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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조회수 :
9,544
추천수 :
452
글자수 :
1,515,958

작성
23.05.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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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1

DUMMY

벨라가 도착하기까지 아직 며칠이나 남아 있었다. 그동안 일행은 마르테아 섬의 생존자들을 챙기기도 하루가 모자랄 지경이었다. 특히 파시비엔은 영양상태가 좋지 않은 사람들을 위해 크리에이트 푸드&워터(Create Food&Water) 주문으로 깨끗한 물과 간단한 빵을 제공하면서도 다치고 병든 사람들의 치료에도 여념이 없었다. 낮이고 밤이고 쉬지 않고 행동하는 파시비엔의 눈가엔 다크 서클이 진하게 드리웠다.


그리고 다른 일행은 라빈이 죽고 난 후 좀비에서 다시 평범한 시체가 된 섬 주민들을 파묻거나 부패가 심한 경우 전염병이 돌지 않도록 태우는 일에 몰두했다. 물론 일행 몇 명이 하기에는 무리였기에 섬 주민 중 거동이 불편하지 않거나 청장년들이 나서주었다.


- 털썩.


“후아아, 힘들다.”


한스는 친구들이 쉬고 있는 곳으로 휘청거리며 걸어와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 역시 파시비엔처럼 녹초가 되어 가는 중이다. 마법사라는 점 때문에 다양한 마법들을 이용해 시신들을 수습했다. 파시비엔의 눈 밑이 짙어졌다면 한스의 얼굴은 사흘 만에 핼쑥해져 버렸다.


“자, 물 마셔.”


레일라가 물주머니를 건네자 입이 바짝 타들어 가던 한스가 받아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후아아, 이제 좀 살 거 같다. 그래도 며칠 만에 이 마을의 시신들은 대부분 수습한 거 같지?”


“고생했어. 한스 네 마법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처리하지 못했을 거야.”


“나 혼자 고생했나 뭘. 여기 아리엘도 애 많이 썼는데.”


“미안. 다들 위험했을 텐데 나는 아무것도 도움도 못 되고······.”


“상황이 어쩔 수 없었잖아. 그렇게 주눅 들어 있을 필요 없어. 괜찮아.”


밝은 표정의 레일라가 잔뜩 움츠러든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아리엘은 사흘 전 라빈이 죽은 시점부터 조금씩 기력을 회복하기 시작해 거짓말처럼 금세 건강을 되찾았다. 하지만 다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지내는 동안 자신은 짐만 되었다는 점이 미안했는지 내내 의기소침해진 상태였다.


그런 그녀의 기운을 북돋아 주기 위해 한스 역시 한마디 해주었다.


“아리엘이 이렇게 건강하게 우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우리한테는 얼마나 다행인데. 그리고 다들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어. 저기 오는 녀석이 객기 부려서 죽을 위기가 있긴 했지만 다들 무사히 잘 해결됐잖아.”


“그래도······.”


아리엘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손만 꼼지락거렸다. 그리고 객기를 부렸던 녀석은 카데스와 언덕 위로 걸어오며 투닥거리기 바빴다.


“야! 그만 좀 먹어.”


“먹을 게 파시비엔이 만든 빵뿐이잖아. 빵은 배가 빨리 꺼진다고.”


“종일 우물거리고 있는 거 거슬려 죽겠다고. 시신 수습하는 상황에서 너는 빵이 목으로 넘어가냐? 비위도 좋다.”


“어차피 복면 쓰고 있어서 안 보이잖아.”


“어휴!”


서지터는 카데스를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세 사람이 있는 곳으로 다가와 아리엘 앞에 바짝 앉았다.


“히히, 우리 아리엘 왜 이렇게 표정이 어두워? 아직도 미안해서 그래?”


“으응.”


“미안하면 섬 밖에 나가서 맛있는 거 쏘기!”


아리엘은 대답 없이 고개만 조용히 끄덕였다. 그새 친구들 곁으로 온 카데스도 서지터의 말에 공감하며 아리엘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애를 썼다.


“나는 고기 아니면 안 먹겠어.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물고기 등등.”


시신을 수습하는 동안 계속 복면으로 얼굴의 반을 가리고 있던 서지터가 복면을 턱 밑으로 내리더니 흉측한 표정을 지으며 아리엘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흐에에에.”


“피식!”


“어? 웃었다. 웃었어.”


“아냐. 안 웃었어.”


“방금 내가 웃은 거 봤거든?”


난처한 아리엘을 돕기 위해 레일라가 서지터의 뒤통수를 강하게 내리쳤다.


- 퍽!


“너는 좀 매사 꼭 그래야겠니? 진중한 맛이 없어.”


“으이씨! 내가 머리 때리지 말랬다? 이번에도 나의 이 뛰어난 두뇌가 아니었다면 어쩔 뻔했냐고.”


