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조회수 :
9,636
추천수 :
452
글자수 :
1,515,958

작성
23.06.06 08:00
조회
43
추천
2
글자
11쪽

5화 각자의 시간 - 7

DUMMY

라인스노우. 마이론홀드 왕국 내 영지 중 가장 먼저 눈이 오고, 가장 늦게까지 눈이 오는 지역이다. 산골이나 다름없는 이곳은 타 영지와 비교해도 쌓이는 눈의 양이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폭설이 자주 내리는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카데스의 고향이기도 한 라인스노우는 12월이 되자마자 이미 여러 차례 눈이 내려 자작나무와 더불어 온통 새하얀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매서운 라인스노우 지방의 날씨를 익히 잘 알고 있는 카데스는 갑옷 안에 최대한 따뜻하게 옷을 챙겨 입고 두꺼운 망토까지 두른 상태였다. 입 주변은 추위에 잔뜩 얼어붙었지만, 입김을 내뱉으며 주변 풍경을 감상했다.


“후우우, 여전하네.”


카데스가 부모님의 복수를 위해 친구들과 라인스노우에 왔을 땐 봄이었다. 안타깝게도 당시엔 이 지역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설산을 볼 순 없었다. 몇 년 만에 다시 돌아온 고향의 겨울은 언제나 그랬듯이 눈이 부실 정도로 새하얀 겨울이었다.


“읏차!”


라인스노우 입구는 아직 한참 멀었지만 카데스는 말에서 내렸다.


- 뽀득. 뽀득.


어린 시절로 돌아가 라인스노우의 눈을 밟고 싶었다. 딱히 지나다닌 사람이 없었는지 그 누구도 밟지 않은 눈을 천천히 밟아가며 천진난만한 미소를 지었다. 카데스는 이렇게 눈을 밟는 것이 좋았다.


어린 시절부터 늘 말수가 적던 카데스는 친구가 거의 없다시피 했다. 더군다나 영주의 아들이라는 신분 덕에 또래 아이들은 대부분 어려워하기도 했고 사회성도 부족했던 성격도 한몫 단단히 했다.


지금이야 억만금을 주더라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친구들이 있지만 수도로 오기 전까지의 카데스는 외톨이였다. 그래서 그랬는지 몰라도 어릴 적 그는 눈이 많이 온 날에 항상 밖에 나가 아무도 밟지 않은 눈을 종일 밟기도 하고 홀로 눈사람을 만들며 시간을 보내왔다.


“좋다.”


지금만큼은 무뚝뚝하고 무표정한 카데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마치 소년이 된 듯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눈을 밟아가며 라인스노우로 향해 걸어갔다.


발목까지 파묻히는 눈을 밟아가며 걷던 카데스는 온전한 길로 들어섰다. 라인스노우로 향하는 길은 마차가 지나간 흔적과 함께 10여 미터 앞에 오도 가도 못 하고 눈 속에 바퀴가 빠진 마차 한 대가 카데스의 눈에 들어왔다.


- 히이힝!


“거참! 더 힘껏 당기라고!”


“이 사람아!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고!”


“마이론홀드는 아직 눈 구경도 못 했는데 이놈의 동네는 무슨 눈이 이렇게 많이 온 거야? 짜증 나 죽겠구먼!”


카데스의 귀에 들어온 그 한마디에 어릴 적 추억이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현실로 돌아온 카데스가 언제 그랬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와 마차 가까이 다가가자 마차 안에서는 아리따운 소녀와 시녀로 보이는 젊은 여성 둘이 창문으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걱정스러운 표정의 소녀는 눈밭에 빠진 마차를 빼내기 위해 애를 쓰는 사내들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아저씨. 우리가 좀 도와줄까?”


소녀의 말에 마부로 보이는 자가 화들짝 놀라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아이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날이 찹니다. 아가씨는 그냥 안에 계십시오. 저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조금만 더 하면 될 겁니다.”


“아버님이 기다리고 계실 텐데······.”


소녀는 안절부절못한 채 난처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좀 지나가겠습니다.”


어느새 그들 앞까지 도착한 카데스가 옆으로 말고삐를 당기며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툭 말을 내던졌다. 저들이 난처한 상황이긴 했지만, 딱히 도와줄 생각은 없었다. 자신의 추억을 산산조각 내며 눈이 많이 오는 라인스노우 지방의 험담을 했으니 말이다.


그런 그가 괘씸했는지 소녀와 대화를 나누던 마부가 혼잣말을 가장해 모른 척 그냥 지나치는 카데스에게 불만을 드러냈다.


“이런 난처한 상황을 봤으면 인간적으로 도와주는 게 도리 아냐? 이 동네 인심 참 날씨만큼이나 쌀쌀맞구만.”


누가 보더라도 상대는 용병. 마차 앞에서 고삐를 당기던 다른 마부가 표정이 어두워져 말했다.


“이봐! 말조심해. 다 들리네.”


