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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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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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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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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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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화 각자의 시간 - 15

DUMMY

“칫! 내가 뭘 할 줄 알고 다짜고짜 하지 말래.”


“빌리, 윌리 녀석에게 복수할 생각 아니냐?”


단순히 자신을 보고 싶어 찾아온 것은 아니란 걸 금세 눈치챈 잭이었다. 속마음을 들킨 것이 짜증 났는지 레일라는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내 아빠 복수를 딸인 내가 하겠다는데 왜 하라 마라야?”


“산속에 이렇게 숨어 살고 있긴 해도 돌아가는 판이 어떤지 잘 알고 있어. 이제 두 형제 녀석을 처리하기엔 너무 위험해. 그만큼 녀석들을 건드릴 수도 없을 만큼 세력이 커진 거지. 난들 베일의 복수를 왜 하고 싶지 않겠니. 너만큼이나 놈들을 없애고 싶은 사람도 없을 거야. 죽은 베일도 원치 않을 거다.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소원이었던 아빠라는 말을 들었으니 죽어서도 여한이 없을 거야. 내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지.”


가슴 속에 담아두었던 옛 기억이 소환되니 레일라는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눈가에 살짝 맺힌 눈물을 닦으며 레일라가 심호흡을 하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후우우. 알아. 아빠였어도 아저씨처럼 날 말렸겠지. 그런데 나는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어. 복수? 맞아. 하지만 히크 거리의 도적들 대부분을 배신한 놈들을 가만둘 수는 없잖아. 우리만의 룰이 있어. 히크 거리에서 생긴 일은 히크 거리에서 해결한다는 룰 말이야. 그런데 제대로 뒤통수를 쳤지. 그들에게 당한 모든 도적 길드의 자존심을 짓밟은 건 도저히 용서가 안 돼. 그리고 전쟁터에서 에이처를 만났어.”


“에이처? 네 밑에 있던?”


“응. 내가 있던 용병단의 척후대로 들어왔었어. 멍청한 녀석이 우리가 떠난 후에 사람들을 모아서 빌리, 윌리 형제를 치러 갔던 모양이야. 수도에 머물고 있던 새도우문 소속의 놈들도, 다른 길드의 녀석들도 모두 죽었대. 그때 제프가 배신했던 거지.”


“그 일은 금시초문이군.”


“혼자 겨우 살아남아 도망친 에이처가 자살까지 시도했었대. 길드 간부도 아닌 녀석 따위가 그만큼 죄책감과 책임감을 느낀 거야. 에이처가 그 말을 했을 때 난 너무 부끄러워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어.”


“그랬군.”


“전쟁이 끝나면 꼭 나와 함께 돌아와 빚을 갚자고 맹세한 녀석이었는데······. 마지막 전투에서 죽었어. 시답잖은 실력을 갖춘 놈이었지만 마음가짐만큼은 나보다 더 길드를 생각하던 아이야. 아빠에 대한 복수심도 분명 있어. 그런데 그 녀석의 의지와 마음가짐을 모른 척하고 살아갈 자신은 없어.”


레일라는 잭을 설득하기 위해 속마음을 털어놓았다. 트리스미스 전투에서 죽은 에이처를 생각해서라도 모른 척 그들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는 것이 레일라의 진심이었다. 레일라의 진지한 마음가짐에 잭도 이해는 되었지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방법이 없어. 너무 커져 버렸어. 뒤를 든든히 봐주는 놈들도 있을 테고. 너랑 친구들이 아무리 실력이 늘었고, 살아남은 도적 길드 소속의 사람들을 다 끌어모아도 쉽지 않을 거다.”


“알아. 쉽지 않다는 거. 그런데 아저씨나 발트를 비롯해 다른 사람들에게 손 벌릴 생각은 없어. 이곳에 오기 전에 다른 녀석들도 몇 만났거든. 그 녀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말해뒀어. 내가 아저씨를 찾아온 이유는 앞으로 내가 빌리, 윌리 녀석을 박살 낼 계획을 알려주고 훗날 재건할 새도우문의 길드 마스터 자리를 맡아줬으면 해서 이렇게 찾아온 거야.”


잭에게 보이는 레일라의 눈빛은 확고해 보였다. 아무리 말린다 해도 안 되리라는 것 역시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계획?”


“원래는 워낙 비밀스러운 의뢰라 말하면 안 되지만 아저씨만 알고 있어. 발트 녀석에게도 말하지 말고.”


“비밀스러운 의뢰는 또 뭐냐.”


레일라는 차분하게 잭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지금 맡은 의뢰를 시작했는지, 상대가 누구인지, 그리고 빌리, 윌리 형제가 어떻게 그들과 연결되어있는지까지 말이다. 단순히 도적 길드 사이의 세력 다툼이 아니었다. 국가적인 규모의 일이었기에 듣는 내내 잭의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그 정도의 엄청난 일을 하는 중이라고?”


