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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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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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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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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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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4

DUMMY

서지터의 말에 라빈은 화가 나기보단 어이가 없었다. 감히 자신에게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을 했다는 것 자체가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라빈에겐 그저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하하하, 그딴 유치한 도발에 내가 넘어갈 거 같아? 천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인 사람한테 우물 안 개구리? 푸훕!”


“상대해주기 유치해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이 형은 너보다 더 천재였는데 어쩌냐? 주술사에 대한 건 잘 모르지만, 고작 죽은 사람을 좀비로 만들고 그딴 허접한 인형이나 만드는 것밖에 못 하는 주제에 나불나불 말 더럽게 많네. 형은 너보다 더 어린 나이에 마법이란 학문을 마스터한 천재 중의 천재라고.”


“형, 유치해. 그런 말을 하면 좀 기분이 나아져?”


“크큭! 크크큭!”


복면으로 얼굴을 가렸기에 정확한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지금 서지터의 얼굴은 비웃음 가득할 거라 생각되자 라빈의 기분이 나빠졌다.


“미안, 미안. 그래도 화난다고 형 얘기 끝나기 전까지 또 바늘 찔러넣거나 그러진 마라. 이제 좀 익숙해졌는데도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아파 뒤질 거 같으니까.”


서지터는 상황과 안 어울리게 농담을 던지자마자 뒤통수가 따가웠다. 카데스가 작고 매서운 눈으로 뚫어지라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만 째려봐. 진짜 미안한데 너희 둘한테는 얘기할 기회가 없었어. 몰래 말해줘야 하는데 저 자식이 여기저기 붙어 있으면서 귀찮게 하니까 어쩔 수가 없더라고. 그리고 라빈 네가 왜 우물 안 개구리고, 왜 이 형이 더 천재인지 이제부터 친절하게 설명해줄 테니까 잘 들어라?”


“어디 한 번 지껄여봐.”


복면 속 서지터의 얼굴은 미소 가득했다. 아무리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사람 목숨을 마치 파리 목숨쯤으로 여기기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철없는 11살짜리 소년일 뿐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셋이 죽을 위기에 처한 것처럼 보였으나 언제라도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과 믿음 가득한 그런 미소였다.


이미 자신도 모르게 라빈은 서지터의 페이스에 걸려든 상황이었다. 논리가 안 먹히는 어린애에겐 똑같이 유치하고 치졸하게 굴어줘야 한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서지터였다.


“좀 전에 내가 말했지? 네가 주술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고.”


“웃기지 마! 네깟 게?”


“이미 처음부터 눈치 다 챘어, 인마! 적어도 몇 달은 좀비들을 피해 숨어 지냈다면 제대로 먹지도 못해서 초췌하고 지저분해야 정상 아니냐? 좀 그런 것까지 디테일하게 꾸미지 그랬어. 너무 살이 포동포동 오르고 냄새도 안 나는데 과연 그걸 누가 믿겠니? 그리고 네가 본인 입으로 그랬지. 수잔은 멍청하고 겁이 많다고 말이야. 그때가 아주 결정적이었어.”


“뭐?”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네가 원래 굶어도 살이 포동포동하다고 쳐줄게. 그런데 생존자인 두 남매가 있어. 몇 달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육포를 걔한테 들이밀었을 때 반응 말이야. 기억이나 하냐?”


그런 사소한 것까지 라빈은 기억하지 못했다. 대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하는 사이 서지터가 대신 그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오래간만에 제대로 된 음식을 봤다면 누나가 동생에게 먼저 먹으라고 건네주는 게 정상이야. 그게 보통의 누나와 동생 사이란다. 그건 네가 더 잘 알걸? 친누나가 그렇게 다정하고 친절했다면 자신보다 아마 너를 먼저 챙겼겠지. 하지만 수잔은 너한테 주기는커녕 허겁지겁 자기만 먹기 정신없더라고. 친누나인 척 연기하라고 시켰지만 굶주림이 먼저였던 거지. 수잔이 정말 네 친누나라면 그렇게 행동했을까? 그래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거랑은 별개로 둘이 별로 닮지도 않았고.“


