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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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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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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작성
23.07.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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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화 누군가의 의지 - 3

DUMMY

리벨드 부인에게 의뢰를 받은 그 날 저녁. 필토가 여관에 도착해 3층으로 종이 상자를 부지런히 날랐다. 무투 대회를 관리하는 왕국 수비대에서 묵혀있던 참가신청서를 받아 일행이 해야 할 숙제를 가져온 것이다.


필토가 마지막 상자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기대 가득한 얼굴로 말을 꺼냈다.


“이게 마지막 상자다. 상자별로 어떤 종목인지와 연도가 적혀 있을 거야. 잘 구분해서 조사하면 돼.”


어림짐작만으로도 상자가 대략 서른 개는 쌓여있었다. 어이가 없는지 레일라가 허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허! 지금 이걸 다 뒤져보라는 거야? 이 많은걸?”


상자 하나를 열어 본 파시비엔도 기겁을 하며 레일라를 거들었다.


“히이익! 정리된 명단조차 없는 겁니까? 정말 너무하십니다.”


“아쉽게도 정리된 명단은 본선 참가자들 뿐이야. 이걸 다 찾아 챙겨오느라 나도 고생했다고.”


참가 신청자 명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된 서류라도 있다면 일이 한결 수월했겠지만, 일행 앞에 놓인 상자 안에는 신청서와 본선 참가자 명단을 제외한 그 어떤 서류도 존재하지 않았다. 필토는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며 대수롭지 않듯 말했다.


“담당자에게 일정을 물어보니 3월 20일부터 예선전을 치른다고 하더군. 너희라면 그때까지 시간은 충분할 거야. 다행스러운 건 마상창시합은 참가자가 그리 많지 않으니 먼저 검술시합과 궁술시합 참가자 위주로 살펴보는 게 좋을 거다.”


약 2주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찾는 자의 실력이 어느 수준인지 알 수 없으니 예선전이 시작하기 전에 유력한 자의 명단을 추려 만나보아야 했다. 예선전 초반 탈락 후에 바로 떠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자, 그럼 다들 고생하고 명단이 추려지면 나이트 플라워로 알려주면 된다. 숫자가 많을 경우라면 우리도 최대한 손을 빌려줄 테니까.”


필토가 용건이 다 끝났는지 터덜터덜 계단을 내려가자 서지터가 소리치며 필토의 뒤를 따라나섰다.


“어? 아저씨! 잠깐만, 나 뭐 물어볼 거 있어요.”


필토와 서지터가 계단 아래로 사라지자 한스가 상자를 훑어보며 어찌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서둘러야겠다. 으음, 마상창시합 참가신청서는 일단 마지막에 보기로 하자. 우선 헷갈릴 수도 있으니까 셋씩 나눠서 검술시합과 궁술시합 위주로 보는 게 좋을 거 같아. 최대한 빠르게 중복되는 사람의 이름을 정리해야겠지? 혹시라도 놓칠 수도 있으니 30년간 전부 대회에 참가한 사람뿐만 아니라 한두 번 정도 빠진 사람이라도 따로 정리해두는 게 좋을 거 같아.”


한스의 의견에 레일라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여기서 일거리를 더 만들자는 거니?”


“어쩔 수 없잖아. 만약이란 게 있으니까.”


소파에 늘어져 있던 콜리나가 와인을 홀짝거리며 한스의 의견에 동의하듯 말했다.


“보고할 땐 이 떠돌이란 사람이 매번 무투 대회에 참가했다고는 했지만 장담할 순 없어. 어디까지나 주워들은 소문이고 그 소문조차 불확실하니까. 그리고 나는 명단을 추리는 일에서 빼줘. 그동안 너무 힘들었어. 결국 수도로 올 사람인 걸 알았더라면 내가 이 고생은 하지 않았을 텐데! 으으으!”


고생한 게 억울한지 콜리나는 치를 떨었다.


“이거 너무 막막하지 말입니다. 위대하고 자비로운 아그나달린님, 부디 우리에게 길을 밝혀 주시기 바랍니다. 으흑!”


파시비엔이 기도를 올리자 조용히 있던 카데스가 일어나 뒤죽박죽 섞여 있는 상자를 연도별, 각 시합 별로 나누기 시작했다.


한편 필토를 따라 나간 서지터는 그가 끌고 온 마차 앞에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었느냐면요. 내가 쥔 검이 미세하게 떨림이 있었고, 방패나 갑옷조차 베는 느낌도 없었어요.”


“안 닿은 거 아니냐? 떨림은 손에 힘이 빠져 떨린 건 아니고?”


