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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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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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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작성
23.07.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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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각자의 시간 - 29

DUMMY

생각보다 레일라가 빨리 돌아왔다. 잭을 찾으러 떠난 지 약 40 여일, 한 달 반 만에 돌아온 레일라는 그동안 많이 지쳤는지 방에 틀어박혀 주로 잠을 자며 시간을 보냈다. 마이론홀드에 남아있던 한스나 아리엘은 평소답지 않은 레일라의 행동을 주시하며 나름의 걱정을 했지만, 딱히 그녀를 귀찮게 하지는 않았다.


레일라가 돌아온 이후 둘은 오전에만 도서관에 들러 광전사에 관한 자료 조사를 했고, 점심때 즈음 돌아와 레일라와 식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리엘은 식사 후에 여관 문턱이 닳도록 밖으로 쏘다니기 바쁠 정도였다. 자세한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최근 밖에서 친구를 사귀었다며 잔뜩 들떠있는 아리엘을 말릴 수는 없었다.


반면 한스는 주로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으며 레일라를 보살피는 일에 신경을 쏟았다. 오늘도 역시 벽난로 앞에 편안하게 앉아 책을 읽던 한스는 문득 고개를 들어 레일라의 방문을 빤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하아, 걱정되네. 정말 무슨 일 있나. 왜 그렇게 기운이 없는 거야.”


점심 식사 후 레일라는 오늘도 노곤하다며 방에 들어가 잠이 든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혹시 티격태격 싸울 상대인 서지터가 없어 저러는 건 아닌지, 아니면 딱히 돈을 벌 일이 없어서 기운이 없는 건지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안 되겠다.”


- 텁!


과감하게 책을 덮어버린 한스가 레일라의 방 앞으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노크를 했다.


- 똑똑.


“레일라, 자?”


방문 너머에선 별다른 말이 없었다. 한스는 다시 한번 문 앞에 서서 말했다.


“레일라, 잠깐 들어갈게.”


- 끼익.


조심스레 문을 열고 머리만 살짝 밀어 넣었다. 레일라는 이미 머리까지 이불을 뒤집어쓴 채 웅크리는 자세로 곤히 잠이 들어 있었다. 일정한 간격의 작은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정적에 휩싸인 레일라의 방이었다.


‘잠귀가 밝은 레일라가 내가 노크를 해도 모를 정도네. 확실히 잭 아저씨를 만나러 다녀온 뒤로 이상해졌어.’


계속된 그녀의 행동이 신경 쓰인 한스는 결국 레일라를 깨우기로 마음먹었다.


- 흔들흔들.


“레일라? 잠깐 일어날 볼래?”


한스가 조심스레 레일라를 흔들어 깨우자 잠에서 깬 그녀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으으응? 왜애애, 무슨 일이야.”


“나랑 바람 쐬러 나가지 않을래?”


레일라는 눈을 비비적거리며 한스 얼굴을 빤히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응, 요즘 맨날 여관에만 있는 거 같아서······. 갑갑하잖아. 하하.”


막상 말을 하긴 했지만 갑작스러운 제안이었기에 말을 꺼낸 한스조차 민망함에 귀가 빨개질 정도였다. 레일라는 뭉그적거리며 침대에 걸터앉아 입을 열었다.


“그럼 씻고 올게. 잠시만 기다려.”


옷매무시를 가다듬은 레일라는 무거운 몸을 일으켜 씻으러 욕실로 향했다.


다 씻은 레일라가 외출복으로 갈아입고 3층 거실로 나오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한스가 해맑게 웃으며 빨리 나가자며 재촉했다.


“오늘 날씨가 좋더라고. 벌써 봄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랄까? 하하하! 우선 이것저것 쇼핑도 좀 하고 맛있는 것도 먹자.”


여전히 민망한 한스가 주절주절 떠들자 그의 마음을 눈치챈 레일라가 어색한 분위기를 풀기 위해 농담을 던졌다.


“참고로 서점이나 도서관 같은 곳은 때려죽여도 안 갈 거야.”


“하하, 물론이지. 그건 걱정하지 마. 그럼 일단 번화가 쪽으로 가볼까?”


둘은 느긋하게 여관 밖으로 나섰다. 한스의 말처럼 아직 겨울임에도 따뜻할 정도로 봄 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둘만 이런 날씨를 느낀 건 아니었는지 주변은 활보하는 사람도 많고 꽤 활기찬 분위기였다.


