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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레인 님의 서재입니다.

브류나크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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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레인
작품등록일 :
2020.05.26 11:05
최근연재일 :
2022.01.06 18:53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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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글자수 :
104,697

작성
20.06.06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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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8화. 오후의 산책

DUMMY

밥을 먹고 보니 중년 남성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원래는 지방의 나름 유명한 가문의 차남이었는데 중앙으로


오면서 정치와 협잡, 사교생활에 회의를 느껴서 숲으로


떠나와 근근이 낚시를 하며 벌어먹고 산다고 한다.



나름 장군 같은직위도 황실에서 받은 인물이라고 하는데.



"와, 그럼 대단한 분이셨네요? 장군이면.."


"..(우물 우물) .. (꿀꺽) .. 별 거 아니라네."


"네?"



"그 정도는 여기에서 별 것도 아니야.


후작 가문의 가장 말단의 무장도 여기선 장군 직위를 받지.


물론 시골 출신 치고는 나름 대단한 것도 맞긴 한데..."


그가 다시 고기를 포크로 쿡 찍어서 입에 넣고


다시 꿀꺽 삼킨다. 그리고서는 포도주잔을 들이킨다.



"(꿀꺽)... 크으.. 포도주 맛 죽이는 구만.. 거, 뭐냐, 기사단!


그래 기사단장 정도는 되어야 어느 정도 위세가


생긴다고 할 수 있지.."


노인이 쓸쓸한 눈빛으로 허공을 잠시 쳐다보았다.



...기사단장이 그렇게 중한 위치였구나.


그럼 예전에 뵌 그 분들도...



"...하지만 뭐, 기사단이라고 다 같은 기사단은 아니니까.


황실기사단과 흑 기병대를 제외하면 나머지 기사단은


어중이 떠중이도 많고... 사칭하는 놈들도 많아서.


뭐, 혹시나 싶어서 주의하긴 하지만 요샌 하도 사칭하는


녀석들이 많아서... 양아치 놈들이 수틀리면 개나 소나


지가 무슨무슨 기사단이라고 떠들어대더군. 사실 막상


구경도 한 적도 없으면서 말이야. 허허."


음.. 역시 그 정도는 아니었군..


하긴 뭔가 허당같고 빈틈이 많아보였어..



맛있게 식사를 마친 후 씻고 나와서, 어르신의 집을


청소하는 걸 도와드렸다.


반강제(?)였지만 오랜만에 푹 자고(숲 바닥에서!) 밥도


배부르게 먹어서인지 이것저것 많이 옮겼는데도 온 몸이


개운하고 힘이 넘쳐났다. 이게 어느 정도인지 감이 안


잡힐까봐 그러는데 깨끗하게 정돈된 지금의 상태에서


집을 다시 어지럽히고 싹 다 청소하라고 시켜도 거뜬히


해내고도 남을만큼 기운이 남아 돌았다.



마무리 정돈을 마치고, 커피 한 잔을 마신 뒤 집 주변을


가볍게 둘러보며 산책을 했다. 햇빛은 눈부시게 풀잎들을


비추고 있었다. 반짝이는 호수는 영롱했다. 군데 군데


꽃들도 나있었고 덤불이 둘러싸인 곳엔 먹지못할 조그맣고


이상한 열매들 뿐이었지만 그래도 뭐가 열렸나 구석구석


살펴보는 재미가 있었다.



이게 엊그저께만 해도 멧돼지에 쫓겨 죽을 뻔 했던 나의


신세라니 뭔가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며칠 전만 해도


귀족의 뺨을 때렸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막막했지만 오늘은 한 껏 여유를 누리며 오후의 산책을


즐기고 있다. 그냥 세상의 모든 걸 잊고 여기 옆에


오두막을 새로 지어 어르신과 이곳에서 가끔


내기 체스나 두면서 살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제 다시 들어가보려고 하는데, 호숫가에 어르신이


뭔가 길쭉한 걸 들고 조막만한 의자에 앉아계셨다.


아니 왜 위험하게 저러고 있지 하는 생각에


얼른 다가가보았다.



가까이 다가가보니, 어르신은 낚싯대를 호수에 드리우고


물고기를 잡고 계셨다.


옆에서 구경이나 좀 할까?


"아, 자네 왔나? 무슨 일인가."