“나 참! 나를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해요. 닿지도 않았는데 그냥 베어졌다고요? 그리고 내가 악력 하나는 어디에 내놔도 안 밀린다고요. 어지간해선 손에 힘이 빠져 떠는 일은 없다니까요.”


“그래, 너 잘났다. 오죽하겠냐? 그리 대단한 용병단 출신인데.”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필토의 말에 짜증이 났는지 서지터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비꼬지 말고 잘 생각을 해보라고 좀! 이 망할 아저씨야.”


“이 자식이! 그리고 너 인마! 누가 그런 무모한 짓을 하고 다니래? 네 심정이야 이해한다만 적당히 들쑤시고 다녔어야지.”


“도와줄 생각 없으면 잔소리하지 말고 그냥 가든가. 진짜 도움 안 된다니까?”


서지터의 설명은 그렉의 수하들과 전투를 벌일 당시 느꼈던 이상한 일에 관한 것이었다. 내내 궁금증이 가득했던 터라 수도로 돌아오자마자 검술 관련 책을 잔뜩 산 후 안 하던 짓까지 하며 열심히 공부하는 중이었다. 결국 믿음직스럽진 않았지만 한스의 조언처럼 필토에게 도움을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잔소리는 이 정도면 충분했는지 필토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흐음, 검의 떨림이나 갑옷조차 그냥 베어 버린다라······.”


“들어본 적 있어요?”


“흐으음. 아니? 없는데?”


“아, 진짜! 그러면서 뭐 그리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하는 척이야.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진짜 도움 안 돼. 어휴.”


“이 자식이? 넌 인마 스승에게 대하는 태도가 이게 뭐냐? 이런 불량한 태도 때문에 알고 있어도 알려주기 싫다고!”


“한때 잘나가던 용병이라며? 응? 응? 잘나가긴 개뿔? 물어본 내가 등신이지.”


“이게······!”


“아아악!”


결국 화를 자초한 서지터는 필토에게 목이 잡혀 헤드락이 걸린 채 고문을 당하기 시작했다. 여관 앞에서 사내 둘이 추잡한 짓거리를 하던 터라 3층에서 레일라가 창문을 열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시끄러워! 심란해 죽겠는데. 둘 다 저리 안 꺼져?”


카랑카랑한 레일라의 외침에 창피함을 느낀 두 사람은 싸우던 것을 멈췄다. 필토는 서둘러 마차에 오르며 나름의 조언을 해주었다.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은 모를 수도 있지. 정 궁금하면 소드마스터 칭호를 가진 사람에게 물어보든가.”


“소드마스터요?”


“그래, 너도 알고 있는 소드마스터. 조만간 무투 대회 관람 때문에 그리폰 성기사단 단장님도 수도로 올 거다. 그때 만나서 물어보든지 해라. 나보다야 그분이 훨씬 낫겠지.”


“정말요? 로스 단장님이 온다고요?”


“항상 성기사단 소속의 기사들 몇몇도 무투 대회에 참가하니까 당연히 그분도 오지 않겠냐?”


“오케이! 접수! 아저씨 잘 가요.”


서지터는 부리나케 여관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저! 저! 저 싸가지없는 자식! 내가 무슨 업보가 있길래 저런 걸 거둬들여서. 하아아.”


필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차를 끌고 나이트 플라워로 돌아갔다.


#

서지터가 3층으로 올라왔을 땐 이미 다섯은 분주하게 상자를 정리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서지터는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방으로 들어가려다 레일라의 외침에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어이! 거기 청년! 스톱!”


“하아아. 나 좀 봐주라.”


“응. 지금 너 보고 있잖아. 이리 와서 얼른 거들지?”


“나 아직 못 본 책이 많이 남았는데.”


“그건 네 사정이고. 빨리 안 와? 셋씩 나눠서 검술시합이랑 궁술시합 신청서 정리할 거야.”


몸을 돌려 레일라 앞으로 걸어간 서지터는 울상을 지으며 바로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다.


“누님아, 이거 진짜 나한테는 중요한 일이야. 얼른 책 보고 나서 도와주면 안 될까?”


“왜 또 안 하던 짓거리야?”


“응? 한 번만, 나 진짜 한 번만. 이번만 그냥 넘어 가주면 내가 시키는 거 다 할게. 응?”


마치 파리에 빙의된 듯 손까지 싹싹 비비며 사정을 하던 차에 파시비엔이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매섭게 노려보았다.


“우와아! 서지터님 너무 이기적이고 치사하신 거 아닙니까? 이 많은 걸 어떻게 우리끼리 다 살펴봅니까? 상자 쌓인 걸 보시지 말입니다.”


반면 레일라는 무릎까지 꿇으며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비는 서지터를 보자 마음이 약해졌다. 그의 얼굴엔 장난기가 가득했지만 요 며칠 동안 진지하게 공부하는 모습에 조금은 흔들린 듯 보였다.


