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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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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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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78
추천수 :
452
글자수 :
1,515,958

작성
23.06.07 08:00
조회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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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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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각자의 시간 - 8

DUMMY

- 툭툭.


카데스는 어깨 위에 잔뜩 쌓인 눈을 털었다. 돌부리에 걸린 마차를 도와준 뒤 곧바로 눈이 내리기 시작해 그가 라인스노우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해가 빨리 떨어지는 시기라 서둘렀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늑장을 부렸더라면 늦은 밤이 돼서야 라인스노우에 도착할 뻔했다.


카데스는 여관 문 앞에서 눈을 다 털어낸 뒤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이 온 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 알아서 잘 오겠지.”


자신보다 분명 뒤처져 있을 마차 일행이 내심 마음에 걸린 모양이다. 하지만 걱정도 잠시, 카데스는 고개를 들어 여관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 난리를 쳤던 여관이구나. 후우, 이젠 정말 추억으로 남은 건가 보다.”


친구들과 본격적으로 모험을 떠난 이후 가장 먼저 들른 곳이 라인스노우다. 오로지 삼촌에 대한 복수심 하나로 버텨왔던 카데스를 위해 친구들은 불만 하나 없이 함께 와 주었던 곳.


마음속에 끓던 복수심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그라진 지 오래다. 고향으로 돌아오면 안타깝게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괴로워질 줄로만 알았다. 그랬기에 팔라고스 전쟁이 끝난 후 서지터가 고향에 갈 때도 자신은 애써 고향이란 두 글자를 머리에서 지웠다.


“고향이란 게 이런 건가?”


카데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자신의 모습이 우스웠다. 복수에 성공했음에도 라인스노우 사람들에게 실망과 상처를 받았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 그 누구도 도와주려 하지 않았고 복수를 위해 다시 이곳에 돌아왔을 땐 군중심리로 인해 추한 그들의 민낯을 보았으니까.


“그래도 오니까 마음이 편하네.”


- 끼이익.


여관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1층에 식당과 주점을 함께 운영하는 여관은 한산하다 못해 손님이 한 명도 없을 정도로 썰렁했다. 어쩌면 당연했다. 겨울에는 딱히 할 일이 없는 사내들이 술 한잔 걸치며 죽치고 있는 경우가 많지만, 폭설이 온 날씨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다수는 돌아다니기 불편하기에 집에 얌전히 있는 경우가 많다. 낮까지만 하더라도 드문드문 손님이 있긴 했다. 그러다 조금씩 눈발이 날리기 시작하자 다들 아쉬움을 뒤로하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갔다.


라인스노우 사람들은 눈이 오기 시작하면 이 눈이 얼마나 많이 올지 예언가처럼 금세 알아차린다. 평생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기에 몸으로 직접 체감하는 감각이 뛰어나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이다.


카데스는 손님이 한 명도 없음에 감사하며 바에서 담배 파이프를 물고 있는 여관 주인에게 말했다.


“방 있습니까?”


“라인스노우 겨울에 방이 없을 수가 없죠. 하하핫!”


“밖에 말이 있으니 여물도 좀 주시고 제 식사도 내어 주십시오.”


“이 시기에 거의 없는 여행자신가 보군요. 알겠······! 어어? 도련님? 카데스 도련님 맞으시죠?”


여관 주인은 단박에 카데스를 알아보았다. 소년의 모습에서 어느덧 건장한 사내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였지만 라인스노우 사람이라면 몰라볼 얼굴일 수가 없었다. 삼촌에게 복수하기 위해 돌아왔을 때야 철저하게 얼굴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이젠 그럴 일도 없으니까 말이다.


자신을 알아본 것이 민망했는지 카데스는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잘 지내셨습니까?”


“아이고! 도련님, 고향으로 돌아오셨군요. 건강하게 지내시니 다행입니다.”


“네, 그럼 우선 식사부터 좀······.”


“내 정신 좀 봐. 하하하! 여보! 당장 닭 잡고 식료 창고에서 꺼내올 수 있는 건 다 꺼내서 요리 좀 해!”


“뭐? 갑자기?”


“귀한 손님이야! 귀한 손님!”


여관 주인은 주방 안쪽에 크게 외치며 카데스의 말을 마구간에 넣기 위해 정신없이 밖으로 나섰다.


“도련님, 바로 오겠습니다.”


“천천히 해도······.”


말을 끝맺기도 전에 여관 주인은 어느새 밖으로 나가버렸다. 여관 주인과 개인적인 친분이 깊지 않음에도 이렇게 반겨주니 카데스는 내심 기분이 좋았다. 물론 푸짐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지만.


