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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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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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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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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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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각자의 시간 - 3

DUMMY

여섯 중에서 가장 먼저 출발한 건 파시비엔이었다. 전날 열심히 짐을 싼 그는 이튿날 오전에 부랴부랴 길을 나섰다. 하루 이틀 정도 쉬다 갈 수도 있었지만 어제 저녁 식사 도중 저주받은 주둥이로 서지터의 심기를 건드린 덕에 도망치듯 마이론홀드를 벗어났다.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사실. 이멜다가 살아있을 것이라 다들 믿긴 했어도 어쩌면 남들처럼 평범하게 남자를 만나 결혼도 하고 애도 낳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 문제였다. 어디까지나 그럴 수도 있다는 예상일 뿐이지만 직접 누군가가 입 밖으로 말을 꺼낸 시점부터는 서지터의 머릿속을 헤집어 놓기엔 충분했다.


“아휴, 서지터님은 왜 그런 걸로 화를 내시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니까? 내가 없는 말을 한 것도 아니고 충분히 가능성을 제시한 건데 말이야. 블라테로님, 그렇지 않습니까?”


파시비엔은 자신의 말에게까지 존칭을 쓰며 갈기를 쓰다듬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이 정말 오래간만인 그는 여전히 입이 근질거렸는지 서지터처럼 자신의 말인 블라테로와 대화를 나누었다.


“진짜 카렌님 같은 분이 또 어디 있다고 저러시는 건지 알 수가 없지 말입니다. 그냥 예쁘다는 표현도 부족합니다. 꿈속에서나 나올 법한 여신 같은 미인에, 성품 역시 좋으시고, 항상 남들부터 챙기고 걱정하시는 그런 분이란 말입니다.”


한때 카렌을 짝사랑하다 못해 동경하던 파시비엔 입장에서는 서지터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이참에 페올루안테로 가는 길이니 카렌의 마음은 정확히 어떤지 떠볼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제가 두 분을 연결해 주는 다리 역할을 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런데 정말 오래간만에 혼자 다닐 생각에 벌써 심심해 죽겠습니다. 에리카님 만나기 전까지 너무너무 외로울 듯싶습니다.”


그가 수행 사제 신분으로 처음 수행길을 떠났던 단 몇 개월. 혼자 다닌 적은 딱 그때뿐이었다. 오베론에서 네 사람을 만나 인연이 되었고, 그 뒤로는 항상 함께하는 가장 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몇 년 만에 혼자 떠나는 여행은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시작되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겁 많고 말 많은 파시비엔은 16살에 수행길을 떠나 이제는 어엿한 21살의 청년이 되었다. 비록 표면적으로 파면당한 신분이지만 어엿한 정식사제가 되어서 말이다.


“그럼 일단 신전에 가서 독약에 관해 설명해 드리고 카렌님도 만나 서지터님한테 어떤 마음인지 여쭤본 후에 바로 에리카님 만나러 바르탄으로 떠나야 할 거 같지 말입니다.”


혼자 하는 여행이니 나름의 계획을 세우며 페올루안테로 향했다. 혼자만의 여행은 생각보다 순탄했다. 홀로 지루한 1주일을 보낸 파시비엔은 페올루안테로 도착하자마자 곧장 아그나달린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 만한 사람들이면 모를까 그 누가 보아도 용병 차림의 평범한 순례객 정도로 보일 법했다.


당연하게도 사제복은 반납한 상태였고 조금은 어설퍼 보이는 전사 정도로 보이는 파시비엔은 입구를 지나 들어간 신전 안에서 사람을 찾느라 눈이 바빴다.


‘어디 계시나. 찾았다! 키세드 사제님!’


파시비엔이 찾던 사람은 일행을 안내해주었던 키세드 사제였다. 그는 여전히 분주하게 신전 안에서 잡일을 하며 바삐 움직이던 차에 등 뒤로 파시비엔이 나타나 조용히 헛기침했다.


“흠! 흠!”


키세드 사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에만 열중할 뿐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는지 파시비엔은 키세드 사제의 어깨를 톡톡 쳤다.


“저기······.”


“아,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이것만 좀 마무리하고.”


“키세드 사제님? 저 파시비엔입니다.”


“어?”


키세드 사제가 깜짝 놀라 일하던 것도 멈추고 뒤를 돌아보자 파시비엔이 해맑게 웃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위대하고 자비로운 아그나달린님의 축복이 함께 하기를.”


