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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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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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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515,958

작성
23.10.3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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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5

DUMMY

- 끼이익.


“으어어어.”


여관 문을 열고 들어온 서지터는 마치 좀비처럼 어기적거리며 여관 주인이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 기스몬 남작의 저택을 나온 후 여관으로 오는 사이 긴장이 풀려 삽시간에 퀭하고 초췌한 모습이 되었다. 다크 서클은 턱 밑까지 내려가 그새 20년은 더 늙은 듯한 모습으로 다가가자 여관 주인도 움찔하며 경계했다.


“방, 방, 방 하나 줘요.”


“······소, 손님? 어떤 방을 원하시는지? 일행은 없으신 겁니까?”


“모르겠고 그냥 침대가 제일 푹신한 방으로 줘요.”


“빈방이 여러 개 있긴 합니다만 가격이나 방 크기도 다 제각각이라서.”


바 테이블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었지만 계속 말을 거는 여관 주인에게 짜증을 낼 기운조차 없었다.


“방금 말한 대로 그냥 침대가 제일 좋은 방이요. 그리고 욕실에 목욕통도 제대로 있는 방이요. 계산은 내일 갈 때 후불로 다 낼게요. 빨리, 빨리 키 줘요. 죽을 거 같으니까.”


피곤함에 절어 있는 손님을 보며 여관 주인은 키 하나를 서랍에서 꺼내 건네주었다.


“2층 4호실로 가시면 됩니다. 그런데 손님?”


“왜요오, 또오.”


“헤헤, 혹시 다른 건 필요치 않으십니까?”


“아아, 밖에 말 있으니까 대충 싸구려 건초 아무거나 먹여주세요. 저 새끼 좋은 먹이 줄 필요 없으니까. 그리고 말에 있는 짐은 그냥 방 앞에 놔둬 주시고.”


여관 주인이 원하던 답변이 아니었는지 피곤한 서지터를 다시 잡아 간사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흐흐, 상당히 피곤해 보이시는데 우리 여관에 있는 종업원 중에 마사지도 잘하는 아이가 하나 있답니다. 아마 피로가 싹 풀리실 겁니다. 거기다 싼값으로 밤에 좋은 시간을 즐길 수도 있죠. 혹시 생각 있으십니까?”


“뭐래. 됐어요.”


단칼에 거절한 게 아쉬운지 여관 주인이 2층으로 올라가려던 서지터의 팔을 잡았다. 누가 보아도 검을 등에 찬 용병의 모습이니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여관을 운영하며 지금껏 보아온 용병들은 이런 부분에 있어선 언제나 거절하는 법이 없었으니 말이다.


“에이, 손님. 조금 흠이 있긴 해도 이런 시골에선 못 볼 꽤 반반한 아이입니다.”


“됐다니까 계속 그러네. 그거 말고······. 어어, 뭐였지?”


피곤함에 머릿속 사고가 제대로 되지 않았는지 말도 똑바로 나오지 않았다. 초췌한 얼굴로 멍하니 바닥의 나무 무늬를 보다가 겨우 생각이 났는지 입을 열었다.


“맞다. 지금부터 저녁때까지 계속 잠만 잘 거니까 저녁 먹을 시간까지 절대 깨우지 마요. 또오······ 또오······.”


“네? 혹시 마사지?”


여관 주인의 말에 버럭 짜증을 냈다. 한창 건강한 나이에 성욕이 전혀 없는 건 아니나 지금은 그런 생각 따위 들지 않았다. 더군다나 이런 식의 성매매 같은 건 딱히 좋아하지도 않았다.


“아, 진짜! 그럴 기운 없다고! 생각났다. 저녁 먹을 때쯤 목욕통에 뜨거운 물이나 가득 받아줘요.”


여관 주인은 아쉬운 듯 시무룩해져 대답했다.


“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으어어어.”


다시 좀비가 된 서지터는 터벅터벅 2층으로 올라갔다. 여관 주인이 내어준 4호실 방은 이 여관에서 가장 비싸고 좋은 방이었다. 혼자 쓰기엔 방이 넓었고, 퀸사이즈의 침대도 그동안의 피로를 씻어줄 만큼 크고 푹신했다.


- 풀썩.


“이제 좀 살겠네.”


소드 벨트만 풀고 바로 침대에 쓰러지듯 뻗은 서지터는 눕자마자 바로 코를 골기 시작했다.


“드르렁. 크허어어어. 푸후우우.”


그대로 침대에 엎어진 채 기절해버린 서지터는 뒤척이지도 않고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잠이 들었다. 이대로라면 내일 아침까지도 계속 잘 수 있을 정도였지만 주변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깰 수밖에 없었다. 때마침 뱃속에서도 카데스의 배를 떠올리듯 우렁차게 소리가 들려왔다.


- 꾸르르륵!


“흐어어, 바압. 쩝쩝. 바압.”


잠꼬대처럼 중얼거리자 낯선 젊은 여자의 음성이 근처에서 들려왔다.


“아아, 지금 씻으실 물 목욕통에 받는 중인데······. 바로 식사 준비해 드릴까요?”


“쩝쩝. 네에.”