”고작 그걸로? 허세 부리지 말랬지?“


”더 있으니까 잘 들어봐. 마을 사람들을 어떻게 좀비로 만들었는지 회의했을 때 말이야. 너는 일절 빗물 저장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도 않았거든. 아무리 어려도 마르테아 섬사람이라면 빗물 저장고의 존재를 모를 수가 없잖아. 안 그래? 그래서 생각을 해봤지. 라빈이 빗물 저장고의 존재에 대해 깜빡했을까? 아니면 일부러 말을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해답은 이 마을의 빗물 저장고를 가보니까 알겠더라. 그곳이 독약을 풀었던 곳이었고, 옆에 있는 창고가 네 아지트기도 했으니 그 장소를 알려주고 싶지 않았을 거야. 아마도 우리가 헛다리를 짚으며 엄한 데 시간을 쓰도록 한 게 아닐까 싶어. 그사이 너는 머리카락을 모아야 했을 테니까. 그래서 일부러 이 사람, 저 사람한테 다가가서 괜히 관심을 보이고 친한 척 굴었겠지.“


- 까드득!


속을 읽혀버린 라빈이 이를 갈았다. 하지만 서지터는 태연하게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거기서 마주친 병사들이랑 싸우기 전에 그놈들이 나눈 대화를 엿듣고 나서 확신했어. 사라진 주술사를 찾으러 왔던 그들이 나눈 대화가 뭐랄까? 나이를 먹은 주술사를 칭하기보단 마치 어린애를 칭하는 듯한 말투였거든. 숨바꼭질한다느니, 그다지 존경스러워하거나 두려워하는 느낌도 전혀 없이 그냥 주술사라고 부른다든지 말이야. 마치 말썽 피우는 조카를 상대하는 그런 기분? 그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거지. 진짜 주술사든 아니면 주술사 대역을 하는 사람이든 간에 그가 몇 살 정도 되나 정확히 알아봐야 했거든.“


라빈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져갔다. 그림 리퍼를 포함해 마르테아 섬에 머무르는 이스미르 후작 측 병사들은 자신을 두려워하거나 존경심을 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괴상하고 철없는 어린애 정도로 취급할 뿐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말이야. 조금 전에 죽은 저 주술사를 깨울 때 본능적으로 우리가 아닌 어둠 속에 있던 너의 실루엣을 보고 두려워하는 게 느껴지더라.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봐. 납치하러 온 무식하게 생긴 놈들이 무섭겠냐? 아니면 길 안내를 해준 꼬맹이가 무섭겠냐? 저 사람은 아마도 네 대역을 할 수밖에 없는 피치 못할 사정이 있겠지. 가족이나 자식이 붙잡혀 협박을 당하고 있을 거 같거든. 내 느낌은 마을에 있는 수잔이 주술사의 딸이나 손녀 정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 맞지?“


라빈은 무언의 긍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 수잔은 죽어버린 주술사의 손녀딸이었고, 그녀를 이용해 협박하며 자신의 대역을 하게끔 했다. 주술사를 제일 먼저 죽이지 않은 걸 의아해했던 그림 리퍼 일당에게는 자신을 보조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며 지금껏 죽이지 않고 살려뒀다. 이제 더는 쓸모가 없어졌으니 잔인하게 죽여버렸지만.


서지터의 장황한 설명에 조금 전까지 자신만만하고 당당하던 라빈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초조하고 당황한 낯빛이었다. 그래도 나름 서지터에게 말려드는 거라 판단이 섰는지 크게 심호흡을 하며 분위기를 바꾸려 말을 꺼냈다.


”후우우! 좋아. 미리 내 정체를 알았다고 쳐. 그런데 뭐가 달라지지? 지금 형들은 꼼짝하지도 못하고 죽는 일만 남았잖아? 형들 목숨줄은 내가 쥐고 있는 거야. 내가 미리 점을 쳤을 땐 내 목숨줄을 쥐고 있는 여섯이 나타난다고 했는데 상황이 완전히 역전됐어. 다 알고 있었다는 듯 잘난 척 구는 게 아니라 제발 살려달라고 싹싹 빌어도 모자라!“


”그래서 좀 전에 말했잖아. 선수 친 점에 대해서는 칭찬한다고. 설마 이 마을 안에서 뒤통수를 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거든.“


”웃겨. 그래놓고 누구더러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하는 건데?“


”너 이 섬 밖으로 나가본 적은 있냐? 세상은 말이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고 무섭고 대단한 놈들이 많더라고. 너도 그럴 기회가 있으면 참 좋겠는데 한 짓이 있으니 그건 쉽지 않을 거 같고, 여기서라도 뼈저리게 느끼게 해줄게.“


세 사람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지금 상황을 역전시킬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라빈은 다시 안정을 되찾았다. 생각이 정리되자 서지터의 말이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하핫! 그래서? 그 대단하고 무서운 사람이 자신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니지?“


복면에 가려진 서지터의 입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 라빈의 말처럼 지금은 꼼짝할 수조차 없었고,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능력 또한 없었다. 저주 인형의 고통을 이겨내고 라빈에게 달려든다 한들 뒤에 남은 한스와 카데스가 좀비 공격에 무방비해져 위험에 빠질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미소를 잃지 않는 단 한 가지 이유.