“아니, 파시비엔 사제님. 쫓겨났는데 여기는 어떻게 온 건가?”


공식적으로 파면당한 신분이기에 갑작스레 나타난 파시비엔 덕에 놀란 키세드 사제였다.


“이야기하자면 길지만, 급하게 셜레인 대주교님을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길고 긴 이야기를 밤새도록 떠들 수도 있긴 해도 우선 대주교님부터 만나 뵙고 난 후에 떠들고 싶지 말입니다. 아아, 그동안 페올루안테에 혼자 오면서 얼마나 입이 심심한 줄 아십니까? 이 또한 위대하고 자비로운 아그나달린님께서 저에게 크나큰 시련을 주신 건 아닌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알겠네, 알겠어. 그만 떠들고 급하다고 하니 우선 대주교님에게 안내해줘야지.”


키세드 사제는 손사래를 치며 파시비엔의 입을 막았다. 그가 한 번 떠들기 시작하면 못 말린다는 건 잘 알고 있으니 서둘러 찾아온 용건부터 처리해야 할 듯싶었다.


둘은 신전 안쪽 문으로 조용히 빠져나가 통로를 지났다. 지난번 파시비엔을 만나러 왔을 때 일행이 지나쳐 갔던 그 길이었다.


“공식적으로 파문당한 신분인데 셜레인 대주교님께 용건이란 게 무엇인지 나 또한 궁금하군. 대강 짐작은 하긴 했어. 자네 친구들이랑 중요하고 비밀스러운 일을 하고 있으리라 말이야. 몇몇은 자네 그 쉴 새 없이 떠드는 입 때문에 파문당했으리라 추측하기도 했고, 엄한 전쟁터에 가서 쫓겨났으리라 생각하기도 했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단 말이야.”


“헤헤, 그러셨습니까?”


“그렇지. 내가 자네 친구들을 안내해주지 않았나? 입 밖으로 꺼내면 안 될 듯하여 잠자코 있긴 하지만 그래도 파문당하는 과정이 아주 미심쩍어서 말이야. 정식 사제 임관식을 치르자마자 며칠 만에 쫓겨난 건 말이 안 된다고. 아무리 괴팍하신 셜레인 대주교님의 결정이긴 해도 말일세.”


호기심 많은 키세드 사제는 파시비엔의 입을 막아버린 대신 자신이 열심히 입을 놀려 떠들어 댔다. 파시비엔의 행적이 궁금한 키세드 사제는 자세히 물어보려고 생각을 잠시 했지만 금세 그 생각은 떨쳐내었다. 알 필요가 없는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면 자신에게 화가 올 수도 있다는 자신만의 철칙 때문이었다.


“궁금하긴 한데 나는 가늘고 길게 살고 싶네. 괜히 들었다간 제 명에 못 살 것 같아.”


“키세드 사제님이야 워낙 궁금한 걸 못 참는 분이시니까 말입니다. 그런데 콕 집어 어떤 일을 하고 있다고는 말씀드리지는 못해도 제 친구분들과 엄청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저야 이제 갓 수행 사제 신분을 벗어난 몸이지만 제 친구분들은 진짜 대단하신 분들이라 말입니다.”


“알고 있어. 이미 성기사단과 대련에서 자네 친구들이 가볍게 이겼다는 건 벌써 신전 내에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지. 그 누구야. 트리스탄님을 이긴 자네 동료 말일세. 크흐! 정말 대단한 친구야.”


“솔직히 전 보질 못해서 못 믿겠습니다.”


“하하하! 나도 못 봤지만 이미 기정사실로 굳어진 모양이야. 일단 안에서 기다리고 있게. 대주교님 모시고 오도록 하지.”


두 사람이 떠드는 사이 벌써 응접실에 도착했다. 키세드 사제의 안내를 받아 파시비엔은 안으로 들어간 뒤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아 셜레인 대주교와 그리폰 성기사단 단장인 로스 코웰이 안으로 들어왔다.


파시비엔이 둘의 등장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셜레인 대주교님! 그간 무탈하고 건강히 지내셨습니까? 로스 단장님께서도 잘 지내셨지 말입니다.”


“무탈하긴 얼어 죽을! 망할 놈아! 떠난 지 얼마나 됐다고 여긴 왜 온 게야?”


셜레인 대주교는 파시비엔을 보자마자 호통을 쳤다. 그 나름의 반가움의 표시였지만 보자마자 호통을 친 덕에 파시비엔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으으, 대주교님. 죄, 죄송합니다.”


