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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수 님의 서재입니다.

아르마노 기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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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문수
작품등록일 :
2022.08.17 19:05
최근연재일 :
2024.03.30 15:57
연재수 :
4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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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7,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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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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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불꽃의 노래 (2)

DUMMY

“내 칼···! 녹크! 루치 옆구리에··· 시발... 얀을···!”



카일이 꽉 막힌 목소리를 겨우 짜냈다. 녹크는 세상 멍청한 표정이었다.



”칼은 왜요?”



“이 멍청한··· 멜데, 나 좀 내려줘.”



“잠자코 있어, 이 망할 자식아.”



멜데가 홀로 짐마차에 내려 앞쪽을 내다보며 말했다.



“근데 얀을 어떻게 하라는 거야? 뭔 일 있나?“



뮬러가 크로머에게 속삭여 물었다.



“내가 어떻게 알아··· 사제에게 돈이라도 빌렸나?”



뮬러와 크로머는 사제에게 얼마만큼 빌릴 수 있을지 따지기 시작했다.



얀은 카일이 무슨 이유로 흥분했는지 잘 알았다. 마녀사냥을 주도하는 이테르넬 사제에게 파란 머리를 보여서 좋을 건 없었다. 얀은 파란 머리를 감싸려 두건을 꺼냈다.



“빚을 지기는...! 이 멍청한 놈들! 머리··· 머리···!”



카일이 자꾸 풀리는 눈에 겨우 힘을 주며 뮬러를 집어삼킬 듯 노려보았다. 뮬러는 그제야 문제를 깨닫고 놀란 눈으로 얀을 쳐다보았다. 얀은 그 눈에서 공포와 두려움을 읽었다. 무슨 짓이든 저지를 것만 같은 눈이었다.

불길한 예상은 어김없이 들어맞는 법. 뮬러가 난데없이 얀의 팔을 붙잡았다.



“크로머! 너도 잡아!”



“뭐? 뭔데?”



크로머는 영문도 모른 채 얀의 남은 팔을 붙잡았다.



“얀! 내가 도와줄게! 안심해!”



얀은 조금도 안심할 수 없었다.



“잠깐. 두건만 쓰면 되는-”



“내가 어떻게든 도와줄게! 당황하지 마!”



제일 당황한 이는 뮬러 본인일 것이 분명했다. 얀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 모양이었다.



“서시오! 거기 누구시오?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소?”



행렬의 앞쪽에서 한 사제가 외쳤다. 뮬러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젠장, 어떡하지? 어떡하지?! 응? 어떡해야 해? 머리를 밀어버려야 하나?”



“이테르넬이 코앞에 있는데 머리를 언제 밀고 있어, 이 멍청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크로머가 얀의 팔을 꽉 움켜쥐었다. 크로머도 공황에 빠진 게 분명했다.



“그럼 어떡해? 머리를 없애버릴 수도 없고!”



“아니, 두건을 쓰면 된다니까-”



“묻는 당신은?”



행렬 앞쪽에서 단장 아르투르가 사제에게 되물었다.



“전능하신 아버지 이테르넬 님의 뜻을 따르는 내 영혼은 자르베라고 부른다오, 궁금한 것 많은 영혼이여. 지금은 시브니 가문과 동행하고 있소. 당신의 영혼에 대해서도 알려주시오.“



사제가 말했다.



“내 영혼에 대해 할 말은 없다. 이름을 묻는 거면 아르투르 위더스푼. 브라우버 기사단장이다. 에르빈 툴레인 남작님을 모시고 있다.”



”기사단장? 단장이 남작을 모시기도 하오? 그런 얘기는 처음 듣소만.“



”안될 건 없을 텐데?“



”신의 뜻이 그렇다면 안될 건 없죠, 자부심 넘치는 영혼이여. 리미비토 마을을 지나갈 거요?“



”잠시 머무를 예정이다.“



“그럼 이테르넬 님의 뜻을 따라 마을에 들어가기 전에 검문하겠소.”



“검문? 무슨 검문?“



”사제의 영혼이 할 일이 뭐겠소? 위험한 영혼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지 않겠소? 예를 들면 마녀 말이오.“



사제가 아르투르 옆을 지나 행렬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검문한다는데···? 이러다가 얀이 들키기라도 하면··· 아! 크로머!”



뮬러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모양이었다. 얀은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질 것을 직감했다.



뮬러와 크로머가 동시에 얀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머리가 아래로 향하도록 거꾸로 뒤집었다. 얀은 머리 위로(정확히는 아래로) 찐득한 진흙밭을 보았다. 얀은 어느 때보다도 깊은 공포를 느꼈다.



