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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레인 님의 서재입니다.

브류나크 연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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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레인
작품등록일 :
2020.05.26 11:05
최근연재일 :
2022.01.06 18:53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858
추천수 :
10
글자수 :
104,697

작성
20.05.30 12:39
조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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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5화. 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

DUMMY

신분제.. 빌어먹을 신분제..



다시 생각해보건데, 우리 마을은 정말이지 좋은 마을이었다.


아무도, 서로가 서로를, 부족한 게 있다고 깔보고 경시한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까.



모두가 평민이어서, 그래서였을 지는 모른다.



허나 내 기억으론 그것이 혈통이든, 부유함이든,


그런 것 따위로 상대를 짓누르고


깔보는 일은 없었다.



마을을 떠나 중앙으로. 그 머나먼 길을 걸어오며 여러


인간 군상을 마주치곤 했다. 그리고 난 우리 마을에


얼마나 훌륭한 어른들이 많았던 건지 새삼 다시 느끼곤


했었다.



귀족이다.


귀족.


그것도 높으신 귀족. 무려 남작님의 아드님.



저 돼지 같은 녀석이 말이다.


얼마나 절대적인 이름인가?



나같이 이름없는 평민에..


고아에게는.


아니, 부모를 모른다고 하는 게 맞을려나?



발이 후들거린다.


아. 꽉 쥔 주먹이 흔들리는 거구나.



큭..



“ 남작님의 자제분이셨군요.”


“...???”


내가 칼을 거둬들이고 마차에 한발 짝 더 다가가자


모두 벙찐 채 놀란 눈으로 쳐다본다.



“녀석!! 무슨 짓을 하려고!”


“가만히 안 있어? 당장 몸을 반토막으로!”


무릎을 꿇었다.


엎드렸다.



좌중이 숨을 잠시 멈추는 게 느껴진다.


“.. 제가 감히 모르고 결례를 범했습니다.“


“ 그런데? 사과? 됐어~ 안 받아줘~ 돌아가!


저녀석부터 당장 무릎 꿇려서 두들고 패놓고 얘기해~ ”


녀석이 코를 파면서 심드렁하게 말한다.



..이걸로 부족한가.


일어났다. 그리고 한 발짝 물러났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무릎을 꿇었다.



그래야만 했고, 그것이 찍히지 않으려면 옳은 행동


이었을 것이다.



“.. 죄송합니다.”


“네! 네놈!”


“크.. ㅋ.. 크ㅎ하하하핳! 맘에 들었어!


좋아! 그런 개 같은 근성, 좋아. 노예는 노예다워야지.


한데, 내가 시킨 명령은 그게 아닐텐데?”



..노예?


.. 그래, 맞다.



노예. 저 높으신 귀족 나으리의 집에서는 우리는 노예나


다름 없겠지. 시중들고, 마차를 끌고, 호위한다. 아무리


말도 안되는 명령을 내려도, 꼴보기 싫어도 받아들인다.



심지어 밖에서 나와서 저 지랄을 해도..


신분제 사회.




귀족이 맘에 들건 들지 않건,


그렇지 않으면 안 되니까.


최소한 한 평생을 떠돌이로 살 생각이 아니라면..


견뎌야만 하니까.




하물며 우리나라는 옆나라 베른 공국과 달리 신분제가


극심한 나라. 심지어 이곳은 내가 머물던 구석진 벽촌이


아니다. 도시 중의 도시. 번화가중의 번화가. 무려 황제가


머무르시는 황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이곳 사정을 잘 몰라서..주제넘게 끼어


들었습니다. 차마 저분들을 때리지 못하겠습니다. 모든 게


제 잘못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제발 용서해주십시오.”


“허어.. 이 자식이? 도대체 내 귀는 똥구멍으로 쳐듣나?


요, 요 재수 없는 꼬마녀석을 요렇게! 요렇게 패주고,


저 어미라는 작자도 두들겨 패란 말이야!


이것도 못해? 어려워? 목숨이 아쉽지 않나 보지?”


녀석이 마차 앞의 호위하는 사람을 퍽퍽 때려댔다.




으아아아아아아앙


꼬마애가 계속 울어대는 소리가 귓가를 때려댔다.



“어우 시끄러! 이래서 백성들은 가까이 두면 안 된다니까.


역겨워서 견 딜 수가 없어! 내 귀가 썩을 것만 같아!“


하고 갈라진 왜가리 목청으로 인간의 낱말이 들려왔다.


“이보게 청년! 당장 때리고 오게나! 시늉만 하면 돼!


잠깐이면 될거야! 잘못 찍혀서 인생 망치고 싶나?


저 지랄맞은 성격이 안 보여?”



주변은 웅성웅성거렸고 뒤에서 어떤 한 중년 남성 목소리가


나한테 조근 조근 말을 건넸다.



시늉.. 그래. 시늉.


주먹을 쥐고 일어섰다.



“..분부대로.”


실제로는 안 때리면 된다.


그래, 저 띨빡한 뚱땡이가 눈치라도 채겠는가?


