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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원명 님의 서재입니다.

형벌

웹소설 > 자유연재 > 일반소설, 중·단편

도원명
작품등록일 :
2021.03.26 10:29
최근연재일 :
2021.05.04 09:30
연재수 :
21 회
조회수 :
435
추천수 :
1
글자수 :
105,085

작성
21.04.3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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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첫 재판

10여 년간 변호사 사무실에서 근무한 50대 초반의 남자가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수감 되어 겪는 수형 생활을 수기 형식으로 기록한 글로 재소자들이 수형 기간 겪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을 통하여 그들의 삶을 재조명 해보면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 생활하는 것이 물리적, 정신적으로 얼마나 힘들고 고통이 따르는 지를 저자의 경험을 토대로 밝히고 있으며, 이와 함께 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주려는 목적을 가지고 이글을 집필하였다. 또한, 더 나아가 교정의 목적인 교화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개진한 내용이 주된 내용입니다.




DUMMY

11월 12일 드디어 첫 재판이 열리는 날이다.


10월26일에 구속되어 보름이 지난 후에 첫 재판이 열린다. 진행 상황이 무척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라 한다.


날이 날이니만큼 남자는 평소보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산뜻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구치소나 교도소에서는 일종의 불문율 중 하나가 방 사람 중에 당일 재판이 있는 사람에게는 다른 재소자들보다 모든 것을 우선시 배려를 해주는 것이 있다.


세면, 식사 등 모든 절차나 편의를 제공한다. 재소자의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자신의 인생을 좌우할 최고 중요한 재판이 있는 날이니 모든 것을 우선하여 배려해 주는 것이다. 꼭 대입 입시를 보는 수험생의 가정에서 자녀의 입시시험을 잘 치르도록 염려와 배려를 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형님 오늘 재판이지요? 잘 받으세요!”


“잘 받으나 마나 인정사건이라서 뭐 할 것도 없어. 다만 국선변호사 얼굴도 못 보고 진행하는 것이 좀 그래”


“형님 국선변호사 한 번도 안 왔나요? 최소한 한 번씩은 오는데?”


“아마 재판이 생각보다 빨리 잡혀서 그런 걸 거야! 연기신청을 해야 할 것 같아!”


남자는 아침 점호를 받기 전 대기 하면서 박종찬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남자는 자신의 변화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했다.


변화란 말수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혼자 말라고, 먼저 말하고 말도 길어졌다. 원래 말수가 적은 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은 편은 더욱 아니고 적당한 편이었는데 이곳 구치소에 들어와서부터 본인도 모르게 조금씩 말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심리가 불안한 것에 대한 반증이리라!


점호를 받기 위해 복도 쪽 창문 앞에 쭉 늘어앉아 있으려니 창문 아래 벽에 A4용지와 볼펜으로 그린 달력이 전월, 당월, 익월로 차례차례 그려져 붙어 있고 그 달력에 방 사람 들의 재판 심리 일자와 선고 일자 등이 달력의 해당 날짜에 수 번과 함께 적혀 있었다.


11월 12일 날짜에 남자 수 번인 3239번이 적혀있었다. 이미 지나간 날짜는 엑스 표로 그려져 있었다.


여기 구치소에서는 이 달력 한 장에 모든 것이 다 들어있었다. 이미 지나간 내용과 날짜뿐 만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날짜와 내용까지 다 기록되어 있었고 그 기록내용 중 본인의 수 번과 내용에 모든 신경이 감각이 집중되어있었다. 그 날짜를 위해서 하루하루를 이겨내고 견뎌내고 있는 것이다.


힘들 때마다 달력을 보며 지나간 날짜를 세어보고 앞으로 남은 날짜를 세어보며 고통의 시간을 삭이고 있는 것이다. 그냥 한 장의 달력 한 칸의 날짜가 아니기에 그 날짜에 엑스 표로 지워가는 것은 절대 가볍지 않은 의미 있는 행동이기에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침밥은 밥그릇 가득히 한 그릇을 다 비웠다. 방의 의식이었다. 재판이나 선고 때 많이 먹고 가야 좋은 결과를 볼 수 있다는 하나의 징크스였다.


검시 출정 가듯이 법원 출정도 똑같은 방법으로 수갑 차고 포승줄 묶고 3명씩 연승을 하여 버스 타고 목성지방법원으로 향했다. 버스에 내려서는 검찰 출정 갈 사람들과 법원 출정 갈 사람들을 구분하여 줄 맞추어 섰다. 검찰 출정은 계단을 올라가 비둘기장에서 순서를 기다리면 되고, 법원 출정은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3연승으로 맨 끝에 묶여 있던 남자는 앞사람과의 간격을 살펴보며 조심스럽게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지하 통로가 나오고 그 지하 통로를 따라 검찰청 건물과 법원 건물이 연결되어 있었다. 지하 통로 끝에 다다르자 법원의 층별로 구분하여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엘리베이터가 열리자 바로 재판정 대기실이 나왔다. 붙박이 의자가 4개씩 한 줄로 여러 줄 놓여 있었다. 3연승의 포승줄은 풀어 주고 따로따로 앉혔다. 남자는 포승줄을 말아 쥐고는 의자에 앉았다.


