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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님의 서재입니다.

잊혀진 자의 이야기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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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9일생
작품등록일 :
2023.01.06 17:04
최근연재일 :
2024.01.0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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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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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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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2

DUMMY

아리엘은 섬에 도착하면서부터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들 분주히 배에서 내리며 어수선했던 터라 그녀의 변화를 느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항상 붙어 다니던 서지터마저 배설물이 항문을 뚫고 나올 위기의 생리현상 덕분에 아리엘의 상태를 살피지 못했으니 말이다. 그녀는 미처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틈도 없이 의식을 잃고 쓰러질 수밖에 없었고, 뒤늦게 모여들어 상태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렇게 갑작스레 쓰러져버린 아리엘을 파시비엔과 레일라가 살펴보았지만 어디 상처를 입었다거나 다친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야! 어떻게 좀 해봐! 아리엘이 갑자기 왜 쓰러진 거야?”


“그, 그게! 그러니까 말입니다. 어디 다친 곳은 전혀 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가뜩이나 하얀 아리엘님 얼굴이 질린 것처럼 새하얘지기도 했고 또 입술도 새파래지긴 했지만!”


아무리 치료 마법 방면으로 실력 좋은 파시비엔조차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녀가 쓰러져버린 원인에 대해 알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어기적거리며 서지터의 뒤를 쫓아오는 좀비들에게 온 신경이 쏠려 그녀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할 수 없었다.


“일단! 일단 저 좀비들부터 어떻게 해야 할 거 같습니다!”


“파시비엔, 좀비라니? 무슨 말이야 대체?”


좀비라는 말에 한스가 화들짝 놀라 서지터의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숲 밖으로 걸어 나오며 좀 더 선명하게 일행의 눈에 들어왔다. 인간이지만 도저히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 끔찍한 몰골.


몇몇은 얼굴이 반쯤 썩어들어가 있었고, 또 다른 몇몇은 팔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것처럼 뼈만 간신히 붙은 채 덜렁덜렁 흔들며 걷고 있었다.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 역시 살점이 썩어들어가 악취를 풍겼다.


- 스릉.


코끝을 찌르는 악취 덕분에 카데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검을 뽑아 들었다. 누가 보더라도 결코 자신들을 환영해주는 모습은 아니었으니까.


“좀비라면 그냥 다 쓸어버리면 되는 거지? 내가 맡을 테니까 파시비엔은 아리엘을 살펴봐 줘.”


그의 말에 레일라도 자세를 낮춰 단검을 뽑아 들었다. 한스 역시 지팡이를 꼿꼿하게 세워 어떤 주문을 외울지 고민하던 순간 레일라가 한스의 손등에 손을 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마법을 쓰면 소란스러울 거야. 조용한 새벽인데다 일부러 우리가 도착했다는 걸 적에게 알릴 필요는 없어. 한스는 파시비엔이랑 같이 아리엘을 살펴봐.”


- 부스럭, 부스럭.


- 그어어어어어.


“그런데 숫자가······.”


한스는 등골이 오싹했다. 눈살을 찌푸릴 정도의 끔찍한 몰골도 한몫하긴 했지만 방금 서지터의 뒤를 따라오던 10여 명의 좀비 숫자가 어느새 몇 배는 불어난 상태였다. 어림잡아도 족히 50~60명 정도 되어 보일 정도로 일행이 도착한 해안가를 좀비들이 뒤덮기 시작했다.


“허억! 허억! 똥 싸다 뒤질 뻔했네. 야! 뭐야? 아리엘은 왜 쓰러져 있는 거야?”


서지터는 거의 네발로 기다시피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황급히 달려와 쓰러져 있는 아리엘부터 챙겼다.


“그게 그러니까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아무 말도 없이 쓰러져버렸습니다.”


“하아, 돌겠네. 저 시체들은 뭐야 대체?”


바지춤을 올리며 서지터는 고개를 돌려 숫자가 불어난 좀비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어린 시절 책에서 보긴 했지만, 좀비라는 존재를 눈앞에서 목격하는 것은 처음이니 시체들이 걸어오는 걸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파시비엔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그들의 존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좀비입니다. 누군가 죽어있는 시체를 강제로 살려낸 겁니다. 위대하고 자비로운 아그나달린님이시여. 안타까운 저들을 어떻게 한단 말입니까.”


“뭐? 좀비?”


