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연재수 :
251 회
조회수 :
9,677
추천수 :
452
글자수 :
1,515,958

작성
23.05.25 08:00
조회
35
추천
2
글자
12쪽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2

DUMMY

“거, 거짓말. 거짓말하지 마. 응?”


“미안해! 내가 어떻게 해서든 너희에게 진 빚은 갚도록 할게!”


벨라가 시뻘겋게 얼굴이 달아오른 레일라의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을 꿇었다. 자신들의 선장이 무릎을 꿇으니 해적단 일원들 역시 서로의 눈치를 보다 줄지어 무릎을 꿇었다.


“아니야. 아닐 거야. 어마어마하게 보물이 숨겨져 있다며? 가져왔어야지. 하나도 없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어디다 숨겨놓고 없다고 발뺌하는 거지?”


분노한 레일라를 차마 올려다보지 못하고 벨라는 오들오들 떨며 간신히 입을 뗐다.


“그, 그게 알아보니까 러프 해적단과 합치면서 보물까지도 다 팔아치웠나 봐. 모리에튼이 모아둔 보물에까지 손을 댈 줄 꿈에도 몰랐어.”


“그러면 여기서 죽자. 이 섬을 너희 해적단 무덤으로 만들어줄게.”


- 스릉.


레일라가 초점 없는 눈으로 단검을 뽑아 들자 피바람이 불 것으로 생각한 친구들이 말리기 시작했다.


“안 돼. 레일라. 진정해.”


“레일라님! 저는 여기서 죄없이 목숨을 잃은 분들을 너무나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런데 또 피를 보고 싶지는 않습니다. 제발 화를 좀 가라앉히시고 심호흡! 심호흡을 좀 하시지 말입니다.”


“아냐. 백해무익한 해적 놈들이잖아. 그냥 죽이는 게 낫겠어.”


레일라의 말은 진심이었다. 말리는 친구들 사이에서 서지터가 불쑥 끼어들었다.


“야! 일단 섬에서 빠져나간 다음에 죽이든지 해라. 여기서 쟤들 죽이면 우리 어떻게 돌아가.”


한스가 서지터를 노려보았다.


“너는······! 말리지는 못할망정!”


일촉즉발의 상황. 현 사태의 원인은 보물을 가져오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루커 해적단 때문이었다. 불과 1시간 전. 정확히 약속 날짜에 맞춰 벨라는 열흘 뒤에 마르테아 섬으로 돌아왔다.


여섯은 섬에서 일어난 일들은 대부분 정리한 상황이었고, 다들 벨라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심 서지터나 파시비엔은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다. 신뢰를 저버리고 되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벨라는 약속을 잊지 않고 다시 마르테아 섬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 결국 문제였다. 사실 벨라는 산호섬에서 러프 해적단을 처치한 후 이 내용을 알고 있었다. 레일라가 보물에 관해 물어볼 때마다 말을 돌리느라 애를 먹었고, 직접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여섯을 마르테아 섬에 내려준 후 곧장 보물이 숨겨둔 장소로 갔지만 허탕이었다.


사건의 전말은 해적단을 합치는 과정에서 모리에튼이 보물을 모아둔 걸 건드렸고, 몇 년 사이에 흥청망청 다 써버렸다. 며칠 동안 어찌할지 고민하던 벨라는 최소한의 믿음을 저버리지 않기 위해 다시 마르테아 섬으로 돌아왔다. 나름 협상가다운 기질의 그녀는 이점을 어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너희를 다시 데리러 이렇게 왔잖아. 우리가 돌아오지 않았다면 어쩔 뻔했어. 막상 섬에 입도해서 보니까 너희를 육지로 데려다줄 큰 배도 마땅히 없잖아. 우리가 아니었으면 섬 밖으로 나가지도 못할 거야.”


“터진 주둥이라고 함부로 지껄이지 말아 줄래? 내 보물이나 가져오라고! 안 가져오면 지금 그냥 죽인다?”


