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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최근연재일 :
2024.06.13 11:35
연재수 :
100 회
조회수 :
2,697
추천수 :
307
글자수 :
597,391

작성
24.02.22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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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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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추적과 압박

DUMMY

강력 1팀의 여섯 명 중 나와 기철이 형, 반장님을 뺀 세 명을 포함한 모든 수사과 형사들은 늑대파 조폭들을 체포하러 나가 있었다.

우리 서의 순경 한 명이 증인을 보호하려다가 의식 불명의 사경을 헤매는 상황이었으니까. 용의자가 속한 게 확실한 폭력 조직을 그냥 놔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우리 셋은 현장에서 체포된 놈을 취조하는 중대 임무 때문에 경찰서에 남은 거였다.

병원에서 붙잡힌 이후 계속 묵비권을 행사중인 놈은 지문 확인을 통해 신원은 파악이 된 상태였다.


만 26세 이태수.

스무 살 때 폭력으로 집행 유예 처분을 받은 적이 있는 전과자. 낳고 기른 부모가 있고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기록이 다 있는 것으로 봤을 때 중간자일 확률은 적었다.

주민증을 만들고 지문을 찍을 고등학생 시절에 늑대인간이 진짜 이태수의 신분을 가로챘다면 가능하겠지만 거기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미랑과 나는 이태수의 신원이 이미 파악된 걸 모르고 나름의 테스트를 한 거였다.

의뭉스러운 너구리 가문 출신인 반장님은 이태수가 중간자일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 뭐, 그 덕에 나랑 미랑은 동물의 감각을 판단기준으로 삼아서 편견 없이 열심히 관찰하기는 했다.


몇 시간 전에 너구리의 후손이라고 커밍 아웃을 하긴 했지만 여전히 반장님은 속을 다 보여주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가 중간자 사회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고 있고 정확히 어떤 입장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다행인 것은 미랑과 묘화에 대해서 수사할 생각이 없다는 점이었다.

묘화가 기철이 형 턱과 팔을 부러뜨린 건 분명한 사실이었고, 미랑의 전남편의 사인은 급성 심정지이지만 그가 그토록 겁을 먹게 만든 건 미랑이었다.


그럼에도 수사를 더 진행하지 않았고 나와 미랑의 결혼을 응원까지 한 걸로 봐서 중간자들에 대해 냉정한 편은 아니었다.

그리고 중간자들을 괴롭혀 온 늑대파 수사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반장님의 눈빛이 저토록 초롱초롱한 건 처음이었다. 그게 꼭 우리 서 순경이 사경을 헤매기 때문은 아닐 것 같았다.


어쨌거나, 일단 때려잡고 보는 나랑 다르게 반장님은 생각이 많은 형사였다. 그 덕에 속을 알 수 없는 스타일이지만 사건 관련자들의 복잡한 속내를 잘 읽기도 했다.

그런 반장님과 기철이 형이 심문을 맡았으니까 나는 기대를 하며 관전중이었다.


이태수의 표정과 태도 변화를 관찰하기 위한 단순한 질문들이 끝나가고 있었다.

주소, 부모, 전과, 출신 학교 등 매우 단순하고 기본적인 물음에도 이태수는 계속 묵비권을 유지했다. 빡대나 용근이 상근이 같은 양아치들의 정서불안한 태도와는 다른 매우 묵직한 자세였다.


반장님과 기철이 형이 잠시 숨을 돌리고, 원웨이 글라스 밖의 나와 미랑도 긴장이 좀 풀릴 시점에 휴대폰들이 울렸다.

미랑과 이태수를 뺀 세 형사의 업무용 폰에 연락이 온 거였다.


「우와 캐피탈 대표 노보형, 이사 안세호 소재 불명. 나머지 늑대파 간부들은 체포 또는 소재 파악 완료.」


노보형은 빡대 애인 원룸에 위스키와 번개탄을 갖고 왔던 늑대인간. 안세호는 주점에서 마종대를 협박하면서 우리 강력반이 자기네 단골이라고 떠들었던 놈이었다.

내가 보기에 조직의 핵심 같은 두 놈이 깔끔하게 잠수중인 거였다. 그리고 늑대파의 핵심들은 중간자일 가능성이 컸다. 고로 안세호란 놈도 보름달이 뜨면 아오오 울부짖는 개과 짐승일 수 있었다.


기철이 형은 내 생각을 거의 다 알고 있었지만 반장님은 아니었다. 그래서 곧바로 세 사람의 ‘취조실 톡방’을 만들어서 의견을 전달했다.


「노보형은 확인된 늑대인간, 안세호도 중간자일 가능성이 크다고 봄. 노보형은 박대규와 함께 중간자들을 갈취 협박한 것도 확인했음. 노보형과 박대규가 고해곤 박사를 납치했을 때 이태수도 같이 있었을 가능성이 큼.」


취조실 안에서 반장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심문을 다시 시작했다.


“이태수 씨.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이나 돈 벌러 온 연변 동포들 어떻게 생각해요?”

보통이라면 뭔 소리냐, 하는 표정 변화라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이태수는 여전히 온몸이 묵비권이었다.