서지터의 대답에 잠시 후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고 싶었지만, 눈꺼풀이 무거워 도저히 뜰 수가 없었다. 어기적거리며 간신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서지터는 눈을 감은 채 허물 벗듯 옷을 하나씩 벗었다.


- 쿵!


“아, 씨이! 아파아.”


옷을 벗어 대충 바닥에 내던지며 욕실로 향하다 벽에 머리를 찧고 휘청거렸다. 그래도 목욕통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욕망에 아픔도 무시하고 욕실로 향했다.


- 찰랑. 철퍼덕.


사람 한 명 들어갈 정도의 둥그런 나무 목욕통에 몸을 담근 서지터의 입은 자동으로 미소가 번졌다.


“흐아아. 시원하다. 이거거든. 으히히.”


아직 목욕통에 뜨거운 물이 다 채워지진 않았지만, 피로를 녹여버리기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근 채 다시 본격적으로 잘 작정으로 고개를 젖히고 옆에 놔둔 수건으로 얼굴을 반쯤 덮었다.


- 크어어어.


아예 입까지 벌리고 또 잠이 들어버렸다.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20일 동안 강행군을 했으니 지금껏 살아있는 게 용할 지경이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방으로 들어와 부산한 소리를 낸 덕에 서지터는 가수면 상태로 살짝 잠에서 깼다. 아무래도 저녁 식사를 챙겨온 것 같았는지 달그락 소리가 들리자 일단 피로부터 풀고 천천히 배를 채울 생각이었다.


‘이따 먹지 뭐어.’


잠시 뒤, 서지터의 귀엔 낑낑거리며 무언가 옮기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문 앞에 짐을 놔두라는 게 떠올랐는지 여관 종업원이 방안에다 짐을 옮기는 걸로 추측되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불편한 발걸음 소리가 욕실 가까이 들리더니 물소리가 들려왔다.


- 찰랑.


자잘한 소리가 깊은 수면을 방해하긴 했지만, 현실인지 꿈인지 몽롱한 상태라 움직이기도 귀찮았다.


그리고 다시 아까와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목욕물이 많이 식었네요. 식사를 준비해 오느라 물도 다 채우지 못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느린 편이라 빨리 물을 더 가져오겠습니다.”


이걸로 됐다고 말하고 싶었으나 말할 기운조차 없었고, 어느새 걸음을 옮기는 소리가 서지터의 귀에 꽂혔다.


- 절뚝절뚝.


#

종업원이 몇 차례 뜨거운 물을 보충해 준 덕분에 따뜻한 물 온도가 유지되어 목욕통에서 꿀잠을 잘 수 있었다. 계속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가 숙면을 조금 방해하긴 했어도 물을 채워 넣을 땐 조심해가며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애를 쓰는 게 굳이 보지 않더라도 느껴졌다.


종업원의 세심한 배려가 고마웠는지 서지터는 팁이라도 두둑하게 주겠다고 마음먹고, 목욕을 끝마친 후 욕실 밖으로 나왔다. 개운해진 그가 이제야 살 것 같았는지 탄성을 내질렀다.


“후아아! 개운해. 이제 살겠다.”


젖은 머리에 수건을 덮어 말리며 나왔을 땐 바닥에 허물처럼 마구 옷을 내팽개쳐 놓은 흔적도 없이 깨끗했다. 침대 근처 탁자에 옷을 잘 개어놓은 게 눈에 띄었고 침대 끝에 다소곳이 앉아있는 여인이 보였다. 다만 수건으로 머리를 덮은 상태라 상대의 얼굴까진 보이지 않았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긴장한 채 앉아있는 모습만 보일 뿐이었다.


서지터는 큰 수건으로 하체만 가리고 나왔던 터라 거의 반나체 상태에서 순간 당황했다. 그제야 낮에 여관 주인이 했던 말이 떠올라 욕을 퍼부으며 중얼거렸다.


“미친 새끼, 진짜 말 더럽게 안 듣네. 확 죽여버릴라.”


다소곳이 앉아있던 여인은 갑자기 서지터의 입에서 거친 말이 쏟아져 나오자 흠칫 놀라버렸다. 사실 이미 그가 반나체로 욕실에서 나왔을 때부터 상체에 가득한 상처를 보고 잔뜩 겁에 질린 상태였다.


서지터는 등을 보이고 거울 쪽으로 걸어가 계속 머리를 말리면서 무뚝뚝하게 말을 걸었다.


“괜찮으니까 나가서 볼일 봐요.”


“네?”


“딱히 내가 요구한 거 아니니까 여기 있을 필요 없다고요.”


“저어······.”


“괜찮아요. 밥 먹고 그냥 혼자 쉬고 싶으니까.”


괜찮다는 말에 뭔가 난감한지 여인은 안절부절못하다 힘겹게 입을 뗐다.


“저 그냥 나가면 주인아저씨한테 혼나요.”


“한 셈 치고 내일 여관비 낼 때 같이 계산한다고 전해줘요. 그럼 된 거죠?”