“뭐! 내 입으로 혼잣말도 못 하나? 흥! 듣든 말든!”


분명 들으라고 한 소리가 맞다. 용기는 가상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마부의 쓴소리에 마차 옆을 지나가던 카데스가 멈춰서자 사내 둘이 움찔하며 등골이 오싹해졌다. 두 마부는 고개를 돌린 카데스의 매서운 눈과 마주쳤으니 쫄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니까 말이다.


반면 카데스는 말과 마차, 마부들의 옷차림을 빠르게 훑어본 후 차갑게 말했다.


“내 알 바는 아니지만, 마차 안에 있는 여성분들이 도와주진 않더라도 내려주기만 해도 충분할 거 같은데.”


역시나 이들을 도와줄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카데스가 훑어본 마차와 말은 평범해 보이지 않을 만큼 화려하고 비싸 보였고, 마부들의 옷차림 역시 상당히 깨끗하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더군다나 마차 안의 소녀는 머리치장부터 옷차림까지 귀티가 흘러넘쳤다. 눈썰미가 없는 사람이 보더라도 귀족의 마차임이 분명했다.


카데스 자신도 비록 귀족이기는 하나 그동안 겪은 귀족들에게 환멸 아닌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체질적으로 귀족을 싫어하는 한스나 레일라에게 옮기도 했지만 팔라고스 전쟁을 겪으면서 귀족들의 행태에 반감을 품고 있던 것도 사실이었다.


물론 모든 귀족이 그런 것은 아니었다. 친구인 서지터 역시 귀족의 피가 흐르긴 해도 누구보다 차별 없이 사람을 대하는 쪽이었고, 용병단의 케인즈 단장을 비롯해 가네다 마을에서 만났던 카이스터 역시 귀족과는 거리가 멀 정도로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귀족을 싫어하는 이유는 분명했다. 좋은 귀족보다는 이기적인 나쁜 귀족을 훨씬 많이 보아왔기 때문이다.


어쨌든 카데스의 한마디에 두 마부는 더 카데스에게 불만을 표출할 용기가 없었다. 둘 다 호신용으로 허리에 숏소드를 차고 있긴 해도 상대는 갑옷과 제대로 된 검과 방패를 차고 있는 용병으로 보였으니까.


체격 역시 건장한 카데스에게 괜히 또 한마디 했다간 새하얀 눈 위를 자신들의 붉은 피로 물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다. 몬스터가 없는 마이론홀드 왕국에서 경호 인력을 대동하지 않고 별 탈 없이 라인스노우까지 도달했다. 반나절이면 라인스노우에 도착할 테니 괜히 여기서 일을 키울 수는 없었다.


두 마부가 잔뜩 움츠러든 사이 마차 안에 있던 소녀는 문을 열고 황급히 카데스에게 도움을 청했다.


“저기 죄송합니다.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 저랑 제 시녀도 마차에서 내릴 테니 조금만 도와주시면 사례는 충분히 해드리겠습니다.”


“아가씨, 그냥 안에 계십시오. 저희가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아뇨. 저분 말이 맞아요. 우리 둘이 내리기만 해도 훨씬 더 수월할 거 같아요.”


귀족 소녀는 시녀가 말릴 틈도 없이 거추장스러운 드레스의 치마를 살짝 잡아 들고는 마차 위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시녀 역시 마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아가씨도 참······. 눈이 이렇게 쌓였는데. 드레스 버립니다.”


“지금 옷이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내가 생각이 짧았어.”


“그래도 감기라도 걸리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몸도 허약하신 분이······.”


“종일 여기에 발이 묶일 수는 없잖아. 조금만 더 가면 아버님이 계신 라인스노우인데.”


“거기 키 작은 아저씨. 앞에서 말이나 당길 준비 하세요.”


이렇게까지 나와주니 그냥 지나치려던 카데스가 도움을 주기 위해 어느샌가 마차 근처로 다가왔다. 딱히 사례 따위를 바란 건 아니었다. 여비는 충분했고 귀족으로 보이는 사람이 정중하게 부탁하는 마당에 거절하기가 애매했을 뿐이다. 카데스는 소녀를 지나쳐 마차의 오른쪽 뒷바퀴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고, 고맙습니다.”


귀족 소녀의 감사 인사도 무시한 채 카데스는 쪼그려 앉아 바퀴를 뒤덮은 눈을 부지런히 치우자 돌부리가 드러났다. 돌부리를 보자 카데스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것도 여전하네.”


자신이 기억하는 라인스노우는 길이 제대로 정비하지 않아 험한 편이었다. 카데스가 도망치듯 라인스노우를 떠나오기 전 그의 아버지가 하려던 일 중 하나가 도로 정비 사업이었다. 비록 시작하기도 전에 수포가 되긴 했지만 말이다.


“마차를 뒤로 좀 빼보시죠.”


“흐흠! 난 또 진창이 돼서 바퀴가 빠진 줄 알았는데······.”


