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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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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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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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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
글자수 :
1,515,958

작성
23.05.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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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2

DUMMY

넷이 도착한 마을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어두컴컴한 상황에서 마을 곳곳에 켜진 횃불들이 타들어만 갔고, 좀비들의 움직임 역시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였다.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라빈을 포함한 네 사람은 마을 안쪽 깊숙한 곳까지 별다른 전투 없이 무사히 올 수 있었다.


좀비나 경비병들과의 전투가 없었다는 점이 그나마 다행인 일이었지만 주술사가 머물고 있다는 숙소가 과연 저 집이 맞는지 세 사람 모두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층 지붕에서 몸을 바짝 엎드린 일행은 조심스럽게 주변을 살폈다. 특이할 것이 전혀 없는 모습. 마을에 도착해 복면을 끌어 올려 얼굴을 가린 한스가 나지막이 라빈에게 물었다.


“정말 저 집이 맞는 거야?”


“네, 주술사님 집이 저기 맞아요.”


“그런데 우리 예상과는 다르게 경비병 숫자가 둘밖에 없네.”


한스의 의구심에 카데스가 동의하며 짧게 말했다.


“그러게.”


“분명 너랑 레일라가 죽인 자들 입에서 주술사를 찾으러 왔다고 한 거 맞지?”


“그렇다니까?”


“그럼 또 도망가지 못하게 경비병 숫자가 많아야 한다며. 아까 저녁에 네가 그랬잖아.”


“어디까지나 그건 예상일 뿐이고. 도망 못 가게 발목이라도 부러뜨렸나 보지.”


섬사람들의 방식에 관해 서지터가 주술사마저 그런 식으로 당했을 거라는 투로 건성으로 대답했다. 다들 주술사가 현재 마을에 없으리라고는 꿈에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확실히 하고 넘어가야 해. 정말 저 집이 주술사가 있는 집이 맞는 거지?”


한스가 재차 라빈을 바라보며 확인을 하자 라빈은 그냥 고개만 끄덕여 긍정의 표시를 했다.


“맞겠지. 오히려 경비병 숫자가 적으니 우리한테는 고마운 일 아냐? 빨리 저놈들 슬립 주문으로 재워버리고 주술사나 납치해 가자.”


여기서 더 지체할 수는 없었다. 서지터의 말처럼 경비병 숫자가 적으니 다행이었다. 주위의 좀비들도 많지 않았고 움직임도 거의 없다시피 하니 빠르게 주술사만 납치해 돌아가야만 했다.


일이 너무 손쉽게 풀리는 거 같아 한스는 마음 한편이 께름칙하긴 했지만 다른 선택지는 없었다. 주술사를 납치해 좀비들을 무력화시키고 이스미르 후작 측의 적들의 정보 역시 알아내야만 했다.


“그래, 알았어. 빨리 처리한 뒤에 여길 뜨자.”


한스는 납작 엎드린 채 경비를 서고 있는 병사들과 자신이 있는 지붕과의 거리를 가늠해 보았다. 집들 사이의 공간이 그나마 좁아 그들과의 거리는 그다지 멀지 않았다. 슬립 주문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라 판단이 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가 조금 앞으로 갈게. 떨어지지 않게 다리만 좀 잡아줘.”


한스는 낮은 포복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경비병들과의 거리를 좁히려 했다. 하지만 소심한 한스의 움직임은 앞으로 아무리 기어가봤자 눈에 띄지도 않을 만큼 아주 조금 움직였을 뿐이었다.


“너 이씨! 장난하냐?”


- 푹!


어이가 없는 서지터가 무방비로 놓인 한스의 엉덩이를 향해 똥침을 날렸다. 하마터면 한스는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간신히 비명을 참아내며 고개를 돌려 서지터를 노려보았다.


“히히.”


한스는 입만 벙긋거리며 히죽거리는 서지터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라빈은 이런 진지하고 심각한 상황에서 장난을 치는 서지터의 모습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 전혀 긴장감이라고는 없는 모습이었으니까 말이다.


자칫하면 경비병들에게 들킬 위기였음을 감지했는지 카데스가 서지터의 발을 툭 차며 더는 장난치지 못 하게 말렸다. 카데스 덕에 상황이 정리되자 한스는 엉덩이를 문지르고 천천히 슬립 주문을 외웠다.


“꿈과 밤을 관장하는 자들이여, 내 앞에 있는 자들에게 편안한 잠을······. 슬립(Sleep)!”


