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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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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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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작성
23.05.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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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5

DUMMY

한 줄기 섬광이 내리치며 그대로 라빈에게로 꽂히자 당당하게 서 있던 라빈은 번개에 맞아 기절하듯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지자 통제 불능 상태에 놓인 좀비들이 세 사람에게로 흐느적거리며 달려들기 시작했다.


“야, 야! 애를 그렇게 기절시켜버리면 어쩌냐고!”


“아까 마을에서 라빈이 이상한 짓을 하면 꼼짝 못 하게 하라고 하셨잖습니까?”


“좀비들이나 좀 어떻게 해봐!”


다급한 서지터의 외침에 파시비엔은 오히려 여유롭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성표를 꺼내 들었다.


“정말 제가 없으면 어떡하실 겁니까? 아아, 정말이지 제 존재감이 이곳에 와서 빛을 발하는 거 같습니다. 이 순간을 위해서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터닝 언데드(Tuning Undead)!”


- 파핫!


파시비엔의 성표에서는 은은하지만 강력한 빛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 마르테아 섬에 도착했을 때부터 몇 번이고 터닝 언데드 주문을 사용했지만, 이전과는 전혀 다른 훨씬 더 성스럽고 강력한 빛이 자신을 비롯해 친구들의 주변을 감싸주었다.


- 우우웅! 우우웅!


성표에 작은 떨림이 생기며 끊임없이 빛이 뿜어져 나오더니 어느새 반경 백여 미터는 될 정도로 빛의 반원을 만들어버렸다. 이미 세 사람의 뒤를 감싸고 덮쳐오던 좀비들은 그 자리에 쓰러져 더는 움직임이 없었고, 주변에 몰려있던 좀비들조차 싹 다 처리해버리는 강력한 터닝 언데드 주문이었다.


“위대하고 자비로운 아그나달린님이시여, 부디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따스하게 감싸주어 고통도 아픔도 없는 곳으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퍼시스트 매직(Persist Magic).”


파시비엔은 좀비로 두 번째 죽음을 맞이한 섬사람들을 애도하는 한편, 눈을 감은 채 두 손으로 성표를 감싸 또 다른 주문을 외우자 터닝 언데드의 성스러운 빛이 금세 사그라지지 않았다.


“휴우, 처음 써보는 주문이라 지속되는 건 그렇게 길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 왜 세 분 안 일어나시고 그렇게 계신 겁니까?”


“됐고, 라빈 저 녀석이 떨어뜨린 짚 인형에 꽂힌 바늘이나 좀 빼봐.”


“아아? 이게 원인입니까? 엄청 신기합니다. 읏차!”


파시비엔은 기절한 라빈에게서 저주 인형을 빼앗아 다리 쪽에 꽂혀있던 바늘을 뽑아냈다. 가장 먼저 바늘을 뽑은 건 카데스의 저주 인형이었고 뒤이어 한스의 저주 인형의 바늘마저 뽑아버리자 두 사람은 이제 살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바닥에 퍼져버렸다.


“후아아, 정말 죽는 줄 알았네. 살다 살다 이런 고통은 또 처음이야.”


“그러게. 꼼짝 못 하고 죽는 줄 알았어.”


“야! 아아아악! 죽을래? 빨리 안 뽑아?”


둘과는 다르게 서지터는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나뒹굴었다. 호기심이 가득 찬 파시비엔이 마지막 서지터의 저주 인형에서 바로 바늘을 뽑지 않고 몇 번 휘적거리며 돌렸기 때문이었다.


“호오, 정말 신기하지 말입니다. 이게 서지터님의 분신 같은 건가 봅니다?”


“아아악! 그러니까 빨리 썅!”


“어어? 지금 썅이라고 하셨습니까? 그런 육두문자를 쓰시면 제가 바늘을 뽑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단 말입니다. 바른 말을 쓰셔야 착한 어른입니다.”


“아, 아, 알았어. 제발 좀!”


“그럼 약속 하나 해주시면 제가 뽑아드리겠습니다.”


“아흐윽! 뭔데!”


서지터는 이제 나뒹굴다 못해 울기 직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지만 느껴지는 고통은 어마어마했다. 반면 파시비엔은 약점을 잡았으니 어떻게 해서든 지금 상황을 이용할 작정이었다. 심각함 따위 개나 줘버렸는지 그새 또 장난을 치고 싶어 하는 성직자였다.


“우리 천사 같은 카렌님 눈에 피눈물 흘리지 않겠다고 약속을 하시지 말입니다.”


“무, 무슨 개소리야.”


“지금 개소리라고 하셨습니까? 이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안 뽑아드립니다?”


“아, 알았다고! 제발 좀!”


“아주 바람직합니다. 그런 자세.”


파시비엔은 저주 인형의 오른쪽 다리에 꽂혀있던 바늘을 뽑아내자 서지터는 벌떡 일어나 오른발로 콩콩거리고 뛰면서 소리를 질렀다.