카데스에게 불만을 드러냈던 마부가 멋쩍은 듯 중얼거리자 카데스는 등에 짊어진 방패를 꺼내 돌부리를 덮으며 말했다.


“날이 풀렸더라면 눈이 녹아 진창에 빠졌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이곳은 겨울에 워낙 추워 그럴 일이 없거든.”


“그, 그렇구만.”


다행히 돌부리는 그렇게 큰 편이 아니었다. 카데스는 방패로 돌부리를 덮으며 최대한 평평하게 위치를 잡았다. 마차 바퀴에 방패가 망가질 수도 있었지만 카데스는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자! 그럼 셋에 같이 밀죠. 한 번에 넘어가야 합니다.”


“어이, 자네도 셋에 신호에 맞춰 당기라고.”


“알았네.”


“갑니다. 하나둘셋.”


- 덜컹!


돌부리에 걸렸던 바퀴는 카데스의 방패를 밟고 언제 그랬냐는 듯 간단하게 넘어가 버렸다. 너무나도 손쉽게 해결되자 귀족 소녀와 시녀는 감탄사를 내뱉으며 눈이 동그래졌다. 한참을 두 마부가 낑낑거렸던 걸 눈 깜짝할 사이에 카데스가 해결해 버렸으니 신기할 법도 했다.


카데스와 함께 뒤에서 마차를 밀었던 마부 역시 깜짝 놀랐다. 그가 놀란 이유는 마차가 손쉽게 돌부리를 넘어가서는 아니었다. 셋을 외침과 동시에 마부 역시 남은 힘을 다 쏟아부으려던 찰나 오로지 카데스의 힘만으로 마차 바퀴를 돌부리 반대편으로 넘겼으니까.


“고, 고맙소.”


마부가 고맙다며 꾸벅 고개를 숙였으나 카데스는 별다른 반응조차 보이지 않은 채 방패를 들어 흙과 눈을 툭툭 털어내며 다시 등에 걸치고 그들을 지나쳐 갔다.


“저기! 정말 감사합니다. 잠시만요. 사례라도 해드릴게요.”


소녀가 허겁지겁 움직이며 사례금을 챙기려 마차로 향하자 카데스는 무뚝뚝하게 대꾸했다.


“괜찮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카데스는 이들과 더는 엮이기 싫었는지 말에 올라타 마차를 앞질러 나아갔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부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또다시 불만 섞인 말을 내뱉었다.


“평범한 용병 같아 보이는데 돈을 준다고 해도 거절하다니 별일이 다 있네. 힘은 장사인데 뭐 저리 건방져? 쯧! 도와줄 거면 처음부터 친절하게 도와줄 것이지.”


“아저씨! 우릴 도와준 분한테 그렇게 말하면 안 되지.”


“그래도 그게 말이죠. 아가씨가 어떤 분이신데 한낱 용병 따위가 저렇게 건방지냔 말입니다. 실력이야 있어 보이긴 해도 수도에서 마주쳤으면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볼 수도 없으신 분인데.”


“됐어. 아버님이 기다리실 거야. 빨리 출발해.”


귀족 소녀는 시녀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다시 마차 위로 올라탔다. 그녀는 마차에 오르면서 호기심이 생겼는지 한참을 앞서간 카데스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카데스의 뒷모습은 어느새 다시 흩날리는 눈발에 서서히 멀어져갔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5 5화 각자의 시간 - 8 23.06.07 36 2 12쪽
» 5화 각자의 시간 - 7 23.06.06 44 2 11쪽
103 5화 각자의 시간 - 6 23.06.05 37 2 12쪽
102 5화 각자의 시간 - 5 23.06.02 36 2 14쪽
101 5화 각자의 시간 - 4 23.06.01 35 2 15쪽
100 5화 각자의 시간 - 3 23.05.31 31 2 12쪽
99 5화 각자의 시간 - 2 23.05.30 34 2 12쪽
98 5화 각자의 시간 - 1 23.05.29 31 2 12쪽
9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3 23.05.26 35 2 14쪽
9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2 23.05.25 35 2 12쪽
9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1 23.05.24 34 2 12쪽
9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0 23.05.23 33 2 12쪽
93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9 23.05.22 28 2 13쪽
9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8 23.05.19 35 2 12쪽
91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7 23.05.18 36 2 14쪽
90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6 23.05.17 35 2 16쪽
8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5 23.05.16 36 2 12쪽
88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4 23.05.15 43 2 12쪽
8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3 23.05.12 33 2 13쪽
8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2 23.05.11 40 2 12쪽
8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1 23.05.10 35 2 12쪽
8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0 23.05.09 34 2 15쪽
83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9 23.05.08 43 2 13쪽
8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8 23.05.05 33 2 14쪽
81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7 23.05.04 36 2 14쪽
80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6 23.05.03 37 2 13쪽
7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5 23.05.02 46 2 13쪽
78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4 23.05.01 42 2 16쪽
7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3 23.04.28 41 2 14쪽
7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 23.04.27 39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