“응. 막막했는데 운이 좋았어. 그리고 나도 나지만 아저씨가 알던 내 친구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어. 필토 상점에서 점원으로 일하던 서지터란 녀석. 농담처럼 내뱉긴 했어도 걔가 정말 작정하면 혼자 쳐들어가서 다 쓸어버리고도 남을 실력이니까.”


“그, 그게 가능하냐?”


“그 녀석이라면 가능해. 상식적으로 대처해야 하니까 안 할 뿐이지. 다른 친구들도 그에 못지않게 강하고. 게다가 빌리, 윌리 그놈들만 뒤를 봐주는 세력이 있는 게 아니야. 우리에게 이 일을 의뢰한 사람. 최종적으로 가장 뒤에 있는 그 사람이 누구라 생각해?”


“네 말대로라면 지금 현 국왕이란 뜻이냐?”


“맞아. 국왕이 나이트 플라워의 주인과 아그나달린 신전의 대주교에게 일임한 의뢰야. 아저씨가 믿든 안 믿든 벌써 우리는 큰 사건을 두 가지나 해결했어. 덕분에 그들에게 엄청난 신임을 받는 상태고.”


“다른 세상 이야기 같군.”


“이미 처음 의뢰를 받을 때 약속도 했어. 빌리, 윌리 형제가 이스미르 후작 세력의 밑에 있으니 조만간 그놈들을 상대할 날이 올 거라고. 위험 요소도 분명 많은 것도 사실이야. 정체불명의 마법사나 가면을 쓴 실력자들을 무시할 순 없겠지. 그래도 난 내 친구들을 믿어.”


레일라의 설득에 잭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자신이라면 엄두도 못 낼 일을 하는 레일라가 대견하기도 했고, 불가능이라 생각되는 빌리, 윌리의 처리 역시 꿈만은 아닐 것만 같았다.


“그럼 내가 정말 도울 일은 없는 거냐?”


“말했잖아. 당분간은 그냥 여기서 산짐승처럼 지내. 아저씨도 여기 생활이 편하고 좋다며. 그래도 길드 재건할 땐 아저씨가 주축이 되어줘야 해. 분명 내가 나서면 불만을 드러낼 놈들이 많을 거야. 아직 난 나이도 어리고 아빠의 진짜 핏줄도 아니니까 명분이 약해.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저씨가 적격이란 말이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엄두도 안 나는 일이라 과연 그런 날이 올지 의문인 것도 사실이야. 그래도 네 의지가 워낙 강하니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겠지.”


그제야 레일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전적으로 그녀에게 새도우문의 운명을 맡긴다는 뜻이었으니까.


“정말이지?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기다?”


“베일뿐만 아니라 나 역시도 널 딸처럼 생각한다. 그 마음은 널 처음 만났던 날부터 지금까지도 유효하지. 그런데도 네가 친구들을 믿고, 에이처의 뜻을 이어간다는 말에 맡겨도 될 것 같아. 그래도 직접 내 두 눈으로 네 실력을 보고 싶다.”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에 레일라는 인상을 쓰며 말했다.


“실력? 아까 봤잖아? 옛날보다 더 빠르고 날렵해졌어. 근접전 또한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고. 나랑 다시 붙고 싶어? 그럼 아저씨 1주일은 앓아누울 텐데?”


“하하핫! 내가 그 정도 눈치도 없을까. 나랑 붙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럼?”


“마침 네가 왔으니 부탁 좀 해야겠다.”


“뭔 소리야? 부탁이라니.”


“난 이제 늙어서 말이야. 조금만 움직여도 삭신이 쑤셔.”


“그건 아까 맞붙었을 때 느꼈어. 예전만 못하던데?”


“하하하! 너도 나처럼 살아봐. 이렇게 되지. 레일라 네게 부탁하고 싶은 건 여름부터 내가 심어놓은 농작물이나 약초를 훔쳐 가는 놈들이 있어. 그놈들을 찾아서 처리 좀 해줬으면 한다.”


“에? 그 정도는 아저씨도 할 수 있는 일 아냐? 그래봐야 고작 산짐승들일 거 아냐.”


“산짐승이 아냐.”


잭은 단호하게 산짐승이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농작물을 훔쳐 가는 것이 산짐승이 아니라면 혹시 산적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이 산에 산적이라도 있다는 말이야?”


“산적도 아니야. 몬스터가 있어.”


“푸흡! 몬스터?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몬스터란 말에 레일라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이곳은 어디까지나 몬스터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마이론홀드 왕국이니까.