“흥! 머리랑 상관없는 거 아냐? 그냥 운이 좋아서고 눈치가 조금 빨랐던 것뿐이잖아.”


“와아, 진짜 그렇게 생각해? 내가 몇 수 앞을 내다보고 완벽하게 계획을 짠 장본인이라고요.”


“완벽한 계획은 무슨? 라빈한테 당하고 가면 쓴 놈들한테도 당한 주제에?”


“뭐 꼬맹이한테 당한 건 솔직히 약간의 흠이긴 하지만 가면 쓴 놈들한테 당한 건 아니지. 2 대 1로 싸우면서 한 놈은 완전 무력하게 만들었잖아. 네가 못 봐서 그래. 걔들이 얼마나 강했는데. 그런 불리함을 딛고 싸운 사람이야 내가.”


“안 봐서 모르겠는데?”


“아오! 진짜 이걸!”


한 마디 지지 않고 반박할 수 없는 말만 하는 레일라가 얄미웠는지 서지터는 이를 갈며 허공에 주먹을 날렸다.


- 툭툭.


서서 계속 빵을 먹으며 우물거리던 카데스가 황급히 목구멍으로 씹던 빵을 넘기면서 서지터의 발을 살짝 찼다. 언덕 위로 주민 몇 명이 올라오고 있던 걸 본 터라 즐거운 분위기를 들키지 않기 위함이었다.


물론 아리엘의 기분을 풀어주려고 일부러 분위기를 띄우긴 했지만, 그것과는 반대로 마을 분위기는 침울하다 못해 초상집을 방불케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가족부터 가깝게 지내던 친구와 지인들의 처참한 시신을 목격할 수밖에 없으니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슬픔에 잠기는 게 당연했다.


“오늘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일행에게 다가온 섬 주민 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예의를 갖춰 감사 인사를 했다.


“괜찮습니다. 저희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으면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말씀해 주세요.”


한스가 예의상 한 말을 마치 기다렸다는 듯 사내는 대꾸했다.


“그래서 드리는 말이지만 다른 마을의 시신들도 수습해야 할 텐데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실지 여쭈어봐야 할 거 같아서······.”


사내는 염치 불고하고 어렵게 말을 꺼냈다. 지금껏 생존자들의 목숨을 살려준 건 물론이고 아무런 조건 없이 도움을 주었다. 처음 생존자들과 대화할 당시에도 섬을 떠나기 전까지는 도움을 주겠다고는 했지만, 이 정도로 많은 도움을 받을 줄 몰랐다.


“그러죠. 오늘은 일단 날도 저물어가고 있으니까 쉬도록 하고 내일 아침에 남쪽 마을로 가면 되겠네요.”


서지터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이들이 머물던 마을은 며칠 전 대부분의 시신을 수습했고, 처음 도착했던 마을에 아직 시신들이 많았다.


“가, 감사합니다. 성직자님께서도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도움을 주시고 여러분들의 도움까지 받으니 우리에겐 은인이나 다름없습니다.”


섬 주민 셋이 열심히 머리를 조아렸다. 과도한 감사 인사에 서지터는 멋쩍은지 머리를 긁적거리다 말문을 열었다.


“안 그러셔도 돼요. 그런데요.”


“네, 말씀하십시오.”


“쉽지 않겠지만 앞으로는 이상한 주술 같은 거 안 믿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일로 인해 라빈 같은 피해자가 발생했고, 죄 없는 사람들까지 무참하게 죽었잖아요.”


“야아.”


앉아서 쉬던 한스가 서지터의 옷깃을 잡으며 말렸지만, 한편으로는 속이 시원했다. 굳이 말은 꺼내지 않았어도 한스 역시 속으로 하고 싶었던 말이었고, 다른 친구들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다.


“군중심리가 어떤지, 불안한 상황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음 충분히 이해하고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건 아닌데요. 멀쩡한 사람을 제물로 이용하는 짓은 아니잖아요. 라빈이 죽기 전에 했던 말이지만 단지 지켜줄 부모가 없다는 이유로 그 아이의 누나가 희생해야 했고 모두가 남매를 외면했다고 들었어요. 심하게 들릴 수도 있는데 섬 주민 모두가 이 사태까지 벌어진 데에 공범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요.”


“..........”


섬 주민 셋 중 누구도 서지터의 말에 대꾸하지도 반박을 하지도 못했다.


“각자 나만 살겠다고 이기적인 생각만 한다면 사람이 사람에게 지옥이 될 수도 있어요. 반면 누군가의 작은 선행이나 말 한마디에 상대방은 얼마든지 달라지고 희망이란 걸 알게 되거든요. 저 역시 모두가 나를 부정하고 싫어하고 미워하는 상황 속에서 어떤 한 사람의 따뜻한 베풂이 없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거예요. 그게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사람답게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막힘없이 말을 하며 서지터는 코끝이 찡해졌다. 베어가 떠올라 그가 너무나도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죄, 죄송합니다. 살아남은 섬 주민 모두가 평생 두 남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습니다.”


