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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류희윤] 님의 서재입니다.

선무

웹소설 > 작가연재 > 퓨전, 무협

완결

초[류희윤]
작품등록일 :
2005.10.14 14:39
최근연재일 :
2005.10.10 17:29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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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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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651

작성
05.10.0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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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선무]1장. 노부는 '천하제이인'이었다!

DUMMY

1. 노부는 ‘천하제이인’이었다!



‘노부는 천하제이인(天下第二人)이었다!’

- 그 것은 ‘무공’이라는 것에 대해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했던

날, 스승님이 처음으로 하신 말씀이었다.



* * *



강호 밥을 먹는 사람치고, 백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 이름을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선선자(仙扇子) 경무구(景無垢).

하지만 백 년 전의 그 당시에는 ‘선선자’라는 칭호도 거의 쓰이

지 않았다. 다른 호칭이 더 앞섰기 때문이었다.

천하제이인!

사실, 웃기는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천하제일인’도 아니고

‘천하제이인’이라는 호칭이 많이 회자되기는 힘들기 때문.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하제이인이라는 호칭으로 더 친숙한 사내

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선선자 경무구였다.

누구든지 일인자는 기억하기 쉬우나 이인자는 기억하기 어렵게

마련이다. 그러나 비록 이인자였으되 사람들의 뇌리 속에 더욱

각인된 인물, 그가 바로 경무구였다.

그는 자신의 친구를 위해 위대한 일인자의 자리를 양보한 특이

한 인물이었다. 일인자로서의 모든 영광을 뒤로한 채, 홀로 초연

히 사라진 인물이었다.

세상사에 초연한 듯,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만인들 앞에서 당

당하게 사라져간 인물이었다.


꽤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성성한 백발에서는 아직까지 윤

기마저 흐르는 듯 보이는 노인.

백색 내지는 은색으로 화한 듯 도도하게 뻗은 그의 수염 또한

비범한 풍채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감았다가 살며시 뜬 그의 눈에서는 정광이 잔잔하게 흐르고 있

었으니, 누가 봐도 도인의 완벽한 풍모였다.

노인은 엄숙한 자세로 앉은 채 눈을 지그시 감으며 깊은 상념

에 잠겨들고 있었다.

‘많은 날을 살아왔고, 많은 일을 행하였으되…….’

그의 온 몸에서 풍기는 기운은 부드러우면서도 엄숙했고, 또한

도도했다.

‘좀 전까지도 인간사를 초연하지 못하다가 이제야 깨달음을 얻

을 수 있었다.’

사슬처럼 얽혔던 세상의 모든 고리들이 사라지고, 수많은 번뇌

의 늪에서 헤어 나오자 그 세상마저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다.

곧 노인은 정중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러더니 누구를 향한 것인지 모를 중얼거림이 시작되었다.

“인간으로서는 꽤 많은 나날들을 살아오면서 많은 잘못이 있었

고, 또 그보다 더한 어리석음들이 있었사옵니다.”

노인은 도대체 누구를 향해 그런 말을 하는 것일까?

“저 자신이 느끼기에도 저는 아직도 많이 부족한 몸이기에 고

인들께서 보시기에는 더욱 부족하겠사옵니다마는 이제는 저 또한

선배 고인들의 뒤를 이으려 합니다.”

도대체 노인이 말하는 선배 고인들이라는 자들은 누구일까? 아

무도 없이 홀로 있는 곳에서 그런 말들을 중얼거리는 노인.

정녕 이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선인이 되기에는 부족함이 있을지 모르겠사오나, 저는

이제 그 길을 가려 합니다.”

정녕 놀라운 일이었다.

노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선인의 길로 접어들겠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지금 그가 우화등선(羽化登仙, 깃털처럼 가벼워져

신선에 오른다는 뜻)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일까?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신선이 된다는 것은 전설 속에서나 가능

할 일이다. 때때로 그러한 전설들이 있지만, 실제로 노인이 신선

으로 화한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세상사에서 쓰이던 소인의 이름은 경무구. 그 보잘 것 없는

이름도 지금은 아무런 의미가 없사옵니다. 이제 저는 세상사에서

초연하여 더욱 넓고 이로운 도를 추구할 것을 천지신명과 선배

고인들께 고하옵니다.”

경무구!

그 노인이 바로 선선자 경무구였다니?

능히 천하제일인이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영광과 명

성을 뒤로한 채, 천하제이인을 선택했던 인물.

백여 년 전 그렇게 홀연히 사라졌던 그가 지금 이 곳에서 우화

등선을 준비하고 있었으니 더욱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노인 경무구는 거기까지 말한 후 잠시 눈을 떴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평온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조용히 감

기는 그의 눈. 그는 무릎을 꿇고 있던 자세를 고쳐 정좌하며 명

상에 잠기기 시작했다.

‘삶은 삶이고 죽음은 죽음이다. 허나 어떤 면에서 삶이라는 것

은 죽음의 연장선이 될 수 있고, 죽음이라는 것도 삶의 연장선이

될 수 있는 것. 사랑도 미움도, 욕심도 미련도 결국은 인간의 마

음이 만들어 낸 잔상들일 뿐…….’

