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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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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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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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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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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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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누군가의 의지 - 4

DUMMY

- 끼이익


“아그그극! 삭신이야.”


늦은 새벽 시간, 안 하던 공부를 하느라 여념이 없던 서지터가 기지개를 켜며 거실로 걸어 나왔다. 한스를 제외한 나머지 넷은 이미 소파나 바닥에 뻗어 기절한 듯 잠을 자고 있었다.


“뭐야? 너 아직 안 자고 있었냐?”


“응, 아직 멀었어. 그러는 너도 아직 안 자고 공부하던 거야?”


“그렇지 뭐. 목말라서 물 좀 마실 겸 나왔지.”


서지터는 식탁 위로 올려진 주전자의 물을 컵에 따라 시원하게 들이킨 후 근처에 놓인 상자 앞에 쪼그려 앉아 참가신청서를 뒤적이며 한스에게 말을 걸었다.


“정리는 잘되고 있는 거야?”


“아니, 생각보다 속도가 더디네. 다들 잠도 줄여가면서 정리 중인데 참가신청서가 많기도 하고 뒤죽박죽 섞여 있기도 해서.”


“그러면 말을 하지.”


일을 도와주지 않던 서지터는 내심 미안했는지 한스의 눈치를 살폈다. 벌써 필토가 다녀간 지 1주일이 흘렀다. 하지만 검은 로브의 마법사와 함께 지낸 후보자를 추리는 일은 아직 절반도 정리하지 못했다. 양이 많기도 했고 막상 상자를 열어보니 연도 별로 상자에 들어있지도 않았다. 결국 다시 분류하는 일까지 하느라 속도가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너는 어때? 알아보는 건 잘 돼 가고 있는 거야? 며칠 전에 나한테 마법 서적까지 빌려 갔잖아. 네가 오래간만에 마법 책을 보는 게 진짜 반갑기는 한데 대체 뭔지 궁금해 죽겠다.”


“그냥 추측이야.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고. 여러 경우의 수를 생각해야 하는 상황이라 안 보던 마법 책까지 훑어보느라 뇌에서 거부반응이 온다.”


“처음에는 검술 관련 책이더니 이번에는 마법 서적이라······. 다들 말은 안 해도 뭔가 너한테 대단한 걸 기대하는 모양이야.”


“풉! 기대는 무슨. 왜? 마검사 같은 거라도 될까 봐 기대하는 거야?”


“불가능한 거지만 너라면 또 모르지.”


“됐네요. 이 상자는 뭐야? 거들떠보지도 않았네?”


서지터는 방금까지 살펴보던 상자 밑에 있던 다른 상자를 들춰보며 화제를 돌렸다. 다리가 짧은 좌식 테이블에 앉아 참가자 명단을 적던 한스가 힐끗 서지터가 말한 상자를 보더니, 무신경하게 말했다.


“아, 그거 마상창시합 참가신청서. 그나마 참가자가 제일 적어서 나중에 보려고 빼둔 거야.”


“마상창시합이라면 뭐······. 참가자가 적을 수밖에 없겠지. 아무래도 위험하니까 갑옷도 제대로 다 갖춰 입어야 하고 마갑도 필요하다 보니 돈이 꽤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지. 참가자가 적은 게 이해가 가네.”


“그러게. 이번에 네가 참가했으면 우승은 그냥 따놓은 거나 다름없는데.”


“유치하게 무슨 마상창시합이야.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의외로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친구의 말에 한스가 명단을 정리하던 것도 멈추고 서지터를 빤히 바라보았다.


“혹시 다시는 말 위에서 랜스를 잡고 싶지 않은 거야? 트리스미스에서 겪은 일 때문에?”


“그것도 그렇고 우린 목숨 걸고 전장에서 랜스를 들고 싸웠는데 여기선 마치 유희 거리로밖에 안 여겨지는 것 같아 좀 거부감이 느껴지네. 뭐 우리도 훈련할 때 기분 전환할 겸 마상창시합을 하긴 했어도 근본적으로 다르지.”


“맞다. 용병단 안에서 그거 나름 이슈였어. 다들 늑대 중에 우승하는 사람이 누가 될지 내기하고 그랬잖아.”


한스는 문득 기억이 떠올랐다. 검은 늑대와 하얀 늑대 사이가 그다지 좋지 않아 따로따로 마상창시합을 매년 진행했다. 마이론홀드 봄축제 때 열리는 마상창시합과는 여러모로 달랐다. 단기간 진행하는 토너먼트 방식이 아닌 1년 동안 계속 상대를 바꾸며 얻은 누적 점수로 순위를 매기는 식이었다.


“너 그때 몇 등 했지?”


“으음, 처음 검은 늑대가 된 해에 40등이었나? 39등이었나?”


“거의 하위권이잖아? 네 실력 그거밖에 안 됐었어?”


하위권이란 말에 서지터가 발끈했다.


“야! 중간에 늑대가 됐고 너 때문에 조사단 임무까지 하고 와서 참여를 거의 못 했으니 그런 거지. 그 와중에 40등 정도도 훌륭한 거다 너?”