"아니, 저.. 호수 가까이서 낚시를 하고 계시길래


저도 한 번 옆에서 구경이나 할 까 하구요."


"허허. 뭐, 별 거 있나. 여기선 물고기도 잘 안 잡힌다네.


저쪽 강 윗줄기를 타고 쭉 가야 그제서야 큰 놈들이


우후죽순으로 튀어나오지. 해봐야 피래미들이나 잡힐까?"


어르신이 허허 웃으며 입 맛을 다셨다.



"아니 그런데 왜 여기서 낚시를 하시는 겁니까?"


"그야.."


잠시 할 말이 없어지신 건지 호숫 바닥을 응시하다가


다시 입을 뗐다.


"시간을 낚는 거지."


"네?"


"어차피 이제 많이 잡아뒀으니 오늘 내일은 충분히 버틸 수


있지 않나. 나는 여유가 생긴 만큼 그 여유를 즐기고 싶네.


단지 그 뿐일세."


"아.."


"또, 강가 상류에 가더라도, 계속 가서 잡으면 씨가 다


마르지 않겠나? 일종의 텀을 두어가면서 잡는 걸세.


자연과의 공생 비법이라고나 할까. 허허."


과연..



아예 자연인처럼 살면 홀로여도 이렇게 여유가 넘칠 수도

있구나. 여유라...고아로 의지할 바 없어 아득바득 매일


일감을 찾아 살던 나로서는 상상도 해보지 못한 단어였다.


그런데 가족이 없어도, 이렇게나 넉넉하게 여유를


즐기며 살 수 있다니..


아니, 혹시 가족이 없어서 그런 여유가 있는 것인가?



파칭하고 번뜩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에이, 아니야하고


그 해괴한 생각을 털어버렸다.



뭐니 뭐니 해도, 적당한 여력만 꾸린다면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 이게 우리 세대 대다수가 말하는


행복의 정의에 가까웠다. 나도 경험은 아직 못 했지만,


그게 뭐..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


아무튼 그런 씨잘데기 없는(?) 생각들을 하다가보니,


금세 오후가 지나고 밤이 되었다. 밤에는 별을 보면서


불을 피워 멧돼지 뒷다릿살을 구워먹었는데, 희한하게도


굴 소스인가 뭔가하는 어르신의 특제 양념에 고춧가루라는


특이한 가루 덩어리를 솔솔 뿌려서 섞어 바르니 그 맛이


기가 막혔다. 덕분에 조금 질긴 감이 있는 고기였는데,


양념 때문에 입에 침이 잘 고여서 그런가 걸림없이 잘


넘어갔다. 간혹 연골 같은게 씹히곤 했는데 어르신은


무릎 같은 데 좋다고 특히 좋아하시며 꼭 먹으라고


권하셨다. 근데 내 이빨이 아픈 게 좀 문제였지만..



뭐, 아직 젊으니까 괜찮겠지(?!).



날은 선선했고 밤 풍경은 아름다웠다.


어디를 쳐다봐도 고개를 위로 좀만 올리면


별들이 땅으로 쏟아지는 듯 했다.



"..자네는 꿈이 있었나?"


어르신이 불 더미를 막대기로 뒤적거리며 물어보셨다.


목재 하나가 던져지더니 화르륵하고 불이 잠시 치솟았다


다시 가라앉는다.



"...그야 물론이죠."


"허허, 그래야지. 젊은 이는 꿈이 있어야지.


그래, 꿈이 뭔가?"


"어.."


왜일까, 잠시 망설여졌다. 이유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어르신한테 이미 내가 이곳으로 도망쳐온 사연 같은 걸


오전에 말한 터라 더 그랬던 것 같다.



얼마 전 까지는 반드시, 어떠한 일이 있어도 되고싶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까지는.


"기..기사가 되는 겁니다."



노인이 뜨악한 표정으로 막대기를 내던졌다가


'아.. 막대기 새로 구해야겠네.. '하고 중얼거렸다.


아쉬운 표정으로 스치듯이 '스냅이 적절했는데 쩝..'..


이라고도 한 것 같다.



"기사라.."



"네.. 그것도 그 중 최고, 기사 중 기사라는


기사단장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뭐? 허허허!"


어르신이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귀족 아들의 뺨을 때려놓고 도망친 자네가..