- 털썩.


기둥에 각각 기댄 채 졸음을 이겨내며 경비를 서고 있던 두 병사가 다리가 풀리듯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됐어. 내려가자.”


한스는 두 명의 경비병이 잠이 든 걸 확인한 후 낑낑거리며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갔고, 서지터와 카데스는 가볍게 바닥으로 뛰어내렸다. 라빈 역시 체격은 작았지만 간단하게 바닥에 착지했다.


“일단 또 경비병이 없는지 옆쪽도 살펴보고 올게.”


서지터가 방금 장난치던 행동과는 전혀 다르게 침착함을 보이며 꼼꼼히 집 주변을 둘러보고 돌아왔다. 그 사이 한스와 카데스, 라빈은 주술사의 집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내부를 훑어보았다.


“야! 경비병 더 없어. 빨리 움직이자.”


주변에 다른 경비병이 없다는 걸 확인하자 조용히 네 사람은 집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집안 내부였던지라 어둠에 시력이 적응하기까지 잠깐의 시간이 걸렸다. 이미 한 번 큰 실수를 했기에 초나 램프 같은 걸 켠다는 생각은 서지터를 비롯해 아무도 하지 않았다. 최대한 어둠 속에서 주술사만 조용히 납치해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어디로 가야 하냐?”


발소리마저 죽이며 한 걸음 뗀 서지터가 고개를 돌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라빈에게 말했다. 집 내부는 생각보다 복잡했다. 2층 구조의 건물이었고 1층은 여러 개의 방문이 존재했다.


“복도 따라 가장 안쪽에 있는 방일 거예요.”


- 스륵.


선두에 선 서지터는 허리춤에 있는 단검을 조용히 뽑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라빈의 말처럼 조용히 복도를 따라 걸어가자 복도 끝 오른쪽에 문이 하나 보였다.


- 끼익.


최대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용히 손잡이를 잡아 돌린 서지터는 문소리가 작게 나자 잠시 멈추고 심호흡을 한 후 다시 몸만 지나갈 수 있게 열었다.


- 푸후. 푸후.


방 안의 내부에선 작은 숨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집 안의 어둠에 적응한 넷에겐 이불을 덮고 깊은 잠에 빠져든 늙은 사내 하나를 발견했다. 천하 태평하게 잠을 자는 사내를 보자 라빈을 제외한 세 사람이 그를 빙 둘러싸고 어이없다는 듯 반응을 보였다.


서지터가 한숨을 내쉬며 먼저 말을 꺼냈다.


“어휴, 마을 사람들을 싹 다 좀비로 만들어 놓은 놈이 세상 팔자 좋게 자고 있네. 그냥 확 목을 따 버려?”


“진정해. 나도 당장에라도 죽이고 싶지만, 살려서 데려가야 해.”


“카데스 말이 맞아. 주술사의 확실한 진술만 얻어낸다면 이스미르 후작이 여기 마르테아 섬에 저지른 책임을 물을 수 있어.”


서지터는 주술사 앞에 쪼그려 앉아 단검을 그의 목에 가져다 대고 뺨을 세게 한 대 갈겼다.


- 짜악!


“야! 일어나. 소리치면 바로 뒤지는 거다?”


“크허업!”


자다가 봉변을 당한 주술사는 눈을 뜨며 벌떡 일어나 자리에 앉았다. 그가 일어나자마자 눈에 들어온 건 검은 복면을 한 사내 셋과 낯이 익은 체구의 소년이었다.


주술사는 목에 갖다 댄 차가운 단검의 촉감에 공포심을 느꼈다. 혹여라도 소리를 지른다면 자신의 목이 날아간다는 건 당연했으니 함부로 소리도 내지 못했다. 오줌을 지릴 거 같은 기분이었지만 주술사는 더듬거리며 간신히 입을 뗐다.


“누, 누구······!”


“누구라고 물어보면 아! 네, 저는 누구고요. 얘는 누구고요. 이렇게 대답해줘야 하냐?”


“사, 살려······, 주십쇼.”


“닥치시고 묻는 말에나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 네가 이 섬 주술사 맞냐?”


서지터의 질문에 주술사는 어둠 속에 있는 작은 체구의 라빈을 바라보며 고개를 두 번 끄덕였다.


“그럼 네가 만들어 놓은 좀비들 통제할 수 있지?”


주술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어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뭐? 죽을래? 어디서 약을 팔아. 네가 좀비로 만들었으니 도로 죽이든 무력화시키든 할 수 있을 거 아냐.”