대기실 좌우 벽 쪽으로 401호, 402호 법정 출입구가 보였다. 그곳에서 남자는 자신의 재판순서를 기다렸다. 교도관 한 명이 재판정 안에서 재판 진행 상황을 지켜보면서 순서에 맞게 피고인 재소자를 한 명씩 들여보내고 있었다.


드디어 남자의 운명을 좌우지 할 수 있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긴장 되었다.


갑자기 며칠 전부터 되뇌던 최후진술의 문구가 염려되었다.


지난번 구속영장실질심사 때와 비슷한 내용인데 염려가 되었다. 매일 나가는 운동 시간에 공범 때문에 혼자 나가는 독거 운동 때에 남자는 늘 운동장을 돌면서 몇 번이고 되뇌었던 그 최후진술이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크게 한숨을 들여 마시고는 내쉬었다. 같이 법원 출정 길에 오른 사람이 12명이었는데 한 명 두 명씩 들어가기 시작하여 이제는 남자를 포함하여 4명만이 남았다. 또 한 명이 나오고 옆에 있던 사람이 들어가고 있었다.


왼쪽 법정 쪽에서 나온 사람이 대기실 앞쪽 책상 앞으로 걸어갔다. 손에 수갑이 안 채워져 있다. 빈 손목이다. 책상 앞 의자에 앉는다. 교도관이 수 번과 성명을 확인 후 준비해온 서류 더미에서 그 남자의 서류를 찾더니 새로운 서류에 내용을 옮겨 적는 것 같더니 그 남자에게 내밀면서 뭐라고 한다. 아마도 몇 칸의 빈칸에 내용을 기재하라는 것 같다. 그 남자가 볼펜을 손에 쥐고 여기저기에 기재하면서 몇 마디 주고받는다.


“꼭 신고하여야 합니다. 조건부 집행유예입니다.”


‘아 저것이 집행 유예이구나’ 남자는 책상 앞의 그 남자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머리는 덥수룩하고 수염도 며칠을 깎지 않은 초췌한 40대의 남자였다.


교도관이 한쪽 벽에 걸려 있는 칠판의 ‘집유’ 라고 쓰여있는 항목에 기재한다. 401호 심리 3. 선고 2. 법구. 집유 1. 법구는 법정구속을 말하며 아직은 없는 모양이었다.


남자는 집행유예의 그 남자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재판정 안에서 교도관과 재소자 한 명이 같이 나오며 재소자에게 다른 교도관이 수갑을 다시 채우고 의자에 앉힌다. 바로 그때


“한동수 씨!”


남자는 교도관의 호명에 앞에 나가 손목을 내밀자 법정 교도관이 수갑을 풀어 주고는 402호 법정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정면에 재판관인 판사 한 명이 법대에 앉아 있고 그 아래에 속기사와 법원 사무를 담당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사람 두 명이 앉아 있으며 그 앞 왼쪽에는 검사가 반대편인 오른편쪽에는 변호사로 보이는 여자가 앉아있었다.


남자의 뒤쪽에는 방청석이 마련되어 있었고 얼핏 보니 열 댓 명은 되어 보였다. 담당 교도관이 남자를 피고인석인 변호사 자리 옆쪽에 데리고 갔다. 남자는 여자 국선변호사로 보이는 여자에게 가볍게 묵례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40대 중 후반의 판사가 낭낭한 목소리로 재판개정을 알리며 피고인 인정심문을 하고 있었다.


“피고인의 성명과 주민등록번호를 말씀해주세요!”


남자는 자신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를 또박또박 읍 조렸다.


“현주소를 말씀해주세요!”


현주소까지 확인 후 재판장의 말이 이어졌다.


“피고인은 변호사법 위반으로 구속기소 되었는데 맞습니까?”


“네”


“검사의 공소사실을 다 인정하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판사는 공사실과 범죄혐의가 기록된 서류 뭉치를 흩어 보며 말을 하다 중간마다 남자가 작성하여 검찰에 제출한 증거자료와 USB의 내용을 디스켓으로 옮겨 담아 보관된 자료를 보이며 남자가 제출한 서류가 맞느냐고 물어봤다.


“네. 그렇습니다.”


남자의 대답을 듣고 판사는 말을 하였다.


