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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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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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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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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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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2

DUMMY

단 하루, 집 같은 여관에서 마음 편히 쉴 수조차 없었다. 서지터만 돌아온 걸 어디서 주워 들었는지 듀번트와 한나가 여관으로 들이닥쳐 그를 귀찮게 했다. 한나는 단지 다른 사람들의 안부가 걱정됐지만, 듀번트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물어보며 서지터를 괴롭혔다.


자정이 다 돼서야 졸린 눈을 비비며 둘을 쫓아낸 서지터는 겨우 몇 시간만 잠을 잔 후 동틀 무렵 라프스톤으로 향했다. 홀로 떠나는 의뢰였지만 심심할 틈이 없었다. 서둘러 이틀째에 마이론홀드 왕국을 벗어난 서지터는 몬스터의 습격을 받기 시작했다. 몬스터라곤 없는 평온한 마이론홀드 왕국과는 달리 브리아 왕국 초입부터 고블린 무리에게 시달렸다. 덕분에 노숙할 수밖에 없었던 이틀째 밤엔 제대로 잠을 잘 수도 없었다.


야밤에 몬스터의 습격을 우려해 밤새 뜬눈으로 지새운 서지터는 아침 일찍 서둘러 떠났다. 이동하는 내내 윈드테일 등 위에서 졸다가 떨어지기도 여러 차례. 어지간하면 말 위에서 떨어질 일이 없는 서지터의 피로가 극한으로 쌓였다는 걸 보여주는 좋은 예였다.


- 철푸덕.


또 한 번 말에서 떨어졌다. 발길을 멈춘 윈드테일도 짜증이 났는지 거칠게 콧바람을 내뿜었다.


- 푸르응! 푸릉!


“크허어어. 쩝쩝.”


윈드테일에서 떨어졌음에도 일어나지 않고 계속 잠을 잘 뿐이다. 길바닥에서 잠을 자는 모습을 레일라가 봤더라면 쌍욕을 퍼부으며 발길질을 했겠지만, 그의 잠을 방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물론 깨울 사람이 없을 뿐이지, 사람 같은 윈드테일이 가만 놔두지 않았다.


- 푸르릉! 툭! 툭!


“나 조금만, 조금만 더 잘게.”


입으로 서지터를 툭툭 건드렸으나 일어날 기미는 안 보였다. 결국 윈드테일은 극단의 조치를 했다.


- 덥석!


“아아아악!”


서지터의 머리통 반을 깨물어버렸다. 야단법석을 떨며 잠에서 깬 서지터는 윈드테일을 노려보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너 미친 거야? 소중하신 주인님의 머리를 물어? 내가 당근이냐?”


윈드테일은 무척이나 즐거운지 허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 보였다.


- 이히히힝!


“웃어? 재밌냐?”


서지터는 일어나 몸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며 사정했다.


“흐아아암. 오빠가 피곤해서 그런다. 네가 이해 좀 해줘라.”


잠에서 깬 그는 가방으로 걸어가 꽂아놓은 지도를 꺼내 펼쳐보았다.


“하아암. 마을, 마을을 일단 찾아야 해. 하으음. 오늘도 노숙할 수는 없다고.”


꼼꼼하게 지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브리아 왕국이 초행길인 서지터는 라프스톤으로 향하는 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연신 하품을 해댔다.


지도의 라프스톤 지역으로 가는 최단 루트는 마이론홀드 왕국과 에이그힐 왕국에 인접한 국경선을 따라가야만 했다. 그나마 안전하게 두 왕국을 통해 가는 길도 있긴 했지만, 그렇게 되면 한참을 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림에 어떤 비밀이 있는지 알 순 없어도 이스미르 후작 쪽에서 먼저 그림을 채가게 놔둘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브리아 왕국 영토인 이 길을 택한 것이다.


“이놈의 지도는 제대로 된 마을도 없어. 있는데 안 그려놓은 건가? 그나마 가장 가까운 마을은 대충 거리상 내일이나 도착할 거 같은데? 오늘은 또 노숙해야 하는 건가.”


난감한 상황에 머리를 긁적이며 한숨을 쉬었다. 오늘만큼은 새벽에 몬스터들에게 시달리기 싫었다. 지도를 제자리에 꽂아 넣으며 그새를 못 참고 선 채로 꾸벅꾸벅 잠이 들자 길 한쪽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어어! 이봐, 자네! 위험해!”


그 소리에 번뜩 눈이 떠진 서지터가 고개를 살짝 들자 이번에도 윈드테일이 잠을 깨우기 위해 입을 벌리고 주인의 머리를 깨물려다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진짜 죽을래? 주둥이 안 치워?”


슬그머니 입을 닫고 모른 척하려던 윈드테일은 서지터가 검을 뽑아 들자 그대로 줄행랑을 쳐버렸다.


- 푸히히힝!


“너 거기 안 서? 잡히면 오늘 죽어? 앞으로 고급 건초 먹을 생각도 하지 마!”


서지터에게 잡힐 리는 없었다. 위협 같지 않은 위협을 하며 서지터가 허공에다 검을 마구 휘두르자 위험하다고 경고했던 사람이 호탕하게 웃었다.