벨라는 레일라의 외침에 등골이 오싹했다. 그래도 물러설 순 없었다.


“너, 너희들도 말해 봐. 레일라가 이런 반응이 나올 줄 알고도 내가 이렇게 직접 데리러 왔잖아. 행여 내가 보물을 숨기거나 빼돌렸으면 이렇게 돌아왔겠어? 보물이 다 사라진 건 사실이고 나는 너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돌아왔잖아.”


벨라의 말에 어느 정도 설득이 된 귀 얇은 한스가 레일라를 진정시키려 애를 썼다.


“그래, 레일라. 어쩌다 보니 부수적으로 해적단의 보물을 받기로 했지만, 우리 진짜 목적은 그게 아니었잖아. 벨라가 아니었으면 우리 이 섬에도 못 들어왔을 거고 나가기도 쉽지 않았을 거야. 이렇게 돌아와 준 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운 일이잖아.”


한스의 설득에 카데스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는 딱히 보물에 크게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파시비엔처럼 이 섬에서 더는 피를 흘리는 걸 보고 싶지 않았는지 레일라에게 한마디 했다.


“보물도 중요하지만, 그 보물로 훗날 새도우문 재건을 위해 쓸 생각이잖아. 어차피 우리 하는 일로 길드 재건은 보장받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벨라도 충분히 도움을 줬다고 생각하자.”


한스와 카데스가 말을 꺼내자 조금은 수그러들었는지 죽일 듯이 벨라를 노려보던 레일라의 눈빛이 조금은 차분해져 갔다. 그리고 결정타를 날리기 위해 서지터가 아리엘의 옆구리를 쿡 찌르자 눈치를 챈 아리엘이 레일라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레일라아아! 우리 빨리 돌아가자. 으응? 나 괜찮아지긴 했지만, 아직 이 섬에 있는 게 조금 힘들어.”


최후의 수단인 아리엘이 나서자 레일라는 단검을 검집에 다시 꽂아 넣었다.


“후우우. 좋아. 대신 너희들 똑똑히 잘 들어!”


이때다 싶어 벨라가 냉큼 대답했다.


“응! 말해!”


“이 섬에 끔찍하고 잔인한 일들이 벌어졌어. 사람들도 대부분 다 죽어서 몇백 명밖에 살아남지 못했고.”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건데?”


“그건 차차 알려줄 테니 너희가 이 섬을 좀 맡아서 사람들을 지켜줘. 어차피 우린 수도로 가서 제대로 된 절차를 밟아 왕국 사람들을 파견해서 마저 수습하게 할 거야. 그때까지만이라도 좋고, 섬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해적 깃발 떼고 사람들을 도와. 그럼 나한테 진 빚은 없는 셈 쳐줄게. 백해무익한 해적 놈들이 아니란 걸 너희 스스로 증명해.”


다른 일행들까지 놀라게 만드는 뜻밖의 제안이었다. 어쩔 수 없이 설득하긴 했지만 레일라가 이런 생각까지 할 줄은 다들 꿈에도 몰랐다.


“저, 정말이야? 그렇게만 하면 돼?”


“그래, 나한테 진 빚은 성심성의껏 이 섬 주민들한테 갚아.”


“와아아. 끝까지 나한테 진 빚이래. 우리 입을 삐뚤어졌어도 말은 똑바로 하자. 그게 왜 너한테만 진 빚이냐? 너 혼자 러프 해적단 박살 냈냐? 이게 듣자 듣자 하니까 어이가 없네? 고생은 똑같이 다 했는데 생색은 혼자 내시겠다?”


“뭐?”


서지터의 예리한 지적. 레일라를 도발하기에는 충분한 발언이었다. 서둘러 카데스와 파시비엔이 서지터의 입을 막았기에 망정이지 그냥 뒀더라면 밤이 될 때까지 언쟁이 끊이지 않을 뻔했다.