“그, 그게······, 저는 그럴 능력이······.”


“하아, 또 고문이라도 해야 하나. 이걸 확 죽일 수도 없고 진짜.”


서지터는 주먹을 불끈 쥐어 주술사를 위협했다.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만들기보단 설득하는 게 나을 수도 있을 거라 판단된 한스가 친절하게 다시 물었다.


“당신이 좀비를 만들었을 거 아닙니까. 좀비화가 된 순간부터 주술사와 좀비는 하나로 연결이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실이 좀비들과 연결이 되어 의식 속에서 맘대로 조종이 가능한 건데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란 말입니까?”


한스의 추측은 너무 많은 수의 좀비를 만들었기에 이젠 주술사의 통제에 벗어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주술사님, 솔직히 말씀하세요.”


한스의 말에 조금은 안도했는지 긴장을 풀었던 주술사는 라빈이 거들자 힘겹게 입을 뗐다.


“통제가 가능하기도 하고 불가능하기도 한데 사실 저도 잘······.”


“하아,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마을 사람들을 죄다 좀비로 만든 겁니까? 당신이란 사람은 대체!”


주술사의 답답한 말과 행동에 한스는 고개를 흔들었다. 적어도 자신이 생각했던 주술사는 악랄하고 괴물 같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주술사는 그저 어리바리해 보이고 평범한 체구가 작고 늙은 남자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이런저런 질문을 하던 것이 불안했는지 카데스가 입을 열었다.


“우선 자세한 건 데려가서 캐묻도록 하자. 여기서 너무 시간을 보내면 안 될 거 같아.”


“그래야지.”


- 퍽!


“크업.”


서지터가 단검 손잡이로 뒷덜미를 강하게 내리치자 주술사는 외마디 비명과 함께 기절을 해버렸다. 혹시 중간에 깰까 싶어 입에 재갈도 물리고 손발도 꽁꽁 묶은 뒤 카데스가 주술사를 업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행이네. 무겁지 않아. 마을까지 힘들이지 않고 갈 수 있겠어.”


일이 순조롭게 풀리는 거 같아 다행이었다. 주술사의 집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라빈의 길 안내를 받으며 은밀하고 조용히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갔다. 혹시라도 좀비가 나타날지도 몰랐기에 서지터는 신경을 곤두세워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를 했다.


카데스는 그런 서지터를 보며 갑자기 궁금해진 것이 생겨 조용히 서지터에게 말을 걸었다.


“그런데 너 아까 확인해 볼 게 있다며.”


“어? 어.”


“뭔데, 확인은 한 거야?”


“했어.”


“그래?”


“일단 마을에서 벗어나면 내가 무슨 짓을 해도 일단 가만히 있어.”


“대체 뭔데 그래.”


“여기서는 너무 위험해. 지금 좀비들이 당장 보이지는 않아도 언제 어디서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마을에 들어서면서부터 좀비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덕분에 빠르게 주술사를 잡아 되돌아갈 수 있었다. 그래도 마을 안에서 좀비가 갑자기 튀어나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서지터의 신경이 날카로워져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카데스의 말에 대답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라빈의 길 안내로 세 사람은 좀 넓은 공터로 들어섰다.


- 타타탁!


갑자기 라빈이 앞으로 달려 나가자 골목 곳곳에서 좀비들이 어기적거리며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좀비의 수는 셀 수 없이 많았다. 지금껏 마을로 들어서며 보지 못했던 좀비들이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린 듯싶었다.


- 그어어어어.


골목을 가득 메운 좀비들이 거센 파도가 몰아치듯 공터로 쏟아져 들어와 세 사람의 뒤를 둘러쌌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한스와 카데스는 어쩔 줄 몰라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탓!


라빈이 커다란 공터의 바위 위로 가볍게 뛰어올라 해맑게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그 미소는 괴기스럽고 공포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헤헷! 그럼 정식으로 소개할게. 마르테아 섬의 주술사. 라빈 테루아야.”


“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은 피드백과 충고, 오타 지적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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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1 23.05.24 34 2 12쪽
9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0 23.05.23 33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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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5 23.05.16 37 2 12쪽
88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4 23.05.15 43 2 12쪽
8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3 23.05.12 33 2 13쪽
»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2 23.05.11 4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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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10 23.05.09 34 2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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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8 23.05.05 33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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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5 23.05.02 46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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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3 23.04.28 41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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