“그런가? 그럼 다음 해는? 그땐 핑계를 댈 게 없을 텐데?”


“그땐 3위를 했지. 아니다. 정확하게는 벨크랑 공동 3위였다. 수치스러워. 그딴 느려터진 대머리랑 공동 3위였다니.”


마상창시합의 내기 도박 같은 거엔 관심이 전혀 없던 한스였기에 솔직히 친구의 순위 따위는 알지 못했다. 하지만 무덤덤하게 3위를 했다는 말에 한스는 입이 벌어졌다. 난다긴다하는 검은 늑대들 사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든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당시 아더 대장을 제외한 49명이 참여하는 마상창시합에서 매년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는 건 기술이나 속도, 힘에서 최고라고 할 수 있는 검은 늑대 부대장 아트록스였다. 그 뒤를 이은 2위부터 4위까지는 근소한 점수 차로 박빙의 승부였고, 2위는 오로지 무식한 힘으로 제압하는 베어, 그리고 공동 3위가 서지터와 벨크였다.


승부욕이 강한 벨크가 공동 3위는 인정하지 못한다며 3위를 결정하는 1:1 승부를 제안했고, 첫 라운드 대결에서 동시에 두 사람은 낙마하며 순위를 결정하지 못한 일화가 있었다.


서지터는 그때의 추억을 곱씹으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재밌었지. 이제 두 번 다시는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여전히 놀라있던 한스는 눈치 없이 친구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내 친구지만 너 진짜 대단하네. 그 안에서 3위라니.”


“베어나 벨크는 이겨본 적이 있긴 한데 한 번도 아트를 못 이겨본 게 아직도 한이다. 훈련이 너무 부족했어.”


“처음 검은 늑대가 되고 토할 정도로 힘들게 훈련받았잖아. 그 정도로 노력했으니까 3위를 할 실력이 된 거겠지.”


무심코 뱉은 한스의 말에 서지터는 눈을 번뜩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뭐야? 빡세게 훈련받은 건 다들 알긴 해도 내가 토하면서까지 훈련받은 건 어떻게 아냐?”


“어? 몰랐나? 너 검은 늑대 되자마자 외출 금지였을 때 너무 궁금해서 몰래 너희 숙소로 찾아간 적 있어. 그때 하얗게 질린 얼굴로 토하는 모습을 봤거든. 다들 마음이 너무 불편해서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자는 얘기도 하고 그랬었지.”


“요거, 요거. 이런 앙큼한 것들. 몰래 숨어들어와서까지 내 걱정을 해 준 거야?”


“하하하. 너희 부대장이 에일리 3분대장한테 슬쩍 얘기를 해줬어. 어디로 가면 몰래 들어올 수 있다고.”


“감동인데? 좋아! 책만 보느라 머리도 아팠는데 이건 내가 봐준다.”


내내 쪼그려 앉아 있던 서지터는 바로 그 자리에 엉덩이를 깔고 바닥에 털썩 앉아버렸다. 마상창시합 신청서가 들어 있던 상자를 앞으로 끌어다 놓고 가장 오래된 연도의 참가신청서들만 골라 빈 종이에 이름을 빠르게 적어나갔다.


굳이 어떻게 하라는 설명이 없어도 서지터는 눈치껏 보기 좋게 명단을 정리해 나갔다. 한스는 그런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며 싱긋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신이 할 일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깨어있던 두 사람은 동이 틀 무렵까지 명단을 정리했다. 서지터가 정리하던 마상창시합 참가신청서는 검술시합이나 궁술시합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긴 해도 연도별로 참가자가 100여 명 가까이 되었다. 서지터는 어느새 참가자 이름을 연도별로 분류해 다 적어놓고 동일한 이름이 있는지 파악에 나섰다.


“하아암. 너 왜 나와서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니? 그런다고 내가 봐줄 거 같아?”


소파에서 아리엘과 꼭 끌어안고 잠이 들었던 레일라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그녀 눈에 들어온 서지터는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며 대꾸조차 하지 않자 잔소리를 하기 위해 레일라가 심호흡을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흠흠! 너는 사람이 말을 하면······!”


“잠깐만. 헷갈리니까 조금 이따가 지랄해.”


손을 들어 레일라의 잔소리를 제지한 후 서지터는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마디 던졌다.


“찾은 거 같은데?”


“뭐?”


아직 잠이 덜 깬 레일라가 잠이 확 달아나버렸다. 물론 같이 깨어있던 한스도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서지터 곁으로 다가갔다.


“정말? 벌써 찾았다고?”


“이건 참가자가 많지 않다며. 봐봐. 여기.”


서지터가 연도별로 이름을 쭈욱 나열한 종이를 한스에게 내밀었다. 이름이 빽빽하게 적힌 종이에는 한 사람의 같은 이름이 빠지지 않고 동그라미가 처져 있는 게 보였다.


“노리스 도노프리오. 여기도 노리스 도노프리오. 여기도, 여기도. 어? 진짜네? 참가신청서 잘 확인하고 연도별로 적은 거 맞지?”


“물론이지. 넌 이 형의 집중력을 무시하냐?”