#

여섯의 일행을 비롯해 섬을 대표하는 주민 몇 명과 벨라와 루카스까지 한곳에 모여 대화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이스미르 후작이 있는 라투일과 인접한 지역이다 보니 여섯이 떠난 후에도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랬기에 믿음직스럽지는 못하지만 루커 해적단에게 생존자들을 돌보게 하고 떠나야 조금이나마 안심이 될 것만 같았다.


벨라와 루카스는 섬에서 생긴 일들에 관해 설명을 다 듣고 질색한 얼굴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들도 해적이기에 무고한 생명을 앗아가는 짓도 했었고, 나쁜 짓은 둘째가면 서러울 정도로 많이 저질러왔다. 하지만 수천이나 되는 사람들을 죽여가며 좀비로 만드는 짓 따위는 두 남매의 상식으로도 도저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정말 끔찍한 자들이네.”


“그러게, 누나. 해적보다 더한 것들도 있구나.”


“그러니까 아까도 말했다시피 너희가 여기에 머무르면서 사람들을 도와.”


“사실 딱히 해적단의 거처를 정하기도 애매한 상황이어서 우린 나쁠 건 없는데 괜찮겠어? 우리 해적단이야 원래 마르테아 섬 주민들에게 적대적으로 대하진 않았지만 어쨌거나 우린 해적은 해적이야. 이들이 우리 도움을 받고 싶어 할까?”


벨라의 말에 레일라는 팔짱을 끼고 앉아 섬 주민들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어쩔래요? 우리는 어쨌든 여길 떠나야 하는 상황이고 당신들을 위해서 이들을 남겨둘 거예요. 물론 이것들이 위해를 가하거나 문제를 일으킨다면 우리가 가만있지 않을 거고.”


“상관없을 거 같습니다. 루커 해적단은 잘 알고 있습니다. 옛날부터 가끔 섬에 들어오긴 했지만, 식수나 음식들을 사 갔을 뿐 약탈을 하거나 섬에 피해를 준 적은 없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럼 됐네.”


섬 주민들의 동의에 레일라는 안심이 되었다. 적어도 루커 해적단을 남겨두니 조금이나마 편한 마음으로 수도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말이야.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 해적단 규모도 간신히 유지될 정도로 숫자가 적어. 혹시라도 또 그놈들이 오면 어떡해?”


벨라의 걱정거리였다. 겨울 동안 지낼 거처도 딱히 없었기에 마르테아 섬에서 지내며 섬 주민들을 도울 수는 있지만 적이 다시 돌아온다면 감당하기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녀의 말에 서지터가 대답해주었다.


“그건 크게 걱정 안 해도 될 거야. 워낙 찜찜해서 너희를 남겨두는 거긴 하지만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걸? 저쪽은 꼬리가 잡히면 안 되는 처지야. 더군다나 한두 명도 아니고 천 명을 넘게 죽인 사건이야. 오히려 마르테아 섬 근처로 오는 것 자체가 저들한테는 치명적일 수도 있어. 그러니 증거를 싹 다 없애고 바로 튄 거지.”


“그럼 다행이고······.”


“그래도 섬 주민들이 스스로 자신을 지킬 수 있게 훈련 같은 걸 해도 나쁠 건 없겠지. 생업이나 마찬가지인 고깃배도 대부분 불태워버렸다니까 같이 배도 좀 만들고, 훈련도 좀 시키고. 되도록 이른 시일 안으로 왕국 사람들이 올 수 있게 손 써볼 테니까 그때까지 버티고 있어.”


“그럼 너희는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인 거야? 무슨 일을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 마르테아 섬에 들어온 목적이 분명 있었을 거 아냐?”


눈치 없이 루카스가 묻자 옆에 앉아있던 벨라가 동생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 퍽!


“아야! 누나, 아프다고.”


“시끄러워. 괜히 엮일 생각하지 말자. 너도 봐서 알겠지만, 우리랑 노는 물이 달라.”


“궁금할 수도 있지······.”