“따라 나와봐.”


잭은 뒷짐을 지고 오두막을 나섰다. 슬슬 어둑어둑해지던 터라 발걸음을 재촉한 그는 이미 수확을 끝낸 밭으로 레일라를 안내했다.


“겨울이 돼서 대부분의 농작물은 내가 다 수확했지. 그런데 수확할 즈음 도둑놈들이 기승을 부리더라고.”


“산짐승이 아니라는 근거라도 있어?”


“저기 발자국을 봐.”


잭이 턱을 내밀어 밭의 한쪽 구석을 가리켰다. 그곳으로 조심스럽게 다가간 레일라는 바닥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잭의 말처럼 진짜 밭의 일부 구역에 어지러이 몬스터의 발자국이 있었다. 척후대에서의 경험이 많은 레일라는 단박에 어떤 발자국인지 유추할 수 있었다.


“진짜네? 발자국 크기나 모양으로 봐서는 유사인간 형태의 몬스터 같아. 고블린이나 오크? 파인 깊이로 봐서는 홉고블린 정도의 덩치는 아닌 듯싶고.”


“제법이네. 나야 몬스터를 맞닥뜨린 경험이 많지 않아 대략 그런 정도의 몬스터일 거라 추측만 했는데 너는 보자마자 바로 알아보는군.”


“내가 척후대 생활하면서 수도 없이 몬스터를 감시했는데 이 정도도 모르면 체면이 안 서지. 숫자는 대략 예닐곱 마리 정도겠네? 많으면 열 마리 정도 될 것 같고.”


발자국을 꼼꼼하게 살핀 레일라는 의아했다. 많은 수는 아니더라도 마이론홀드 왕국에 몬스터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문제는 그 발자국이 아니다. 뒤쪽에 다른 발자국을 봐.”


“응? 또 다른 발자국이 남아있다고?”


레일라는 고개를 돌렸다. 밭에서 멀찌감치 떨어진 흙바닥에 꽤 큰 발자국이 깊이 파여 있었다. 발자국의 크기를 확인하자마자 레일라는 등골이 오싹했다.


“이 발자국은 대체······!”


“전에 먹을 걸 사러 산에서 내려간 적이 있어. 그때 생긴 발자국이야. 만약 그날 내가 산에서 안 내려갔더라면 저 발자국 주인 놈에게 당했을 수도 있지. 레일라 너라면 어떤 몬스터의 발자국인지 알아볼 수 있을 거라 생각돼서 보여주는 거다.”


다행히 발자국의 형태는 온전했다. 한참 동안 발자국을 살펴보던 레일라가 잭에게 질문을 던졌다.


“혹시 이 발자국 처음 발견했을 때 주변에 털 같은 거 떨어진 건 없었어?”


“전혀.”


“여기 지내면서 이상한 걸 느낀 적은?”


“이상한 점이라······. 그러고 보니 최근 산짐승들을 사냥하기가 쉽지 않긴 했어. 단순히 겨울이라 찾기 힘든 거로 생각했는데 겨울이 오기 전부터 뜸해진 것 같긴 하구나. 어떤 놈의 발자국인지 알아볼 수 있는 거냐?”


“으응. 대강은 알 것 같아.”


“그래?”


잭은 정답을 빨리 듣고 싶었다. 하지만 레일라는 선뜻 발자국의 주인이 어떤 몬스터인지 대답하지 못했다. 앞서 본 작은 발자국이야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고작 소형 유사인간 몬스터들이었고 숫자도 그리 많지 않았으니까. 문제는 단 한 마리로 예상되는 커다란 발자국이었다. 한때 상대해본 적이 있는 몬스터의 발자국 같았다.


“뜸 들이지 말고 얼른 말해봐. 심각한 상황인 거냐?”


“트롤 발자국 같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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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5화 각자의 시간 - 30 23.07.07 39 2 13쪽
126 5화 각자의 시간 - 29 23.07.06 39 2 12쪽
125 5화 각자의 시간 - 28 23.07.05 40 2 12쪽
124 5화 각자의 시간 - 27 23.07.04 30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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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5화 각자의 시간 - 23 23.06.28 3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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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5화 각자의 시간 - 21 23.06.26 34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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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5화 각자의 시간 - 19 23.06.22 33 2 13쪽
115 5화 각자의 시간 - 18 23.06.21 32 2 14쪽
114 5화 각자의 시간 - 17 23.06.20 36 2 13쪽
113 5화 각자의 시간 - 16 23.06.19 34 2 13쪽
» 5화 각자의 시간 - 15 23.06.16 39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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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5화 각자의 시간 - 10 23.06.09 31 2 14쪽
106 5화 각자의 시간 - 9 23.06.08 3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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