번화가에 도착하자 사람이 더 북적거리며 정신이 사나울 정도였다. 평소라면 이런 곳은 한스가 딱히 좋아하지 않는 장소였지만 먼저 바람을 쐬러 나가자고 제안한 건 그였기에 불편함을 감수하고 레일라의 기분을 맞춰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저기! 일단 저기부터 가볼까? 레일라 옷 사는 거 좋아하잖아.”


“저 가게는 별로야.”


“왜? 내가 볼 땐 진열해 놓은 옷들 예쁜 거 같은데.”


“에휴우.”


감각이라고는 드래곤의 입에 처넣은 한스의 행동에 레일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긴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을 팔지도 않고, 쓸데없이 비싸기만 해. 원단이 고급이면 뭐해. 옷을 만드는 사람이 별로인데.”


“그, 그런가?”


“딱 보면 모르겠니? 여성스러운 옷만 진열되어 있잖아. 내가 언제 저런 옷 입는 거 봤어? 움직이기 편한 옷은 전혀 없잖아. 더군다나 색상이 화려해서 너무 구려.”


레일라의 설명에 한스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녀가 움직이기 편한 옷을 선호한다고는 했지만 보통 몸매가 드러날 정도로 딱 붙는 옷을 자주 입는 것을 알고 있는 한스가 과연 그 복장도 움직이기 편한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내가 자주 가는 단골 가게가 있으니까 그리로 가자.”


결국 레일라가 한스의 손을 잡아끌고 단골 가게로 향했다. 그곳엔 이미 봄 신상 옷들이 제법 들어와 있었다. 레일라는 셔츠 여러 장과 검은 가죽 바지, 가볍게 입을 만한 외투와 조끼 여러 벌, 굽이 높지 않은 부츠까지 사며 쇼핑을 즐겼다.


짐꾼을 자처한 한스는 거침없는 레일라의 구매에 신기하다는 듯 쳐다봤고, 아직 부족한지 레일라는 가게 구석구석을 뒤져가며 여러 용도의 벨트부터 액세서리까지 쓸어 담듯 구매욕을 충족시켰다.


“한스, 너······.”


“응?”


“그만 졸졸 따라다니고 저리 가서 너 살 거나 골라. 저쪽으로 가면 남자 옷도 파니까.”


“괜찮아. 오늘은 짐꾼으로 맘껏 써먹어.”


“내가 안 괜찮거든? 여기까지 졸졸 따라올래?”


살짝 얼굴을 붉힌 레일라가 손가락을 가리키자 한스의 얼굴이 더 붉게 달아올랐다. 이유는 지금 진열된 곳부터 여성 속옷만 파는 진열대였으니 말이다.


“어어? 어! 아, 알았어. 그럼 나 저쪽에 있을 테니까 다 고르면 와.”


황급히 한스가 자리를 피하자 레일라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풉! 귀여워.”


레일라는 속옷 진열대에서도 거침없이 취향에 맞는 속옷을 골랐다. 이것이 과연 속옷인지 천 쪼가리인지 분간조차 가지 않았지만 한 아름 쇼핑 봉투에 속옷을 구매 후 어슬렁거리는 한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너는 맨날 로브만 뒤집어쓰고 다니면서 살만한 옷이 있긴 해?”


“아, 레일라. 다 샀어?”


“뭐 대충?”


“그냥 보는 거지. 그렇다고 내가 항상 로브 하나만 입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로브 안에 간단하게 린넨 셔츠 같은 걸 입으니까.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로브만 입으면 변태 소리 듣게? 하하하!”


“여름에는 가끔 로브만 입었던 거 같은데?”


“아, 아니 그건! 여름에는 더우니까······. 그리고 말이 이상하잖아. 로브 안에 속옷조차 안 입고 있는 것처럼 들린다고.”


“호홋! 이리 와 봐. 내가 골라줄게.”


기분이 좋아진 레일라는 한스를 끌고 평소에는 잘 입지 않는 스타일의 옷을 고르기 시작했다. 실크 원단에 손목 부분이 프릴로 펑퍼짐하게 퍼지고 하늘거리는 셔츠를 골라 치수를 보기 위해 한스의 상체에 갖다 댔다. 그러자 난감한 한스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건 불편해서 못 입는다고.”


“이런 것도 한 벌 정도는 있어야지. 맨날 싸구려 옷만 사 입지 말고 가끔은 비싼 옷도 사고 그래. 딴 애들을 봐. 네가 봐도 후줄근해서 거지꼴이잖아. 너 옷이 날개란 말도 있다? 물론 나처럼 옷걸이가 받쳐줘야 진짜 날개가 되는 거지만.”