서지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범한 몬스터들보다도 보기 힘든 것이 좀비라는 존재였다. 보통은 성직자의 주문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존재지만 일반적인 성직자들은 일부러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짓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그나마 살도스의 성직자들이 간혹 좀비들을 만들어내긴 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죽음의 신인 살도스 신전에서조차도 철저히 금하는 행위 중 하나였다. 물론 마법사들도 좀비를 만들어 낼 수 있기는 했다. 다크 스컬처럼 생명 계열 마법에 능통한 마법사가 아닌 이상 불가능하지만 말이다.


간신히 옷을 다 추스른 서지터는 기합을 넣으며 등 뒤의 바스타드 소드를 뽑아 들었다.


“좀비든 뭐든 그냥 다 죽이면 되는 거 아냐. 아니지? 이미 죽은 사람들이라 또 죽이는 건 아닌가?”


“농담하실 여유 없습니다. 숫자가 너무 많습니다. 그새 더 불어난 거 같지 말입니다.”


파시비엔의 말대로였다. 잠깐 사이에 좀비들의 숫자는 대략 100여 명까지 늘어난 상태였다. 아무리 실력이 좋은 전사와 도적이 셋이나 있다 해도 감당하기엔 결코 적은 수는 아니었다. 더군다나 쓰러져 있는 아리엘까지 챙기며 전투를 벌이기엔 너무 위험한 상황이었다.


“저거 엄청 느린데? 카데스랑 나랑 둘이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아.”


서지터의 말에 카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좀비들의 움직임 자체가 너무 느린데다 많은 수의 좀비들은 제대로 걷기조차 버거워 보일 정도였다. 너덜거리는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아무리 느려도 쉽게 죽이기 까다롭습니다. 좀비들은 주문을 건 자의 명령 없이는 그냥 피와 살에 굶주려 본능적으로 움직입니다. 완전히 죽일 때까지 계속 달려들 겁니다. 게다가 좀비에게 물리기라도 한다면 감염이 되어 고열에 시달리다 죽는 일도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안 물리면 될 거 아냐. 성직자인 너도 있는데 뭐가 무서워.”


좀비라는 존재에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파시비엔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쓰러져버린 아리엘을 챙겨야 할지, 아니면 좀비들을 상대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잠시 고민을 하던 파시비엔은 잡고 있던 아리엘의 손을 놓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숨이나 맥이 약하긴 해도 위험한 상황까지는 아닌 거 같습니다. 아리엘님 치료는 일단 한숨 돌린 뒤에 하기로 하고 우선 좀비들부터 해결해야 할 듯 합니다. 다들 물러나 계시지 말입니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뭐? 네가? 무슨 수로 저렇게 많은 숫자를?”


“아무리 사제복을 안 입고 있다고 제가 누군지 잊으신 겁니까? 저 성직자입니다! 성직자! 서지터님은 아리엘님 업고 도망치실 준비나 하시지 말입니다. 한스님! 레일라님! 짐 좀 챙겨 주십쇼! 그리고 카데스님은 저 좀 도와서 길을 뚫어 주셨으면 합니다.”


파시비엔의 자신감 넘치는 지시에 다들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단 한 번도 파시비엔이 이런 행동을 보인 적은 없었다. 전투 시에는 항상 후방에 빠져 있거나 정신없이 호들갑을 떨며 친구들이 지켜줘야 하는 그런 존재였다.


성장세는 느리긴 해도 그나마 최근 파시비엔은 앞서나와 근접전투도 나름 잘 치러내고 있긴 했다. 물론 상대적인 거지만 그와 함께 하는 서지터나 카데스의 성장에 비해 느릴 뿐 보통의 성직자들보다 나은 실력임은 분명했다.


서지터는 당당히 앞으로 걸어 나오는 파시비엔이 의심스러웠는지 재차 확인에 나섰다.


“너 진짜 저것들 처리할 수 있는 거 맞지? 숫자가 어마어마한데 감당할 수 있겠냐?”


장난스럽게 말을 던진 서지터와는 다르게 파시비엔의 표정은 사뭇 진지하고 비장함이 가득했다.


“최대한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을 정도로 길만 뚫을 겁니다. 저도 얼마나 처리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해볼 수 있는 데까지 해보겠습니다. 정말이지. 좀비라니······.”


끔찍한 몰골의 좀비들을 보며 파시비엔은 인상을 쓰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어기적거리며 자신들에게 다가오는 좀비들, 한때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을 저들이 안타깝고 불쌍하게 여겨질 뿐이었다.


“그럼 믿는다? 읏차!”