“이 사건은 초범이고 피해자가 없는 인정사건이므로 바로 다음에 선고하겠습니다.”


남자는 빠른 재판 일정을 감안 하더라도 ‘바로 다음 기일에 선고라니’ 아무리 인정사건이라고 하여도 변호사와 한 마디 상의 없이 이렇게 사건이 진행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재판장에게 연기 신청을 하려고 옆자리의 국선변호사에게 내용을 간단히 얘기하자 국선변호사는 순간 당황한 것 같았다. 이에 남자가 판사에게 직접 말을 하였다.


“재판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네. 말씀하세요.”


“재판 연기 신청하겠습니다!”


재판장인 판사도 남자의 뜻밖의 재판 연기 신청에 그것도 변호사도 아닌 피고인이 직접 재판을 연기하겠다고 신청하니 의아하다는 듯이 물어온다.


“왜 그러세요?”


남자는 이에


“오늘 처음 변호사님을 뵈었고 상의할 것도 있어서 그렇습니다.”


남자의 대답에 판사는


“변호사님 언제까지 날짜를 드리면 되나요?”


하고 바로 변호사에게 앞으로 얼마간의 시간을 원하느냐고 되물어 본다. 변호사는 간단하게 서류를 넘겨보며 한 2주 정도를 얘기하자 판사는 자신의 일정표를 보는 듯하며


“그럼 2주 후 24일 10시에 심리하겠습니다” 하고는


“국선변호사 선임 된 것 보내드린 것 서류 받으셨나요?”


하고는 남자에게 물어본다. 남자가 받은 적이 없다고 하자


“오늘 도착할 겁니다. 심리종결 하겠습니다.”


남자는 얼떨결에 엉거주춤 일어서며 판사에게 인사를 하자 옆자리의 변호사도 일어서며


“제가 접견 갈게요!” 한다.


남자는 변호사에게 인사를 한 후 교도관의 안내를 받으면서 들어왔던 출입구로 퇴장을 하였다.



재판에 걸린 시간이 불과 10분 남짓 된 것 같았다. 기분이 묘하고 착잡했다. 자신의 거취가 법적 조치가 본인한테는 초미의 관심사이고 지금으로서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지만 인생을 바꾸는 아주 중요한 재판이지만 이곳 법원의 판사와 변호사에게는 일상적인 일의 한 부분으로 큰 관심거리의 사건도 아닌 일반 평범한 사건으로 처리되고 있었다.


국선변호사가 재판 당일 날 법정에서 처음 보는 것을 보면 얼마나 시간에 쫓겨 사건배당을 받았는지 유추해 볼 만 했다. 또한, 판사나 변호사 입장에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고맙기도 하였다.


하지만 남자는 자신이 요청한 재판 연기신청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몰랐다. 만약 연기신청을 하지 않고 판사의 원래 계획대로 다음 기일에서 선고가 내려지는 것과 2주 후로 일정이 더 늘어나는 것과의 차이가 선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검사의 구형 등 외부적인 영향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 등에 관하여는 전혀 생각하지 못하고 다만 평소의 소신대로 절차에 대한 최소한의 보장을 받고 싶은 심리가 발동하여 그런 결정을 한 것에 대한 결과를 말이다.


구치소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여느 때와 똑같이 조용하였지만, 그 고요 속에 침묵 속에 간간이 한탄스러운 한숨 소리가 정적을 깨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 법정에서 선고받은 사람 중에 본인이 예상했던 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되어 저도 모르게 나오는 한숨 소리 같았다. 남자는 저 소리가 자신의 소리가 되지 않기를 바라며 눈을 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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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그들의 집행유예의 조건과 국선변호사의 역활 21.05.03 10 0 8쪽
» 첫 재판 21.04.30 14 0 11쪽
18 패륜범의 고난 21.04.30 11 0 4쪽
17 보안과장과 까마귀 21.04.27 23 0 11쪽
16 이감온 신입2 21.04.26 11 0 17쪽
15 이감온 신입1 21.04.23 14 0 15쪽
14 범털의 위용 21.04.20 20 0 7쪽
13 아내의 면회 21.04.20 10 0 5쪽
12 본 방 입방과 코골이 21.04.19 19 0 39쪽
11 선택의 갈림길 21.04.16 15 0 7쪽
10 검시출정2 21.04.16 9 0 9쪽
9 검시출정 21.04.13 14 0 21쪽
8 신분탈락2 21.04.12 15 0 16쪽
7 신분탈락1 21.04.09 20 0 12쪽
6 유치장3 21.04.07 16 0 1쪽
5 유치장2 21.04.07 13 0 6쪽
4 유치장 21.04.06 15 0 11쪽
3 영장 21.04.03 52 0 10쪽
2 영장 21.04.02 52 0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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