뮬러와 크로머는 동시에 움직였고, 얀은 그대로 진흙에 머리를 처박혔다.



그걸로 부족한지 두 남자는 얀의 머리에 진흙을 덕지덕지 처바르기 시작했다. 조심성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우악스런 손길에 진흙이 콧구멍이고 귓구멍이고 가리지 않고 얼굴에 난 구멍이란 구멍을 빈틈없이 메꾸어 갔다. 얀은 살기 위해 몸부림쳤다.



“여긴 왜 이리 소란스럽소?”



사제의 목소리가 들렸다. 뮬러와 크로머는 그제야 얀을 구하려는(혹은 질식시키려는) 행위를 멈추었다. 사제 자르베와 정찰단뿐만 아니라 단장 아르투르, 그리고 콘베르소까지 기이한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 친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소? 처벌이라도 하는 거요?”



“처벌이요? 처벌은 아니고···”



“처···처벌 맞지···! 내기에서 졌거든.”



크로머가 뮬러의 말을 끊고 얼른 말했다. 얀은 속으로 사제를 향한 감사와 욕설을 동시에 쏟아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기에서 진 것치고는 과한 처사인 것 같소··· 어린 영혼이여, 괜찮소? 아이고. 뒤통수에다 대고 말하고 있었구만.”



얀은 대답 대신 진흙을 뱉어냈다.



“남작의 군대라고 하니 수준이 떨어지는 것쯤은 이해하지만, 육신을 이런 식으로 다루는 건 옳지 않소. 이 남자가 마녀가 아니라면 말이오.”



뮬러가 움찔거렸지만 자르베는 더는 알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다른 기사단 앞에서 이런 멍청한 짓을··· 감춘다고 감춰지는 줄 알아? 언젠가는 모두가 알게 될 거야···“



콘베르소가 짓씹는 듯한 어조로 속삭였다. 절대 참는 법이 없는 뮬러가 쏘아붙이려는 것을 크로머가 겨우 붙잡아 말렸다.



“이건··· 뭐요?”



자르베가 이전보다 더 심각한 목소리로 물었다. 사제는 짐마차 뒤 칸에서 반송장처럼 늘어진 카일을 보고 있었다. 무리를 했는지 카일이 욕을 내뱉으며 짐마차 안쪽으로 쓰러졌다.



“이 녀석, 음식을 잘못 먹었소.”



멜데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무얼 먹었길래 이런 거요?”



“조개요. 감자밭 너머 작은 개울에 있는 조개.”



“조개라고? 민물조개? 그걸 먹게 내버려두었단 말이오?!”



사제가 대뜸 소리쳤다.



”진정해요. 그렇게 심각한 일은 아니니까. 이 녀석이 부주의했기 때문에 조금 고생하는 것뿐이에요. 며칠 좀 쉬면 괜찮을 거예요.“



멜데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지 사제가 콧김을 훅 내쉬었다.



”간과하지 마시오, 육신을 치료하는 영혼이여. 조개는 마녀가 불순한 약물을 만들 때 쓰이는 재료요. 미약이나 마약뿐만 아니라 독극물을 만드는 데에도 쓰이지. 그만큼 마녀와 밀접한 재료라는 뜻이요. 그래서 내 영혼은 절대로 조개를 가까이하지 않소.“



”영혼이··· 뭐요?“



”저 영혼은 따로 조치를 받아야만 한다는 거요!“



사제가 답답해하며 말했다.



”이 친구는 그저 배탈이 난 것뿐이라니까요? 포도주 좀 먹이고 쉬게 하면-“



”모르는 소리 마시오, 가여운 영혼이여!“



사제가 버럭 소리쳤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시오! 이건 마녀와 연관된 일이란 말이오! 내 영혼이 책임지고 감당해야 할 일이오! 저 불운한 영혼은 내가 돌볼 터이니, 그대는 육신들의 발에 잡힌 물집이나 터뜨리시오!“



멜데는 얼굴이 확 붉힌 채 무어라 말도 못 하고 입만 뻐끔거렸다.



“도디! 이리 와보게!”



“네, 사제님!”



사제의 부름에 한 젊은 여자가 냉큼 달려왔다. 여자는 얀의 또래로 보였는데, 기름진 흑갈색 머리에 피부가 얇고 투명해 묘하게 앳된 인상을 풍겼다. 그녀는 소매와 목둘레에 하얀 띠를 두른 검은 예비 사제복을 입고 있었다.



