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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류희윤] 님의 서재입니다.

선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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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초[류희윤]
작품등록일 :
2005.10.14 14:39
최근연재일 :
2005.10.10 17:29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566,741
추천수 :
223
글자수 :
52,651

작성
05.10.09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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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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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글자
9쪽

[선무]3장. 나비와 놀고, 벼락과 놀고(2)

DUMMY

“나비는 바람과 어울릴 뿐, 바람을 거스르지 않느니라.”

한바탕의 춤사위가 끝난 후, 경무구가 가유량에게 한 말이었다.

“가르침을 주십시오, 스승님.”

현재의 유량은 많은 면에서 멍해진 상태였다.

그 것은 굉장한 충격이었고, 그의 마음을 송두리째 사로잡아버

린 엄청난 사건이었다.

“그렇다는 것을 역으로 생각해 보면 되는 것이다. 너는 역지사

지라는 말을 알고 있지 않느냐?”

역지사지(易地思之). 처지를 바꿔서 생각한다는 그 말을 유량이

모를 리 없었다.

“한 마디로, 나비와 놀기 위해서는 나비를 거스르지 않아야 한

다는 말이다. 너의 바람이 봄날의 훈풍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나비들이 너에게 오지 않음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나비가 너와

도 마음껏 어울릴 수 있게끔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말이지. 너

의 바람이 나비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바람이 되어 준다면, 나비

들과 더불어 즐겁게 놀 수 있지 않겠느냐?”

그런 것이었구나.

스승님이 나비와 더불어 춤을 춘 것은, 스승님이 나비를 붙들

려 하신 것이 아니고 나비가 스승님과 더불어 춤을 추고 싶었던

것뿐이었구나.

자신은 어떠했던가.

나비와 어울리려 많은 노력을 했었지만, 그 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입장에서였을 뿐, 나비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았었다.

나비들은 그저 따뜻하고 상쾌한 바람을 원했던 것뿐이었다. 자

신들이 즐겁게 노닐 수 있는 그런 곳을 원했던 것뿐이었으리라.

가유량 자신이 그런 곳이 되려고 노력하지 않은 채,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는 나비들만 탓했으니 그 것이 문제였던 것이다.

자신이 바람이 되고 나비가 되어야 했던 것이다.

“제자가 어리석어 스승님의 뜻을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유량이 그렇게 고개 숙이며 말하자, 경무구는 너털웃음을 지었

다.

“껄껄껄. 네가 어리석은 것이 아니다. 다만 노부의 요구 자체가

어려웠을 뿐이다. 노부는 네가 그 것으로 많은 고민을 해보길 원

했던 것일 뿐이다. 충분한 고민을 통해 얻은 깨달음만큼 소중한

것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

유량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경무구의 말이 다

시 이어졌다.

“기실, 나비와 놀라는 말은 우리가 추구하는 무학과도 큰 관련

이 있는 것이다. 네가 기억만 한 채 아직 익히지 못하고 있는 무

유선의 제 일초와 이초는 그 것을 기초로 한 무공이기 때문이다.

다만, 나중에라도 네가 더 빨리 깨닫게 하기 위해서 노부가 약간

의 편법을 쓴 것뿐이니라.”

“감사합니다, 스승님.”

“너는 오늘부터 나비와 함께 할 수 있는 마음을 깨닫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예, 스승님!”


그 후로 유량은 풀밭 위에서 정좌한 채, 눈을 감고 많은 것들

을 생각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 것이 약 한 달간 계속되었을 때, 유량은 느낄 수 있었다.

내공을 운용하고 있는 자신의 몸에서도 미약하게나마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며, 자신의 주위로 몇 마리의 나비가 노닐고 있다

는 것을.

따뜻한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였다.

유량이 담담한 눈빛으로 손목을 부드럽게 털었다.

촤라라락-

부드럽게 부채가 펼쳐지자, 유량은 그 전에 스승이 했던 것과

같은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단지 몇 번을 본 것만으로 그 춤을 완벽하게 기억할 만큼 유량

의 두뇌가 비상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승님이 가진 그 춤이 담고 있는 마음은 분명하게 느

끼고 있던 유량이었다.

단지, 그 마음으로 춤을 시작했을 뿐이었다.

눈을 감고 춤을 추는 유량의 모습은 매우 부드러웠고, 그의 얼

굴 표정 또한 편안했다.

그러는 동안에 유량과 함께 춤을 추는 나비들의 숫자도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몇 마리뿐이었던 것이 약간의 시간이 흐르자 수십 마리

로, 그리고 결국엔 수백 마리로 늘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을 감고 춤에 몰입한 유량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다만 눈을 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마치 자신이 아닌 듯

한 느낌을 받았을 뿐이었다.

지금 그 순간, 유량은 인간으로서의 가유량이 아닌 자연과 조

화를 이루는 존재로서의 자신을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었다.

그런 느낌이 들기 시작하자, 유량은 자신의 주변에 수많은 그

무언가가 자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게 되었다.