안 그래도 난 기사단에 들어갈 몸. 당장이라도 물의를


빚거나 높으신 귀족분들께 찍히면, 나는 입단조차


못하거나 나가리다.



앞길이 창창한 나로서는 도저히..


으아아앙.. 아이는 계속 울고 있었다.


그림자가 지기 전까진.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는 도리어


울음을 그쳤다. 무서워서였을까?



“ 미안하다, 꼬마야. 죄송합니다. 어르신..”


차라리 나를 욕해주길 바랬다.


그순간엔 그런 기분이었다.



마냥 나를 죽어라고 욕한다면, 그런다면


차라리 견딜수 있을 그런 기분..


나만 쓰레기면 된다.


그랬다면 이렇게 일들이 귀찮아질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아요. 우리..우리 아이...


무엇보다 관리못한 저.. 제 잘못이니까요.”


아이의 어머니는 딱 봐도 지쳐보였다.


많이 못 먹고 지냈는지, 파리한 표정으로, 핏기가 가신


상태였다.


그 상태에서 말하는데.. 말하고나서 웃었다.


왜?


왜 웃는건데?


사람 미치게..



“가만.. 그러고보니 내가 못 보는 칼쓰는 사람은 없을 텐데,


네 놈 이름은 뭐냐? 어이! 대답해! 꼬붕!”


꼬붕?


큭..


허허..


이 녀석은 진짜 뇌에 필터링이란 게 없나?


아니, 어쩌면 우동사리만 있는지도 모른다.


“흙투성이에 옷 입은 꼬라지를 보아하니 시골 출신?


아니면 거지?”


적막이 흐른다.


“ 이름은 밝히기 싫은가? 좋다! 나는 관대하니까 양해해주지.


이래뵈도 차기 기사단장이 될 몸! 네놈의 성이 뭐냐?”


기사단장??? 뭐?


내가 동경해온 기사에 이딴 놈이? 그것도 단장?


기가 찼다.


피식-



“어쭈? 웃어? 오냐, 네 놈의 이름은 내 꼬붕답게 특별히~


내 맘에 드는 걸로 아주 우스꽝스럽게 지어주지. 빨리


대답해라,


네 성이 뭐냐?”


“제 성이요?”


“그래.. 네놈의 성.”


지어..내야하나? 이런 곳에서? 이런 꼴로?


이런.. 짓을 하면서? 무엇보다.. 이딴 자식을 위해서?


화가 확 치밀어올라서 울컥하는 순간,



마음 어디에선가 이러면 안된다는 경고가 들여왔다.



크윽. 그래. 이러면 안 돼. 귀한 분의 자제다. 귀한 분의 자제..


귀족.. 저 앞은 귀하신 분. 난 평민. 시골 이었다면 감히 옷깃


하나 스칠 꿈조차 못 꿨을 존재.



물론 그동안은 본 적도 없긴 하지만..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언젠가는 공을 세워 어느 명문가의 가신이 되겠다던


사뮤엘의 모습도.



사뮤엘.. 네가 틀렸어. 귀족은 우리와 사고방식 자체가 틀려.


너가 그렇게 동경하고 보기를 염원하던 멋진 귀족은,


그저 허상이야.



그들에게 우리는 노예고, 꼬붕이고, 지나가다 맞아도 싼


그런 존재일뿐..



“ ..죄송합니다. 제 성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왜? 뭐, 왕족이라도 되는 건가?”



크하하하하하하핳



사람들이 비웃어댔다. 정확히는, 저 “도련님”을 호위하는


사람들이 얼굴표정이 닳나 의심이 될 정도로 매우


과장되게 웃어댔다.



저게..


진짜


웃는 걸까?



.. 이렇게 더러운 웃음은 정말 보는 중 처음이군..


“아니면.. 부모가 없나? 하하! 그럴 수도 있겠군. 흙투성이로


상경한 부랑자라..”


녀석이 큭큭대더니 다시 말을 건넸다. 손가락질을 하더니,


주변에 손짓을 한다. 그러자 주변사람들이 웃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녀석의 근위병같은 녀석들 뿐이지만..



기분이 너무 더럽다.



더럽다 못해, 주변이 어두워보인다.


눈을 바로 뜨고있기에는 너무 어지럽다.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구의 자식이지?


왜, 이곳에서, 이런 취급을 당하며, 이러고 있는거지?


내가 뭔 잘못을 해서? 그렇게 태어난 것 때문에?


의식이 흐려진다.



핑 -



핑 -



틱.



정신을 붙잡고 있는 끈같은게 끊어졌다.


온세상이 완전 까맣게 되었다. 설마 실명인가?



...아니다. 그럴리 없지..



잠시 현기증이 나는 것 같다가, 다시 아스랑이 피듯


세상이 어지러운 형태로나마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귀에서도 웅-하는 소리만 양쪽에서 들리던 것이


빛이 밝아져 오면서 주변에 있던 온갖 잡스러운 소리들이


다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하하하하핫!”


“ 아이구 도련님!! 푸헙!!’


“ 큽..아무리 그래 보인다지만 내가 너무 했나? 크흐흐..”