결국 레일라의 설득에 한스는 난생처음 가장 비싼 셔츠를 살 수밖에 없었다. 아직 쇼핑에 목이 마른 레일라는 취미생활 중 하나인 아리엘 꾸미기 놀이를 하기 위해 그녀 치수에 맞는 옷을 몇 벌 더 구매하고서야 기나긴 쇼핑의 시간이 끝날 수가 있었다.


한스와 짐을 나눠 든 레일라였지만 발걸음은 빈손일 때보다 한층 가벼워져 콧노래까지 부르는 지경에 이르자 같이 나온 걸 다행이라 여기는 한스였다.


“저녁 먹기에는 아직 조금 이르고 아리엘 빼고 먹기에도 애매하니까 간단하게 디저트 같은 거라도 먹으러 갈까?”


“흐흐응~. 그래, 좋아. 어디로 갈까?”


“저번에 아리엘이랑 와플 가게 가본 적 있어. 거기 맛있더라. 그리 가자.”


“좋아!”


밝아진 레일라를 보며 한스가 흐뭇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걸음을 옮기며 한참을 빤히 바라보자 레일라가 말을 꺼냈다.


“왜? 내 얼굴에 뭐 묻었니?”


“아니, 기분 좋아 보여서. 하하하. 이제야 내가 알던 레일라로 돌아온 거 같거든.”


“쇼핑하니까 스트레스가 좀 풀리긴 하네. 너랑 이렇게 둘이 나오니까 데이트하는 연인 같고 즐겁고 재밌네.”


레일라는 말을 내뱉는 순간 아차 싶었다. 데이트하는 연인라니. 순진한 한스를 앞에 두고 말실수를 한 것만 같았다. 한스 역시 데이트라는 말에 꽂혀 당황해 말을 더듬거렸다.


“데, 데이트? 하, 하하! 그, 그렇게 되는 건가?”


“아니,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다, 다른 녀석들은 잘 지내고 있나 모르겠네. 서지터 걔는 거기서도 사고 치는 거 아닌지 몰라.”


괜히 말을 돌리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한스. 레일라 역시 뻘쭘했는지 다른 말을 꺼내 데이트와 연인이라는 단어를 지우려 애를 썼다.


“아아, 와플 가게는 아직 멀었어? 다리가 아프네.”


“거의 다 왔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짐을 들고 나란히 걸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지만 서로의 시선은 반대쪽을 바라보며 눈조차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마침 레일라의 눈에 자신과 비슷하게 닮은 아리엘의 얼굴이 들어왔다. 카페 안쪽 창가에 앉아 뭐가 그리 신이 난지 조잘거리는 아리엘을 보자 레일라는 발걸음을 멈춰 섰다.


“항상 적응이 잘 안 돼서 헷갈리는데 저거 우리 아리엘 맞지?”


레일라의 눈짓에 한스도 카페 쪽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법으로 얼굴을 바꿔놓은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어? 그러네.”


아리엘을 발견하고는 두 사람은 동시에 슬금슬금 옆으로 자리를 옮기기 시작했다. 마치 나쁜 짓을 하다 걸린 아이들처럼 데이트하다 아리엘에게 걸리면 민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두 사람 모두에게 스치고 지나갔다. 하지만 새로 사귄 친구에 대해 줄곧 궁금했던 둘은 그 자리를 벗어나지 않고 아리엘의 반대편에 앉아있는 쪽이 잘 보이게끔 걸음을 옮겨갔다.


몇 걸음 옮기자 창틀에 가려졌던 아리엘의 대화 상대가 두 사람의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뭉뚝하고 뾰족한 귀와 빛이 날 정도로 새하얀 피부,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의 미모였다.


“하, 하프엘프?”


한스가 넋을 놓고 중얼거리자 레일라도 반응을 보였다.


“그러네?”


“저 하프엘프는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놓고 다니네.”


“그러네?”


낯선 광경이었다. 흑발의 하프엘프는 짧은 머리에 당당하게 뾰족한 귀를 드러내놓고 심각한 표정으로 아리엘과 대화 중이었다. 두 하프엘프는 카페 내부에 있기에 무슨 대화를 하는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둘의 표정은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신기하네. 좀 지켜볼까?”


“응.”


둘은 조금 전 민망했던 분위기도 잊은 채 구석에 자리를 잡고 몰래 아리엘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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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5화 각자의 시간 - 30 23.07.07 38 2 13쪽
» 5화 각자의 시간 - 29 23.07.06 39 2 12쪽
125 5화 각자의 시간 - 28 23.07.05 4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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