여관 주인은 돈을 벌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다. 처음부터 여관 종업원인 이 여인은 이렇게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이런 일이 생길 때면 거절하며 말을 안 듣기 일쑤였다. 그래서 종종 거친 용병이 여관에 머무를 때마다 오늘처럼 막무가내로 방에 집어넣었고, 자기 뜻대로 순종적으로 만들기 위한 목적도 숨어있었다. 그 때문인지 이제는 제법 말을 잘 듣기 시작했다.


“에혀, 나 고자니까 그냥 나가도 된다고요.”


여관 주인의 뜻과는 다르게 귀찮은 듯 대충 아무 말이나 막 내뱉었다. 하지만 그 말에도 여인은 나가지 않고 계속 방에 머물러 있었다. 나갈지 말지 한참 고민하는 듯 보여 서지터는 반사된 거울을 통해 힐끗 그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살짝 숙이고 있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낯익은 생김새. 자신과 같은 긴 검은색 머리. 그토록 애타게 찾아 헤매던 이멜다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는 그 얼굴도 기억에서 잊힐 만큼 가물가물해져 판단하기조차 어려웠다.


긴가민가하던 찰나 여인은 결심이 섰는지 침대 끝에서 일어나 밖으로 걸어 나갔다.


- 절뚝절뚝.


한쪽 다리를 절며 걷는 걸 보면서 서지터는 확신에 찼다.


“저기! 자, 잠깐만요!”


후다닥 달려가 그녀의 손목을 잡아챘다. 서지터의 힘에 여인의 몸이 홱 돌려져 버리면서 똑똑히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이 말라보이긴 했어도 돌아가신 어머니와 닮아있는 얼굴. 그토록 찾아다녔던 이멜다가 분명했다.


“아아아. 드디어 찾았다.”


그녀의 얼굴을 보자 갑자기 눈물이 차올라 눈앞이 흐려졌다. 울음마저 터져 나올 것 같았고 목이 메어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서지터의 얼굴을 올려다본 이멜다 역시 놀란 표정으로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에게도 첫사랑이나 다름없는 서지터가 눈앞에 나타나자 믿을 수가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힘들었던 순간마다 기억 속에서 그녀에게 힘이 되어 준 사람이 바로 서지터였고, 이제 기억 속이 아닌 눈앞에서 멀쩡히 서 있었다.


- 스르륵.


그리고 그 순간. 급하게 뛰어가 이멜다를 잡다 보니 허리춤에 대충 감싸 묶었던 수건이 헐거워져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5년 만에 찾아다니던 이멜다와 재회의 순간, 서지터는 알몸으로 그녀와 마주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졌다.


“저, 저기 수건이······.”


이멜다의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고, 서지터 역시 그대로 굳은 채 얼음이 되어버렸다. 머리에선 일단 지금 이 상황부터 빨리 수습해야 한다고 계속 명령했지만, 몸은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 간신히 쥐어 짜낸 머리로 생각해 낸 말은 한동안 후회할 수밖에 없는 저주스러운 발언이었다.


“······고, 고, 고자 아니에요. 맞죠?”


그 말에 이멜다의 시선이 서서히 아래로 향했다. 당연히 처음부터 고자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나 자연스레 눈이 아래로 꽂혔고, 그제야 몸이 움직이기 시작한 서지터는 황급히 손으로 중요한 부위를 가렸다.


“여기 수건.”


이멜다가 수건을 주워 건네주자 서지터는 다시 수건을 덮고 욕실로 달아났다.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그녀와의 재회는 오베론 숲에서 겪었던 첫 만남보다 더 끔찍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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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3 23.11.27 17 1 12쪽
223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2 23.11.24 22 1 14쪽
222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1 23.11.23 18 1 13쪽
221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0 23.11.22 19 1 16쪽
220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9 23.11.21 18 1 16쪽
219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8 23.11.20 22 1 14쪽
218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7 23.11.17 24 1 12쪽
217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6 23.11.16 16 1 16쪽
216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5 23.11.15 17 1 14쪽
215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4 23.11.14 19 1 13쪽
214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3 23.11.13 18 1 14쪽
213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2 23.11.10 16 1 13쪽
212 9화 생사의 경계에 선 자들 - 1 23.11.09 21 1 15쪽
211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11 23.11.08 24 1 15쪽
210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10 23.11.07 17 1 15쪽
209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9 23.11.06 19 1 15쪽
208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8 23.11.03 19 1 13쪽
207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7 23.11.02 21 2 14쪽
206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6 23.11.01 20 1 15쪽
»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5 23.10.31 18 1 12쪽
204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4 23.10.30 19 1 13쪽
203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3 23.10.27 18 1 14쪽
202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2 23.10.26 25 1 12쪽
201 8화 슬프기도 기쁘기도 - 1 23.10.25 25 1 13쪽
200 7화 커져가는 불씨 - 38 23.10.24 24 1 14쪽
199 7화 커져가는 불씨 - 37 23.10.23 21 1 15쪽
198 7화 커져가는 불씨 - 36 23.10.20 27 1 12쪽
197 7화 커져가는 불씨 - 35 23.10.19 26 1 15쪽
196 7화 커져가는 불씨 - 34 23.10.18 22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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