“커밍아웃하는 소수자들 있잖아요. 그렇게 말 못 할 사연으로 속앓이하는 사람들은 어때? 불쌍해요?”

흥~ 이태수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었다. 짭새가 어떤 식으로 혼란을 유도하더라도 넘어가지 않겠다는 신호 같았다.


“조폭들 중에도 게이가 있던데. 빵에서 잘못 적응해서 그런 건가?”

여전히 묵비권. 그러나 표정은 조금 만들어졌다. 아주 같잖다는 표정.

“이태수 씨는 인간, 남성, 이성애자, 맞아요?”


보통은 짜증이라도 낼 것 같았다. 이태수는 그나마 살짝 지었던 표정마저 지워버렸다.


“백운산으로 박대규가 고해곤 박사 납치할 때, 같이 있었죠?”

꼬리를 무는 기철이 형의 질문이 바로 이어졌다.

“우와 캐피탈 사장 노보형이랑 같이 고박사 술 먹였잖아?”

“이태수 니가 인간이 아니란 걸 고박사가 아니까 죽인 거잖아?”

“보름달 뜨면 똥구녕 위에 꼬리 나오고 털난 주둥이 튀어나오는 놈이잖아. 너!”


속사포처럼 질문들이 쏟아졌다. 갈수록 이상해지는 질문들이.


“대답해 이태수! 짐승 새끼야!”

이태수는 굳게 엇갈린 팔짱을 풀었다. 주먹을 움켜쥐고 겉으로 드러날 만큼 이를 악물었다. 놈이 흔들리고 있다!


“노보형. 너랑 같이 고박사 죽인 살인자. 늑대인간이지?”

이태수는 눈썹을 치켜 올리며 눈을 부릅떴다. 감정이 요동치는 모양이었다.

“우와캐피탈 안세호 이사. 그 새끼도 짐승 새끼지? 사람 죽일 때면 송곳니로 물어 뜯는 놈이지?”


쾅! 이태수는 두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리고 거칠게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반장님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그 두 놈 말고도 또 있지? 겉으로 안 나서는 늑대 오야지도 있지? 인간 반 짐승 반 살인자 새끼. 니네 제일 윗대가리 새끼들 중간자 맞잖아?”


우욱! 이태수가 보여준 반응은 예상 못한 거였다. 굳게 다문 놈의 입술 사이에서 핏물이 새 나왔다.


“혀! 혀 깨물었어. 입 벌려!”

반장님은 황급히 놈의 두 팔을 붙잡았고 기철이 형은 놈의 얼굴과 턱을 당겨서 억지로 입을 벌리게 했다. 미랑도 당황하고 있었다.

나는 119에 전화를 걸면서 응급처치 키트를 가지러 달려갔다.


‘미친 새끼. 지가 무슨 올드보이 오대수 아저씨야? 나라 구하는 스파이야? 아니면 절개 지키는 조선시대 과부야? 열녀문 세워줘?’


놈은 죽지는 않았다. 하지만 혀는 두 토막으로 끊어지기 직전까지 잘려 버렸다. 아아, 이 또라이 새끼들··· 정말 무서운 새끼들이었다.



결국 이태수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은 거다. 대화에 필요한 신체 부위마저 자해한 놈은 감시 경관과 함께 병원으로 옮겨졌다.

위내시경 때처럼 강제로 마우스피스를 끼우고 입 주변에 붕대를 감은 채 실려가면서도 놈의 눈빛은 형형했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지···’

허탈함과 동시에 살짝 소름이 돋는 두려움이 느껴졌다. 남들한테도 그런 심정이 비쳐졌을까? 기철이 형이 내 등을 두드리더니 말했다.


“거 뭐냐, 아점, 브런치··· 하여간 뭐 좀 먹으러 가자. 제수씨도 같이 가시죠.”

미랑은 괜찮다고 사양했지만 기철이 형은 한사코 권했다.

“안 돼요. 잡숴 주세요. 어제 병원에서도 구해주셨는데 제가 입 싹 씻으면 안 되죠.”


그건 맞는 말이었다.

빡대의 병실에서 늑대인간과 맞섰을 때, 미랑이 오지 않았으면 우리는 그 병원에 지금 냉동돼 있을 확률이 컸다.

생명의 은인 급으로 대우해야 할 마당에 아점 한 끼는 사실 극도로 약소한 거였다.


그리고 사실 기철이 형보다 더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였다.

미랑 덕에 위기를 벗어난 게 이번 한 번이 아니니까. 그렇지만 검소한 은인께서는 순대국밥을 선택하셨고, 기철이 형은 미랑에게만 ‘특’ 순대국밥을 대접함으로써 감사하는 티를 냈다.


식사를 마치고 미랑은 체육관 오후 수업에 갔고 나랑 기철이 형은 당연히 경찰서로 돌아갔다. 가면서 자기 혓바닥을 잘라내려고 했던 독한 놈 이태수 얘기를 했다.


“보통 독한 놈이 아니야. 묵비권 쓴다고 입 딱 다물고 있을 때부터 기가 장난이 아니더라고.”