서지터는 파시비엔의 어깨를 툭툭 쳐 힘내라는 응원을 보낸 후 깃털처럼 가벼운 아리엘을 번쩍 안아 들었다. 그러자 곧 카데스가 방패로 파시비엔을 보호하며 앞으로 나섰고, 한스와 레일라는 짐을 챙겨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 해안가를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은 왼쪽과 숲으로 이어지는 정면뿐. 오른쪽은 절벽으로 막혀있었고 대부분 좀비가 숲에서 나타났기에 아직 해도 떠오르지 않은 어두운 상황에서 숲속으로 들어가기엔 위험부담이 너무 컸다.


지리를 빠르게 파악한 레일라가 파시비엔을 향해 외쳤다.


“파시비엔! 왼쪽 탁 트인 곳으로 가야 해. 숲으로 들어가는 건 너무 위험해.”


“알겠습니다. 제가 좀비들을 뚫으면 해안선을 따라 뛰십시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그가 이렇게 든든했던 적이 있었던가. 항상 장난만 칠 줄 알았지, 이렇게 믿음직스러운 모습에 다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파시비엔은 외침과 동시에 은은하게 빛나던 성표를 정면으로 번쩍 들어 천천히, 그리고 또박또박 신성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떠도는 그대여. 지금 내가 아그나달린님의 힘을 빌어 당신에게 평안한 죽음을 드리겠습니다. 터닝 언데드(Turing Undead)!”


성표에 머물던 은은한 빛이 주변을 물들이듯 넓게 퍼져나갔다. 성스러운 느낌의 빛이 일곱의 좀비들에게 닿자 좀비들은 그대로 맥없이 풀썩 쓰러져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신성마법인 터닝 언데드 주문의 효과는 엄청났다. 좀비라는 존재에게 성직자는 상극이나 다름없었기에 파시비엔의 터닝 언데드 주문으로 너무나도 손쉽고 간단하게 일곱의 좀비들을 무력화시켰다.


- 그어어어어어.


- 터엉!


성표의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빨을 드러내고 덮쳐오던 좀비를 카데스가 방패로 튕겨내며 쓰러뜨렸다. 힘이 없어 보이는 좀비를 넘어뜨리는 건 쉬웠지만, 어떠한 고통이나 두려움도 없이 좀비는 다시 힘겹게 일어나 카데스를 공격했다.


“터닝 언데드!”


몇 발짝 앞으로 더 나선 파시비엔이 다시 주문을 외우자 밀집되어 있던 열이 넘는 좀비들이 무력하게 무너져갔다. 덕분에 일행이 빠져나가야 할 방향으로 구멍이 뚫리자 레일라가 먼저 몸을 움직였다.


“레일라님! 기다리십시오! 아직 아닙니다!”


자신을 지나쳐 달려 나가려던 그녀를 파시비엔이 붙잡았다. 서둘러 움직여야 할 상황에 여유를 부릴 시간은 없었지만, 워낙 단호하게 외친 파시비엔의 말에 레일라마저도 발을 떼지 못했다.


‘달아나는 게 우선이지만 그래도 최대한······! 최대한 많이······!’


파시비엔은 아그나달린 신전 소속의 성직자다. 평화를 관장하는 신을 섬기는 성직자로서 이미 죽어버린 평범한 사람들, 자신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없이 다시 살아나 움직이는 이 비정상적인 존재들을 놔둔 채 달아날 수가 없었다. 이미 늦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평온한 죽음을 되돌려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카데스님! 조금만 도와주시지 말입니다!”


- 그어어어어어.


파시비엔은 좀비들이 있는 한복판으로 뛰쳐 들며 외쳤다. 한 손은 단단히 성표를 움켜쥔 채 방패를 들어 달려드는 좀비들을 튕겨 밀쳐냈다. 그의 갑작스러운 위험한 행동에 카데스는 빠르게 좀비들을 베어버리며 파시비엔을 보호하기 위해 움직였다.


카데스의 보호 덕에 약간의 시간을 번 파시비엔은 온 신경을 집중해 재차 주문을 외쳤다.


“터닝 언데드!!”


- 파핫!


앞선 두 번의 주문보다 더욱 눈부시고 짙은 성스러운 빛이 퍼져나갔다. 빛에 닿은 좀비들은 순식간에 쓰러졌고, 숫자는 무려 해안가로 몰린 좀비들의 절반에 달하는 수였다.


“허억! 허억! 지금입니다!”


파시비엔의 말에 다섯은 동시에 좀비들이 없는 왼쪽 해안가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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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5화 각자의 시간 - 1 23.05.29 31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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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8 23.05.05 33 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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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6 23.05.03 37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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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4화 사람이 사람에게 - 4 23.05.01 42 2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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