‘좋아. 시간만 벌면 돼. 조금만 더 가지고 놀아줄까?’


”다른 면에서 보면 형이 무섭고 대단한 사람인 건 맞아.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내 역할은 이 정도일 뿐이지. 너한테 가장 무섭고 대단한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거든.“


”하핫! 뭐? 누구? 혹시 처음부터 줄곧 아파서 앓아누워있는 그 예쁜 누나 말하는 거야? 설마 나를 속이기 위해서 그 누나가 아픈 척 누운 채로 있는 거야? 왜 이래? 제일 먼저 머리카락을 챙긴 건 그 누나야. 머리카락을 따로 뽑을 필요도 없더라. 바닥에 떨어진 금발 머리카락을 주워서 잘 챙겨뒀으니까.“


”안타깝지만 땡! 이래서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애들은 답도 없고 대책이 없는 거야. 잘못 짚었단다. 꼬맹아.“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한스와 카데스는 자신들의 친구가 한없이 재수가 없었다. 서지터 역시 비록 장난이라고는 하나 잘난 척하는 것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인물이었으니까.


그런 그가 얄미웠는지 식은땀을 흘리던 한스가 간신히 입을 뗐다.


”너, 너 이씨······!“


”왜 그러는데? 친구야. 나는 다르지. 내 잘난 맛에 살기는 해도 내 경우는 자타가 공인한 사람이니 쟤하고는 사정이 다르잖아. 안 그래? 그리고 진짜 잘났기도 하고.“


”너 진짜······! 끝나고 두고 봐. 하으윽!“


자기들끼리 수다 삼매경에 빠진 것이 어이가 없는지 라빈은 버럭 소리를 지르며 서지터를 다그쳤다.


”닥쳐! 그래서! 그래서 감히 누가 날 멈출 수 있단 건데!“


”여기 오면서 얼핏 둘러보니까 신전처럼 생긴 건물은 눈 씻고 찾아봐도 없더라. 너 여기 살면서 신전이 어떻게 생겼는지, 성직자가 뭐 하는 사람인지는 알고 있냐?“


”그딴 거 내가 알아야 해? 신을 모시는 신전이 됐든, 성직자가 됐든 나랑 무슨 상관인데?“


”이래서 네가 우물 안 개구리라는 거다. 나도 잘 몰랐는데 이 섬에 와서 느낀 바로는 너 같은 주술사한테 치명적인 약점은 바로 성직자라는 존재인 거 같더라.“


라빈은 대체 서지터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사 주술사에게 약점이 성직자라 할지라도 자신이 알고 있는 한 마르테아 섬 안에는 성직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서지터의 말을 듣고 있던 한스와 카데스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 어떤 성직자보다 신앙심이 깊고 든든한 동료인 파시비엔의 얼굴이 둘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하핫! 내 약점이 성직자라고? 그래서 그 성직자가 어딨는데?


“휴우, 제 딴엔 열심히 뛰어오긴 했는데 세 분 다소곳이 무릎 꿇고 뭐 하고 계십니까? 마침 제 얘기를 하고 계신 듯합니다? 그리고 또 마침 위대하고 자비로운 아그나달린님을 모시는 성직자가 여기에 있는데 말입니다?”


- 씨익!


라빈은 등 뒤에서 낯익은 파시비엔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름이 돋았고 서지터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바로 라빈 뒤에서 파시비엔의 한 마디가 울려 퍼졌다.


“콜 라이트닝(Call Lightning)!”


- 빠지지직!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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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5화 각자의 시간 - 2 23.05.30 34 2 12쪽
98 5화 각자의 시간 - 1 23.05.29 3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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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2 23.05.25 35 2 12쪽
9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1 23.05.24 34 2 12쪽
9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0 23.05.23 33 2 12쪽
93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9 23.05.22 28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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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7 23.05.18 35 2 14쪽
90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6 23.05.17 35 2 16쪽
8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5 23.05.16 35 2 12쪽
»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4 23.05.15 43 2 12쪽
8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3 23.05.12 33 2 13쪽
8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2 23.05.11 4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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