“너 이 새끼 죽었어!”


“이것 봐. 내가 이럴 줄 알았어.”


- 푸욱!


파시비엔이 뽑았던 바늘을 다시 꽂아버리자 서지터는 다시 바닥에 엎어져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흐아아악! 잘못했어! 살려줘!”


“지금 이 일에 관해 뒤끝 따위 없을 거라고 분명히 맹세하시고 제가 앞으로 카렌님 이름을 언급할 때마다 저를 괴롭히지 않겠다고 약속하시지 말입니다. 그럼 한 번에 다 뽑아드리겠습니다.”


“매, 맹세할게. 살려줘 제발. 내가 다 잘못했어. 아흐윽!”


처절하다 못해 애처로울 지경이었다. 조금 전까지 같은 고통을 겪던 한스와 카데스가 그런 친구의 모습이 딱했는지 어느새 파시비엔 곁으로 다가와 설득했다.


“그만 뽑아줘. 우리 지금 적진 한복판이야. 빨리 수습하고 사라져도 모자라.”


“그래, 생각보다 저거 죽어버리고 싶을 만큼 아프더라.”


카데스의 입에서 고통의 강도에 관해 말이 나오자 그제야 파시비엔은 헛기침을 하며 순순히 바늘을 뽑아주었다.


“흠흠! 그럼 약속은 꼭 지키셔야 합니다.”


“네, 네. 하아아.”


파시비엔에게 달려들 기운도 없는지 서지터는 그 자리에 뻗어버린 채 고통을 잊기 위한 심호흡을 했다.


“근데 진짜 주술사가 라빈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네. 완전히 기절해 버린 거 맞지?”


한스가 서지터처럼 뻗어버린 라빈의 상태를 살피며 말하자 파시비엔이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한스님의 라이트닝 볼트에 비하면 약하디약한 마법입니다. 죽을 정도로 강력한 주문을 쓴 것도 아니고 어른에게는 잠시 무력화시킬 정도의 전기만 흐를 겁니다. 라빈이 아무리 위험한 주술사이긴 해도 어린아이다 보니 기절해 버린 거지만 말입니다.”


파시비엔의 말 그대로 잠시 기절시키기 위해 쓴 신성 마법이 콜 라이트닝 주문이었다. 어린아이다 보니 물리적으로 타격을 주는 것이 마음에 걸린 파시비엔이 나름대로 생각하고 쓴 주문이었고, 의도대로 제대로 먹힌 상황이었다.


“그런데 파시비엔은 마을에 안 있고 왜 여기까지 온 거야? 덕분에 우리가 살긴 했지만.”


“마을을 떠나기 전에 서지터님이 따로 불러서 얘기하셨습니다. 출발한 후에 몰래 뒤따라오라고 말입니다. 이 작전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 바로 저라고 말씀을 하셨답니다. 하핫!”


“아아, 그래서 아까 그렇게 신나있던 거구나.”


참으로 단순하기 그지없는 성직자라 여긴 한스였다. 서지터에게 그렇게 무시를 당했으면서도 그 한마디에 금방 기분이 풀려 쪼르르 여기까지 뒤따라왔으니 말이다.


“그럼 파시비엔 너도 라빈이 주술사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말이네?”


“아! 그거 말입니까? 라빈 처음 만난 날 기억하십니까? 그때 1층에서 정리하고 있을 때 서지터님이 이상하다고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더불어 확신이 설 때까지 성직자인 거 티 내지 말고 얌전히 있으라고 하셨지 말입니다.”


- 탁탁.


“다 묶었어. 그래서 일부러 아리엘한테 치료 주문을 안 쓴 거고?”


“맞습니다. 헤헤.”


기절해버린 라빈을 밧줄로 손목과 발목, 입까지 막아버린 후에야 카데스가 손을 털며 상황 파악에 나섰다.


“우리한테 얘기를 못 했던 건 라빈이 계속 주변에 머무르고 있어서 말 못 했던 거겠지?”


“맞습니다. 그래서 낮에 조금 난감했습니다. 라빈이 천진난만하게 행동하면서 계속 시야에서 사라지지 않다 보니까 두 분한테 말씀드릴 타이밍도 없었고, 계속 아리엘님 상태에 관해 물어보셔서 뭐라 대꾸해야 할지 힘들었습니다. 서지터님도 기회를 봐서 자기가 얘기할 테니 잠자코 있으라 하셨고 말입니다. 휴우, 그래도 잘 해결된 거 같아 다행입니다. 위대하고 자비로운 아그나달린님께서 보살펴주신 덕분입니다.”


“아그그, 이젠 살다 살다 이 자식한테까지 호구 잡히네. 죽다 살았네.”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엉금엉금 기어 온 서지터가 꽁꽁 묶인 라빈을 쿡쿡 찔러보더니 매섭게 파시비엔을 노려보자 움찔한 파시비엔이 맞받아쳤다.