“밖에서 보기에도 하나도 안 쪼는 것 같았어요.”

“그런데 중간자 얘기가 나오니까 분위기가 확 바뀐 거야.”

“우리도 병원에서 변신하는 걸 봤으니까 이태수도 전부터 알았겠죠?”

“얼마나 강하고 얼마나 무서운 존재들인지 알았던 것 같애. 그러니까 죽더라도 입을 열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거지.”


군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적진을 향해 돌격하려면 둘 중의 하나가 만족돼야 한다.

첫째는 적에 대한 두려움보다 상관과 전우에 대한 믿음이 더 큰 경우. 둘째는 앞을 막아선 적보다 뒤에서 명령하는 상관 또는 군율이 더 무서운 경우다.


이태수가 속한 늑대파는 아마 두 번째 경우일 거다.

배신자로 찍히는 것보다 죽거나 제 몸이 상하는 게 낫다고 판단할 만큼 무서운 조직. 냉혹한 킬러 입장에서도 늑대인간의 보복은 상상하기조차 싫었던 거다.


혹시 두 가지 경우를 다 만족시키는 조직은 아닐까···

잠시 걱정스러운 의문이 떠올랐지만 곧 지워버렸다. 그런 악당들은 듣도 보도 못 했으니까. 늑대파가 그토록 환상적인 악의 무리라면···

아니, 상상하기도 싫었다.


그런데··· 그런데 이 쳐 죽일 새끼들이···


* * * * * * * * * * * * * * * * * * *


미랑이 수업 때문에 시간을 못 맞출 때면 천연호가 자기 아이를 챙기면서 옥,희까지 유치원에서 데려 왔다.

연호 이모가 데리러 오는 건 옥,희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연호가 무슨 요일 몇 시에 유치원 현관에 대기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옥,희는 신속하게 익숙한 루틴대로 움직였다.

유치원 가방을 메고 신발 신는 곳까지 달려 나와서 연호 이모랑 하이파이브를 한다. 그리고 신발을 신고 유치원 마당으로 달려가 그네에 줄을 선다. 먼저 그네를 타는 아이가 금방 내리지 않으면 그네 옆에서 귀청이 터져라 노래를 부른다.

그네를 차지하면 어디서 솟는지 모르는 포스를 총동원해 그네를 탄다. 뒤로 넘어가 360도 회전하는 게 아닌가 보는 이가 걱정할 만큼 격렬하게.


옥,희는 익숙한 코스대로 움직이려고 연호와 하이파이브를 마치자마자 유치원 현관을 뛰쳐나왔다. 그런데!


아저씨 둘이, 건장한 남성 둘이서 달려오는 아이를 각자 하나씩 받아 안았다. 그리고 옥,희의 진행 방향 그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마치 두 아이가 아빠나 삼촌과 노는 장면 같았다. 도움닫기 하듯 달려온 아이. 속도를 그대로 살려 안아 들고 비행기를 태우는 친한 어른.

그런데, 문제는 두 남성이 옥,희와 초면이라는 거였다.


옥,희도 잠깐 상황 판단을 못 하고 있었다. 유치원에서 배운 유괴 예방 교육의 상황과 판이했기 때문이다.

‘도와주세요. 우리 엄마 아니에요. 아뇨. 강아지 보러 안 가요. 초콜릿 엄마한테 물어보고 먹어야 돼요. 길 찾는 건 못 해요. 저기 어른한테 얘기해야 돼요.’

이런 대응법은 시뮬레이션이 돼 있었다.


하지만 냅다 비행기를 태우고 달려가는 아저씨한테 대응하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다. 게다가 두 사내의 빠른 주력으로 인해 경쾌한 속도감이 느껴지는 중이었다.

이상한 동시에 신이 나는 시츄에이션!


그래서 우리의 똘똘한 옥,희는 잠시 어리둥절···!

이 비행을 어찌할지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뭐야! 거기 안 서! 옥희야!”

소스라치게 놀란 연호가 달리면서 소리쳤다.


두 사내의 팔에 매달린 옥,희가 뒤를 돌아볼 때는 이미 유치원 마당을 벗어난 뒤였다. 연호는 유치원 앞 길가에 문이 활짝 열린 SUV가 정차해 있는 걸 보고 경악했다.

두 사내는 당연한 듯 그 차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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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3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12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10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3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5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6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8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6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3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9 4 14쪽
55 멀더와 스컬리 +2 24.03.20 14 3 13쪽
54 사슴 소녀의 그림자 24.03.20 12 3 12쪽
53 가녀린 목소리 +2 24.03.19 12 3 13쪽
52 몬순 monsoon 바뀌는 풍향 +2 24.03.15 17 3 13쪽
51 밝은 밤, 어두운 밤 24.03.14 16 3 12쪽
50 사랑과 재채기, 그리고 +2 24.03.12 20 3 15쪽
49 텅 빈 집, 꽉 찬 집 24.03.12 14 3 14쪽
48 무지개 뜬 날 +2 24.03.07 14 3 13쪽
47 내 꿈 꾸지? 24.03.07 14 3 12쪽
46 다시 생각해 +4 24.03.05 22 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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