돼지 자식이 중얼거리는 꼴이 보였다.



“자! 네놈이 끝까지 말하지 않겠다면 그래 좋다.”


“당장 내 부하들한테 두들겨맞고 우리 집으로 끌려가거나,


저녀석들을 패고 다시 무릎을 꿇어서 빌거나. 네게 선택지는


이 둘 뿐이다. 감히 차기 기사단장의 기분을 불쾌하게


만들고도 살려주다니, 캬햐~정말이지 얼마나 관대한지!


크하핫!”



돼지다. 눈이 어지러워서 더 그런지 모르겠지만 저녀석은


확실히 돼지새끼다. 어째서 돼지가 사람말을 하는걸까?


사람말이 아니라 돼지의 말이라 알아듣기 힘든 걸까? 꽥꽥


거리는 돼지가 흰 장갑을 끼고서 뒤로 이상한 제스쳐로 손을


뻗고 있다.



“뭐, 봐서 내가 만족할 만큼 패준다면, 아까 말한 것


처럼 위대한 나님의 꼬붕이 될 기회를 주도록 하지.”



하하..



그래.. 기회..?



심장이 너무 뛴다.



핀트가 나간건가?



무섭다. 뭔가 사고를 칠까봐..


안돼. 난 황도에 온 지 첫날이야.


사고를 치면 안돼..


이성적으로 생각해.


이성적으로.



“그래..”


간신히 진정이 될 때쯤이었다.


“뭐해? 당장 튀어나가서 두들겨 패지 않고.


개 같이 뛰어나가란 말야."


녀석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아님 너부터 당장 패줄까?


빨리! 끌려가고 싶지 않으면 두들겨패! 두들겨패라고!!


차기 기사단장이 될, 이 내가 만족할 때까지!! 크-하하핳”



큭. 저 돼지에 점과 털이 난 같은 면상에 저 태도를 보니


어금니를 더욱 세게 깨 물게 된다. 양쪽을 꽉 깨물다못해


바스라지진 않을 까, 문득 실없는 생각이 스친다.



꽉 쥔 주먹의 핏줄이 터져나올려고 한다.


얼마나 참아 온거지?


이러면 안 돼. 고개를 들자.



“.. 도련님. 분부대로..네. 원하시는 대로, 만족하실 때까지


패드리겠습니다.”


“ 으핫핫! 역시 너 맘에 들었어! 좋아! 역시 넌 내 꼬붕이다!”


발을 뻗어서 두발짝 나아갔다.


주먹을 들어올렸다.



엉겁결에 다시 끌어안은 아이의 어머니의 틈새사이로,


꼬마의 눈망울이 보였다. 눈물은 새어 나와있는데, 눈동자는


죽어있다. 끝도 없는 좌절.. 어두움. 극심한 공포.


그리고 그 아이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 이건 기회다.....기회?



이런게 기회야?



“..사뮤엘..”


.. 그래. 저자식이 기사단장이고 이런게 내가 꿈꾸던


기사라면,


그냥..



난 그냥 그만두겠어.



"지금 당장."


중얼거리며, 뒤로 다시 몸을 돌려


도련님 자식인지 개자식인지에게 걸어갔다.



“..??”


어수선했던 좌중이 숨을 멈추는 게 느껴진다.



“그런데.. 도련님, 그거 아시나요?”


“.. ?”


“날 때는 순서가 있고 위계가 있어도..”



퍽!


“커헉! ”


“죽는 데는 순서 없다는 사실을. ” 퍼벅. 퍼버벅.


기사들의 고함소리가 들려온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으셨으면 추천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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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18화. 황실에 뻗치는 마수. 22.01.06 15 0 6쪽
19 17화. 마혈 21.12.30 16 0 12쪽
18 16화. 델리칸토르 앙바셰 21.12.29 21 0 16쪽
17 15화. 검술 대련 21.08.05 25 0 15쪽
16 14화. 신경전 21.03.13 66 0 21쪽
15 캐릭터 프로필 01 21.02.01 22 0 1쪽
14 13화. 수업 20.08.17 38 0 11쪽
13 12화. 전투 20.08.02 27 0 21쪽
12 11화. 페르크..? +2 20.07.21 37 1 12쪽
11 10화. 기사단의 첫 인상 +2 20.07.18 41 1 11쪽
10 9화. 카리얀과의 조우 20.07.07 53 0 14쪽
9 8화. 오후의 산책 20.06.06 27 0 13쪽
8 7화. 멧돼지와의 조우 20.05.30 36 0 11쪽
7 6화. 잔향의 숲? 20.05.30 46 0 12쪽
» 5화. 날 때는 순서가 있어도 갈 때는 순서가 없다 +2 20.05.30 42 1 11쪽
5 4화. 빵집 사건 20.05.29 30 1 12쪽
4 3화. 기사단과의 조우 +2 20.05.28 45 1 15쪽
3 2화. 고블린의 습격 20.05.28 49 1 12쪽
2 1화, 랑트의 죽음 +1 20.05.26 109 3 5쪽
1 프롤로그 +6 20.05.26 114 1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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