“그래서! 뭐? 뭐 어쩌란 말입니까? 남자가 치사하게 한 입으로 두말하기 없는 겁니다?”


“아휴, 알았다. 알았어.”


“그런데 용케 눈치챘네. 나나 카데스는 정말 꿈에도 몰랐어.”


“나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어. 내가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런데 자기가 먼저 나서서 길 안내를 하겠다고 했을 때 확신이 생겼지. 이 맹랑한 꼬마가 무슨 짓을 꾸밀 계획 같았거든. 그래서 파시비엔을 최후의 한 방으로 준비해뒀던 거고. 이 녀석이라면 좀비들과 마주쳐도 혼자서 여유롭게 뚫고 왔을 테니까.”


“헤헤, 지금 저 칭찬해 주시는 겁니까?”


“그래, 인마! 인정해주고 칭찬해 주는 나한테 네가 방금 한 짓거리를 생각해봐. 그러고도 네가 성직자냐?”


“어허! 뒤끝 없을 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분명?”


“알았다고! 그런데 좀 조용히 해결하면 안 됐냐? 뭐 나름대로 인상 깊은 활약이긴 하다만 한스 말처럼 여기 적진 한복판이라고. 좀비는 둘째치더라도 후작 측 놈들이 들이닥칠 거야. 일단 빨리 뜨자.”


“그런데 잠깐만.”


불안한 표정의 한스가 서지터의 팔을 잡았다.


“왜?”


“좀 전에 라빈이랑 얘기할 때 너도 들어서 알지?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이 많다고 그랬어. 적어도 그 사람들이 어디에 갇혀있는지, 숫자는 얼마나 되는지 알아봐야 하지 않을까?”


“네 말도 일리가 있긴 한데 적들의 숫자도 정확히 몰라. 지금 바로 그 사람들을 구하는 건 무리가 있을 거 같아. 우선 돌아가서 수잔한테 물어보는 게 제일 정확하지 않을까? 어차피 이 꼬맹이 누나 역할을 하는 것도 끝난 마당에 다 얘기해주겠지.”


한스는 아직 살아있을 섬의 주민들이 걱정이었다. 얼마나 살아있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이라도 살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정말입니까? 다 죽은 게 아니니 천만다행입니다.”


카데스 역시 서지터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기절한 라빈을 업고 말했다.


“우선 우리 계획대로 돌아가면 숨을만한 곳을 먼저 찾아보자. 생존자가 많이 있다면 일부러 안 죽인 이유가 있을 거야.”


“그게 마음에 걸려서 그래. 어쨌든 주술사가 우리 손에 들어왔으니 살아있는 주민들에게 해코지할 거 같아. 아무리 생각해도 살려둔 이유는 주민들을 좀비로 만들면서 쓸모있는 군대를 양성하려는 실험 같다고 느껴져.”


“우리가 아직 섬을 빠져나간 것도 아니니 섬 주민들을 쉽게 죽이지 않을 거야. 그리고 우리 아리엘이 누워있어. 우선 피한 뒤에 차분히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일단 움직이자.”


조금 전 꼼짝하지 못하면서 옆에 있던 한스의 슬픔과 분노를 고스란히 느낀 카데스였기에 그런 친구를 안심시키기 위해 말을 꺼낸 것이다. 우선은 애당초 세웠던 계획대로 움직이는 게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했다.


“그래, 알았어.”


- 털썩.


카데스는 이번에야말로 상대적으로 가벼운 진짜 주술사를 업고 일어나 한 발짝 발걸음을 떼자마자 바로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아 버리며 라빈을 떨어뜨렸다.


“어어?”


“카데스님? 괜찮으신 겁니까?”


“괜찮아. 라빈한테 당한 것 때문에 다리가 풀린 모양이야.”


조금 전 파시비엔 곁으로 다가오면서도 다리가 후들거리던 카데스였다. 걸어오면서는 가까스로 넘어지진 않았지만, 고작 가벼운 소년을 하나 업었다고 바로 주저앉은 자신이 창피하게 느껴져 서둘러 다시 기절한 라빈을 붙잡아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 슈우우웅! 파악!


눈 깜짝할 사이에 화살 하나가 날아와 정확하게 라빈의 가슴을 꿰뚫었다.


“어?”


- 슈우우웅! 파악!


넷은 갑작스러운 상황에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 뒤이어 화살 하나가 더 날아와 다시 한번 라빈에 가슴에 꽂히자 정신이 번쩍 든 네 사람이 화살이 날아온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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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5화 각자의 시간 - 1 23.05.29 3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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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2 23.05.25 35 2 12쪽
9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1 23.05.24 34 2 12쪽
9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0 23.05.23 3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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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7 23.05.18 35 2 14쪽
90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6 23.05.17 35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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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3 23.05.12 33 2 13쪽
8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2 23.05.11 40 2 12쪽
8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1 23.05.10 35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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