“아하하핫! 이렇게 재미난 광경은 또 첨이로군.”


이 사람은 방금까지만 해도 말이 사람을 잡아먹으려는 걸로 오해했다. 요란을 피우는 광경에 금세 오해였음을 깨닫고, 재미난 구경거리를 한 것이 즐거워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말이 도망가서 어쩌나?”


“놔두세요. 쟤 멀리 도망 못 가요. 그런데 누구세요?”


“주인과 말이 무척 친한 모양이군. 나로 말할 거 같으면 자네 생명의 은인인 셈이지. 하하핫!”


썰렁한 농담을 무시한 채 서지터는 윈드테일이 달아난 길로 안쓰럽게 터덜터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생명의 은인도 말에서 내려 나란히 걸으며 말을 걸었다.


“여긴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인데 반갑구먼.”


“지나가는 상단도 없고 그런 것 같네요.”


“그럴 수밖에. 이 길 인근에 몬스터들이 제법 많거든.”


서지터는 이 자를 힐긋 쳐다봤다. 누가 보더라도 철판 갑옷에 검을 찬 용병 차림이었다.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얼굴이 40대 후반이나 50대 초반쯤 되어 보였고, 체격은 용병답게 건장한 것이 카데스와 비슷해 보였다.


“이 길에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하지. 나는 베센트라고 하네. 자네는?”


“전 서지터라고 합니다. 야! 너 거기 딱 서! 슬금슬금 움직이지 말라고!”


“어디까지 가는지 물어봐도 되겠나?”


“라프스톤이요.”


“그럼 잘 됐군. 나는 라프스톤 앞에 있는 마을까지 가는데 말벗이나 하면서 같이 가는 건 어떤가? 가는 동안 노숙할 일도 생길 터인데 몬스터가 많은 곳에선 혼자 쉽지 않을 거야.”


그 말에 서지터는 솔깃했다. 두 명이 함께 노숙하면 번갈아 가며 불침번을 설 수 있으니 조금이나마 숙면할 여유가 생기니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사람을 잘 믿는 서지터여도 이런 곳에서 처음 만난 용병과 동행하기엔 조금 껄끄러웠다. 언제 어디서 갑자기 노상강도로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선뜻 그리하자고 대답하지 않자 서지터의 뚱한 표정을 보며 베센트가 눈치 빠르게 말을 덧붙였다.


“그래, 그럴 테지. 용병이라면 이런 곳에서 만난 낯선 자를 경계하는 게 당연해. 초짜 용병은 아닌 모양이야? 하하핫.”


“아저씨는 저한테 대뜸 동행하자고 말씀하시는 걸 보면 둘 중 하나겠네요. 절 경계하지 않거나, 초짜 용병이거나.”


“아하하! 이 친구 정말 재미나군. 한 방 먹었어. 보다시피 초짜 용병은 아닐세. 자기 말과 재미나게 노는 걸 보며 경계심이 풀렸다는 게 정확하겠군. 이리 유쾌한 친구라면 가는 길까지 동행해도 괜찮을 거라 판단이 섰지.”


“그럼 저는 뭘 믿고 같이 가나요?”


서지터의 예리한 질문에 베센트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그렇군. 내가 착하게 생긴 얼굴은 아니니까. 나는 용병 생활을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이야. 가족이 기다리고 있거든. 그전까지는 주로 브리아 왕국 수도인 와드인에서 용병으로 지내왔지. 상단 호위도 하고 몬스터 토벌도 하면서 말이지. 이래 봐도 그 바닥에선 두 동강이 베센트로 나름 이름을 날렸다고 자랑 조금 보태보겠네.”


“푸흡, 그 수식어는 뭔가요? 두 동강이요?”


“소싯적부터 몬스터를 그냥 베어버리거나 찔러 죽이는 건 뭔가 성에 안 차다 보니 두 동강이를 내서 죽이던 게 버릇이 되어 그런 수식어가 붙었지. 그렇다고 사람까지 그렇게 죽이진 않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게. 하하핫!”


인상은 험상궂었지만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경계심을 풀기엔 충분했다. 서지터는 친근감 넘치는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을 받을 즈음 거리를 계속 벌리고 유지 중이던 윈드테일이 급하게 서지터에게 달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너 그럴 줄 알았다. 몬스터라도 튀어나왔지?”


- 푸릉. 푸르릉.


윈드테일이 흥분해 투레질하자 서지터는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점심 먹은 지 얼마 안 돼서 동강 난 몬스터는 딱히 보고 싶지 않네요.”


아니나 다를까. 길 옆 수풀에서 고블린들이 하나둘씩 기어 나와 길을 막아버렸다. 어림잡아 열은 넘는 수였다.


“호오, 안 도와줘도 되겠나? 숫자가 생각보다 많은데.”


“솔직히 심심하지 않아서 좋긴 한데 지금 너무 피곤해서 그냥 귀찮네요. 이것들 빨리 치워버리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요.”


베센트는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여유로운 서지터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 푸훅! 푹!