“우리가 알 거 없어. 그럼 너희는 언제 떠날 생각인 거야?”


“맘 같아서는 바로 떠나고 싶지만, 아직 아프신 분들이 꽤 계십니다. 사나흘 정도 더 치료해 드리고 떠나야 할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육지로 가게 되면 가장 가까운 신전에 들러 성직자 몇 분이 오실 수 있게 얘기해 놓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흐흑.”


파시비엔의 마음 씀씀이에 섬 주민 하나가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렸다. 만약 여섯이 없었더라면 섬에서 벌어진 끔찍한 일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고, 이렇게 목숨 부지하고 살아있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루커 해적단과 마르테아 섬 주민들의 중간에서 중재 아닌 중재를 하는 상황이 잘 해결되자 레일라는 팔짱 낀 팔을 풀고 기지개를 켰다.


“으그극! 그럼 대충 정리가 된 건가? 하아아, 보물은 두고두고 생각이 나겠지만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주겠어.”


“헤헤, 레일라가 이렇게 포기하니까 엄청 멋지다. 나 완전 감동이야!”


“오구구, 우리 아리엘 그랬어? 뭐랄까? 이번에 난 딱히 고생한 게 없는 데다가 빚 받는 거지만 어차피 보상금은 두 사람 몫을 받잖아.”


“죽을 고생을 해가며 싸우면 뭐 하냐. 내 손에 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인생 참······. 그냥 갑옷 가져갈래? 어차피 뚫려서 구멍이 제대로 났는데.”


“구멍 뚫린 중고는 안 받아. 직접 꼬매 써.”


“너도 봤잖아. 너무 튼튼해서 바늘도 안 들어간다고. 하아아.”


케리칸에 의해 구멍이 나버린 와이번 가죽 갑옷을 고쳐보기 위해 애를 써봤지만 소용없었다. 어지간한 무기로도 뚫리지 않는 갑옷이 고작 바늘로 뚫릴 리 만무했다.


“돌아가면 돈 좀 주라. 드워프한테 갑옷 수리 맡기게.”


“빚만 더 늘어난다는 것만 알아둬.”


“하아, 그냥 이멜다나 찾으러 갈 걸 그랬나?”


떠나지 않고 제대로 적들을 상대하겠다는 발언을 뒤늦게 후회하는 서지터였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5 5화 각자의 시간 - 8 23.06.07 36 2 12쪽
104 5화 각자의 시간 - 7 23.06.06 44 2 11쪽
103 5화 각자의 시간 - 6 23.06.05 37 2 12쪽
102 5화 각자의 시간 - 5 23.06.02 36 2 14쪽
101 5화 각자의 시간 - 4 23.06.01 35 2 15쪽
100 5화 각자의 시간 - 3 23.05.31 31 2 12쪽
99 5화 각자의 시간 - 2 23.05.30 34 2 12쪽
98 5화 각자의 시간 - 1 23.05.29 31 2 12쪽
9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3 23.05.26 35 2 14쪽
»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2 23.05.25 36 2 12쪽
9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1 23.05.24 34 2 12쪽
9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0 23.05.23 33 2 12쪽
93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9 23.05.22 29 2 13쪽
9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8 23.05.19 35 2 12쪽
91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7 23.05.18 36 2 14쪽
90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6 23.05.17 35 2 16쪽
8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5 23.05.16 37 2 12쪽
88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4 23.05.15 43 2 12쪽
8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3 23.05.12 33 2 13쪽
8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2 23.05.11 41 2 12쪽
8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1 23.05.10 35 2 12쪽
8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0 23.05.09 34 2 15쪽
83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9 23.05.08 43 2 13쪽
8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8 23.05.05 33 2 14쪽
81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7 23.05.04 36 2 14쪽
80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6 23.05.03 37 2 13쪽
7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5 23.05.02 46 2 13쪽
78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4 23.05.01 42 2 16쪽
7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3 23.04.28 41 2 14쪽
76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 23.04.27 39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