“이 사람이! 추운 겨울에 무슨 귀한 손님이라는 거야?”


여관 주인의 아내가 툴툴거리며 주방에서 나오다 카데스를 보고 눈이 동그래졌다.


“카데스 도련님? 어머나! 이렇게 듬직해지셨을 줄이야. 어릴 적 얼굴이 남아있으니 망정이지 길 가다 봤으면 못 알아볼 뻔했습니다.”


“네, 그런데 제가 배가 좀 고파서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제가 영주님도 부러워하실 만큼 푸짐하게 음식을 내어올 테니. 호호호!”


여관 주인뿐만 아니라 그의 아내도 카데스가 식탐이 많고 배고프면 예민해진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빛의 속도로 그녀가 주방으로 사라지자 카데스는 혼잣말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영주님? 새로운 영주가 오긴 한 모양이구나. 어쨌든 고향에 반겨주는 사람이 있으니 기분이 좋긴 하네.”


#

며칠간 부실한 식사를 한 덕에 카데스는 정신없이 음식을 삼키며 배를 채우기 바빴다. 여관 주인과 아내는 카데스가 앉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흐뭇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카데스의 부모님을 대신하듯, 혹은 지난 과거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는 마음으로.


“도련님, 천천히 드십시오. 체하십니다.”


여관 주인이 맥주잔을 카데스 앞으로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여전히 음식 솜씨가 좋으시네요.”


“호호호! 도련님을 위해서 제가 혼신의 힘을 다했답니다. 그런데 정말 멋진 청년이 되어 돌아오시다니 보는 제가 다 기쁘네요. 그런데 왜 혼자······? 시끌벅적한 친구분들은 다 어디 가시고.”


“친구들이라면 각자 할 일이 있어서 바쁩니다. 겨울이 지나면 다시 모일 예정이고요. 다들 건강하게 잘 있습니다.”


여관 주인이 고개를 끄덕이며 안도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련님이 좋은 친구분들과 함께여서 정말 다행입니다. 몇 년 전 다시 라인스노우로 돌아오셨을 때 친구분들이 없었더라면 주민 모두가 어떻게 해서든 도련님을 붙잡았을 겁니다. 그나저나 이곳을 떠나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여관 주인의 진심을 느낀 카데스가 씹던 닭다리를 삼키며 꾸벅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를 했다.


“감사합니다. 저는 그냥 평범한 용병이 돼서 친구들과 여기저기 여행을 다녔습니다. 직전까지는 용병 자격으로 팔라고스 전쟁에 참전하기도 했고요.”


“아아아.”


여관 주인은 고개만 끄덕거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워낙에 시골이기도 했고 옆 나라이긴 해도 팔라고스 전쟁에 관해 속속들이 알고 있진 못했다.


카데스는 여관 주인이 별 반응이 없자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라인스노우에 새로운 영주가 온 모양이네요. 지내시는데 힘들거나 불편한 건 없으십니까?”


“하하하! 이 여편네가 그새 떠들었나 보네요. 도련님 아버님께서 계실 때만 못하지만 라인스노우 주민 모두 잘 지내고 있습니다. 현 영주님은 수도에서 오셨습니다. 소문으로는 대단한 가문의 사람이라 해서 처음엔 저희도 걱정이 앞섰는데 딱히 간섭하시는 일도 없으시고, 거둬들이는 세금도 적어 다들 만족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까?”


“얼마나 대단한 가문인지는 우리 같은 촌사람들이야 잘 모르지만 지나가는 사람도 다 알 정도의 집안이라고 하더군요. 혹시 티어런 할슈타인 공작에 대해 들으신 바가 있으십니까?”


“할슈타인 가문이라······. 오다가다 얼핏 들어본 거 같네요.”


카데스는 할슈타인 가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여관 주인의 말처럼 대단한 가문이라는 건 마이론홀드에서 지내면서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었다. 정치적 입지가 탄탄하고 현 팔라쥬르 국왕의 신임을 받는 인물이 바로 그였다. 하지만 의아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그렇게 대단한 가문의 사람이 왜 라인스노우로 온 거죠?”


“이곳 라인스노우 사람들이야 윗분들 하시는 일을 어찌 다 알겠습니까. 도련님이 떠나시고 1년 정도 영주 자리가 공석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런 시골까지 올 귀족도 없을 테죠.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왕국에 라인스노우 영주 자리가 공석이란 보고가 올라간 시점에 지금 영주님께서 자신의 영토로 편입을 시키셨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2년 전쯤에 여기로 오셨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 요양 차원에서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아아, 그렇군요. 그럼 건강이 회복되면 다시 수도로 돌아가시겠군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러실 겁니다. 그래도 늘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수도로 돌아가더라도 라인스노우는 신경 쓰고 잘 챙겨주신다고 하십니다. 물론 지금도 잘 챙겨주십니다. 우리 라인스노우가 자랑하는 자작나무로 만든 가구들을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비싼 가격에 팔 수 있게 해주시죠. 거기다 의외로 소박하시고 저희와도 자주 소통해주시는 분이니 더할 나위 없이 좋습니다.”