“하하. 내가 저 녀석 몫까지 살펴볼게.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볼 테니까 공부하던 거 그냥 하게 냅두자. 나름 중요한 일인 거 같은데.”


한스가 오래간만에 공부하는 친구의 편을 들며 거들자 눈빛이 초롱초롱해진 서지터가 여전히 손을 싹싹 빌며 말했다.


“응! 진짜 중요한 일이야. 이거 못 알아내면 나 진짜 궁금해 돌아가실지도 몰라. 아니면 열 받아서 퓨리가 또 나타나 내 정신을 지배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겠어?”


퓨리라는 말에 레일라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안 돼! 퓨리를 또 오게 하면 내가 가만히 있진 않을 거야. 지터! 정말 위험하다고!”


반은 농담으로 던진 협박이었지만 아리엘이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래, 뭔지 모르겠지만 너는 그냥 하던 거 해. 책을 보는 낯선 모습이 신선하기도 하고.”


파시비엔은 여전히 서지터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카데스까지 거들기 시작하자 모두 레일라의 결정을 기다렸다.


결국 레일라는 앞머리를 쓸어넘기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아, 뭘 또 그걸로 무릎까지 꿇는 거야? 사람 민망해지게. 알았으니까 우리가 힘에 부치면 와서 도와. 그리고 조금 전에 네가 한 말 꼭 지켜라?”


“어? 무슨 말?”


이 기회를 그냥 흘려넘길 만큼 레일라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모를 서지터는 머리를 긁적거리며 자신이 방금 했던 말을 되새김질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말을 했지?”


“네가 방금 이번만 그냥 넘어가 주면 시키는 거 다 한다고 그랬거든. 모른다고 발뺌할 생각하지 마. 불과 조금 전 네 터진 주둥이로 한 말이니까.”


“어어어, 내가 그랬나?”


등골이 서늘해진 서지터가 말실수를 한 것 같다고 느껴지자 눈치 없이 아리엘이 천진난만하게 손을 번쩍 들어 소리쳤다.


“응, 나 방금 들었어! 지터가 시키는 거 다 한다고 분명 그랬어! 헤헤.”


“하하, 이거 빼도 박도 못하겠네. 내가 너 도와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인 거 같다. 부디 하던 공부 좋은 성과가 있기만을 바랄게.”


한스마저 등을 돌리기 시작하자 카데스와 파시비엔도 대세의 흐름에 편승해버렸다.


“이것도 중요한 일이고 손 하나가 아쉬운 것도 사실이니까 그 정도는 걸어야 우리도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겠다.”


“카데스님 말이 백번 일리가 있지 말입니다. 왜 개인적인 일을 우리가 봐줘야 하는 건지 이해는 안 갑니다만 그래도 서지터님이 무릎까지 꿇어가면서 봐달라고 하니 넓은 마음으로 넘어가 드리겠습니다. 이게 다 위대하고 자비로운 아그나달린님의 은총인 덕입니다. 항상 감사하시지 말입니다.”


“저기요? 얘들아? 막 설마 알몸으로 거리로 나가 춤을 추라던가, 카렌한테 가서 프러포즈하라던가. 그런 거 시킬 건 아니지?”


“그건 우리 자유니까 넌 얼른 네 방으로 꺼져. 우리 바빠. 그럼 글 읽는 거 빠른 한스랑 내가 궁술시합 참가신청서를 살펴볼게. 너희 셋이서 양이 제일 많은 검술시합 참가신청서 훑어봐.”


레일라는 서지터의 헛소리를 가볍게 무시하고는 팔을 걷어붙였다. 명단을 추리는 일이 얼마나 걸릴지는 알 수 없지만, 최대한 빠르게 정리해야 앞으로 할 다른 일들이 수월할 것만 같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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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 6화 누군가의 의지 - 1 23.07.12 2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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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5화 각자의 시간 - 30 23.07.07 38 2 13쪽
126 5화 각자의 시간 - 29 23.07.06 39 2 12쪽
125 5화 각자의 시간 - 28 23.07.05 40 2 12쪽
124 5화 각자의 시간 - 27 23.07.04 3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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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5화 각자의 시간 - 24 23.06.29 30 2 17쪽
120 5화 각자의 시간 - 23 23.06.28 3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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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5화 각자의 시간 - 21 23.06.26 33 2 12쪽
117 5화 각자의 시간 - 20 23.06.23 44 2 13쪽
116 5화 각자의 시간 - 19 23.06.22 32 2 13쪽
115 5화 각자의 시간 - 18 23.06.21 32 2 14쪽
114 5화 각자의 시간 - 17 23.06.20 3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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