“아무래도 근방에 악한 영혼이 있는 것 같네, 도디. 이 불쌍한 영혼 좀 보게. 마녀 때문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사제님 말이 맞습니다.”



도디라고 불린 여사제가 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불쌍한 영혼을 마을로 데려가게. 홀로 방을 쓰게 하게나. 그리고 저기 감자밭 너머에 있는 개울에서 조개를 구해 오거라. 절대 입에 대선 안 된다는 건 말 안 해도 알겠지?”



“이미 말씀하셨지만, 알고 있습니다, 사제님.”



“누구 마음대로 데려가겠다는 겁니까?”



멜데가 짐마차 포장 사이를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아무리 멍청한 놈이라도 이 녀석은 우리 동료예요!”



“그게 어쨌다는 거요?”



사제가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당신들이 마음대로 데려가고 말고 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이것 참··· 그래요. 당신 말이 맞소. 시브니 백작을 모시지도 않고, 사제의 길을 걷지도 않으니 이 가여운 영혼이 무얼 먹든 말든 내 영혼이 신경 쓸 일이 아니지. 하지만 이건 신과 악한 영혼의 문제이지 않소? 그러면 말이 달라지는 것이오.”



“신이고 영혼이고 난 그런 거 몰라요!”



“그럼 알아야 할 거요. 당신 자신을 위해서라도 말이오.”



“지금 협박하는 겁니까?”



“주의를 주는 것이오. 신의 법칙을 거스르면 화를 당하기 마련이니.”



강경하다 못해 침착하기까지 한 사제의 모습에 멜데는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럼 그렇게 하시오.”



자르베 뒤에서 누군가 불쑥 말했다. 얀은 앞을 볼 수 없었지만, 저녁 공기보다 차가운 목소리만으로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남작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카일을 저 인간들에게 맡긴다니요?”



“당신이 이 병사들을 이끄는 남작이오? 반갑소. 이테르넬 님을 모시고 있는 사제 자르베라고 하오.”



사제 자르베가 멜데의 말을 뒤로하고 남작에게 말했다.



“에르빈 툴레인이오. 카일을 데려가시오.”



“남작은 말이 통하는 영혼이군.”



“남작님!”



“다만 조건이 있소.”



남작이 이전처럼 조금의 생기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군의관이 카일의 상태를 주기적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시오. 이 일이 마녀와 관련된 일이라고 해서 우리 구성원이라는 사실이 사라지진 않으니 말이오.”



“뭐, 좋소. 그 정도는 봐줄 수 있소.”



사제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고 멜데와 남작을 번갈아 보았다. 멜데는 질릴 대로 질린 얼굴이었다.



---



땅거미가 슬금슬금 질 즈음, 리미비토 마을에 도착한 브라우버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 되었다. 마을이 작은 도시라 불러도 될 만큼 크고 주민들로 북적인 것이다. 거리와 광장 그리고 곳곳의 골목 가릴 것 없이 사람 없는 곳이 없었다.



시브니 백작이 이끄는 드가프 기사단은 파리도 미끄러지게 광낸 갑옷 차림으로 존재감을 과시했다. 뮬러는 쓸데없이 불편하게 사는 멍청이들이라며 코웃음 쳤다. 하지만 그런 뮬러도 붉은 새 문양이 새겨진 튜닉 외투만큼은 부러웠는지 지저분한 옷깃을 연신 만지작거렸고, 드가프 기사단 지휘관들의 가죽 장화와 장갑에 박힌 금은 장식을 보고는 결국 고개를 돌려버렸다.



“꼼꼼하게도 발랐네.”



얀은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커다란 건물 뒤편 한적한 골목을 찾아 길러온 물로 진흙을 씻어내기 시작했다. 아무리 씻어도 진흙이 치아 곳곳에 씹히고, 코와 귀에서도 더러운 물이 계속 흘러나왔다.



“그래도 얼굴은 좋아진 것 같은데? 진흙 덕분인가?“



뮬러가 얀의 외투에 물을 끼얹으며 말했다.



“진흙이 피부에 좋긴 하지. 그래서 돼지들이 진흙만 보면 환장하잖아? 그거 야들야들한 피부 만드는 거라고.”



크로머가 얀의 외투에 묻은 진흙을 떼어내며 말했다.



“그럼 쟤는 온 얼굴이 야들야들해졌겠네.”



“얼굴이 야들야들해? 하!”



재밌는 농담이라도 되는지 뮬러와 크로머가 히히거리며 웃었다.