기사단장이 된다고? 하하하!"



..그래요. 저도 압니다. 말도 안 되는 거.


에휴.. 어쩌다 이런 신세가 되었지.



"..아주 멋진 기사단장이 되겠어, 자네라면."


어르신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맞은 편을 응시했다.


불똥이 타닥 타닥 튀었다.



"..그랬으면 싶죠. 하지만 이젠 더이상.."


"돌아가게." 어르신이 불쑥 고개를 돌려 말을 끊었다.


"...네?"


"이곳은 자네가 오래 머무를 곳이 아니야."


" ?"


"..이런 곳은.. 나같이 세상에 미련이 없는 노인네들이나


머무르는 곳이지. 몸도 쇠약하니 휴양이나 할 겸.


자네같이 꿈과 야망이 있고 아직 젊음이 머무르는 이들이


그저 안주할 곳이 아니라네. 물론, 오래 머무르라고 해도


이내 지루함을 못 견디고 금세 떠나가겠지만."



글쎄요..전 이곳도 충분히 마음에 드는데..


한산하고.. 여유있고..



"음.. 아무리 돌아가고 싶어도 어차피 저는 귀족한테


대놓고 찍혀서 쫓기는 몸인 걸 어쩝니까?"


숲 속에 오래 적응하셔서 잊으신건지 모르지만..


하하..


저 쪽으로 가면 밤길에 쥐도 새도 모르게


그 아르피델?이란 놈의 성으로 끌려갈 지도 모른다구요.



".. 돌아가서 바로 황실 기사단에 입단 신청을 하게나."


나도 모르게 턱이 턱 벌어졌다.



아니..에?



대체 뭔..말이 됩니까?'



잠깐 아찔했지만 정신을 수습하고 일단 공손하게 여쭤봤다.


"네? 그게 가능하긴 한 겁니까?"



"물론. 자넨 몰랐겠지만 원래 황도에서는 시민이 귀족이


함부로 때리거나 다루는 건 금지되어 있다네. 정확히는,


'허락없이' 겠지만."



귀를 쫑긋 세웠다.



그러고보니 비슷한 얘기를 어디서 들어본 것도 같고..


이거 내 삶이 달라질 수도 있겠는데?



"허허, 동태같던 눈에 이제 다시 빛이 돌아오는 구만.


정말 몰랐었나 보군. 제국의 모든 것은 황제 폐하의


소유란 건 잘 알고 있겠지. 특히 황도에서는 뭐든지


허가없이 훼손하는 것은 중한 처벌을 받는다네.


사물만 그런 게 아니라, 시민이어도 마찬가지지.


간혹 시찰을 나오실 때 폭력을 휘두르는 모습이


황제 눈에 띄었다? 죽은 목숨이지."



오호..



"그런데 신하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할 순 없으니,


황제도 왠만하면 후작이나 백작들의 성안까지 매번


들어가보시지는 않는다네. 워낙 정쟁도 심하고..


후.. 세력이다 뭐다해서 귀찮은 일이 산더미거든. ”


어르신이 한 숨을 쉬면서 입을 다시셨다.



하물며 너무 영향이 강하면 가끔 반역을 꾸미고


있지 않나 싶을때 견제하려고 돌아보시는 건데.


중앙에선 별로 취급도 안 치는 흔하디 흔한 남작의 성?


당연하지. 거들떠보시지도 않고, 한 두해 그런 게


쌓이다보니 치안을 만만하게 여기고 몰래 사람들을


제깟 놈의 성으로 데려가 고문을 하고 그러는 게야."


어르신이 끌끌하고 혀을 찼다.



"하지만 엄연히 불법은 불법..


만약 자네가 겪은 일이 황실로 다이렉트로 보고가


올라간다면 황제폐하꼐서는 크게 노하지 않겠나?"


"그..렇긴 하죠."


"당연한 거야. 거기다 황실 기사단에 입부를 한다?


재판 없이는 함부로 체포하거나 구속, 처벌할 수 없네.


어떠한 사병도 동원해 해꼬지하는 게 금지인데다 만약


관여한 귀족이나 사병이 있다? 손가락 발가락 머리


달랑거리는 거(?)까지..모두 사지와 분리


되고 사돈의 팔촌까지 실형을 받게 되는 게 황실 치안


법일세. 반역도모 가담죄로 말이야.