그런 유량이 춤을 추는 와중에 살며시 눈을 뜨니, 자신의 주위

에서 형형색색의 나비들이 자신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것이 아

닌가? 물론 스승님과 함께했던 나비들의 숫자보다야 훨씬 적었지

만, 유량은 그 것 자체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그 상태에서 유량은 춤 속으로 더욱 더 몰입하고 있었고, 그의

춤은 오래토록 계속되었다.

서서히 춤을 멈춘 유량은 만족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는 천

천히 걸음을 옮겨 모옥으로 향했다.

그가 춤을 췄던 주변의 풀과 꽃들이 더욱 생기를 내뿜고 있었

다는 사실과 그가 밟았던 풀들이 그가 떠난 후에 천천히 고개를

들며 다시금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고 있었다는 그 사실에 대해서

는 전혀 모른 채.


그 날 이후로 유량은 매일 같이 나비들과 놀 수 있었다.

제자의 변화를 먼 곳에서 직접 확인한 경무구는 눈을 둥그렇게

뜨고 있었다.

‘놀라운 일이다!’

자신의 제자는 겨우 20년 공력을 가졌을 뿐이었다.

물론 공력이라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수준을 정확히 가늠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력만 놓고 봤을 때 자신의 제자는

겨우 이류 수준일 뿐이었다.

분명히 나비와 놀라고 말한 것은 자신이었지만, 설마 자신의

제자가 저렇게 빨리 이런 결과를 보여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경

무구였다.

이류 수준의 공력을 가지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무공을 펼

쳐낸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었다.

‘자연과의 친화력?’

경무구는 다른 가능성들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

었다. 하지만 지금 제자의 모습은 절대 친화력으로 인한 것이라

고는 해석할 수 없었다.

경무구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녀석은 기재(奇才)가 아니다.’

가르쳐 본 결과 제자는 머리가 뛰어난 것도 아니었으며, 무학

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것도 아니었다.

제자의 골격은 좋은 편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뛰어날 정도로

좋은 골격도 아니었다.

그저 노력을 열심히 하는 편이었지만, 그 정도의 노력은 기실

평균 이상 정도였다.

경무구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녀석은 기재다.’

기재가 아니라고 했다가 기재라고 하는 이유.

제자는 바로 심성의 기재라고 볼 수밖에 없었다.

제자는 이계에서 온 존재였다. 그는 그 세상에서도 그다지 특

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고 했다.

그 변변치 않은 능력이 이곳에 옴으로 인해서 굉장한 능력으로

변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그는 그저 그 전의 세계에서, 극한에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은, 자신의 마음을 다스린 존재였을 뿐.

그 것이 그만의 ‘도’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그럴 수 있다는 것은 그의 심성이 충분한 뒷받침을 해줘야 한

다는 것.

‘크헐헐헐헐!’

경무구는 속으로 시원한 웃음을 지었다.

‘심성의 기재라! 헐헐헐.’

경무구 자신도 그 정도는 아니었거늘.

여태 천고의 기재로 불리며 ‘고금제일인’이라든지 ‘천하제일인’

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수많은 고수들도 자신의 제자에 대한 사실

을 지하에서라도 듣는다면, 그 순간 무덤을 박차고 벌떡 일어날

일이 아닌가?

그 또한 제자의 삶이니 자신이 참견할 수는 없는 것.

어차피 자신으로 인해 무림에 연이 닿은 자신의 제자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무림의 일원이 될 터.

아마도 온 무림이 언젠가는 자신의 제자로 인해서 경악하게 될

것이다.

‘그로 인해서 무림도 바른 길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더욱 고

민하게 되기를…….’

조용한 표정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경무구의 입가에 문득 묘한

미소가 걸렸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벼락과 놀 차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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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선무]3장. 나비와 놀고, 벼락과 놀고(3) +60 05.10.10 30,063 9 11쪽
» [선무]3장. 나비와 놀고, 벼락과 놀고(2) +86 05.10.09 29,608 39 9쪽
10 [선무]3장. 나비와 놀고, 벼락과 놀고 +75 05.10.06 30,704 14 6쪽
9 [선무]2장. 네가 배워야 할 것은 부채질이다(4) +66 05.10.06 29,814 19 8쪽
8 [선무]2장. 네가 배워야 할 것은 부채질이다(3) +76 05.10.06 30,389 10 10쪽
7 [선무]2장. 네가 배워야 할 것은 부채질이다(2) +68 05.10.05 32,126 14 11쪽
6 [선무]2장. 네가 배워야 할 것은 부채질이다 +88 05.10.05 34,986 12 10쪽
5 [선무]1장. 노부는 '천하제이인'이었다!(4) +67 05.10.05 34,398 15 8쪽
4 [선무]1장. 노부는 '천하제이인'이었다!(3) +89 05.10.04 36,734 20 11쪽
3 [선무]1장. 노부는 '천하제이인'이었다!(2) +64 05.10.03 41,509 11 9쪽
2 [선무]1장. 노부는 '천하제이인'이었다! +85 05.10.03 48,123 21 10쪽
1 [선무]서장. 나는 그날의 스승님을 잊지 못한다 +108 05.09.30 58,709 26 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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