“감자에 진흙을 발라보면 어때? 감자도 야들야들해지겠지?”



“야들야들한 감자? 그게 뭐야? 등신이야? 당장 해보자!”



그러지 않는 게 좋을 텐데. 얀은 속으로 생각하며 두피에 달라붙은 끈적이는 무언가를 떼어냈다. 죽은 벌레였다. 야들야들하군.



“근데 여기는 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죠? 보니까 대부분 마을 주민이던데, 왜 여기만 사람이 많은 거예요?”



녹크가 마을 거리를 내다보며 물었다.



“전쟁 중인 걸 모르나?”



뮬러가 말했다.



“여기 사람들 모두 전쟁 얘기뿐이에요. 우리보다 아는 것도 더 많아요.”



“뭐라는데?”



“전쟁이 더 심해지나 봐요. 국왕 폐하 직속의 프레이네 기사단이 오고 있고, 피아르 백작은 용병단을 이끌고 지나갔대요. 그리고 론드가 게릴라를 벌인다는데요? 게릴라가 뭐죠?”



“그 시꺼멓고 덩치 큰 동물 있지 않나?”



“그건 고릴라고, 멍청아. 게릴라는 두더지 새끼들처럼 싸우는 거잖아. 여기서 불쑥, 저기서 불쑥.”



크로머가 얀의 외투를 빨다 말고 휘휘 흔들며 말했다.



“두더지요? 론드놈들은 땅굴도 파요?”



“맞아! 아버지한테 들은 건데, 론드 놈들은 땅에 굴을 파고 산다더라. 거기 안에서 음식도 먹고, 똥도 싼다더라고.”



뮬러가 말했다.



“젠장! 생각만 해도 역겨운데··· 잠깐, 너네 아버지 사기꾼 아니야?”



“사기꾼이라고? 내 아버지가?”



“파란 머리는 마녀라면서? 너가 사기당했다고 화냈잖아?”



“아 맞아. 그랬지. 그 사람 사기꾼 맞아.”



“그럼 넌 사기꾼의 아들이군? 가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왜? 같이 동업하자고?”



뮬러와 크로머가 또다시 히히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얀은 머리를 마저 헹구고 힘껏 털어내며, 그들의 웃음 포인트가 어디인지 심각하게 고민했다.



“카일 선배는 어디 간 거죠?”



녹크가 물었다.



“드가프 기사단 쪽에서 지내는 것 같던데. 그쪽에 이테르넬에 사제들이 지내나 봐.”



뮬러가 말했다.



“거기 가면 포도주 좀 얻어먹을 수 있을까?”



크로머가 말했다.



“드가프 놈들이 가만두지 않을걸? 아까 녀석들 봤어? 눈깔에 기름이라도 바른 줄 알았다니까? 무슨 귀족 나리도 아니고, 우리랑 말도 안 섞더만.”



“지들은 잘나신 백작 가문의 기사단이라는 거지.”



“멋있긴 하던데요? 갑주도 번쩍번쩍하고, 칼도 멋지고요.”



“잘나신 백작 가문은 다르다는 거지··· 우리 남작님은 언제쯤 백작이 되시려나?”



“시시하다고?!”



그때 난데없이 건물 벽 너머로 노인이 버럭 소리쳤다. 어찌나 느닷없는지 다들 깜짝 놀라 아무 말 없이 눈치만 살폈다. 노인이 또다시 소리쳤다.



“이게 어떻게 시시한 일이여? 여긴 우리 마을이여! 우리 마을!”



“싸운다!”



뮬러와 크로머가 동시에 말했다. 둘은 얀의 외투를 내팽개치고 벽으로 후다닥 달려가 귀를 가져갔다. 머리에 두건을 잘 둘러맨 얀은 뮬러와 크로머가 두고 간 젖은 외투를 대충 짜며 말없이 그들을 지켜보았다.



“진짜 싸우네? 아니, 싸우는 거 맞아? 누구야? 지금 누가 화내는 거야?”



“조용히 해 봐. 안 들리잖아.”



“뭔지는 알고 들어야지!”



“좀 들어야 알지!”



“어어 또 싸워요!”



어느새 벽 너머 싸움 구경에 합류한 녹크가 말했다. 말싸움에 언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우린 지금 전쟁 중이라고! 그까짓 가축 좀 죽은 거 가지고 무슨-”



“그까짓 가축?! 그게 어떻게 그까짓 가축이야!”



“가축이 사람 목숨만큼 중요해?!”