“하하하.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군요. 대주교님, 기특한 파시비엔 사제님한테 너무 뭐라 하지 마십시오.”


로스 단장이 인상 좋은 미소를 지으며 분위기를 풀어준 덕에 파시비엔이 계속 말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보고드릴 게 있어서 잠시 들렀습니다.”


“그렇군요. 사제님 앉으시죠. 자자! 대주교님도 반가운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와 놓으시곤. 하하하.”


셜레인 대주교가 의자에 앉아 팔짱을 끼며 말했다.


“반갑긴 얼어 죽을! 그래, 수도에서 쥴리가 주는 의뢰나 열심히 할 것이지 여긴 왜 온 거냐?”


“그, 그게······.”


파시비엔은 가방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마르테아 섬에서 채취해 가져온 독약 샘플 병이었다.


“아아, 이거군요. 이미 나이트 플라워에서 간략히 보고는 받긴 했습니다.”


“에?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까?”


“수시로 보고를 받고 있지요. 루노바에서 해결한 일도 보고 받아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번 마르테아 섬에서 벌어진 일을 사제님께서 훌륭하게 해결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보고 문서를 보시고 대주교님께서 어찌나 기뻐하시던지. 하하하. 그날 저랑 새벽까지 취하셨답니다.”


“기쁘긴 누가 기뻐했다고? 성직자의 신분이라면 마땅히 좀비가 된 자들의 넋을 달래주어야지! 당연한 걸세!”


“이미 다 알고 계신다니 제가 딱히 더 드릴 말은 없을 것 같지 말입니다. 그래도 따로 말씀드리면 빗물 저장고에 풀었을 거라 추측되는 독약의 흔적을 찾았습니다. 이 병이 그 흔적의 증거라 조사를 맡기려고 왔습니다. 그리고 정말 죄송합니다. 주술사란 아이를 살려 데리고 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물론 그 끔찍한 일을 벌인 장본인을 데려왔더라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상황이 어쩔 수 없었던 것도 이해합니다. 강한 상대가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그들에게도 위기지 않겠습니까? 그만큼 여러분들의 존재감이 커졌다는 뜻이겠지요. 단기간에 이 정도로 위험함 일들을 해결해 준 것만으로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로스 단장님, 감사합니다.”


과한 칭찬에 파시비엔은 고개를 꾸벅 숙여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다. 로스 단장은 파시비엔이 꺼내 놓은 병을 집어 들어 셜레인 대주교에게 넘겨주었다.


“몹쓸 놈들! 어디 할 짓이 없어 무고한 생명을 그리도 많이 빼앗느냔 말이야!”


“이런 일에 전문가나 다름없는 티라이슨 사제님을 소환하셔야겠군요.”


“그래야겠지.”


로스 단장이 언급한 티라이슨 사제. 그는 아그나달린 소속의 고위 성직자 중 한 명으로, 정화 능력에 특화된 아그나달린의 성직자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실력을 지닌 성직자다. 물론 정화 능력과 더불어 이런 독약 따위를 분석하고 연구하는 능력 역시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티라이슨 사제의 이름이 나오자 파시비엔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성직자 중에서도 파시비엔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바로 그였으니까 말이다.


“티라이슨 사제님 말입니까? 아아, 정말 존경하는 분이신데. 한번 뵙고 싶습니다. 언제쯤 오시는 겁니까?”


“존경은 얼어 죽을? 어디 처박혀서 연구나 한다고 세월 다 보내고 있겠지.”


“아닙니다. 아닙니다. 티라이슨 사제님께서 연구하신 여러 해독 제조법 같은 건 후대에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입니다.”


“시끄럽다. 이놈아! 일단 너는 돌아가 있거라. 티라이슨 사제에게 시켜 독약의 정체를 연구한 뒤에 나이트 플라워에 소식을 전해주마.”


파시비엔은 고민에 빠졌다. 꼭 한 번쯤 만나보고 싶었던 티라이슨 사제를 페올루안테에 머무르며 그의 서적에 사인을 받을지, 아니면 이대로 에리카를 만나러 바르탄으로 떠날지 말이다. 만약 이 사실을 에리카가 아는 날엔 파시비엔 몸의 뼈는 메이스 찜질에 조각조각 날 게 뻔하지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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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5화 각자의 시간 - 2 23.05.30 3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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