돌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명상에 잠겨 있는 그의 몸에서 투명한 듯 푸른빛의 서광이 이

는 것이 아닌가.

‘초연하고 또 초연하면 그러한 것들은 무(無)가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꼭 유(有)가 아닌 것은 아니니…….’

바람도 없는데 그의 백발이 미약하게 휘날리기 시작했다.

‘영원한 삶을 원하는 것 자체가 미련함일 뿐이요, 죽음을 싫어

하는 것도 모순이나 죽음을 좋아하는 것도 모순이 아닌 것이 아

니다. 나는 죽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죽는

것이 싫은 것도 아니다. 어지간한 것의 도(道)는 그 가운데에 위

치해 있으니, 그런 것을 깨달은 나는 이제 다른 차원의 삶을 살

아가려 하는 것 뿐.’

우우우웅-

신기한 소리와 함께 그의 백발과 수염은 잔잔한 바람에 나부끼

듯 자연스럽게 휘날리고 있었다.

‘더 커다란 도를 깨닫기 위한 발걸음에 불과하다. 선인(仙人)의

길에 들어서고 그을 걷는다는 것은 행운도 아니요, 행운이 아닌

것도 아니다.’

경무구의 몸에 일던 서광은 더욱 강렬해져 있었다.

이윽고 그의 입이 열리며 조용하면서도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그저, 그러하기에 그러한 것일 뿐.”

그 한마디와 함께 그의 몸 주위로 새하얀 빛 무리가 일기 시작

했다. 그 빛은 갈수록 강렬해져만 갔지만, 경무구의 표정은 평온

하기만 했다.

이대로라면 그는 자신이 원했던 대로 우화등선할 수 있었다.

아무런 욕심이나 미련 등이 없었을 뿐더러 실패한다고 해도 그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뿐이니 그 무슨 번뇌가 있으랴?

그의 얼굴이 담담하고 평온한 것은 그의 그러한 생각에 기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평온하기만 했던 경무구의 표정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감겨 있는 그의 눈 꼬리가 미세하게 떨리기 시

작한 것.

‘이 곳의 지붕 위로 뭔가가 떨어져 내리고 있다. 그리고 그 것

은……!’

경무구의 얼굴에 놀람과 동시에 당황함이 어리기 시작했다. ‘그

것’이란 바로 인간이 확실했기 때문. 선인지경에 다다른 그의 육

감이니 거의 맞는다고 봐야했다.

‘이 게 도대체 어찌 된 영문이란 말인가? 이대로라면 우화등선

할 수 있거늘, 왜 갑자기 이런 때에?’

이 날을 위해서 경무구가 신경 쓴 것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음과 양이 조화를 이루는 계절과 날짜, 그리고 시간. 게다가 장소

까지. 물론 그러한 조건들은 경무구가 이날을 위해 준비한 것의

삼 할도 안 되는 것들이었다.

깨달음을 근래에 얻기는 했지만, 날짜나 장소 그리고 날씨 등

에 있어서 몇 년 만에 오늘처럼 좋은 조건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오늘 우화등선에 실패한다면 앞으로 또다시 몇

년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이 된다. 게다가 우화등선을 시도했다

가 실패하면 진원지기에도 타격을 입을 수 있었다. 약간의 주화

입마가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영은 계속해서 자신이 거하고 있는 곳의 지붕을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곳이 아무리 끝없이 높은 절벽의 아래라고는

하지만, 이곳에 수십 년간 기거하면서도 이런 일은 한 번도 없었

던 터다.

사람들이 많은 중원. 그 곳에 있는 절벽이라면 몰라도, 이곳은

중원과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먼 곳이었다.

중원에서도 남쪽으로 한참 떨어진 바닷가. 그 곳에 있는 작은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제법 높은 산이었지만, 인적은 굉장히 드

문 곳이었다.

‘그런 곳일 뿐이거늘, 하필 이런 중요한 시기에…….’

경무구의 얼굴에 고뇌한 표정이 드러났다.

결국 우화등선의 마지막 단계로 들어서던 그의 입이 조용히 열

렸다.

“업이련가…….”

그 말과 함께 정좌해 있던 그의 몸이 사라지는가 싶었다. 그는

방문을 박참과 동시에 지붕 위를 향해 뛰어 올랐다.

그 즈음 정체불명의 인영은 빠른 속도로 경무구를 향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경무구가 떨어져 내리는 그 인영을 향해 양 손을

뻗으니 돌연 인영이 추락하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기 시작했

다. 그러면서 그 인영은 경무구의 품안에 가볍게 들어왔다.

인간의 경지를 뛰어 넘은 놀라운 능력이었으나, 경무구의 얼굴

은 다시 담담해져 있었다.

그 인영을 든 채 지붕을 내려가는 경무구는 여전히 눈을 지그

시 감고 있었다. 초가지붕 위에는 그가 마지막으로 중얼거린 한

마디만이 잠시 머물다가 사라져갔다.

“그저, 그러하기에 그러한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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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함께하는 소설여행 모기 : http://mogi.dasool.com


*팬 까페 초사모 : http://cafe.daum.net/feel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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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무]1장. 노부는 '천하제이인'이었다! +85 05.10.03 48,124 2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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