“사람 목숨은 무슨! 벌써 보름째 잖여! 그 문제도 너네 덩어리들이 오고 난 이후로 생겼-”



“덩어리들? 지금 우리 드가프 기사단보고 덩어리들이라고 했어?!”



“그래! 귀한 음식만 축내는 덩어리들아!”



이후로는 정확히 의미를 알 수 없는 고성과 우당탕 쓰러지는 소리, 이러면 안 된다며 뜯어말리는 소음이 이어졌다. 뮬러가 만족스러운지 감탄을 터뜨렸다.



“들었어? 드가프 보고 덩어리들이래. 대박인데?”



“대박은 무슨 대박이야? 저걸 직접 봐야 대박이지.”



건물 정문 쪽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 쫓겨나듯 빠져나왔다. 노인이 또다시 소리쳤다.



“야! 여기 내 집이여, 이 덩어리들아!”



노인의 외침에 뮬러와 크로머, 녹크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동시에 틀어막았다. 2층 통나무집을 사이에 두고 화를 내며 소리치는 노인과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쓰는 세 사내의 모습이 꼭 꿈속 한 장면 같다고 얀은 생각했다. 어쩌면 지독한 수면 부족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지도 모른다.



“내 집이라고!!!”



뮬러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해 코 먹는 소리를 냈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큰지, 만약 거인이 있다면 잠자는 거인의 코골이로 오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너희들 뭐여! 여기서 뭐 하는 거여!”



노인이 건물 벽에 옹기종기 모인 뮬러를 발견하고는 소리쳤다.



“이거··· 우리에게 불똥 튀는 건 아니겠죠?”



녹크가 성큼성큼 다가오는 노인에게 눈을 떼지 않고 조용히 물었다. 뮬러가 다시 코 먹는 소리를 냈다.



“불똥이고 똥이고 이미 튄 거 같은데.”



“머시여! 이건 또 무슨 꿍꿍이여! 이 망할 기사단 놈들이라고!”



노인이 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소리쳤다.



“저기··· 저희가 뭘 꾸미는 건 아니고-”



“아니기는! 세금만 잔뜩 떼어먹는 도둑놈들이라고!”



녹크가 상황을 수습해 보려 했지만, 노인은 그의 얘길 들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우리도 세금은 내거든?!”



역시나 뮬러는 상황을 정리하려는 일말의 의지조차 없어 보였다.



“뭐? 이 녀석이 어디서 말대답이여!”



“먼저 소리쳤잖아!”



“이 덩어리 놈들이!”



“잠시만요.”



얀이 긴 침묵을 깨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



“이 덩어리는 또 뭐여? 젠장, 여기 완전 물바다잖여? 이젠 하다 하다 물까지 훔쳐 쓰는 도둑놈들-”



“드가프 기사단이 세금도 걷습니까?”



“뭐라고?”



되묻는 노인의 어조가 사뭇 차분해졌다. 이때다 싶어 한마디 꺼내려는 뮬러에게 얀이 아무 말 말라고 손짓했다.



“너희들··· 백작 기사단 놈들이 아니여?”



“아니야, 이 노인네야! 어떻게 드가프 기사단이랑 헷갈려? 우린 에르빈 남작님을 보시는 브라우버라고!”



뮬러는 의지뿐만 아니라 참을성조차 없는 게 분명했다.



“이거··· 자랑 맞아요?”



녹크가 크로머에게 물었다. 크로머가 어깨를 으쓱였다.



뮬러는 우리 남작이 백작보다 낫다느니, 덩어리 놈들과 우릴 함부로 비교하지 말라느니 하며 구시렁거렸는데, 노인은 옆머리를 긁적이기만 할 뿐 조금도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고도 노인은 한참을 고민하더니 이윽고 입을 열었다. 의외의 말이었다.



“이보게... 혹시 우리 좀 도와...주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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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불꽃의 노래 (3) 23.05.06 10 1 19쪽
» 불꽃의 노래 (2) 23.04.23 16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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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곰과 여우 (4) 22.12.10 18 1 18쪽
17 곰과 여우 (3) 22.11.26 22 1 20쪽
16 곰과 여우 (2) 22.11.12 19 1 15쪽
15 곰과 여우 (1) 22.10.26 21 1 18쪽
14 아이의 꿈 (6) 22.10.23 21 1 20쪽
13 아이의 꿈 (5) 22.10.22 21 1 16쪽
12 아이의 꿈 (4) 22.10.19 19 1 15쪽
11 아이의 꿈 (3) 22.10.16 23 1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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