숫자가 압도적으로 많은 고블린들은 기세등등하게 먼저 덤벼들었지만, 순식간에 절반 가까운 고블린이 쓰러졌다. 두 동강 난 고블린을 진심으로 보고 싶지 않았는지 전부 급소를 찔러 쓰러뜨렸다. 찌르기 공격은 딱히 선호하지 않긴 해도 지금은 하품까지 하며 여유롭게 고블린을 상대하는 중이다.


그 모습에 베센트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히야! 동작 하나하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빠르군.”


그러다 서지터가 바스타드 소드를 양손으로 자유자재로 쓰는 걸 보며 감탄사를 넘어 깜짝 놀라버렸다.


“어어! 바스타드 소드에다 양손을?”


그가 놀란 이유는 일반적이지 않은 스타일이라기보단 이미 과거에 들어 알고 있는 검술이었기 때문이었다. 놀랄 틈도 주지 않고 남은 고블린까지 처리하고 돌아오자 베센트가 동그래진 눈으로 말했다.


“자네 이름이 뭐라 했지?”


“서지터요.”


“그럼 혹시 다이먼 가문의 카이스터를 알고 있나?”


베센트의 입에서 뜻밖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반가운 마음에 서지터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우와? 아저씨! 카이스터를 알아요?”


“알다마다. 하하핫! 우연을 넘어서 이런 인연이 다 있군.”


사실 브리아 왕국에서 용병 생활을 했다면 모르려야 모를 수 없는 이름이다. 얼마 전까지 브리아 왕국 기사단의 부단장이었으며 지금은 단장 대리의 역할을 수행 중이고 머지않아 소드마스터의 칭호를 자신의 아버지에게 물려받을 인물이니 말이다.


서지터는 뒤늦게 자신의 지인이 워낙 유명 인사라는 걸 깨닫고 의심 어린 눈초리로 베센트를 노려보았다.


“브리아 왕국 사람이면 카이스터를 모를 수는 없겠죠. 워낙 유명하고 또라이 같은 성격이니까.”


“으하하하! 또라이라니! 정말 가까운 사이가 맞는 모양이야. 그와는 대여섯 차례 만난 적이 있네. 종종 큰 규모로 몬스터 토벌대를 구성할 때면 기사단과 용병 길드가 연합할 때가 많지. 그래서 그와 알고 있다네. 그때마다 자기가 아끼는 친동생 같은 녀석이 있는데 독특하게 바스타드 소드를 쓰고 양손을 자유자재로 검을 다룬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했었네. 그게 아마 자네인 모양이야? 하하핫!”


그의 입에서 카이스터와의 친분이 있다는 말이 흘러나오자 서지터는 곧장 경계심을 풀어 버렸다. 넉살 좋은 베센트의 성격도 한몫하긴 했어도 서로의 공통 지인이 있다는 것만큼 타인에 대한 경계심을 무너뜨리기 좋은 것도 없었다.


“좀 전에 하신 제의 대답해 드릴게요.”


“무얼 말인가?”


“그새 까먹으셨어요? 가는 길까지 동행하자고 얘기하신 거요.”


“아! 그랬지. 그럼 승낙하는 건가?”


“좋아요. 같이 가요.”


“아하핫! 카이스터의 이름이 이럴 때 유용하게 쓰일 줄 꿈에도 몰랐군. 다시 한번 반갑네. 고향 가는 길이 자네 덕분에 더없이 즐거울 거 같아.”


베센트가 악수를 청하자 서지터가 가볍게 그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둘의 동행은 서지터에겐 안락한 수면 시간을, 베센트에겐 즐거운 말벗이 생겨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이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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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3 23.11.27 17 1 12쪽
223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2 23.11.24 21 1 14쪽
222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1 23.11.23 17 1 13쪽
221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0 23.11.22 19 1 16쪽
220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9 23.11.21 18 1 16쪽
219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8 23.11.20 22 1 14쪽
218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7 23.11.17 24 1 12쪽
217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6 23.11.16 15 1 16쪽
216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5 23.11.15 15 1 14쪽
215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4 23.11.14 17 1 13쪽
214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 23.11.13 17 1 14쪽
213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 23.11.10 15 1 13쪽
212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 23.11.09 19 1 15쪽
211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11 23.11.08 23 1 15쪽
210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10 23.11.07 17 1 15쪽
209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9 23.11.06 17 1 15쪽
208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8 23.11.03 17 1 13쪽
207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7 23.11.02 19 2 14쪽
206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6 23.11.01 19 1 15쪽
205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5 23.10.31 16 1 12쪽
204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4 23.10.30 19 1 13쪽
203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3 23.10.27 17 1 14쪽
»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2 23.10.26 24 1 12쪽
201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1 23.10.25 24 1 13쪽
200 7화 커져가는 불씨 - 38 23.10.24 22 1 14쪽
199 7화 커져가는 불씨 - 37 23.10.23 19 1 15쪽
198 7화 커져가는 불씨 - 36 23.10.20 27 1 12쪽
197 7화 커져가는 불씨 - 35 23.10.19 25 1 15쪽
196 7화 커져가는 불씨 - 34 23.10.18 21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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