“아니, 무시하는 건 아닌데 이렇게 빨리 찾았다고?”


“히히히, 그러니까 이거부터 정리했으면 개고생 안 하잖아.”


“어디 봐봐.”


도무지 못 믿겠는지 레일라도 곁으로 다가와 한스가 들고 있던 종이를 받아들었다. 그녀 역시 한스와 비슷한 반응이었지만 한 명을 찾았다고 해서 이걸로 끝은 아니었다.


“하여간 얻어걸리는 건 최고야. 그래도 이 사람이 우리가 찾는 사람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어. 아직 다른 시합들 명단 정리를 다 하지 못한 상황이니까 추가로 이름이 중복해서 참가한 경우가 더 있을 수도 있어. 그래도 한 명 찾긴 찾았네.”


한스는 정확하게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 서지터가 분류해 놓은 참가신청서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쌓아놓은 참가신청서에서 노리스 도노프리오란 사람의 이름을 발견했다.


“찾았다. 노리스 도노프리오. 남성. 나이는 69세. 이건 3년 전 신청서니까 지금은 72살이 됐겠네. 나이대도 얼추 맞는 거 같아. 그럼 적어도 30대 후반부터 계속해서 마상창시합에 참가했다는 거고. 토리아란 도시 출신의 기사구나.”


“이거 봐봐. 본선 진출자 명단인데 지금 훑어보니까 그래도 꾸준히 본선까지는 올라간 거 같아. 최고 성적은 30년 전에 8위까지는 했고. 이거 가지고 무투대회에서 명성을 떨쳤다고 나름 허세를 부릴 수는 있겠지?”


서지터가 본선 참가자들이 정리되어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 64강 토너먼트 전을 치르는 마상창시합의 서류였고 각각의 이름 옆에 최종 순위까지 적혀 있었다.


“응, 본선 진출했다며 충분히 떠벌리고 다녔을 가능성이 있어. 그런데 의아하네.”


“뭐가?”


“무투 대회는 참가비도 있고 마상창시합을 준비하려면 돈도 꽤 필요하다고 네가 아까 말했잖아. 거기다 이 사람은 연고지가 확실한 기사야. 그런데 우리가 찾는 사람은 떠돌이잖아. 그래서 우린 일부러 마상창시합 참가자 중엔 없을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거든. 상식적으로 떠돌이라면 기사보다는 용병일 가능성이 더 크니까.”


“일리가 있는 말이네. 만약 노리스란 사람이 우리가 찾는 사람이라면 무슨 사정이 있겠지.”


레일라가 뭉친 어깨를 주무르며 잠시 인상을 쓰더니 금세 얼굴이 밝아져 말을 꺼냈다.


“갑자기 엉뚱한 곳에서 우리가 찾는 사람과 나름 일치하는 인물이 튀어나오긴 했지만 30년간 꾸준히 무투 대회에 참가하는 사람이 있긴 있다는 말이네. 전혀 소득이 없진 않겠어. 지금까지 한 명도 찾지 못해서 좀 불안했는데 희망이란 게 생기네.”


서지터는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레일라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기특한 짓을 한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주인에게 어서 칭찬해 달라는 그런 눈빛이었다.


“잘했네. 그리고 한스 너는 좀 쉬어. 거의 매일 밤을 새우다시피 하잖아.”


“하하. 괜찮아. 아직 버틸만해.”


“우린 쪽잠이라도 자는데 너는 통 자는 걸 못 봤어. 네가 하던 정리는 내가 이어서 할 테니까 눈 좀 붙여. 아침 먹을 때 깨울게.”


“그래도 돼?”


“너보다는 느릴 테지만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서 자.”


레일라는 한스의 등을 떠밀며 방으로 집어넣었다. 둘의 훈훈한 광경을 빤히 바라보던 서지터는 제대로 된 칭찬도 받지 못하자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시무룩해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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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 6화 누군가의 의지 - 2 23.07.13 26 2 15쪽
130 6화 누군가의 의지 - 1 23.07.12 30 2 12쪽
129 5화 각자의 시간 - 32 23.07.11 27 2 12쪽
128 5화 각자의 시간 - 31 23.07.10 30 2 12쪽
127 5화 각자의 시간 - 30 23.07.07 38 2 13쪽
126 5화 각자의 시간 - 29 23.07.06 39 2 12쪽
125 5화 각자의 시간 - 28 23.07.05 40 2 12쪽
124 5화 각자의 시간 - 27 23.07.04 30 2 13쪽
123 5화 각자의 시간 - 26 23.07.03 42 2 13쪽
122 5화 각자의 시간 - 25 23.06.30 35 2 13쪽
121 5화 각자의 시간 - 24 23.06.29 30 2 17쪽
120 5화 각자의 시간 - 23 23.06.28 37 2 13쪽
119 5화 각자의 시간 - 22 23.06.27 39 2 12쪽
118 5화 각자의 시간 - 21 23.06.26 3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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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5화 각자의 시간 - 19 23.06.22 32 2 13쪽
115 5화 각자의 시간 - 18 23.06.21 32 2 14쪽
114 5화 각자의 시간 - 17 23.06.20 3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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