사실, 중앙의 권력을 획득한 공작가나 후작가가


황실을 보호하는 병력을 지멋대로 누명을 씌워 하나씩


제거하면 황실의 치안도 위험해지니까, 당연한 게


아니겠나?"



..듣고보니 그렇네요. 네.



"요즈음은 연이은 패전으로 황실 기사단의 위상이 죽긴


했어도 그래도 명목상 황가를 수호하는 병력이니까,


그 명단이 모두 황제폐하의 손에 직접 매일매일 보고되고


관리된다네."


"아.. 그렇군요."


"그래. 물론 안 들키고 거기까지 가는 건 쉽지 않겠지.


설마 그럴거라 생각하겠나?"


노인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웃었다.



" 말도 안돼, 알려진 것도 하나 없고, 능력도, 빽도


가문도 없는 평민 애송이가 감히 귀족을 쳤네.


이 녀석이 모든 감시에도 불구하고 잡히지 않고


기사단의 문을 박차고 들어가 담대하게 황실 기사단


입부 신청을 한다고? 에이, 그전에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서 고문당하다 죽겠지.. 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겠나?


당연하지. 십중팔구 그렇게 여길걸세. 하지만 그럴수록!


자네가 그녀석들의 의표를 찔러야지. "


"오.. 하지만 그녀석들을 제가 무슨 수로 대적.."


"대적? 가능하다고 생각하나? 동원가능한 병력만


얼마인데?"


"..음.."


"적어도 아직은 대적하려고 하지 말게.


정의도 실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비로소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법이야.


의분심에 스스로를 위험에 빠트리는 건 정말 상황이


여의치 않거나 아니면 시야가 좁아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자들이 하는 걸세. 자네는 아직 선택지가 남았지


않나?"



뭔가 반박을 하곤 싶었는데, 곱씹어보니, 맞는 말이다.



"최대한 시선을 피하는 걸세. 변장을 하고, 새벽에


움직인다면, 충분히 남작 수하들의 감시를 따돌릴 수 있네.


황실의 치안 병력이야 깨어있겠지만, 그들은 자네의 적이


아니지 않나. 남작의 성으로 잡입하는 게 아니니, 만에 하나


깨어있는 사병이 있더라도 자네가 그들과 마주할 확률은


막상 까보면 극히 적겠지."



아.



가슴에 답답했던 것들이 풀리는 심정이다.


머리가 어지러웠던 것들이 시원해지면서


숨쉬기가 한결 편해지는,


그런 기분이다.



앞으로 해야할 것들이 선명해진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어르신."


이정도면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다.


너무 기쁜 마음에 절까지 올렸다.



그 소문만 무성한 현자는 못 만났지만,


나는 오늘 인생의 은인을 만났다.



... 그렇게 밤이 깊어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으셨으면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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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8화. 황실에 뻗치는 마수. 22.01.06 15 0 6쪽
19 17화. 마혈 21.12.30 17 0 12쪽
18 16화. 델리칸토르 앙바셰 21.12.29 21 0 16쪽
17 15화. 검술 대련 21.08.05 26 0 15쪽
16 14화. 신경전 21.03.13 66 0 21쪽
15 캐릭터 프로필 01 21.02.01 22 0 1쪽
14 13화. 수업 20.08.17 38 0 11쪽
13 12화. 전투 20.08.02 28 0 21쪽
12 11화. 페르크..? +2 20.07.21 38 1 12쪽
11 10화. 기사단의 첫 인상 +2 20.07.18 42 1 11쪽
10 9화. 카리얀과의 조우 20.07.07 53 0 14쪽
» 8화. 오후의 산책 20.06.06 27 0 13쪽
8 7화. 멧돼지와의 조우 20.05.30 37 0 11쪽
7 6화. 잔향의 숲? 20.05.30 46 0 12쪽
6 5화. 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 +2 20.05.30 42 1 11쪽
5 4화. 빵집 사건 20.05.29 30 1 12쪽
4 3화. 기사단과의 조우 +2 20.05.28 45 1 15쪽
3 2화. 고블린의 습격 20.05.28 49 1 12쪽
2 1화, 랑트의 죽음 +1 20.05.26 110 3 5쪽
1 프롤로그 +6 20.05.26 114 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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