“다행이네요”


여관 주인의 말에 카데스는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의 아버지가 영주로 있을 당시에는 가난한 귀족이었기에 라인스노우 주민들과 모든 대소사를 의논하고 함께 땀 흘리며 지냈었다. 비록 영주부터 주민들까지 풍족한 삶은 아니었지만 가진 한도 내에서 만족하며 살았다. 그랬기에 카데스의 기억 속엔 아버지가 주민들에게 존경받는 영주로 남아있었다. 이제는 한때 좋았던 영주일 뿐이지만.


어쩌면 평범한 이들에게 가장 좋은 영주란 권력과 부를 가졌으며 품성 또한 좋은 사람이야말로 최고의 영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예전으로 돌아가 친구들과 헤어지고 라인스노우에 남았더라면 자신은 과연 좋은 영주, 훌륭하고 존경받는 영주가 될 수 있었을지 의문이었다.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영주 밑에서 라인스노우 주민들 역시 변한 것 없이 가난하게 지내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갔다.


“도련님, 음식 식습니다. 어서 드시지요.”


“다른 음식도 더 내오겠습니다.”


카데스의 속마음을 꿰뚫어 본 것일까. 여관 부부는 맛있는 음식으로 카데스의 복잡해진 머릿속을 달려주었다.


그렇게 대부분 음식 접시가 비워져 갈 때 즈음 카데스는 맥주를 느긋하게 마시며 말을 꺼냈다.


“지금 영주님 말입니다. 혹시 따님도 같이 와서 지내는 겁니까?”


“따님이요?”


“누굴 말씀하시는 건지?”


여관 부부는 서로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대꾸했다. 이들의 말처럼 그런 대단한 가문의 귀족이 영주로 와 지내고 있다면 낮에 마주쳤던 마차도 설명이 되니까 말이다. 사실 카데스는 별생각 없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긴 했지만 뒤늦게야 왜 라인스노우에 고급 마차가 있는지 이상하게 생각됐다. 마차에서 내려 사례를 하겠다는 소녀는 분명 귀족이 분명해 보였고, 할슈타인 공작의 딸쯤으로 추측하는 건 당연했다.


무언가 번뜩 생각이 났는지 여관 주인의 아내가 말했다.


“아! 작년 가을인가 영주님의 막내 따님이라고 오셨던 적이 있긴 합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수도로 돌아가셨죠. 아마? 체구는 조금 아담하시고 우리와는 다르게 하얀 피부에 조금 연약해 보이는 아가씨였어요.”


“그럼 맞겠네요.”


“어디서 마주치기라도 하셨습니까?”


“낮에 오는 길에 마주친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보러 하필 험한 날씨를 골라 오는 모양입니다. 지금까지 마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길래 문득 생각이 나서 물어본 겁니다.”


카데스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지만, 부부의 표정이 심각해 보였다. 여관 주인은 엉덩이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눈이 많이 오는데 혹시라도 문제가 생기진 않았을까 걱정이군요. 전 급히 성에 가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도련님은 원하시는 방에 편히 묶으십시오. 물론 지내시는 동안 돈은 받지 않을 테니 부담 갖지 마시고 푹 쉬십시오. 하하하.”


“네.”


카데스는 이제 라인스노우 사람이 아닌 이방인이라는 느낌에 머쓱했다. 그만큼 지금의 영주가 이들에게는 함께 생활하며 지내는 그들의 영주라는 사실에 기분이 묘해졌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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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5화 각자의 시간 - 2 23.05.30 34 2 12쪽
98 5화 각자의 시간 - 1 23.05.29 31 2 12쪽
9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3 23.05.26 34 2 14쪽
9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2 23.05.25 35 2 12쪽
9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1 23.05.24 34 2 12쪽
9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0 23.05.23 33 2 12쪽
93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9 23.05.22 28 2 13쪽
9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8 23.05.19 3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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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4 23.05.15 43 2 12쪽
8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3 23.05.12 3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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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1 23.05.10 3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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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9 23.05.08 43 2 13쪽
8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8 23.05.05 32 2 14쪽
81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7 23.05.04 36 2 14쪽
80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6 23.05.03 37 2 13쪽
7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5 23.05.02 4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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