세 사람은 그 말을 끝으로 조용히 자리를 피했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레일라가 놀리듯 서지터에게 칭찬을 해주었다.


“이욜, 말 멋지게 잘하는데? 참 알 수 없는 녀석이야. 평소에는 미친놈 같다가 어떨 때는 또 진지하고 그럴듯하게 말도 잘하고.”


“몰라. 짜증 나. 결국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소득은 전혀 없잖아.”


“꼭 그렇지만은 않지. 비록 같은 놈들인지는 추측일 뿐이지만 루노바에 나타났던 실력자들과 맞붙어보기도 했고, 독약의 흔적도 찾았으니 리벨드 부인에게 갖다주면 해독제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럼 이런 짓거리는 더 못하겠지. 결국 좀비 군대를 만들려는 놈들의 계획도 망쳐놨으니 절반은 성공한 셈이지.”


“희생자가 너무 많아. 이런 짓거리까지 하는 미친놈들이라면 또 어디에선가 비슷한 짓을 안 하리라는 보장도 없고.”


한스가 서지터의 어깨를 다독이며 해맑게 웃었다.


“레일라 말처럼 전혀 소득이 없는 건 아니잖아. 우리 정체도 일단 들키지 않은 것도 다행이고.”


“아닐걸?”


“어?”


“서로 얼굴만 못 봤을 뿐이지, 한 번 맞붙어봤으니 다른 곳에서 우연히 만나면 알아챌 수 있을 거야. 특히 덩치 큰 놈은 확실히 달라. 타고난 동물적인 감각이 뛰어난 놈이야. 그렇게 흔해 빠진 놈은 아니야. 아마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했을걸? 여기서 제대로 훼방을 놓았으니 이제 놈들도 우리 뒤를 캐기 시작할 거야.”


잠깐이지만 케리칸과 맞붙은 카데스도 같은 생각이었다.


“맞아. 보통 실력은 아니야. 그런 강한 놈이 더 많이 있을 수도 있고. 더군다나 서지터는 절대적으로 평범한 스타일의 전사가 아냐. 사람들이 거의 쓰지 않는 바스타드 소드에, 양손을 자유자재로 쓰고 방패까지 들고 싸워도 전혀 어색함이 없었으니까. 이 대륙에 그런 전사가 얼마나 될 거 같아? 뛰어난 정보력으로 작정하고 파고들면 누군지 알아내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거야.”


직접 상대해본 건 서지터와 카데스 뿐이니 다른 사람들은 둘의 말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이번에는 전초전이었을 뿐 머지않아 그들과 본격적으로 상대할 날이 머지않았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나마 뒷일을 생각해 마르테아 섬의 생존자들에게는 사실대로 말하진 않았다. 러프 해적단과의 악연으로 파로안 군도로 왔다가 우연히 마르테아 섬에 들어왔다고 설명했고, 섬 주민들은 별다른 의심 없이 일행의 말을 믿었다. 우연히 나타난 이들의 도움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대화의 흐름 때문이었는지 불안한 한스가 무표정하게 서 있는 서지터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진짜로 이멜다 찾으러 빠지겠다는 말은 아니지?”


“이 섬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분명 그럴 작정이었어.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가면 쓴 두 놈과 싸우기 전까지 그럴 생각이었는데 생각이 바뀌었어. 섬사람들에게 이런 사태의 공범이라고 모질게 말하긴 했지만, 도저히 그 자식들 용서가 안 되네. 지금까지는 리벨드 부인이 주는 의뢰 별로 내키지 않았는데 이제부터는 진심으로 상대해 주려고. 미친놈들 상대하려면 나 같은 미친놈이 상대해줘야지. 안 그러냐?”


잔뜩 독기가 오른 서지터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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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5화 각자의 시간 - 1 23.05.29 31 2 12쪽
9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3 23.05.26 34 2 14쪽
9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2 23.05.25 35 2 12쪽
»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1 23.05.24 34 2 12쪽
9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0 23.05.23 33 2 12쪽
93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9 23.05.22 28 2 13쪽
9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8 23.05.19 35 2 12쪽
91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7 23.05.18 35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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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5 23.05.16 35 2 12쪽
88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4 23.05.15 42 2 12쪽
8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3 23.05.12 33 2 13쪽
8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2 23.05.11 40 2 12쪽
8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1 23.05.10 35 2 12쪽
8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0 23.05.09 34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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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8 23.05.05 32 2 14쪽
81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7 23.05.04 36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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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5 23.05.02 45 2 13쪽
78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4 23.05.01 42 2 16쪽
7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3 23.04.28 40 2 14쪽
7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 23.04.27 3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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