 하는 건 그렇지만, 정말로 그렇지만. 스스로의 성적 취향에 깊은 의심이 들지만. 내가 그 순간 느낀 건 하나였다.


예쁘다.


나는 순간적으로 떠오른 감상을 지우기 위해, 급하게 말했다.


“오늘 만이다.”


“예!”


큰 목소리로 대답하는 에라.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 귀여운 건 아까와 마찬가지였지만, 의미는 조금 달라진 듯했다.


그런 꽃이 활짝 핀 듯한 분위기 속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친구를 빼앗겼어.”


왠지 허무한 듯한 리리의 목소리였다.


@


“왔니?”


길었던 마중이 끝나고 집에 돌아왔다. 어머니는 언제나처럼 식탁에서 리리의 여름옷을 짜고 있었다. 이제 거의 완성되어 가는 중이었다.


“다녀왔어요. 어머니.”


“다녀왔어요. 엄마.”


“예. 아주머니.”


“그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여 우리들의 인사를 받고 말했다.


“위층에서 놀렴. 아, 그래도 오늘 아침처럼 시간차 비명은 지르지 말고.”


어머니의 농담에 우리들은 하나같이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던 도중 리리가 지금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러고 보니 아빠랑 아트 아저씨는 언제 와?”


“참 빨리도 묻는구나, 리리야.”


나는 따뜻한 눈으로 자랑스러운 동생을 바라보았다. 자랑스러운 동생은 울컥해서 말했다.


“뭐야, 그 눈빛은?”


“아무것도.”


난 장난만 쳤을 뿐이다. 제대로 된 대답은 우리보다 먼저 계단을 오른 에라가 해줬다.


“길어도 3일 안에는 올 거야.”


“아트 아저씨만?”


“아니, 두 분 모두.”


“왜 오는 시간이 같아?”


“어, 그게...”


에라는 아직도 소심한 성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거짓말을 할 때면 어색함이 그대로 드러났다. 아니, 소심함이랑 거짓말은 관계 없나?


어쨌든 이번에도 내가 나섰다.


“우연이야.”


“그래?”


계단을 다 오른 나는 리리의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쨌든 이제 놀자.”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 리리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였다.


“사흘 후면 두 분 다 다시 볼 수 있을 테니까.”


@


처키력 223년 5월 10일.


아버지와 아트 님이 숲으로 간지 8일째.


아직 둘은 돌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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